의자왕의 주치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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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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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 없어 (2)

DUMMY

제 7 화 그런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 없어 (2)


“······.”

“무슨 일인가?”


상좌평 성충과 왕유능타가 걸음을 멈췄다.


“공산성에 역질이 돌고 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송구하오나, 소인에게 소상히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런지요?”


“음,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네.”


왕유능타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윤찬은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그를 설득했다. 첫째는 호기심이요, 둘째는 이 위기가 자신에겐 기회가 될 수 있겠단 강렬한 직감 때문이었다.


“소인이 장돌뱅이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보니, 주워들은 것들이 좀 있사옵니다. 어쩌면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이보시오. 수의박사. 목 의원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지 않소?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그러자 성충이 왕유능타를 설득했다.


“상좌평 어르신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내키지 않았지만, 지체 높은 상좌평의 제안이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윤찬의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

최근 공산성 인근에서 돌고 있는 역질에 대해 다시 논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표정의 왕유능타.


“수의박사 나으리, 공산성에 돌고 있는 역질은 어떤 병이옵니까. 혹시, 염병 같은 것이옵니까.”


윤찬이 물었다.


“당치않아. 염병이라면 의박사에서 충분히 다스릴 수 있었을 것일세.”


왕유능타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하오면······.”

“나도 처음엔 염병인 줄 알았지. 마른기침과 고열, 그리고 물설사를 동반했으니까.”


난감한 표정의 왕유능타.


“·········”

“하지만, 확실히 염병은 아닐세. 염병이라면 향부자(香附子), 자소엽(紫蘇葉), 창출(蒼朮)에 생강(生薑)을 더해 만든 탕을 음용하면 필시 차도가 있었을 걸세.”


‘음, 향소산을 말하는가 보군.’


“그러하옵니까.”

“그런데, 탕약을 음용해도 전혀 듣질 않았다네. 결정적으로, 병자들이 하나, 둘씩 눈이 멀더니, 어느새 마을 사람 대부분이 장님이 돼버렸어.”


왕유능타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눈이 멀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눈이 멀어? 지구상에 눈을 멀게 하는 바이러슨 듣도, 보도 못 했다. 이건 분명, 뭔가 착오가 있는 거야. 마른기침에 고열, 그리고 설사라면, 최근 폐렴과 인플루엔자가 돌고 있으니,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있지. 하지만 이런 증세와 눈이 멀게 된 건 아무런 의학적 연관성이 없어. 즉,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다.’


“그러면 치료법은 있사옵니까?”

“의박사에서도 최선을 다해 해결책을 찾고 있으나, 속수무책이야.”

“그렇군요.”

“그렇다네. 결국 좌평 회의에서도 공산성 봉쇄를 결정했다네.”


백제의 최고 의료기관인 의박사에서도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봉쇄요? 그게 언젭니까?”

“벌써 보름 정도 되었네. 나도 어쩔 수가 없었네. 이 끔찍한 역질이 퍼져나가면 큰일 아니겠는가.”

“그러면 만약, 끝까지 이 역질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공산성 사람들은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끄응-

난감한 표정의 성충과 왕유능타.

그러고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역질의 씨를 말리는 수밖에.”


그 말은 공산성에 있는 병자들을 전부 죽이겠다는 뜻이었으리라.

늘 그랬듯이 마을에 불을 놓는 방식으로.


“역질의 씨를 말린다하오면?”

“위로는 고구려, 옆에는 신라의 극심한 도전에 바다 건너 당의 위세가 드세어, 우리 백제는 위태롭다네.역질이 전국으로 퍼지게 되면, 속수무책이야. 내 어찌 병자들이 가엽지 않겠는가.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킬 수밖에. 그래서 실낱같은······. 아닐세.”


상좌평 성충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장담컨대, 공산성 백성들의 병은 역질이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확인을 해봐야겠어.’


윤찬이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소인을 공산성에 보내주십시오.”

“뭐라고?”


