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의 주치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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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생
작품등록일 :
2024.09.0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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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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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 금화 (1)

DUMMY

제 17 화 선녀 금화 (1)


‘귀신에 들렸다니······.백제 의학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말은 취소!’


윤찬이 미간을 좁히며 좀 더 진료기록부를 살폈다.


-때때로 부여웅 왕자는 광인처럼 미쳐 날뛰기도 하고, 사지를 비틀며 어눌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수백 가지 약을 처방했으나 효험이 없었다.

결국 주금사 백련에게 부탁해 주문으로 악귀를 쫓아내는 방법뿐이다.


‘주금사 금화?’


주금사란 주문으로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사람으로 주술적인 성격이 강하였으나, 백제에서는 정식으로 주금 교육을 시키는 기관이 있을 정도로 상당이 권위가 있었다.

백약이 무효인 병자의 경우, 주금(주문)으로 이를 치료하는 경우는 흔했다.

실제로 귀신같이 병이 낫기도 했고.


‘전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스트레스성 질병의 경우, 주문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는다면 병이 치유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윤찬이었다.


‘그나저나 금화?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은데······.’


윤찬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튼.


‘결국 의학적으로 치료가 안 되니까 주술에 기댄 거라는 건데······. 아무래도 한 번 살펴봐야 할 것 같군.’


두 왕자의 진료기록부를 살핀 윤찬이 직접 부여웅의 상태를 확인하기로 결심했다.


***


별궁.


왕자들을 살피겠다는 기별을 보낸 윤찬이 의료 도구를 챙겨, 별궁으로 향했다.


‘의자왕의 막내 아들이라······. 위로 40명의 왕자가 버티고 있으니, 의자왕의 막내 아들 웅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겠군. 그저 좌평 한자리 차지하면 다행이다 싶겠으나, 그마저도 나이가 어려 쉽지 않을 테고······. 결국 백제가 망하게 되면 노비 신세가 될 불쌍한 아이구나. 그나저나 대체 이 어린 것이 무슨 병에 걸렸기에 귀신에 들렸다고 하는 걸까?’


윤찬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 사이,


딱-


“악-!”


윤찬이 휘청이며 몸을 굽혔다.


“누구야!”


느닷없이 날아든 돌멩이가 윤찬의 뒤통수를 강타한 것이었다.


사사삭-

그 순간 풀섶이 흔들렸고, 작은 그림자 하나가 재빨리 사라졌다.


“하아, 천하의 악동이라더니······.”


왕자 부여찬이 장난을 친 것이 틀림없었다.

빙의 전이라면 데려가 멱살을 붙잡고 야단이라도 칠 터, 하지만 지금은 그럴 처지가 되지 못했다.


‘짜증나네!’


윤찬이 얼얼한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별궁을 향했다.


잠시 후,

별궁 나인의 안내를 받아 왕자 부여웅이 머무는 침소에 다다르자,


칭칭-

둥둥-

중얼중얼-


‘랩인가······.’


요란한 꽹과리 소리와 북소리가 문밖으로 퍼져 나왔고, 어떤 여자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알아먹지 못할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상관없이 윤찬이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주금사 금화 님이 주금을 외우고 계시니, 지금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나인 한 명이 윤찬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주금을 외는 것이 아니라, 굿을 하는 것 같은데?’


“난 의박사에서 나온 목의원이오. 왕자님의 병환을 살피러 왔소.”

“금화 님의 주금이 모두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리시오.”


신분을 밝히는데도 단호하게 가로막는 나인.

윤찬의 얼굴에 실소가 떠올랐다.


‘어이없네. 분명 내가 진료를 보겠다고 기별을 넣었는데, 굿을 한다고? 대체 금화라는 여자는······?’


“금화 님이라. 그러면 지금 저 안에 있는 여자가 무녀 금화라는 것이오?”

“어허! 무엄하오! 무녀라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것이오? 어디 감히 선녀님한테 이런 무례를 범한단 말이오!”


윤찬의 도발에 발끈하는 나인.


“아, 내가 실수를 범한 것 같소.”

“앞으로는 각별히 조심하시오. 제 아무리 의원이라 할지라도 큰 경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니.”


‘과연. 위세가 대단하군. 거드는 나인까지 이리 기세등등하다니.’


“알았소.”


윤찬이 일단은 한 걸음 물러났다.


무녀 혹은 선녀 금화!


머지 않은 미래에 벌어질 의자왕과 성충의 갈등.

이 과정에서 무당 금화의 등장은 백제에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경국지색이라고 했던가.

무녀 금화는 당대 최고의 미인으로 의자왕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이런 금화는 간신 위사좌평 임자와 뜻을 모아 성충을 옥에 가두고 의자왕을 맘대로 조정해 혜안을 흐리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워 훗날, 백제 멸망의 단초가 되었던 것.

