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할 도련님의 화살이 수상할 정도로 강함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찌질한
작품등록일 :
2024.09.05 12:49
최근연재일 :
2024.09.18 16:2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729
추천수 :
17
글자수 :
100,781

작성
24.09.10 18:35
조회
51
추천
1
글자
23쪽

성인식 (2)

DUMMY

게임, 던전과 평화.

여러 가지 컨텐츠 중, 메인은 지옥 공략.


정확히는 지옥이 아니라 마경이지만, 현지인들은 그 풍경이 지옥 같다 하여 지옥이라 부른다.


‘마경이랑 지옥이랑 무슨 차이가 있나?’


현대인인 내 입장에선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실 지옥을 탐험하고, 공략하는 건 용병들의 일이었다. 그러나 전설의 모험가 ‘제서’, 그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가 150년 전 지옥 9층을 개방하고, 그 공로로 백작의 작위를 받은 이후, 모든 귀족가와 거대 세력이 지옥 공력에 뛰어들었다.

즉.


‘천대받던 지옥 공략이, 이제는 귀족들의 각축장, 혹은 격전지가 된 것이지.’


고위 귀족은 제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하위 귀족은 더 높은 곳을 위해. 돈 많은 평민은 신분 상승을 위해.


각자의 사정을 안고 지옥에 뛰어든 지 150년 정도가 지난 지금.

어느 정도 세력 구도가 정립되었는데, 일개 가문 단위로 공략단를 가지고 있는 곳은 제국에 딱 4곳뿐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유아캘린서의 가문, 이브로쉐 공작가.


“아가씨! 오늘 입은 로브가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어디서 맞추신 겁니까? 제도? 아니면 하부리나 공방?”


뭐, 그런 이유였다.

나를 넘어뜨린 저 갈색 머리 녀석이, 유아캘린서에게 딱 달라붙어서 조잘조잘 거리는 것은.

그녀에게 잘 보여, 성인식이 끝난 이후 공작가의 공략단에 들어가고 싶은 거겠지.


‘멍청하군.’


저 여자 성격상 그런 게 통할까는 싶다마는.


“다들 들어오셨습니까! 우선 첫 번째 포인트로 이동하면서 간단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자신을 황궁에서 나온 모험가라 소개한 사내가 우리를 인솔했다. 이번 성인식 진행자인 듯하다.


“저희도 이동하시지요.”


그에 지금껏 가만히 있던 내 수행 기사도 말했다. 둘 중,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자가.

가만 생각해 보면 이게 우리의 첫 대화였다.


이 자는 분명 오러를 쓰는 기사였지. 그 옆은 성기사고.


“그러지.”


순순히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이곳에 들어오기 직전엔 분명 괘씸했지만······.

아무리 1층, 그것도 튜토리얼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라 해도, 여긴 지옥이니까.

뭣보다.


“유아 아가씨! 제가—”

“유아캘린서.”

“예?”

“제 이름은 유아캘린서에요. 함부로 줄이지 마세요.”

“아······ 옙! 유아캘린서 아가씨! 제 옆에만 꼭 붙어 있으십시오! 몬스터 쯤이야, 음!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저 멍청한 녀석과 접촉할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테니까.

지금 녀석이 있는 곳은 성인식의 중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유아의 옆.

일단은 지켜봐야겠다는 판단이었다.


“이쪽으로.”


나는 수행 기사의 안내를 따라, 진행자의 뒤를 따랐다.

이동 속도는 적당했다.


“······대단하군.”

“지옥은 저희가 사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 맞는 말이다.”


거대한 동굴 내부 같은 풍경. 중간중간 세워져 있는 천연 석회 기둥. 어디선가 들리는 또잉- 또잉- 물방울 소리. 어디서든지 몬스터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칠흑 어둠. 그를 몰아내는 환한 횃불 마도구.


‘······재밌네.’


현실로 표현된 지옥을 구경하기에는,

아주 적당했다.


“크하하하!! 아가씨! 대단하십니다!”


“······.”


딱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누가 저놈 입을 좀 막아줬으면 싶은 거?






“아, 네.”

“으하하! 제가 그래서 말입니다. 찢어진 손 대신 반대 손으로 검을 바꿔 잡고 대련 상대를 아주 그냥—”


유아는 무리의 틈, 아니 그 중앙에서 이동하고 있었다.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멍청한 녀석의 말에 대충 대답해 주면서.


