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할 도련님의 화살이 수상할 정도로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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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작품등록일 :
2024.09.0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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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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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챔 유저

DUMMY

[ 원챔충 / 원챔 유저 ]

: 하나의 직업 또는 캐릭터만을 고집하는 게이머를 이르는 말.


사견을 붙이자면,

게임을 다양하게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특정 캐릭터를 극한으로 활용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족속.


남들이 봤을 때는, 재밌으려고 하는 게임을 왜 저렇게 고통받아 가면서까지 할까도 싶겠지만······.


나는 그들이 왜 그런 짓을 벌이는지 잘 이해하고 있다.


왜냐면.


“제발, 제발······.”


띠링-



[ 진행도 - 9층 40.00% ]



그 미련한 원챔충이 나니까.



—진행도를 갱신했습니다.



[ 진행도 - 9층 40.01% ]



눈을 깜빡임과 동시, 모니터에 떠 있는 알림이 바뀌었다.

아주 미미하게 달라진 숫자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아······ 씨발. 드디어.”


이건 어쩌면 내게 주는 소소한 보상이었다.


나는 알림창에서 눈을 때고, 모니터 정중앙으로 시선을 이동했다.

그곳에는 한 캐릭터가 있었다.

탄탄하고 늘씬한 근육, 기능성을 중시한 가죽 갑옷. 그리고 등 뒤에 달린 거대한 활.

내가 영혼을 갈아 넣어 육성한 캐릭터였다.


“······누가 병신궁이래 개새끼들아.”


나는 내 캐릭터, 그러니까 커뮤니티에는 병신궁이라 조롱받는 직업 ‘신궁’으로, 2년 8개월 동안 그 누구도 갱신하지 못한, 지옥 진행도 - 9층 40%를 넘겼다.

참고로, 신궁은 활을 사용하는 성기사를 이르는 말이다.


띠링-


[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의 업적이 상위 존재에게 닿습니다. ]


다시 한번 알림이 떴다.

불가능한 업적.

참 오글거리는 문장이지만, 게임에 과몰입한 유저 입장에선, 그리고 당사자 입장에선, 그야말로 뽕이 차오르기 충분했다.

그리고.


‘상위 존재?’


바로 따라오는 뒷문장의 문구. 지옥의 10층을 말하는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그것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 게임의 메인 콘텐츠는 스토리와 지옥 공략이니까.

물론 나는 스토리 진행보단 지옥 공략을 중점으로 두고 있지만.


“하아······.”


알림을 확인한 나는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끼며, 의자에 기대었다. 대략 3년 정도 나를 지탱해 준 푹신한 게이밍 의자가 내 몸을 품었다.

크흐. 크. 웃음이 나온다.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허무함에서 나오는 웃음? 절대 아니다. 내가 증명했다는 것에서 우러나오는, 자존감 최대치의 웃음이었다.


촤르륵- 파노라마처럼, 지금껏 신궁을 플레이해 온 기억이 펼쳐졌다.


언제부터였더라? 내가 [던전과 평화]를 시작했던 게.

그래, 분명 그때부터였다.


“오빠. 우리 같이 이거 해볼래? 이번에 우리 삼촌 회사에서 수입해 온다던 게임인데, 해외 쪽에선 벌써 반응 나오기 시작했데.”


내 마지막 여자 친구의 추천.

집안 전체가 게임 업계와 관련이 있던 여자 친구는, 사실 나보다 훨씬 더 게임을 좋아했다.

오늘은 이거 하자, 내일은 저거 하자.

학창 시절 공부밖에 하지 않았던 나는 그녀 덕분에 게임에 눈뜨게 되었고, 우린 pc방 데이트를 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오빠. 오빠가 보기에도 신궁 별로 같아? 내가 봤을 때 잘만 쓰면 좋을 것 같은데······. 다들 병신궁이래.”


신궁 원챔의 시작도 그녀부터였다.

게임을 즐기긴 했지만, 라이트 유저에 가까웠던 나는 그저 그녀를 응원했었다.


“꺄! 오빠! 나 진행도 랭킹 100위 찍었어! 이것 좀 봐!”


그녀는 끝없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신궁을 플레이했고, 커뮤니티에서 신궁을 변호하며 키보드로 전쟁을 치렀었다.


“축하해. 이러다가 랭킹 1위 찍겠는데?”

