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의 주치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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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다 꼬여

DUMMY

제 16 화 꼬인다 꼬여


이틀 후, 율타의 집무실.


의박사, 채약사들과 다과를 나누며 인사를 나눈 윤찬. 왕궁에서 적응차 이틀 밤을 묵은 후, 곧바로 의박사 율타의 집무실로 호출되었다.

오늘은 보직이 결정되는 중요한 날이었다.


백제의 의료제도는 꽤 체계적이었다.

백제의 의료시스템을 대표하는 건 약부(藥部)였다. 현대로 따지자면 보건복지부의 지위에 있는 곳으로 백제의 22부 중 하나인 정식 부서였다.

정승의 관리, 감독하에 있던 내의원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으니, 그 위상은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약부 아래로는 의박사와 채약사를 두어 진료와 제약을 완전히 분리했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문구는 이미 1,50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백제는 완벽한 의약분업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약부 총괄과 의박사의 수장을 겸직한 왕유능타 그리고 채약사의 수장인 시덕이 백제 의료체계를 이끌고 있었다.


“목 의원, 앉으시오.”

“알겠사옵니다.”

“침소는 편안하시었소?”

“네. 그러하옵니다.”


그리고 지금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윤찬과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은 율타.

백제의 유명한 의원이자, 의박사의 넘버 2였다.

왕유능타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의박사 넘버1이었지만 말이다.


왕유능타가 서민, 빈민, 행려자의 구호 등에 헌신하며 밑바닥부터 실력을 다져왔다면, 율타는 부유한 귀족 집안 출신으로 인생의 큰 굴곡 없이 승승장구한 인물.


‘금수저긴 하지만 고만고만한 실력.’


율타는 의술의 수준은 물론이고, 임상경험 측면에서도 일본에 파견까지 갔다 왔던 왕유능타의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율타는 자기보다 뛰어난 왕유능타를 쉽게 인정하지 못했다.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왕유능타에 밀려 2인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 못마땅한 탐욕스러운 야심가.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호시탐탐 1인자 자리를 탈환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에게 뜬금없이 윤찬이 나타난 것이다.


‘흐음.’


윤찬을 살피는 율타의 미간이 좁아졌다.

윤찬의 행보가 왕유능타의 처음과 매우 흡사했기에 경계대상 1호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 율타는 윤찬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윤찬의 속마음을 알았다면 하지 않았어도 될 경계였다.


‘율타 씨, 제발 연구직으로 보내주세요!’


한편, 윤찬은 떨고 있었다.

첫 보직에 따라 향후 윤찬의 의박사 생활이 결정될 텐데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이었다.


“수의박사께서 칭찬이 자자하더군.”


율타가 긴 수염을 쓸어내렸다.


“분에 넘치는 말씀이시옵니다.”

“음, 그건 그렇지. 나도 목 의원과 같은 생각일세.”

“네?”

“물도 차면 넘치는 법. 과한 칭찬은 오히려 의원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항상 겸허한 자세를 잊지 말라는 뜻일세.”


율타가 한 번 더 기다란 턱수염을 매만졌다.


‘내 말이 그겁니다! 그러니까 연구직! 제발 연구직으로 보내주시오! 그러면 당신하고 겹칠 일도 없고 얼마나 좋아?’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이곳 의박사에 와보니 의원들의 실력이 출중하여 잔뜩 주눅이 들었사옵니다. 의술도 부족하고, 경험도 일천하오니 앞으로 겸허한 자세로 의학에 매진토록 하겠사옵니다.”


윤찬이 최대한 몸을 낮춰 율타에게 읍소했다.


“아주 바람직한 마음가짐일세. 그러나······.”


살짝 뜸을 들이는 율타.


‘그러나? 무슨 그러나?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왕유능타가 현장에서 임상경험을 쌓아 자기를 젖힌 데다가, 내 백그라운드도 맥락이 닿아 있으니 민생 구료 쪽으로는 절대 보내지 않을 텐데?’


윤찬은 율타의 속마음을 읽으려 애썼다.

율타는 왕유능타와 경쟁하는 인물. 그러니 왕유능타의 세를 불리는 데에 힘을 보탤 리 없었다.


‘제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날 구료 쪽으로 보내긴 싫을 거 아냐. 그럼 연구직이 딱이라니까? 난 당신과 권력투쟁을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고!’


윤찬이 초조한 얼굴로 율타의 입을 바라봤으나.


“목 의원의 의술이 출중하니, 왕자들을 돌봐주어야 할 것 같네.”

“·········!”