아예 무시하지 않는 이유는, 이래 봬도 이 사람은 서부 연합 소속 자작가의 장남이라서. 언젠가 써먹을 데가 있을.

참고로 이름은 베릭이다.


‘저 사람······.’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남자다.


‘아까부터 자꾸 뭘 보는 거야.’


저 비실비실한 남자는 아주 짜증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노려봤다. 대략 3분에 한 번꼴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유아도 지지 않고 그가 돌아보는 타이밍마다 눈을 부라렸다.


‘뭐, 한번 해보자고?’


그런데 영 멍청한 건 아닌 건지, 옆에서 눈치 없이 혼자만 말하던 베릭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아가씨. 저 자식이 거슬리십니까? 제가 조용히 처리할까요?”


조용히 처리하기는 무슨.


“됐어요. 저한테 할 말이 있나 본데, 용기가 없어서 저렇게 몰래 노려보고만 있는 거죠. 놔두세요, 불쌍한데.”

“오오. 역시 아가씨십니다. 자애롭기 그지없으시군요. 그런데 저 데이지 자식 말입니다. 갑자기 왜 활을 든 걸까요?”

“······글쎄요. 저야 모르죠.”


생각해 둔 바는 있지만, 이 사람이랑 그런 이야기를 하긴 싫었다. 귀찮아, 거슬려, 냄새나, 못생겼어.

그러나 베릭은 생각보다 더 눈치가 없었다.


“제가 생각하기엔······ 라이벌이었던 저에게 벽을 느껴서 도망친 게 아닐까 하는······.”

“하.”


······몇 번 대답해 주니까 내가 자기 친군줄 아네.


“저기요. 베릭님?”

“예?”

“좀 조용히 가고 싶은데.”

“······아, 죄송합니다.”


그제야 조용해진 주변, 콕 짚어 말을 해줘야 알아먹는다.

유아는 답답함을 느꼈다. 싫은 소리 하기 전에 미리미리 잘하면 좀 좋아?


‘또 뭘 봐.’


그때, 데이지가 다시 한번 이쪽을 바라봤다. 보고 있자니 웃긴다. 할 말 있으면 와서 말로 하지 졸렬하게 멀리서 뭐 하는 짓······.

······응?


그런데 뭔가 묘하다.

아까와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분명 좀 전에는 짜증이 그득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웃어?’


막 환하게 웃는 건 아니고, 입꼬리가 살짝 씰룩거린다.

······뭐 때문이지?

······내 얼굴에 뭐 묻은 거 아니야? 아까 들어오기 직전에 초코칩을 먹긴 했는데.


유아가 화들짝 놀라며 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 들고 얼굴을 살폈다. 혹시나 싶어 머리나 옷도.

아무것도 안 묻었는데?


유아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그럼 왜 웃는 거지?


방금 내가 한 거라곤, 옆에 이 귀찮아 죽겠는 남자 입을 다물게 한 거밖에 없는데······.

설마 이런 걸로 좋아하진 않을 테고.


아무리 고민해도 나오지 않는 답에, 유아의 머리가 뜨거워졌다. 귀도 빨개졌다.

허나, 그래도 왜 데이지가 웃는지는 알 수 없었다.

끝까지.




***




“첫 번째 과제는 깃발 찾기입니다.”


성인식은 총 3가지 과제로 구성된다. 그 중 첫 번째는 깃발 찾기로, 모험가의 소양 중 하나인 관찰력을 평가하는 단계이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저희 평가관들이 곳곳에 숨겨 놓은 깃발을 찾으시면 됩니다.”


지옥에는 특정 지형이나, 특정 몬스터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히든 피스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인스턴트 던전이나, 특수 부산물(아이템 재료) 등.

아주 낮은 확률이긴 하지만, 그런 게 알짜배기다.

이 깃발 찾기는, 지옥을 처음 경험하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체험시키기라고 볼 수 있다.


“이미 다들 아시겠지만 총 8개의 깃발은 색이 다 다릅니다. 당연히 평가 점수도 다르지요. 욕심부려서 혼자 움직여도 되긴 하지만······ 위험할 수 있으니 정해진 조끼리 활동하시기를 권유해 드립니다.”