“두고 봐. 내가 랭킹 1위 찍고 오빠한테 프러포즈할 거니까.”

“하하! 프러포즈랑 그게 무슨 상관이야?”

“으으, 이래서 머글들은······ 됐어! 그냥 기다리기나 해!”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던 나는, 분명 행복했다.


분명 행복했었다.


“······뭐라고요?”

“비행기가······ 비행기가······.”


그날의 하늘은 흐렸다. 빌어먹게도 흐렸다.

그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내 장인어른 될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시 보자고.

아버님의 목소리는 좋지 않았고, 나는 불안을 안고 예비 신혼집을 나섰다.

대로변의 3층짜리 스타벅스, 그곳에서 우린 마주 보았고, 나는 듣고 말았다.


“시현아······ 시현아.”


어느새 눈떠보니 장례식이었다. 그녀는 학술논문발표회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중, 비행기에서 사고를 당했다.

그녀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온 건, 그녀가 가지고 갔던 대형 캐리어, 그리고 편하게 신으려고 챙겨갔던 크록스 한 짝뿐.


기적을 바랬지만, 태평양 한가운데서 내 사람만의 생존을 바라는 기적은, 희망이 아니라 저주였다.

나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제 이 세상에 시현이는 없었다.


그녀의 집안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아이폰 속에 저장된 사진만으로 나는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어디 놀러 가서 사진이나 많이 찍어둘걸. 뭐가 그리 좋다고 주구장창 피시방만 갔었나.

후회였다.


“이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팅팅 부르터진 눈으로 그녀의 짐을 정리하던 날, 그녀의 게임팩 아이디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있었다. 그녀가 남기고 간 흔적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게임에 접속했고, 그녀가 심혈을 들여 키운 캐릭터를 볼 수 있었다.

총 5개였다. 모두 신궁이었지만, 4개는 잘못된 루트라 판단하고 버린 것, 그리고 하나는 가장 최근까지도 키우던 녀석이었다.

닉네임은 ‘송서하짱짱맨’


······내 이름이다.


탁, 타다닥.


2차 비밀번호,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그렇게 캐릭터에 접속하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그녀가 남긴 메모였다.



-오늘도 화이팅! 랭킹 1위찍고 머글 남친한테 프러포즈하기!!! (중요중요중요x100!)

-한국 귀국하는 날 짱짱맨 생일임! 선물 사오기. 까먹지 말기.



나는 스스로가 눈물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럼에도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송서하짱짱맨’이 되었다.


송서하짱짱맨1, 송서하짱짱맨2, 송서하짱짱맨3······.


그렇게 정확히 3년하고 3개월이 걸렸다.

오늘, 내가 랭킹 1위가 되기까지. 그녀가 좋아하던 신궁으로.


[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의 업적이 상위 존재에게 닿습니다. ]


멍하니 모니터 화면만 바라본다. 긴 시간 동안 바라 마지않던 문장이 아른아른, 내 동공에 새겨진다. 각인처럼.

문장, 띄어쓰기, 온점, 폰트.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째깍- 째깍- 째깍-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가 아팠다. 시계를 바라본다. 그리고 계산한다.

······서둘러 움직이면, 납골당 운영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겠네.


랭킹 1위를 유지하려면 여유 부릴 틈이 없겠지만······

오늘 하루쯤은 쉬어도 되겠지.


나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이미 씻어서 바로 나가면 됐다.

화창한 하늘. ······그날과는 달랐다.


그때였다.


콰르릉-


난생 들어본 적 없는 거대한 굉음이 들렸고,


퍽.


일순 느껴지는 뒤통수의 통증,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


“······흐흐.”


근데 아무리 봐도 미친놈이다.


이대로 죽는다 해도, 랭킹 1위를 찍었으니 됐다-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으니까.



보고 싶다, 시현아.




***




띠링-


[ 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당신의 업적이 상위 존재에게 닿습니다. ]


띠링-


[ 상위 존재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


띠링-


[ 충격에 주의하세요. ]


작가의말

성실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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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성인식 (3) 24.09.11 51 1 15쪽
6 성인식 (2) 24.09.10 52 1 23쪽
5 성인식 (1) 24.09.09 59 1 17쪽
4 데이지 (3) 24.09.08 63 2 17쪽
3 데이지 (2) 24.09.07 71 2 15쪽
2 데이지 (1) 24.09.06 92 2 15쪽
» 원챔 유저 24.09.05 11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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