쿵-

청천벽력 같은 말이 떨어졌다.

최악의 상황.

율타의 제안에 윤찬의 가슴이 철렁했다.


‘왕자라니! 하아,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는구나!’


윤찬은 지천이 귀띔한 얘기를 떠올렸다.


어젯밤,


-이보시오. 목 의원! 날이 밝으면 율타 어르신이 목 의원이 할 일을 정해 줄 텐데, 혹 원하시는 과가 있소? 워낙, 역질에 밝고 침술도 능하다는 소문이 자자 하니, 왕유능타 어르신처럼 구료과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한데.


의박사 의원들과 환담을 마친 후, 지천이 물었다.


-글쎄올시다. 내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맡겨주시든 맡은 바 책임을 다할 생각이오.

-오! 역시 도성 내 최고의 의원답소.

-전혀 아니오. 난 그저 미천한 의술을······.

-사실 어딜 가든 큰 차이는 없소! 왕자들을 돌보라는 명만 떨어지지 않으면 될 터인데······. 특히나 막내 왕자는 감당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거든!

-왕자들요?

-그렇소. 차라리 어라하를 뫼시는 것이 낫지, 왕자들은 정말, 감당이 안 된다오.

-감당이 안 된다니? 좀 더 소상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소?

-굳이 골치 아프게 알 필요 없소이다. 이곳에 계시다 보면 차차 알게 될 것이오. 게다가 목 의원의 실력으로 볼 때, 필시 구료과로 갈 것이오. 암! 이변이 없는 한!”


찜찜하게 넘겨들었던 이야기.

그러나 율타가 자신을 제대로 밟아야 할 싹이라 여기지 않는 다음에야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애써 무시한 가능성이었는데.


“왕, 왕자님들을 말씀하신 것이옵니까?”


이변이 일어나고 말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단가? 지천이 그토록 피하고 싶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렇소. 우리 왕자님들의 안위를 목 의원이 책임져 줘야겠소이다.”


에헴, 율타가 자신의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왕자라면 의자왕의 자식들!

그렇다면 그들의 어머니는 누굴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삼천궁녀일 거다.

하지만 이는 허구일 가능성이 컸다.


삼천이란 숫자는 불교에서 많은 수를 의미했고, 조선의 문학가들이 의자왕의 방탕한 생활을 비꼬기 위해 삼천궁녀를 차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니까.

게다가 당시 사비도성의 인구가 대략 5만 명 남짓임을 감안할 때 삼천궁녀는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다만 삼천궁녀는 아닐지라도, 의자왕이 수많은 궁녀를 옆에 끼고 주색을 즐겼던 것은 사실이었다.


여러 궁녀를 통해 얻은 서자만 41명이고 정실 소상의 적자와 공주를 더하면 대충 1백 명 정도가 될 정도로 많은 자식을 두긴 한 거다.

최소한 첩으로 둔 궁녀 숫자가 수십 명에는 달할 거다.


‘대체 의자왕은 뭘 먹은 걸까? 비아그라를 복용한 것도 아니고, 현대에 태어났으면 최고의 플레이보이가 됐겠네.’


아무튼.

왕자들이 워낙 많으니, 왕자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잘해도 티도 안 나고, 못하면 곤욕을 치를 최악의 보직이었다.

왕유능타의 힘이 되어줄 신인을 도려내기엔 딱 좋을 그런 보직.


하. 눈에 띄지 않으려 그렇게 애를 썼건만, 이미 제대로 찍힌 건가?


“특히 부여찬, 부여웅 왕자님을 잘 돌봐주길 바라네.”


율타가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부여찬, 부여웅이라면 갓 7살, 6살 먹은 막내 왕자들로 의자왕의 31번째 소실인 은실에게 얻은 40, 41번째 왕자들이었다.


31번째 소실 은실은 무수리 출신으로 천한 신분. 부여찬, 부여웅 두 왕자 역시 정통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아. 골 때리네.’


윤찬이 미간을 찡그렸다.

권력의 중심에서 배제된 왕실의 천덕꾸러기를 맡으라는 뜻. 하지만 제아무리 천덕꾸러기라고 해도 왕자는 왕자다. 만에 하나 그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그 책임은 오롯이 윤찬의 져야할 것이었다.

한마디로 똥 보직 중에 똥 보직이었다.


“······.”


그렇게 윤찬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고.


“내가 목 의원의 뛰어난 실력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기에 특별히 왕실의 안위를 맡기는 것이오. 그러니 성심을 다해 왕자님들을 잘 돌봐주길 바라오.”