아무튼 금화라는 무녀가 없었다면 백제의 멸망은 조금 더 미뤄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백제의 운명이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야사에 따르면, 신라의 김유신이 이를 노리고 금화를 백제에 심었다는 얘기가 있으나, 이에 따른 근거는 없었다.


‘금화, 어쨌든 생각났다. 무녀이자 요부! 책에서 본 적이 있어!’


기억을 더듬어 금화의 존재를 깨닫는 윤찬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후,


드르륵-

부여웅 처소의 문이 열리고, 마침내 금화가 밖으로 나왔다.

쓰고 있던 고깔모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 자세히 볼 수는 없었으나.

아담한 체구에 상기된 볼, 그 볼 위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부는 매끄럽고 잡티 하나 없이 희었으며, 작고 아담하지만 제법 콧날이 살아 있었고 입술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분명 미인상이었다.


“······.”


금화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잠시 멈춰 윤찬을 흘끗거리더니.


“가세나.”

“네. 선녀님!”


이내 발걸음을 재촉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음, 턱선만 좀 다듬으면 현대에 와서도 제법 예쁘다는 소릴 듣겠는걸? 미니목거상술로 피부에서 근육까지 좀 당겨주면······. 하아, 지금 뭐하냐? 직업병이네, 직업병! 내가 지금 견적 내고 앉아 있을 때냐?’


바로 그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오. 의원님은 안으로 드시지요.”


후궁 은실이 나와 윤찬을 맞았다.


“괜찮사옵니다.”


은실과 윤찬이 안으로 들어가자, 부여찬이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윤찬을 응시했다.


‘내가 그랬지롱!’


새총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는 녀석.


‘실실 쪼개긴! 나도 알아 인마! 여기에 그런 장난을 칠 녀석이 너 말고 누가 있겠니. 당장 꺼져줄래?’


눈으론 욕을 하면서도 부여찬을 향해 싱긋거리는 윤찬.


“찬이는 밖에 나가 있거라.”

“에이, 나도 여기 있고 싶습니다!”

“어허, 어미 말을 거역할 셈이냐? 아우가 저리 아픈데, 어찌!”

“네에. 알겠사옵니다.”


부여찬이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이제 부여웅의 상태를 살필 차례였다.


침상 위에 누워 신음하고 있는 아이. 부여웅.

장난꾸러기 형, 부여찬에 비해 부여웅은 작고 갸날픈 아이었다.

부여웅이 축 늘어져 침상 위에 누워있었다.


“목 의원, 어찌 우리 웅이가 저리 기력이 없단 말이오. 수많은 의원이 다녀갔지만, 소용없었소!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그 전에 마마께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사옵니까?”

“말씀하시오.”

“좀 전에 다녀가신 분은?”

“어라하께서 친히 보내주신 선녀님이시오.”

“선녀님요.”

“그러하오. 오늘이 세 번째 제를 올리는 날인데······.”


말끝을 흐리는 은실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소용이 없었겠지. 굿한다고 병이 낫겠나?’


“그러하옵니까. 제를 올리고 난 후, 왕자님은 차도가 있으셨습니까?”

“오늘이 세 번째인데······. 아이가 저리 진만 빠지고 먹지도 못하고 있군요.”


답답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는 은실. 역시나 굿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은실 역시 눈치챘겠지.

하지만, 의자왕이 친히 보낸 사람이니 차마 내치지는 못하고 이래저래 답답했겠군.


“마마, 부여웅 왕자님의 증세를 소상히 말씀해 주시겠사옵니까?”

“흐음. 지난해부터 우리 웅이가······.”


은실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아이의 증세를 설명했다.


“잘 뛰어놀던 아이가 갑자기 사지를 떨더니, 바닥에 널브러져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오.”


‘놀다가 경련과 발작을?’


“그러하옵니까. 혹시, 왕자님의 두 팔에 모두 경련이 일어나셨습니까? 아니면, 한 팔만 그러하였사옵니까.”

“두 팔 모두 그랬던 것 같소.”

“음, 그 밖에 다른 증세는 무엇이 있었사옵니까.”

“평소 안 하던 버릇이 생겼지 뭐요?”

“하오면 어떤 버릇이옵니까?”

“밥상을 앞에 두고 졸거나, 자꾸 입맛을 다시면서 혀로 입술을 훑어내리는 것이 아니오.”


‘운동성 경련발작이 있는 것은 틀림없고, 밥상 앞에서 멍하니 존다는 건, 조는 것이 아니라 측두엽에 문제가 생겨 잠시 의식을 잃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에펄렙시(뇌전증)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을 텐데! 만약, 양쪽 뇌 모두에 문제가 뇌전증이 생긴 것이라면······.’


