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의 주치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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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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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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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증자 의자왕

DUMMY

제 15 화 해동증자 의자왕


의자왕이 온다는 남자의 고함에 윤찬이 바닥에 코를 박고 바짝 엎드렸다.


드르륵-

곧 문이 열리고, 의자왕과 성충, 왕유능타 그리고 의박사 의원 몇몇이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두근구근-

생생한 역사의 현장에 서게 된 윤찬.


저벅저벅-

맨 앞에서 걷던 남자의 걸음이 멈추었다.

윤찬의 지근거리에 의자왕이 우뚝 선 것이다.


‘대체 의자왕은 어떻게 생겼을까? 예전에 봤던 영화 황산벌의 오지명 배우를 닮았을까? 아니면······.’


“어라하께서 당도하였느니라. 의원 윤찬은 고개를 들라.”


이제 제법 익숙해진 성충의 목소리가 들렸다.


“······.”


빼꼼 고개를 들어 힐끗거려 봤지만, 의자왕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순 없었다.


“그대가 공산성의 역질을 물리친 목윤찬인가.”


무게감 있는 의자왕의 목소리.

최소한 영화 속 방정맞고 코믹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네. 소인 목윤찬이라고 하옵니다.”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구나. 어서 고개를 들라.”

“네. 어라하!”


천천히 고개를 든 윤찬.

마침내 그의 눈에 의자왕의 모습이 들어왔다.


‘와. 상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데?’


평소 윤찬이 머릿속에 그렸던 의자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기품있고 남자다운 얼굴이다.’


당당한 체구에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상좌평 성충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서 어떤 자인가 궁금했거늘, 이리 보니 듬직하니 얼굴도 아주 잘 생겼구나.”

“황공하옵니다.”

“그래. 궁까지 오는데 불편하진 않았는고?”


윤찬의 안부를 묻는 의자왕의 목소리는 자애로웠다.


해동증자 의자.

해동증자란 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했다는 의미로, 의자왕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효심과 우애는 본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신라 선화공주의 소생.

선친인 무왕의 적자가 아닌 의자는 신라 왕실의 피가 섞였다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야 했다.

그러니 해동증자 또한 의자의 생존 철학에서 나온 행동으로 봐야 할 것.

스스로 몸을 낮춰, 리스크를 최대한 줄인 것이었다.


그리고 623년.

30대 중반에 비로소 태자에 책봉된 의자는 왕좌에 오르자 본격적인 야심을 드러냈다.


대야성 전투의 대승으로 기세가 오른 의자는 신진세력인 상좌평 성충과 윤충 대장군을 앞세워 친위 쿠데타를 감행했다.


피의 혈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대좌평 지적, 왕실의 최고 어른인 사택황후를 축출하고, 자신을 반대했던 귀족 40여 명을 무참히 제거함으로써 의자는 친위 쿠테타를 완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의자왕은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다.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온 의자의 모습은 실제 의자왕의 서사를 무시하고 희화한 면이 강했다.

윤찬 또한 이 시대에 오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충과 엮이게 되면서, 또 이곳 사람들의 이야길 주워들으며 자신이 상상한 의자왕과 이곳의 의자왕이 전혀 다른 인물이란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외형도 아우라도 장난이 아니구나.’


꿀꺽. 윤찬이 침을 삼키고는 묻는 말에 답을 올렸다.


“아니옵니다. 편히 잘 당도했사옵니다.”

“이보시오. 수의박사! 목 의원이 이곳에 적응에 의술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주시구려.”

“알겠사옵니다. 어라하!”

“그나저나 목 의원이 당도하면 물어볼 것이 있었으니라. 괜찮겠느냐, 목 의원!”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 그러나 윤찬은 조금 긴장이 되었다.


“하문하십시오.”

“그래. 이 사비성 내에서도 워낙 용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 내가 요즘 속이 편치 않거늘, 나를 좀 봐줄 수 있는가?”

“황공하옵니다. 어찌 감히 소인 같은 미천한 자가 어라하님을······.”

“껄껄, 괜찮느니라. 목 의원은 이리 가까이 오라. 어디 한 번 실력을 보자꾸나.”


의자왕이 환하게 웃으며 윤찬을 향해 손짓했다.


“알겠사옵니다.”


망설이는 윤찬에게 왕유능타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윤찬이 의자왕의 곁으로 다가가 의자왕의 용안을 살폈다.