자신의 이름을 세이버라 소개한 진행자가 엄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그는 귀족은 아니지만, 고위 모험가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는 이 세상에서, 귀족 자제에게 저 정도 말을 할 수 있는 위치는 되었다.

무려 황궁 소속의 모험가이니.


네- 열아홉 살의 귀족가 자제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삐약이처럼 대답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무운이 깃들기를.”


진행자를 비롯한 수행원들이 뒤로 물러나자, 시험장엔 여덟 명의 성인식 대상자들만 남게 되었다.

그 직후,


“유아캘린서 아가씨. 동맹을 맺지 않으시겠습니까?”

“동맹이요?”


2조 조장이 된 베릭이, 1조 조장 유아캘린서에게 제안했다.

그냥 조 상관없이 같이 움직이자고.


“음······ 분명 함께 움직이면 깃발을 더 수월하게 찾을 수는 있겠네요.”


잠시 고민하던 유아캘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상 이점이 근거였다.


“예! 바로 그겁니다!”


베릭은 그냥 유아캘린서와 함께 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만.


“네, 뭐. 최단 시간 기록을 깨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그렇게 두 조간의 동맹이 맺어졌다.

힘없는 나는 두 조장의 말을 그저 따를 수밖에, 애초에 깃발 찾기 자체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참고로 조장은 인류역사상 가장 공명정대한 방법인, 인기투표로 뽑혔다. 나는 2조, 베릭의 조원이다.


“저기! 저깁니다!”


함께 움직이게 된 8명의 아이들(나 포함)은 빠르게 깃발을 찾아나갔다.

계곡 아래에서, 절벽 위에서, 또는 그냥 길 한복판에서.


어차피 이 근방에 몬스터는 없지만(성인식 때문에 미리 치웠다고 한다),

기사는 전방에, 사제와 마법사는 중앙에, 사수는 후방에 배치한 꼴로 포메이션을 짜 이동했다. 그 덕에 함정을 회피하는 데 도움은 됐다.


‘대학생 시절이 생각나는군.’


추억이 새록새록 샘솟는 기분이다.

무임승차자가 있는 게 딱 그 꼴이다. 다른 점이라면, 이번 무임승차자는 나라는 것.


귀족 자제들은 편견과 달리 아주 열심히 과제를 수행하였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들 대부분이, 전투원은 아니더라도 지옥 공략단에 들어가길 희망했다.

성인식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이면, 나중에 공략대에 들어갈 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하는 거다.


이미 가문 소유 공략단이 있는 유아를 빼면.

그녀는 그저 순수하게 현재에 열중하고 있었다.


“으하하! 찾았다! 아가씨! 이번에도 제가 찾았습니다!”

“음. 잘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저 멍청하게 생긴 곱슬머리 녀석이 크게 활약하고 있다. 눈이 좋은 건가. 마냥 인기투표로 조장이 된 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녀석이 아주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어이. 너도 뭐 좀 하지 그래? 멀뚱멀뚱, 머저리처럼 쳐다만 보고 있으면 깃발이 나오나?”


베릭의 따까리가 호응했다.


“크흑. 베릭, 너무 뭐라 하지 마. 아무렴 천재 데이지잖아? 우리 같은 거랑은 어울리기 싫은 거지.”

“재수 없는 새끼. 옛날에 잘난 척은 혼자서 다 하더니. 꼴 좋다.”


‘데이지의 피해자인가.’


유아캘린서는 그저 의심되는 수준이었지만, 이 녀석들은 확실하게 데이지한테 맞고 다닌 듯하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베릭의 따까리가 말한 ‘우리 같은 거랑은 어울리기 싫은 거지’라는 말.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성인식을 열심히 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키우는 신궁은 일반적인 성기사와 달리, 저주를 활용해야 한다.

허나 이는 교단에 걸리면 아주 큰 일 날 일이었다. 게임에서는 즉시 이단으로 몰렸을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주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리턴값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이룬 ‘불가능한 업적’이 그 증거였다.


그래서다.

나는 솔플을 해야만 한다.

데이지의 경우는 저주를 받은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저주를 활용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즉, 공략단에 들어가 파티를 이루기는 어렵다는 뜻.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주위의 관심을 끌지 않는 편이 내게 훨씬 유리하다.


