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할 도련님의 화살이 수상할 정도로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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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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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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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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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3)

DUMMY

이른 아침, 유아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끝내고 수정구 앞에 앉아 한 여인과 통화를 시작했다. 조잘조잘, 대부분 유아가 떠들고, 상대방은 들어주었다.


“언니, 저 성인식까지 이제 2주일 남았어요!”


말하는 유아 얼굴엔 기대감이 만연했다. 성인식, 얼마나 기다렸던지.


“빨리 통과하고 언니랑 같이 지옥 모험가고 싶네요. 같이 가주실 거죠?”

—당연하지. 그러기로 약속했잖아.


피식. 부탁하는 유아가 귀여운 듯 수정구 건너에선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약속했죠.”


약속. 그러나 그 짧은 단어에, 유아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순간 기분이 불쾌해졌다. 아니 어쩌면 아까부터 기분이 안 좋았다.

한 남자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 남자는 약속을 어겼다. 그리고 3년을 잠적한 후, 일주일 전 다시 저택을 나섰다. 아주 볼썽사나운 몰골로.

다만······ 이걸 언니에게 말해도 될까?


—유아. 무슨 고민 있니? 아까부터 힘들어 보이는데.


그러나 상대를 속일 순 없었다. 그녀는 유아의 상태를 이미 한참 전에 눈치챘다.


“······그게 사실은······.”


유아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말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다름 아닌 헬레나 언니잖아. 언니한테 그 사람 이야기를 꺼내도 되는 거야?


—괜찮아.


부드러운 목소리. 언제나 나를 보듬어주는. 아아. 헬레나 언니가 우리 친언니였으면 좋겠다.

유아는 용기를 냈다.


“저, 데이지 그 사람 봤어요.”


침묵이었다. 싸한 분위기에 유아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아, 역시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뱉으려던 찰나.


—······그랬니?


헬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응. 네.”

—그것 때문에 유아가 신경 쓰였구나. 저런, 미안해.

“언니가 사과할 게 뭐가 있어요! 다 그 사람이 잘못한 건데!”

—아니야. 우리 유아가 나 배려해 주느라 지금껏 고생 많았네. 고마워.

“으으······.”


유아는 속이 답답했다. 이게 뭐야. 그 사람 때문에 왜 언니가 사과해야 하는 건데. 잘못은 다 그 사람이 했는데.


—······.

“······?”


그런데 언니의 반응이 좀 어색하다.

혹시······?


“알고 있었어요?”

—응. 며칠 전에 나도 들었어. 데이지가 저택을 나왔다고.

“아······.”


유아가 탄식했다. 하긴 여기에 캔들레인이나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황가 사람도 있었겠지.

유아가 변명하듯 둘러댔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저도 보긴했는데. 아주 멀리서 봤어요. 대화도 못 나눴고, 아니, 사실 나누고 싶지도 않았는데. 하여튼 거의 만난 것도 아니에요.”

—응. 알겠어. 유아, 나는 괜찮아.


괜찮아. 유아는 그 말이 어쩐지 불쌍했다. 그에 유아는 억지로 목소리를 끌어올렸다.


“딱 그때뿐이에요! 그날 그 사람, 잠깐 활 들고나왔다가 다시 방에 들어가서는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안나왔다구요.”


푸흐. 알겠다니까- 유아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웃음소리가 들렸다. 유아는 더 흥을 냈다.


“사람 버릇 어디 안 가나 보죠. 3년 동안 다 내팽개치고 도망친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겠어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나중에 마주치면 제가 단단히 혼낼 테니까.”

—······.


아차. 너무 나갔나?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은 언니의······.


아니야. 죄지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구.


유아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말을 이었다.


“아참. 오늘 저녁에 몬스테리아님이 같이 식사하자고 하셨는데, 데이지 그 사람도 불렀다고 하더라구요. 나올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근데 아마 안 나오지 않을까요?”


말하는 유아는 확신했다. 사람이 염치가 있다면······.


안 나와야지.

무슨 낯짝으로 나랑 밥을 먹어?


유아가 양손을 쥐고 허공을 때리는 시늉을 했다. 휙휙.


“나오기만 해봐. 내가 아주 그냥!”

—하하.


나지막히 들리는 헬레나의 웃음. 유아의 어깨가 올라갔다.

역시, 언니는 웃을 때가 제일 이쁘다. 내가 계속 지켜줘야지.




***




“뭐, 뭐야. 당신?”


유아캘린서가 동그란 눈을 뜨고, 내게 삿대질했다. 입은 엑- 벌린 채였다.

