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의 주치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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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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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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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줄행랑 (3)

DUMMY

제 12 화 삼십육계 줄행랑 (3)


“상좌평 어르신! 저는 아직 의박사에 들어갈 실력이 되지······.”

“그게 무슨 소리야? 모든 의원이 포기한 내 아들의 열병을 고친 이가 누군고?”

“그거야······.”

“그것뿐이던가? 자네를 신의라 부르며, 칭송하는 백성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게다가 이번에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역질을 박멸하지 않았는가?”


‘안 돼! 제발 날 그만 내버려 둬! 백제 관직 따위는 아무런 관심이 없단 말입니다!’


“그건 전부 우연의 일치였습니다! 미천한 소인이 어찌 의박사에 들어간단 말입니까? 제발, 거두어주십시오!”

“끌끌끌, 이 사람아! 그건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야. 어라하(의자왕)께서 윤허하신 것이라네. 지금 왕명을 거절할 셈인가? 이건 불충이야. 불충!”


‘하아, 진짜 큰일이네!’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보름 정도만 말미를 주십시오.”

“아니! 그럴 순 없네. 어라하께서도 크고 작은 병환을 앓고 계셔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네. 내 사흘을 줄 테니, 그동안 입궐할 채비를 하게!”


양보가 없는 성충이었다.

물론, 명을 거둘 생각도 전혀 없어 보였고.


“아, 알겠사옵니다.”


어쩔 수 없이 성충의 명을 따르는 척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는 윤찬이었다.


***


밀려드는 환자들로 정신없이 이틀이 지났다.

어느새 입궐을 하루 앞둔 윤찬의 움막.


‘이 일을 어쩌지? 너무 이목을 끌었나? 날 가만히 둘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방안을 서성이는 윤찬.


상좌평 성충과 의박사 왕유능타의 제안은 윤찬을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미래에서 온 윤찬은 백제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차피 백제는 멸망한다. 그런데 내가 관직을 얻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계백장군도 아내와 아이들이 신라의 노예가 돼, 비참한 최후를 맞느니 죽는 게 낫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끌려가듯 의박사에 들어간다면? 훗날, 나 역시 노예가 되는 건가? 아니야, 실력이 있다면 살려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아니다! 실력이고 나발이고 전쟁에 끌려가 의미 없이 죽을 수도 있어!’


윤찬의 발걸음이 더욱더 빨라졌다.


“······!”


그러다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윤찬.


“혹시 밖에 박달하고 상도 있느냐?”

“네. 스승님!”

“네! 주군!”

“잠시 안으로 들어오거라.”


그렇게 윤찬이 제자 박달과 상도를 호출했다.


“거기들 앉거라.”


심각한 표정의 윤찬.


“네.”“네. 주군!”

“지금부터 다들 내 말 잘 듣거라. 난 아무래도 이 사비성을 떠나야 할 것 같으니라.”

“·········.”

“·········.”


조용히 윤찬의 말을 경청하는 박달과 상도.


“내가 비록 너희들과 피를 나눈 형제지간은 아니나, 혈혈단신, 천애고아인 내 입장에선 너희들이 피붙이와 같으니라.”

“소인도 그러하옵니다.”

“상도 형님의 말이 맞사옵니다. 저 역시, 스승님을 제 아비처럼 따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요.”


상도와 박달 역시 같은 생각이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비록 도원결의의 뜻을 다진 것은 아니나, 너희들과 평생 함께 하려 했거늘, 어쩔 수가 없구나. 이쯤에서 우린 헤어져야 할 것 같다.”


침통한 표정의 윤찬.


“네? 그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십니까? 스승님이 계신 곳이 제가 있을 곳이옵니다. 무슨 사연이 계신지는 모르겠사오나, 그곳이 지옥 불이라 해도 전, 스승님과 함께하겠사옵니다.”


그러자 박달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군! 무슨 피치 못할 사연이라도 있사옵니까?”