‘대충 면접 같은 건가.’


그런데.


‘술 냄새가 진동한다······.’


“어라하, 증세가 어떤지 소인에게 상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사옵니까.”


윤찬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아침, 저녁으로 헛구역질이 나고, 아침이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느니라. 요즘은 통 입맛도 없는 것 같구나. 게다가 문득문득 울화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내가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것인고?”

“어라하, 황공하오나 손바닥을 펼쳐 보여주시겠사옵니까?”

“그래? 손바닥을?”

“네. 그러하옵니다.”

“오냐. 알았다.”


그렇게 의자왕이 손바닥을 펼쳐보였고.

의자왕의 손바닥을 유심히 살펴본 윤찬이 입을 열었다.


“술이란 본디 매우 독한 성질로 냄새와 그 맛이 양에 해당 되옵니다.”

“술을 먹지 말라는 뜻으로 들리는구나. 허나 그 좋은 것을 어찌 마다 할 수 있겠느냐. 난, 그리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니 그 독한 기운을 떨쳐낼 비법이 있는지 말해 보거라.”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윤찬이 답을 올렸다.


“술로 인해 속이 상했다면 땀이나 소피로 이를 배출해 주는 것이 으뜸입니다. 특히, 소피를 시원히 보심으로써 몸에 습한 기운을 떨어뜨리는 것이 중요하여 갈······.”

“갈화해정탕을 말하는 것인고?”

“마, 맞사옵니다 어라하.”

“하하하, 그건 수의박사가 아침마다 내어 주어 마시고 있느니라.”


그 순간.

키득키득-

의박사 의원들이 눈빛을 마주치며 작게 웃었다.


‘별 거 없는 놈이었구나!’

‘소문은 소문일 뿐인 모양이야!’


술로 인한 지방간 혹은 알콜성 간염 정도는 갈화해정탕으로 충분히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의박사들이었다.

그러니 한참 전부터 갈화해정탕을 올렸지만, 의자왕의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그런데, 윤찬이 똑같은 처방을 올리니, 자기들과 견주어 나을 게 없다는 표정들이었던 거다.


“황공하옵니다.”


순간, 의자왕의 낯빛에 스치는 실망감을 읽은 윤찬이 고개를 조아렸다.


“괜찮다. 실력이야 앞으로 쌓아가면 되는 것이야. 괘념치 말거라.”

“황공하옵니다.”

“수의박사는 들으시게. 앞으로 목 의원의 실력이 일취월장 할 수 있도록 힘쓰시게나.”

“알겠사옵니다, 어라하!”


잠시 후, 의자왕과 상좌평 성충이 밖으로 나가자, 다시 왕유능타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보시게. 윤찬.”

“네. 수의박사 어르신!”

“난, 볼 일이 있어. 이만 나가봐야 하니 정전으로 자리를 옮겨 의박사 의원들과 다과라도 좀 나누시게. 안내는 옆에 있는 지천이 해줄 것일세.”

“·········”


윤찬을 바라보면 눈인사를 하는 지천.


“알겠사옵니다.”

“그러면 오늘은 푹 쉬도록 하고, 내일 의박사 회의 때 봄세. 아, 그런데 어라하께서 간이 습한 걸 어찌 알았는가?”

“네. 어라하 님의 손바닥이 붉고, 입술에 물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알았습니다.”

“그렇군! 아무튼, 목 의원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걸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매사 신중하고 의술에 정신하는 자세를 잃지 말도록 하게.”

“알겠사옵니다.”

“목 의원이 이곳 생활에 익숙하지 않을테니, 지천 의원이 잘 보살펴 주도록 하게.”

“알겠사옵니다. 수의박사!”


왕유능타가 지천에게 윤찬을 단단히 부탁했다.


“거취 할 곳을 안내해줄 테니, 저를 따라오시오.”

“알겠소.”


잠시 후, 의박사 숙소.


의박사 건물 맨 왼쪽 세 개의 공간.

그중 하나가 윤찬이 지내게 될 곳이었다.


“우리 인사나 나눕시다. 난 의원 지천이라고 하오.”


숙소에 다다르자 지천이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목윤찬이라고 하옵니다.”

“목 의원의 인적 사항은 이미 확인해 보았소. 나랑 동년배시더군요.”

“그렇습니까.”

“하하, 그렇소. 초면이나 나이도 같으니 우리 벗처럼 친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지천이 넉살 좋은 미소를 흘렸다.