그러나 나는 바쁘다. 인사해 오는 유아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내 할 일에 집중했다. ······인사 맞겠지?


아무튼 내 인사에 유아가 잠시 멍하니 나를 지켜보더니, ‘미친, 이거 진짜야?’라고 중얼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할 말이 많아 보였는데, 주위 시선을 의식하는 듯했다.

그녀의 눈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지만, 뭐 어쩌겠나.

나는 신경을 끄고 내 할 일에 집중했다.


식당 구석 쪽 테라스에 자리 잡았다. 활을 들고,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물론 진짜 쏘진 않는다. 그저 자세 연습이다.

일주일 전 연무장에서 치욕스러운 상황을 맞이한 결과(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우선 기본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주일간 나는 방에서 집사와 메이드를 통해 공수한 교본을 보며, 자세만을 연습했다.

가르쳐주는 선생도 없이 책으로만 독학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꽤나 그럴싸해진 것 같다.

이래 봬도 활의 민족, 고구려의 후예,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가?

우리나라 대표팀이 활로 딴 메달 개수가 몇 개인지 아는가?

일단 나는 모른다. 아무튼 많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뭘 보는 거지.’


나를 본다.

식당의 모두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유아, 집사, 메이드, 쉐프 등등.


원래의 나였다면 조금 쪽팔리다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모르겠다. 데이지 성격 영향인지, 아니면 역변한 상황에 내 성격이 덤덤해진 건지.


아무튼, 게임에서 강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니,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는 건 멍청한 일이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이런 짓을 안 해도, 애초에 모두가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나.


그런 이유로, 나는 식당 테라스에서 활을 연습했다.


퉁. 퉁. 시위에서 화살을 분리하고 튕기길 몇 번.


식당 입구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가주 대리님 드십니다.”


나는 마냥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다.

가주 대리 = 높은 사람.

이미 가문 내 내 신세가 개차반이라 해도, 길 땐 길 줄 아는 사람이다.


가주 대리, 몬스테리아.

식당에 들어온 그녀는 우선 내부를 주욱 훑었고, 그 시선이 나에게 닿았을 때 조금 놀라는 듯했다. 티는 거의 안 났지만 난 그렇게 느꼈다.

부른 건 맞지만 정말 올 줄은 몰랐던 건가.


“······앉자.”


그녀의 말에 나는 활을 벽에 세우고 자리에 앉았다. 눈동자를 굴려 살핀 그녀의 모습은.


‘생각보다 어리군.’


하긴, 그녀는 데이지의 누이다. 아무리 가주 대리를 역임한다 해도 그리 나이 차이가 나진 않겠지. 한 26~28정도?

한국의 나, 송서하보다 어려 보였다.


아니 잠깐.

그런데 왠지······ 낯이 익다.


“······패륜왕?”


그 순간 내게 시선이 꽂혔다. 몬스테리아는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봤고, 유아는 죽일 듯이 나를 노려봤다.

나는 무표정한 여인의 면을 살폈다.


“······?”


차츰 좁혀지는 미간, 올라가는 왼쪽 눈썹. 오똑한 코와, 좁은 콧볼. 요염한 입술······ 그리고.


“아.”


흉터가 난 귓볼. 귀걸이로 가렸지만 확실하다.

패륜왕이다.


“할 말 있니?”


내 시선을 의식한 건지 그녀가 흉터난 귀를 손으로 가렸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라고 했지.


게임 스토리 상, 고위 귀족인 그녀는 가문을 몰살시키고 빌런으로 활동했다.

······그 가문이 캔들레인이었나.


‘내가 처음 들을 만했군.’


애초에 없어진 가문이었다.

꿀꺽.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긴장이 되기 시작한다.


저 여자, 지금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죽이고 싶을까? 분명 그럴 거다. 이 몸 또한 그녀가 몰살시킬 가문의 일원이니까.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래, 어서 먹으렴. 오랜만에 함께하는 식사인데, 식기 전에 먹어. 유아 너도 어서.”

“네, 몬스테리아님.”


유아마저 대답하자 그녀는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귀에서 손을 떼고 식기를 들었다.

어투는 표정처럼 무감정했다. 고압적이진 않았지만, 명령에 가까웠다.


달그락.


나도 식기를 들었다. 우선 스프부터.

그러면서 내 신경은 오로지 그녀에게 곤두서 있었다. 옆에서 유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말해야 하는데.’


어느 타이밍에 말해야 하지.


일이 꼬였다.