반면에 상도는 조금 더 신중했고.


“흠.”


윤찬이 턱을 쓸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실은 상좌평 어르신께서 나보고 의박사에 들어오라고 하시는구나. 하지만, 난 벼슬을 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그러하옵니까.”

“무엇보다 난, 한 곳에 얽매여 있고 싶진 않아. 게다가 입신양명의 욕심도 없다네. 백제 땅 곳곳을 떠돌며 불쌍한 병자들이나 돌보고 싶어. 그러니 그대들을 놓아주려는 걸세.”


'처음에야 허가증이 있으니 맘 편히 이 친구들을 데리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받아 들였지만, 이렇게 되면 그것도 쉽지 않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게 된다. 앞길이 구만 리 같은 애들인데, 괜한 고생 시켜서는 안되지. 게다가 이들의 뜻이 어떤지도 모르겠고. 그러니 적당히 핑계를 대고 이쯤에서 마무리 지어야 해!'


굳게 다짐하며 그들을 떼어 놓으려는 윤찬.

그런데.


“주군! 흑운장 나봉은 관우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저도, 흑운장 나봉의 길을 따르려 합니다!”

“위험할 수도 있어. 어쩌면, 어명을 거역한 대가로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도 있느니라.”

“제게 어명은 주군이 내리시는 명이옵니다!”


상도는 윤찬이 가는 길에 무조건 따르겠다며 충성을 맹세했다. 박달도 마찬가지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가 막힌 건 윤찬이었다.


‘하아, 이 사람들을 어쩌면 좋냐.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은데.’


그와 동시에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저 눈빛 좀 봐. 둘 다 진심이다. 빙의 전이었다면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아니, 나한테 뭐 뜯어 먹을 건 없나 코를 벌름거리는 하이에나들만 득실거리지 않았는가?’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따르겠다고 연거푸 말하는 두 사람.

그들의 다짐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이들이 나를 이토록 따르는데, 내가 먼저 배신할 순 없지 않은가? 뜻이 다르다면 모를까. 같은 마음이라면 도움이 될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래! 까짓 것 끝까지 한 번 가보자!’


윤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달도 상도와 같은 생각이더냐?”


윤찬이 조금 전과는 다른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이를 말씀이옵니까. 끝까지 스승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음, 좋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 밤, 야음을 틈타 이곳을 떠나자꾸나. 모두 만반의 채비를 하거라.”

“네. 스승님!”

“네. 주군!”


그렇게 윤찬과 상도, 그리고 박달은 야반도주를 감행하기로 뜻을 모았다.


***


그날 밤,


‘대장장이는 아쉽지만, 백제 땅에 쓸만한 대장장이가 또 없겠는가? 말이야 약 팔아 돈 벌면 100필도 살 수 있을 것. 일단 여기서 멀리 도망가서 살다가 여의치 않으면, 신라에 투항하면 돼!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미련 없이 떠나는 거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은 윤찬이 도주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때였다.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제발! 제발 불쌍한 우리 엄니를 살려주시오!”

“어휴, 지금 의원님은 출타하셔서 집에 안 계십니다!”

“기, 기다리겠소. 이미 다른 의원 집에 다녀온 길이오. 다 소용이 없었소.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 의원님을 만나야겠소.”


박달과 한 남자가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박달아! 무슨 일이더냐?”


투닥거리는 소리에 윤찬이 밖으로 나왔다.


“의, 의원님! 안에 계시었소!!”


남자가 윤찬을 보자마자 절뚝거리며 달려와 팔을 부여잡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필 이 시간에 환자가! 어쩌지? 지체할 시간이 없는데? 출발이 늦었다 걸리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야.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어쩔 수 없어. 사정이야 안타깝지만.’


남자의 애원을 뿌리치기로 결심한 윤찬.


“미안하오. 급한 일이 있어. 병자를 볼 수가 없다오. 나 말고 사비성엔 용한 의원이 많으니······.”