“알겠소. 차차 적응이 되면 그리하리다.”

“그럽시다! 그나저나 좀 전에는 어라하가 갑자기 납시어 곤란하시었겠소.”

“그랬지요.”

“어라하께서 그만큼 목 의원에 관심이 많다는 뜻이 아니겠소. 나중에 짬이 나면. 공산성 역질을 어떻게 잡았는지 나한테 좀 일러주시오. 수의박사께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조금 전, 윤찬을 비웃던 의박사들과는 달리, 지천은 붙임성이 좋아 보였다.


“큰일은 아니었습니다. 도움이 된다면 말씀드리지요”

“알았소. 좀 전에 수의박사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곧 의박사 의원들이 전부 나와 목 의원을 맞을 예정이니, 잠시 후에 정전으로 나오시오. 난, 먼저 나가서 준비를 좀 해야 할 것 같소.”

“알겠습니다.”

“정전이 어느 방인지는 아시오?”

“네. 오다가 보았습니다.”

“허허, 목 의원은 눈썰미가 정말 대단하시오. 그러면 정리되는 대로 정전으로 나오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좀 전에 수의박사님의 말씀대로 어라하께서 간이 습해 갈화해정탕을 처방한 건 정말 훌륭했소. 찰나에 그걸 간파해서 진심으로 놀랐소이다.”


‘놀라긴? 뒤에 있던 의박사들이 비웃느라 정신이 없던데? 아무튼 이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적어도 꼬인 곳은 없는 양반인가 보군.’


“그럼 곧 봅시다!”


‘후후후, 좋은 사람 같군.’


지천이 숙소 밖으로 나가자 윤찬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지천. 의자왕은 간이 문제가 아니야. 지방간이야 술 좀 마시면 생기는 거고, 왕이라 아무래도 운동량도 부족할 테니 오죽하겠나.’


윤찬이 아까와는 달리 여유로운 얼굴로 좀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지방간 치료법은 별거 없어. 규칙적으로 유산소 운동만 해도 충분히 고칠 수 있는 거니까.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내가 보기에 의자왕은 다른데 문제가 있는 것 같거든?’


윤찬이 천천히 숙소를 둘러보며 짐을 정리했다.


‘지금 의자왕은 심한 위궤양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아! 물론 내시경을 들여다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말이야. 대개 위궤양에 걸리면 상복부나 흉골 아래쪽에 타는 듯한 느낌을 주지. 주로 그 통증은 식사 전후일 테고, 식욕 감퇴나 소화불량, 오심, 구토는 일반적인 특징이니 논외로 하고······.’


윤찬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의자왕의 모습을 떠올렸다.


‘좀 전에 의자왕이 속이 안 좋다면서 명치끝을 손가락으로 누르는 걸 봤지. 그게 바로 의자왕이 위궤양에 시달리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야. 신라인의 피를 이어받아 멸시를 받던 의자왕이 왕좌에 어떻게 올랐겠어? 보나마나 유년기부터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겠지. 그게 바로 의자왕 위궤양의 원인일 거고. 따라서 의자왕의 위궤양은 만성일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 갈화정화탕 같은 걸로 되겠나? 택도 없는 소리지.’


후후, 모든 짐 정리를 끝낸 윤찬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왜 그 얘기를 안 했냐고?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들을 돌봐주다 의박사까지 끌려온 나야.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조신하게 지내기로 했다고. 딱 중간만 가자! 이럴 땐 그게 가장 안전해.'


너무 뛰어나면 주목을 받을 것이고 반대로 너무 못하면 쫓겨날 것.

애초에 의박사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모를까, 쫓겨나게 되면 군인의 불명예 제대와 비슷한 결과를 초래해 의원질도 제대로 못할 것이라는 것이 윤찬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어중간.

딱 중간만 정도만 따라가며 살 길을 찾겠다는 것이 윤찬의 복안이었다.


그렇게 윤찬이 숙소를 나와 정전으로 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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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증오하는자
    작성일
    24.09.17 22:38
    No. 1

    그렇지요. 특히나 국왕의 건강문제는... 어찌되든 당제국으로부터 암에 관련된 의원을 부른기록도 있으니 부여의자의 건강이 관건이겠네요.

    혹시나 의자왕의 총애속에서 트리아지 체계나 구급마차, 군의등을 마련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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