나는 그저 밥을 먹기 위해 나온 게 아니다. 밥 정도는 일주일간 그랬듯 방에서 혼자 먹는 게 편하다.

애초에 내 진짜 가족도 아닌데 가족이랍시고 얼굴 맞대며 먹는 게 편할 리가. 그것도 적나라한 적의가 느껴지는 곳에서.


아무튼 나는 오늘 식사 자리에서 초급 성기사 최종 면담을 받고 싶다고 말하려 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성직자 진급 이벤트. 알아보니 다음 차례는 5개월 후였고, 나는 이걸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가주 대리에게 부탁하여 나만 따로 최종 면담을 받으려고 했는데······.


가주 대리가 하필 패륜왕이라니.

가문의 도움을 받을래야 받을 수가 없는 구조아닌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나.’


고행에 들어 강제로 신성력을 개방한다거나, 아니면 성기사는 치워두고 다른 능력부터 키운다거나.

물론 내키진 않는다. 성기사로 베이스를 두고 능력을 쌓는 게 효율이 가장 좋다는 말이다.

뭐, 이미 몸에 저주가 깃들은 상태라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데이지.”


그때였다.

식기를 내려놓은 몬스테리아가, 옆에 놓인 냅킨으로 입술을 톡톡- 우아하게 닦고는, 내게 물었다.


“이제 밖으로 완전히 나오기로 한 것이니.”

“······그렇습니다. 여지껏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누님.”


대충 대답하려 했건만, 내 혀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문득 가슴에 활기가 돌았다.

미친놈이다. 데이지. 저 사람 패륜왕이라니까?

다른 사람은 다 싫어하는데 누이는 괜찮은 건가?


“······그렇구나.”


수긍한 그녀가 잠시 뜸 들이다,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그럼 다시 성기사 작위에 도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예?”


내가 당황하여 되묻자, 그녀가 뭔가 오해한 듯 손을 저었다. 유아도 나와 마찬가지로 당황했다. 다만,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최종 면담만 남았는데, 포기하는 건 조금 아깝지 않니.”

“······.”

“교단에는 내가 연락해 놓을 테니, 별일 없으면 면담 받으렴. 준비할 게 있으면 미리 말하고.”

“······?”


이 사람은 뭘 믿고 내가 면담에 합격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라는 생각은 아주 잠시였다.


······어떻게든 기회는 얻었다.




***




“오랜만입니다. 데이지 형제님.”


서글서글한 인상의 사제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붉은 머리, 자글자글한 주름, 통통한 볼살, 목걸이에 달린 원형의 교단 심볼.

이 중년의 여사제는 ‘초급 성기사 최종 면담’을 위해 내 방에 들어왔다.


“제가 시간이 많지 않아 얼른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역시 성직자라는 건가. 가문도 멸시하는 나를, 아주 친절하게 대해준다.

얼마만의 따스함인지 모르겠다.


“우선 면담을 시작하기 전, 개인적인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

선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며 속으로 곱씹고, 성실히 임하기로 다짐했다.


“최근 악신의 저주로 인해 발작한 적은 없으십니까?”

“발작?

“예. 3년 전 면담을 포기할 당시에는 성기사 작위 대신 치료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음.”


발작이라. 사실 잘 모르겠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을 갓 넘겼는데, 그동안 딱히 없었어서.

그래서 나는 답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저주 발작이 있으면 성기사가 될 수 없는 겁니까.”


사제가 푸근하게 웃으며 답했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육신에 신성력이 있으면 저주를 누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나중에 발작이 일어나도 신성력으로 막으면 된다는 소리.


다만.


“이제라도 형제님이 의욕을 찾아서 너무나도 다행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얼굴을 굳히며 걱정스레 권했다.


“성기사가 아닌 사제로서 여신을 모시는 건 어떠십니까?”


그 표정이 사뭇 진지하여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서?”

“형제님은 몸이 불편하시지 않습니까. 3년 전 평가가 아주 좋으니, 사제의 길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겁니다.”


성기사치곤 몸 관리가 너무 안 돼 있다는 뜻.


“성직자가 되면 의무가 생길 텐데······ 성기사보단 사제가 훨씬 덜 위험할 겁니다. 사제인 제가 보증하지요. 그러니 한번 생각해 보세요.”

“괜찮습니다. 성기사가 아닌 다른 길은 고려해 보지 않았습니다.”


허나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내겐 신궁뿐이다.


“······알겠습니다.”


순간 그녀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럼 이제 면담을 시작하지요. 어렵진 않을 거예요.”


그녀가 품에서 은빛 실로 묶인 비단을 돌돌 펴 들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읊었다.