······뭐, 그런 걸 다 떠나서.


“······배려해 줘도 짖어대는군. 고마운 줄 모르고.”


내 게임 경력과 별개로, 이미 커뮤니티에는 귀족 성인식 에피소드에 대한 정보가 많이 풀렸다.

깃발의 위치는 무작위로 바뀌지만, 그 패턴은 확실히 존재한다. 이미 몇 개 깃발을 찾으면서, 그게 이곳에서도 통한다는 걸 확인했고.

그래서 내가 깃발을 찾으려고 한다면······.


“······뭐라고?”


아마 평가관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녀석은 없을 거다.


“입 다물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해라.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꼬리만 흔들지 말고.”


내 생각이 데이지의 언어를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불쾌감과 짜증을 억누르며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갔다.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르는 녀석의 얼굴이 보인다.


“왜, 할 말 있나?”


나는 처음부터, 나를 적대하는 녀석에게 싹싹할 생각이 없었다.


······이 낯설면서도 익숙한 세상,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

그건 상식이었다.


“······너 이 새끼!”


말 몇마디를 참지 못하고, 배릭이 내게 달려들었다. 베, 베릭 멈춰! 옆의 따까리가 신속하게 몸을 날려 녀석을 말렸다.

쫘악- 내 손은 어느 순간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다. 녀석의 미간을 조준한다.


이어지는 잠깐의 대치.


“······다들 멈추세요.”


유아까지 나서자 뜨거워진 분위기가 차츰 가라앉았다. 베릭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팔을 내렸다.


맞지 않나. 여자 말에 바로 꼬리 내리는 개.


“당신······ 하.”


유아가 내게 한마디 하려다 멈춘다. 그리고 뒤돌아, 지시한다.


“몇 개 안 남았어요. 얼른 찾고 쉬도록 하죠. 그리고 오늘 일은······ 성인식이 다 끝나고 얘기해요.”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아이에게 이런 취급받는 게 좋진 않지만,

또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3주밖에 되지 않았다.


매 순간순간에, 필사적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다는 말이다.




***




“첫날은 무사히 끝났고······.”


성인식 진행 본부의 천막 안, 진행자 세이버가 탁상에 발을 올리며 물었다.


“다들 소감은 어때?”


그에 천막 안의 인물들이, 하나둘 답을 내놓았다.


“난 첫날이라 딱히. 깃발 찾기는 재미가 없어.”

“푸흐- 거짓말. 너는 그냥 귀족 나으리들이 소꿉놀이하는 게 재미없는 거잖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모험가 협회에서 파견 나온 평가관, 캔저의 의견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는 뭐, 그저 그렇네. 애들끼리 싸우는 거 보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캔저가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 은둔 공자랑 베릭 도령 말이지?”

“응. 데이지. 옛날엔 싸가지 없어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데, 저렇게 망가져서 오니까 보기가 영 그렇네. 다크서클도 너무 짙고, 스타일도 엉망이고. 하여튼 별로야.”


그에 세이버가 머리를 긁적였다.


“메이린님······. 그, 오늘은 외모 평가를 하는 날이 아닌데 말입니다.”


의자에 등을 기대 손톱을 정리하던 메이린이 후- 입으로 바람을 불고, 세이버를 바라봤다.


“그럼 어떡해? 옛날에 그 예쁜 얼굴이 저렇게 다 상했는데. 그게 내 탓이야?”

“······.”


세이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와는 대화가 안 통한다. 캔저가 세이버의 등을 퍽퍽 쳤다.


“크하하! 메이린 아가씨잖아. 얼굴 보고 팀원 뽑는 거, 몰랐어?”

“아니, 그래도 오늘은 팀원 뽑는 자리가 아닌데······.”

“뭐 어쩌겠냐. 메이린 아가씨를 평가관으로 보낸 마탑을 탓해야지.”


세이버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평가관은 많다. 한 명쯤은 저래도 괜찮겠지.


“그럼······ 눈에 띄는 사람은 있었나?”


세이버가 질문을 바꿨다. 황궁에 올릴 보고서에 써야 하니, 노트와 펜을 들고.


“없어?”

“······유아캘린서.”


그때 한쪽 구석 바닥에 앉아있던 여성이 말했다.