“마마! 혹시 왕자님이 몸이 뻣뻣해지시면서, 입에 거품을 문 적이 있사옵니까?”

“그렇소! 그런 적이 있었소. 대체 무슨 악귀에 홀려서 이런 몹쓸 병을 얻었는지 모르겠소. 이게 다 내가 부덕한 탓인 것 같소.”


흑흑흑, 은실이 흐느껴 울며 자신을 한탄했다.


‘좀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지금 부여웅 왕자는 뇌전증을 앓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뇌전증, 흔히 간질이라고 불리는 병! 에펄럽시(epilepsy)란 용어는 그리스어로 ’영혼이 악령에 사로잡혔다‘라는 뜻이 아니던가? 비교적 근현대까지 뇌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를 귀신 들린 사람이라 하여 낙인찍었고. 하물며, 지금은 7세기 백제이니 오죽할까?’


왕자 부여웅이 앓고 있는 병이 뇌전증임을 확신하는 윤찬이었다.


한때 간질이라고 불리며, 불치병으로 간주되던 뇌전증.

유전적, 선천적인 질환으로 치료가 힘들다고 알려졌으나, 연구 결과 신경세포의 일시적. 불규칙적인 이상 흥분 때문에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로는 치료법과 약물이 개발되어 완치도 가능한 상황이었다.물론 현대의학의 힘을 빌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지금은 백제 시대!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와 약 가지고는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하아, 이거 어렵게 됐는걸.’


난감한 듯 입술을 잘근거리는 윤찬.


가벼운 병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마음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적당히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치료하거나, 치료 후 슬쩍 다른 사람의 공으로 돌려, 의박사 내부의 정치판에서 멀어질 생각이었으니.


‘증세가 심각해. 모른 척하기엔 너무나 딱한 상황이야. 하지만 치료를 하면 분명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지금의 나로서도 전력을 다해야 할 테니까. 그렇다고 모른 척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다가 내가 전부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일! 하, 이 일을 어쩐다.’


윤찬이 난감해하던 바로 그때였다.


번쩍-


“으아으우으아!”


자고 있던 부여웅이 눈을 번쩍 뜨더니, 사지를 떨며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아씨, 좆됐다! 하필 지금!’


그런 부여웅의 모습을 보며 당혹감을 금치 못하는 윤찬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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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4.09.17 22:36
    No. 1

    사실 금화와 은고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한 기록을 모르기에 뭐라 하기는 그렇긴하지요. 그래도 고대의 기록이기에 여기서는 어찌될지가 궁금하긴 하지만...

    일단 병에 대해서 아는것이 중요하지요. 아무리봐도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인 케톤 생성 식이요법과 대마치료 뿐인것 같은데... 둘다 부작용이 큰지라 참으로 곤란합니다 ㅋㅋㅋ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8 13월생
    작성일
    24.09.17 23:49
    No. 2

    맞아요 금화 일화는 정사엔 없고 야사만 사료가 부족한게 많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신이강철
    작성일
    24.09.17 23:27
    No. 3

    백제망국 관련 전해지는 얘기는 대부분 가짜 인가봐요.
    3,000궁녀도 1920년대 어떤 소설에서 창작한 건데 그뒤 진실처럼 쫙 퍼졌다는 말이 있고요.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8 13월생
    작성일
    24.09.17 23:37
    No. 4

    사료가 많지 않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3 페일블루
    작성일
    24.09.18 01:31
    No. 5

    재미있어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17 hr*****
    작성일
    24.09.18 03:07
    No. 6

    역사서에등장하는무녀나무당들중진짜는별로없습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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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해동증자 의자왕 +1 24.09.15 456 18 12쪽
14 오지네! 이러면 빼박인가? (2) +2 24.09.14 483 18 12쪽
13 오지네! 이러면 빼박인가? (1) +1 24.09.13 512 16 12쪽
12 삼십육계 줄행랑 (3) 24.09.12 538 16 11쪽
11 삼십육계 줄행랑 (2) +3 24.09.11 566 17 12쪽
10 삼십육계 줄행랑 (1) +3 24.09.10 600 19 12쪽
9 그런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 없어 (4) +2 24.09.09 607 17 13쪽
8 그런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 없어 (3) +3 24.09.08 626 18 12쪽
7 그런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 없어 (2) 24.09.07 661 21 12쪽
6 그런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 없어 (1) 24.09.06 681 16 12쪽
5 계백 부인 (2) 24.09.05 708 16 11쪽
4 계백 부인 (1) +1 24.09.04 709 20 11쪽
3 현대 의학의 힘을 보여주마 (2) +6 24.09.03 724 21 10쪽
2 현대 의학의 힘을 보여주마 (1) +1 24.09.03 705 26 12쪽
1 프롤로그 +3 24.09.03 705 16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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