“프레멘티아 여신의 충실한 종 데이지. 그대는 성스러운 의식을 경건히 집행하고, 신도들의 영혼을 돌보며, 신께서 내린 신성한 힘을 오직 선과 정의를 위해 사용할 것을 엄숙히 서약하십니까?”

“서약합니다.”

“좋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그녀가 만족한다는 듯 웃었다.

그리곤, 탁- 비단천을 접었다. 그녀가 선언했다.


“이로써 데이지 형제님은 성기사가 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


그러나 나는 얼이 빠졌다.

이게 끝인가? 신성력은, 축복은?


“끝난 겁니까?”

“예. 나중에 프레멘티아님이 직접 찾아오실 겁니다.”


여신이 직접 찾아온다, 라. 그게 무슨 의미인가.

사제는 이런 나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짐을 챙기기 바빴다.


“저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교단에 오실일 있으시면 찾아주시지요.”

“······.”


덜컥.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정말 사라졌다. 진짜 끝이었다.

이건 뭐, 게임에서 마우스 딸각으로 전직하던 거랑 다름이 없었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렇게 쉬운 것을 데이지는 어째서 포기한 거지? 얼마나 마음이 시들어버렸길래.

쿡쿡- 가슴이 아린다. 이건, 데이지가 느꼈던 절망이다.

내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니라, 정말 마치, 내 일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과거 데이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우우우웅—


그 순간이었다.


뭔가 충만히 차오르는 게 느껴진다.


······이건.


신성의 발현이었다. 다만.


‘같잖은······.‘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띠링-


[ 전직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


-보상

: 초급 성기사 전직 / 직업 전용 스킬




***




몬스테리아의 집무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금 막 찾아온 손님을 맞이했다.


“세르덴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머. 저인 줄 아셨어요?”


붉은 머리의 서글서글한 인상의 중년 사제. 그녀가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손끝에서는 하얀빛이 얕게 일렁이더니.


사아—


순식간에 외형이 변했다.

주름은 온데간데없는 탱탱한 피부, 빨겠던 머리는 은빛으로, 갈색의 동공은 화사한 푸른 빛을 머금었다.

그 달라진 모습에 몬스테리아가 한 번 더 고개 숙였다.


“프레멘티아님을 모시면서 그분의 성녀를 못 알아볼 수는 없지요.”

“역시 몬스테리아님이시네요!”


성녀, 세르덴이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다.

몬스테리아는 오늘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후훗. 귀엽다.


“오늘은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데이지의 면담 때문에 오신 건 아닐 테고.”

“아니에요.”

“······?”


몬스테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제 꿈에 프레멘티아님이 오셨거든요. 고장 난 오뚜기가 다시 일어서려 한다. 도와라- 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오뚜기?”

“그런데 때마침 캔들레인에서 요청이 왔다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직감했죠. 아, 이거, 데이지님 말하는 거구나, 하고. 그래서 제가 냉큼 달려왔어요!”


히히. 저 잘했죠? 세르덴이 양손을 턱에 가져가 꽃받침을 만들었다.


“······.”


허나 몬스테리아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만 봤다. 입꼬리는 어느새 다시 내려가 있었다.


속이 복잡했다. 그 아이가, 정말 일어나려고 하는 건가······.

활을 배우려고 하는 듯하여, 집사를 통해 교본이나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이것저것 넣긴 했다만, 여신의 입을 통해 들은 것은—


—그야말로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몬스테리아가 눈을 지그시 감고, 주먹을 쥐었다. 손이 하얗게 질린다.


‘······아직은 안돼. 너무 섣불리 다가가면 데이지가 부담을 느낄 수 있어. 혹시나 그 아이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몬스테리아의 지난 3년은 후회였다.

그녀는 이미 데이지를 지키지 못했다. 그 과오를 반복하기 싫었다. 신중히 대응해야 했다. 모르는 척, 너한테 관심 없는 척.


······그래야만 했다. 데이지는 환자다.


피이-


재미없는 반응. 세르덴의 볼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집무실을 채웠다.

이런 건 조금 더 마음 편하게 기뻐해도 되지 않나?

가족이란 건 알다가도 모르겠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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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성인식 (2) 24.09.10 52 1 23쪽
5 성인식 (1) 24.09.09 59 1 17쪽
» 데이지 (3) 24.09.08 64 2 17쪽
3 데이지 (2) 24.09.07 71 2 15쪽
2 데이지 (1) 24.09.06 92 2 15쪽
1 원챔 유저 24.09.05 11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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