난감한 윤찬의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 율타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왜 아무런 대답이 없는 것이오, 목 의원?”


‘다 알면서 이러는 거 진짜 짜증 나거든?’


“네? 아, 알겠사옵니다. 소인 최선을 다해 두 왕자님을 보필하겠나이다.”


이제 갓 의박사에 들어온 신참.

아무런 힘도 없는 윤찬의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율타의 강압적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맙네. 왕실이 탄탄해야 정사가 바로 서는 법! 목 의원 자네의 어깨에 우리 백제 왕실의 안위가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게.”


‘백제 왕실의 안위가 걱정되었으면, 장남인 부여궁이나 훗날 자신을 왕이라고 칭하기까지 했던 부여태를 맡겼어야지! 이런 철부지 꼬맹이들을 맡긴다고?’


“알겠사옵니다.”

“두 분 왕자님이 몸이 허약하니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야.”


‘뭐야? 몸까지 허약해? 미치겠군.’


“네. 알겠사옵니다.”

“그럼 난, 목 의원만 믿네.”


툭툭-

율타가 윤찬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해 주었다.


***


윤찬의 숙소.

근심 가득한 얼굴로 숙소로 돌아온 윤찬. 앞으로 왕자들의 진료를 맡을 생각하니, 앞이 깜깜했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일단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그러려면 정보가 필요해. 일단 정보부터 취합해야겠어!’


“밖에 박달, 상도 있느냐?”

“네. 스승님!”

“네. 주군!”

“당장 안으로 들어오거라.”

“끼니는 제대로 때우고 있는 게냐?”


상도와 박달이 들어오자, 윤찬이 물었다.


“스승님! 아무 걱정마십시오. 삼시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습니다요.”

“다행이구나.”

“다만, 도성 내 백성 중에 굶어 죽는 이가 지천에 깔렸는데, 우리만 이리 배를 불리니 안타까울 뿐입니다요.”

“각자 사정이 있는 것이니, 괘념치 말거라.”

“네. 스승님.”

“상도는? 내가 부탁한 건, 알아봤느냐?”


상도는 왕실 왕궁을 지키는 호위병에 배속되었다.


“네. 호위병들과 친해지려고 노력 중이옵니다.”

“그래. 특히 문지기들이랑은 더욱더 친분을 쌓아야 할 것이야.”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가급적 입이 무겁고 무예가 출중한 자들과도 친분을 쌓도록 하여라.”

“네. 명심하겠사옵니다.”


‘여차하면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 준비를 철저하게 해두는 것이 좋아. 미리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겠지.’


“박달아. 넌 지금부터 왕자 부여찬과 부여웅에 관한 모든 사항을 소상히 조사해 나한테 고하거라.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변 색깔은 어떤지까지 소상히 알아 와야 하느니라.”


박달은 왕실의 대소사에 관한 잡일을 하게 되었다.


“알겠사옵니다.”


잠시 후,


그렇게 상도와 박달이 밖으로 나가자, 부여찬과 부여웅의 진료기록부를 찾아 확인하는 윤찬.


‘오이를 갈아 즙을 내서 마시게 했다······. 왕자 부여찬은 천식을 앓고 있었나 보군. 질경이?’


질경이를 말려 물을 넣고 끓인 다음 졸여 복용케 한 처방이 나와 있었다.


‘그렇지. 질경이의 주성분인 프랜타긴은 기침에 직빵이니까!’


확실히 의박사의 수준은 높았다.


처방도 처방이지만 정량, 정복의 원칙을 정확히 지킨 것으로 볼 때, 시중에 떠도는 돌팔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왕자 부여찬의 경우 처방전으로 볼 때 천식, 계절 감기, 기관지염을 앓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휴, 부여찬은 큰 문제가 없는 것 같고······. 어디 부여웅은 어떤지 살펴볼까?’


부여찬의 진료기록을 확인한, 윤찬이 의자왕의 41번째 왕자, 부여웅의 진료기록부를 펼쳐 보았다.


‘뭐, 뭐라고? 부여웅이 귀신에 들렸다고?’


윤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첫머리에 적힌 단호한 문장의 글.

부여웅이 귀신에 들려 치료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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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런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 없어 (3) +3 24.09.08 616 18 12쪽
7 그런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 없어 (2) 24.09.07 650 21 12쪽
6 그런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 없어 (1) 24.09.06 668 16 12쪽
5 계백 부인 (2) 24.09.05 698 16 11쪽
4 계백 부인 (1) +1 24.09.04 700 2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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