뜻밖의 반응에 왕유능타와 성충이 의아한 듯 서로를 쳐다봤다.


“소인이 공산성에 들어가, 병자들의 상태를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자네가 말인가?”


곧바로, 왕유능타가 물었다.


“그러하옵니다. 병자의 증세를 소상히 파악해야 탕약을 제조할 것이 아니옵니까?”

“어허, 그러다 목 의원까지 감염이 되면 어찌하려고?”


성충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비록 이 몸, 미천한 의원이오나, 죽어가는 병자들을 지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사옵니다. 제가 공산성으로 들어가 병자들의 증세를 소상히 파악하고 오겠사옵니다!”

“허허, 탄복할 노릇이로고. 정말 자네의 말로, 진정한 의원일세. 백성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의술을 하는 이로써 최고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윤찬을 칭찬하는 왕유능타.


역질이 두려워 어떤 의원도 병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려는 나서지 않는 작금의 상황.

역질을 다스려 공을 세우고 싶은 공명심은 가득했으나, 탁상공론만 벌일 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줄 이가 아무도 없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윤찬이 그 힘든 역할을 자처하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정말 괜찮겠는가?”


성충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물론 괜찮지. 이건 절대 역질이 아니니까. 게다가, 공짜로 하겠다는 것도 아니야.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아니겠는가.’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주저하지 말고 말씀해 보시게. 내,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줄 것이니.”


“그러면 염치 불고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서 말해보게. 무엇을 원하는고?”

“백제에서 제일가는 대장장이를 저한테 붙여주십시오.”

“대장장이를?”


‘앞날을 생각하면 대장장이가 절대적이지. 이제 수많은 의료기기가 필요할 테니까. 두고 봐. 현대의학의 진수를 보게 해줄 테니까!’


“그러하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네만, 그게 다인가?”

“송구하오나, 하나 더 있사옵니다.”

“말해보게.”

“백제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천성이 떠돌아다니는 습성이 있는지라,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성정이 아니라서······.”

“난 또 뭐라고? 가엾은 백성들을 살리겠다는데, 내가 그 정도도 못 해주겠나. 약조함세. 내가 그 청을 반드시 지키겠네.”


성충이 흔쾌히 윤찬의 청을 받아 주었다.


“그러면 말미는 얼마나 주면 되겠는가?”

“내일 동이 트면, 공산성으로 들어가겠사옵니다.”

“그렇게나 빨리?”

“네. 한시가 급한 상황 아니옵니까?”

“허허, 자네의 측은지심에 탄복할 따름이야. 부디, 몸조심하시게나!”


성충이 흡족한 표정으로 윤찬을 격려했다.


‘약만 팔아서 되겠나? 의학으로 재벌이 되려면 여기서도 메스를 잡아야지!’


윤찬이 두 사람을 응시하며 눈을 빛냈다.


***


다음 날, 공산성.


아침에 해가 뜨기도 전에 봇짐을 메고 공산성으로 출발한 윤찬.

반나절쯤, 걸어 마침내 공산성 입구에 당도했다.


‘여기가 공산성인가?’


인적이 완전히 끊긴 상황이라, 썰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주변이었다.


“이보시오. 나는······.”


마을 입구에 들어선 윤찬.

마을을 통제하는 백제 군인들을 마주쳤으나, 이미 윤찬이 이곳에 당도할 거라는 소식을 받은 그들은 순순히 윤찬을 마을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부디 몸조심하시게!”

“알겠소.”

“아이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명을 재촉하는구먼. 나라에서도 포기한 역질을 무슨 수로······.”


끌끌끌-

그렇게 군인들이 혀를 차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윤찬에게 길을 내주었다.


‘뭘 해도 사는 게 무료했는데, 이곳에 오길 잘했어! 심장이 쫀득쫀득한 게, 확실히 긴장감 넘치는군!’


군인들의 걱정과는 달리, 자신감에 넘친 모습의 윤찬이었다.