후드를 푹 눌러쓴 그녀의 이름은, 엘리스.

150년 전 모험가 협회를 세운, 프로노움 백작가의 소백작이었다.


“아, 확실히 유아 아씨가 제일 눈에 띄었지.”

“그래. 아직 첫 과제라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마법 실력이 뛰어났다. 그녀가 이브로쉐 공작의 딸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 말에 대부분의 평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아는 당연히 제 가문인 이브로쉐 공략단으로 갈 것이기에, 스카웃할 수 없었다.


“그 외에는······.”

“아무래도 아쉽지.”


다들 열심히 하고, 실력도 나쁘진 않다. 그러나 스카웃을 하기엔 애매했다.


“그 정도는 다 하니까.”

“솔직히 남부 쪽 도련님들에 비해선 딸리는 게 사실이지.”


이견은 없었다.

다만.


“······그 녀석은 확실히 특이하더군.”

“누구 말입니까?”


세이버의 물음에, 프로노움 소백작이 건너편을 힐끔 바라봤다. 교단 쪽 인물들이었다.


“데이지.”

“데이지?”


의외의 이름에 메이린이 끼어들었다.

데이지의 현재 모습은 마음에 안 들지만, 예전엔 꽤나 곱상했기에 아직 흥미가 꺼지진 않았다.

외모야, 본판만 확실하면 가꾸기 나름이니까.


“걔는 왜? 하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던데? 말은 안 했지만, 예전에 천재라 불리던 그 애가 맞나 의심될 정도더라.”

“동의한다. 마음에 안 들더라. 분탕만 치고.”


모두의 의아한 반응. 의도치 않게 이목이 쏠리는 걸 느끼며 소백작이 말했다.


“그 녀석. 가장 먼저 깃발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그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다. 조원들이 깃발을 찾기 전, 항상 미리 깃발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있을 걸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그건.”


소백작이 후드를 내리며, 교단 쪽을 바라봤다. 아까처럼 힐끔이 아닌, 뚫어져라.


“그래서 묻고 싶군. 혹시, 사전에 깃발을 숨겨 놓은 위치를 알려줬나?”

“······뭐?“


순간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갑자기 화살이 저들에게 돌아오자, 교단 측 인물들은 당황했다.


“프로노움 형제님. 지금 저희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교단의 사제 한 명이 불쾌하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아무리 프로노움이 전설의 모험가의 후예라 할지라도, 이건 명백히 선을 넘었다.


“······.”

“얼른 대답하시지요!”


공기가 뜨거워졌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메이린과 캔저가 엘리스를 말렸다.


“에이. 너 왜 그래? 네가 잘못 본 거겠지. 데이지가 깃발을 제일 먼저 찾았다는 게 말이 돼? 그것도 8개 전부다?”

“맞다. 그렇다면 데이지는 왜 조원들에게 위치를 알리지 않은 거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나.”

“그, 그래요. 다들 진정하고 우선은······.”


꿀꺽. 말리는 세이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가장 소시민이라고 자부했다.

설마 진짜 싸우는 건 아니지······?


피식-


소백작이 눈에서 힘을 빼며 웃었다.


“아니. 농담이다. 사과하지.”

“······?”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템포에 모두가 당황했다.


“노, 농담?”

“그래, 데이지가 깃발을 먼저 발견하다니. 그게 말이 되나? 혼란을 줘서 미안하다.”


소백작이 손을 들며, 제 농담이 짓궂었다는 걸 시인했다. 특히 교단 측을 바라보며.


간단히 사과를 끝낸 그녀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쓰고, 벽에 등을 기댔다.

자신은 조용히 있겠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듯.


“어······ 그럼, 다시 진행해 볼까요?”


조용해진 장내. 세이버가 눈치를 보며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


소백작은 한 귀로 그를 들으며 자신이 본 광경을 떠올렸다.


그 누구보다 먼저 깃발을 바라보고 있는, 빼빼 마른 소년, 아니 청년의 모습.

그럼에도 깃발의 위치를 조원들에게 알리지 않는 모습.


‘······재밌는 놈이군.’


다른 가문이 열 명에 가까운 수행원들을 보내는 데 반해, 캔들레인은 단 두 명의 수행 기사만 데이지에게 붙였다.

즉 가문도 그 녀석을 내쳤다는 뜻.