“의원님! 불쌍한 우리 엄니를 굽어살펴 주소서. 제발!”

“아니 되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만 물러가 보시오!”

“의원 나으리! 소인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울 엄니도 물 한 모금, 쌀 한 줌 제대로 먹지 않았다오.”

“·········”

“그렇게 정한수 한 사발 떠 놓고, 이 못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빌고 또 빌었지요. 비록 다리 병신이 되어 돌아왔지만, 엄니는 천지신명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요.”


부욱-

바지를 찢어 상처를 내보이는 남자.

허벅지부터 무릎까지 칼에 베인 듯한 큰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이러시면······.”


그 모습을 보자, 조금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는 윤찬.


“어제가 엄니 생신이었소. 그동안, 먹은 것이 없어 피골이 상접한 어미가 불쌍해, 어럽게 생선 한 마리를 구해와 자시게 했는데······, 엄니가 갑자기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겠소! 제발, 불쌍한 우리 엄니를 외면하지 말아 주시오!


그렁그렁-

부황이 들어 누렇게 뜬 남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후우, 어쩌지?’


“·········”

“제발! 부탁이오! 노비가 되라면 그리할 것이고, 목숨을 내놓으라시면 그 또한 따르겠소! 제발, 엄니를 살려주시오!”


울며 매달리는 남자.


‘그래.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가자!’


“알았소. 일단, 어머니를 안으로 뫼시오!”


안타까운 남자의 사연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윤찬이 노파를 치료하기로 결심했다.


“감사하옵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요!”


남자가 절뚝거리는 발로 방 안으로 들어와 업고 있던 노모를 바닥에 뉘었다.


“상도! 밖에 나가서 망을 좀 보시게. 혹시나, 관군이 오거든 알려주고!”

“네. 주군!”


그렇게 윤찬이 응급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잠시 후,


요를 깔고 그 위에 누워있는 노파.

의식은 이미 소실돼 있었다.

호롱불을 비춰 확인하니 동공반사도 없었으며, 맥박마저 희미했다.

초응급상황이었다.


‘미치겠네! 지금은 아수포린 같은 약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야. 어쩌지? 의료기구라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이러다가 어레스트라도 오면 어쩌지? 제세동기도 없는데? 게다가 이 상태면 산소포화도도 바닥일 텐데···. ’


속수무책, 난감한 듯 입술을 잘근거리는 윤찬.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병자의 상태는 시시각각 위급해졌다.


“평소에도 이런 일이 있었소?”

“아니옵니다. 나라가 난리 통이라 제대로 먹질 못해서 그렇지, 저희 엄니는 원래 강골이셨소! 잔병치레 한 번 한 적이 없었다오.”

“음, 어제 자당께서 무엇을 드셨다고 하셨소?”

“생선을 자셨소이다.”

“날생선이오?”

“아닙니다. 말린 생선이올시다.”


‘말린 생선을 먹었다?’


“자당의 입 속을 한 번 봐야겠소이다. 박달아! 손을 깨끗이 씻고, 이쪽으로 와서 할멈의 입을 좀 벌려 보거라.”

“네. 스승님!”


남자의 설명에 뭔가 또 오르는 것이 있는지, 윤찬이 박달을 손짓해 불렀다.


“이보시오. 내가 자당의 목 안을 잘 살필 수 있도록, 이 호롱불을 들고 계시오!”


윤찬이 남자의 손에 호롱불을 들려주었다.


“알겠소.”


그리고 곧바로 노파의 목 안을 살피는 윤찬.


‘헐, 기도가 부풀어 올라 바늘 하나 들어가지 못하겠는걸? 젠장, 기구가 있다 하더라도 인튜베이션은 택도 없겠······.’


그 순간, 윤찬의 눈에 들어온 노파의 치아.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치아가 죄다 썩어 있었다.


‘아이고, 이빨이 죄다 썩어······. 썩어? 그, 그렇다면?’


불현듯 윤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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