잠시 후,


‘이게 무슨 냄새야?’


마치 참혹한 전쟁터마냥 폐허가 돼버린 마을.

마을로 진입하자마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고기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싸하네······.’


온몸을 감도는 불길한 기운. 윤찬이 자기 팔을 문질거리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마을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고,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는 앙상한 개들의 몰골로 미루어 짐작건대,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었다.


그 흔한 빨래하는 아낙네도, 마을 어귀를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전혀 왕래하지 않는 듯 죽어가는 마을이었다.


아무리 역질이 아니라고 확신한 윤찬이라도 지금의 풍경에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모르니.’


미리 준비한 마스크와 장갑을 끼는 윤찬.

그렇게 윤찬이 마을 중심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허리가 구부러져 땅에 닿을 것 같은 노파 한 명이 윤찬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보시오! 할멈!”

“······!”


인기척을 느끼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는 노파.

노파의 두 눈은 검정 천으로 감싸져 있었다.

이 노파도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감염자인가?’


“이보시오 할멈. 난, 사비성에서 내려온 의원, 목윤찬이라고 하오. 대체 마을이 왜 이 모양인 겁니까?”


윤찬이 다가가 노파의 앞길을 막아섰다.


“사비성이라굽쇼?”

“그렇소. 마을 사람들은 전부 어디 가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겁니까? 혹시, 할멈도 역질에 걸린 것이오?”


앞이 보이지 않는 노파가 휘청거리자 윤찬이 그녀의 팔을 잡아 부축하며 말했다.


“이 팔 놓으시오! 난, 역질에 걸린 늙은이오.”

.

황급히 윤찬의 손을 떼어 놓는 노파.


“괜찮소! 의원이라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소상히 말을 해보시오. 무슨 역병이라는 건지.”


전혀 개의치 않는 윤찬.


“나으리, 실은······.”


윤찬이 전혀 물러날 기색이 보이지 않자, 노파가 하는 수 없이 그간에 이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동네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앓더니 급기야 눈이 멀었고, 그 아이들이 부모들이 하나, 둘씩 전염되어 아이들과 똑같이 앞을 볼 수 없게 된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실례지만, 옷을 걷고 팔과 다리를 내게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좀 더 노파의 증세를 살펴보려는 윤찬.


“아니 되옵니다. 나으리.”


노파가 필사적으로 옷깃을 여미었다.


“의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확인할 것이 있으니 살갗을 좀 살펴보겠소.”


윤찬이 억지로 노파의 옷 소매를 걷어 보았다. 그러고는 노파의 안색과 피부 병변, 몸 곳곳을 살펴보았다.


“혹시, 설사나 구토를 심하게 하시오?”

“아니옵니다. 그런 건 없사옵니다.”


여전히 윤찬과 거리를 두려는 노파.


‘약간의 감기 증세가 있을 뿐, 장티푸스는 물론, 이질도 아니야.’


“나으리, 그러니 하루속히 이곳을 벗어나십시오. 잘못하다가는 큰 경을 치를 것입니다!”

“무슨 그런 당치 않은 말을 하시오? 병자를 두고 어디를 가라는 말입니까? 그럴 순 없소!”

“나으리!”

“그나저나, 마을 사람들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이오?”


윤찬이 마을을 두리번거렸다


“율치놈 움막에 모여 있사옵니다. 지금 저도 그곳으로 가는 중이었소!”

“율치네 움막? 그곳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다 하였소?”

“그러하옵니다. 저기 산기슭에 있는 집이 그 움막이옵니다!”


손가락을 들어 대충 감으로 위치를 가늠하는 노파였다.


‘나름 거리두기인가?’


마을 중심과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으며, 앞에는 제법 깊이가 있는 개울이 흐르고 뒤쪽은 울창한 산이 형성되어, 환자들을 격리하기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저곳에 병자들이 모여 있다는 거요?”


윤찬이 손날을 이마에 가져다 대고는 멀리 보이는 움막을 살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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