하물며 저주받은 공자라 데이지를 매도하는 교단이, 사전에 깃발 위치를 알려주진 않을 터였다.


그렇다면, 깃발을 발견한 건 모두 데이지의 능력이라는 의미.


‘뭐, 이 녀석들은 데이지가 먼저 찾았다는 것 자체를 안 믿는 모양이지만.’


왜냐면, 데이지는 겉보기에 너무도 불성실해 보이니까.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인데.’


깃발? 대단하긴 하지만, 사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소백작은 데이지에게서 다른 점을 가장 주목했다. 일부러 평가관들에겐 언급하지 않은 것.


‘경험도 없는 놈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바로 침착함.

도저히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는,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티가 나는, 정신적인 성숙함.

마치 성인식에 대충 임하는 것이라 착각하게 될 정도로.


실은, 그 누구보다 깃발 찾기에 열심히 였던 놈인데.


물론 그런 냉철한 침착함을 가지게 된 경위는 대충 짐작이 된다.


어린 시절 실종됐던 그 사건 때문이겠지. 당시 제국이 뒤집어졌었던······.


아무튼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분명 쓸만해지긴 할 거다. 그런 직감이 들었다.


‘······물론,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지만.’


프로노움 소백작, 엘리스가 벽에서 등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일어나보지.”


아무도 떠나는 그녀를 잡지 않았다. 소백작은 남몰래 웃음 지었다.


앞으로 6일 남은 성인식, 재밌는 볼거리가 생겼다.




***




1일 차, 깃발 찾기가 끝이 났다.


나는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베이스캠프에 들어왔다.

숙소는 1인용 천막이었고, 다행히 차별은 없는 듯했다.


‘베이스캠프라.’


인간 귀족으로 스타팅해서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이종족이나 다른 신분으로 스타팅했다면, 천막은 고사하고 밤을 꼴딱 세며 에피소드를 깼겠지.

너무도 좋은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걸 앞으로 6일이나 더 해야 한단 건가.”


내일은 몬스터 사냥, 3일 차부터 마지막 날까지는, 실전 과제가 준비되어 있다.


“······쯧. 귀찮구나.”


의욕이 없어서 그런지, 만사가 귀찮아진다. 성인식 따위 대충 스킵하면서 빠르게 끝내고 싶은데······.


“음.”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평가관들이 내 태도를 두고 문제삼으면 어떡하지- 하는.

실제로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고나서 마주한 평가관들의 표정이 안 좋기도 했다.


나름 한다고는 했는데, 최악의 경우엔 성인식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안된다. 계획이 모조리 어그러진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위닝멘탈리티를 장착했다. 유저 시절의 습관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성인식을 잘 활용해 보자. 전직 보상으로 받은 스킬을 실전에서 활용해 볼 좋은 기회잖아?

안전하게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세상천지 성인식을 빼면 또 어디 있겠어?


‘······좋군.’


이렇게 생각하니 상황이 달라 보인다.

그래, 이건 튜토리얼이다.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하여 정했다. 내일부턴, 성인식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옳겠다.

그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


이미 지쳐버린 내 육신은, 정신력으로 버틸 수 없었다.

우선은······.


“자자.”


나는 벌떡 일어나 샤워 부스로 달려갔다. 빨리 씻고 당장 눈을 감아야 하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몰락할 도련님의 화살이 수상할 정도로 강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특종 (2) NEW 13시간 전 16 1 15쪽
13 특종 (1) 24.09.17 27 1 17쪽
12 아이들의 비밀 (3) 24.09.16 32 1 16쪽
11 아이들의 비밀 (2) 24.09.15 33 1 14쪽
10 아이들의 비밀 (1) 24.09.14 38 1 17쪽
9 성인식 (5) 24.09.13 43 1 15쪽
8 성인식 (4) 24.09.12 44 1 17쪽
7 성인식 (3) 24.09.11 51 1 15쪽
» 성인식 (2) 24.09.10 52 1 23쪽
5 성인식 (1) 24.09.09 59 1 17쪽
4 데이지 (3) 24.09.08 63 2 17쪽
3 데이지 (2) 24.09.07 71 2 15쪽
2 데이지 (1) 24.09.06 92 2 15쪽
1 원챔 유저 24.09.05 109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