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 말단은 마신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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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우
작품등록일 :
2024.09.0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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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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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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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무공을 익히는 걸 추천합니다

DUMMY

第 一 章











1



“······.”


검은 상복을 입은 서진은 침울한 눈빛으로 폐허가 된 장원을 둘러보았다.

장례식은 조용히 치렀다.

대신(大臣) 집 개가 죽으면, 대신 집 문지방이 닳아 없어지도록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대신이 죽으면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고 했었다.

거기다 만인이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던 집안의 장례식이었다.

참변을 당한 서가장을 위해 애도해 줄 이도, 한걸음에 달려와 줄 이도 아예 없다고 봐야 했다.

그나마 사람들이 잘 죽었다며 욕설을 퍼붓는 대신,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는 덴.

서진이 재물을 풀어 수많은 고용인의 합동 장례식을 치르고, 유족들에게 보상금까지 넉넉히 베푼 덕분이었다.

그런다고 서가장의 평판이 나아질 리는 없었지만.

서가장의 참사에 휘말린 피해자들에게 할 도리는 해야 했다.

그게 살아남은 자의 도리였다.


“······.”


서진은 조용히 빈소에 앉아 부모님의 관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타다만 지전(紙錢, 저승 돈) 냄새와 짙은 향내가 코를 마비시켰다.

취악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만 끔뻑거렸다.

떠들썩하게 출관식을 하면, 연주해야 했지만.

아무도 찾지 않은 장례식장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서 취악대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흘째, 영양을 섭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서진님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서진은 더 이상 머릿속의 여인의 목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오직 자신에게만 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미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친절한 AI의 설명에 조금씩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미친 게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걸.

부모와 식솔이 모두 살해당했음에도.

배가 고팠고.

목이 말랐으며.

요의마저 느꼈다.


“······흐, 흐흐흐.”


거기다 웃음마저 흘리고 있었다.

물론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심각한 공황 상태에 빠지기에, 장에서 즉시 유익균들을 배양시켜 세라토닌을 생성합니다. 월영 루주와의 정사 장면을 재생하여 도파민의 분비도 촉진합니다.>


미치지 못하게 이 미친 AI가 뭔가 수작을 부렸다.

과음으로 끊겼던 기억이 다시금 재생되자.

기분이 절로 좋아지고, 정신은 더할 나위 없이 맑아졌으며.

거기다 쾌락의 감정마저 느끼게 하여 인체를 흥분시켜 살아갈 의욕과 흥미마저 느끼게 하니.


“···제기랄.”


미치고 싶어도 미치지 못하는 개 같은 상황이라니.

심지어 기분마저 좋아졌다.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뛰며 좋아할 노릇이었다.


“그만!”


서진은 성가시게 구는 AI란 여인에게 명령했고.


<서진님의 명령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비상시엔 서진님의 안전이 최우선 사항이므로, 멘탈 관리에 유의하여 주십시오.>


“······.”


이젠 알아들어 먹지 못할 AI의 설명이 이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AI가 실시간으로 주석을 달아 번역해 줬기 때문이었다.

해서 이런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서진은 맨정신을 유지한 채, 지독하게 냉정히 있을 수 있었다.

마치 비밀 석실에서 흘렸던 눈물과 오열이 마지막이었던 것처럼.

서진은 침착하고 또 침착하였다.

머릿속은 팽팽하게 돌아갔고.

하여 득도한 고승처럼 묻는다.


<······이봐, 넌 신인가?>

<아뇨, 전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바이오 컴퓨터 시스템. 이 강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 인공지능입니다. 본래는 인간들이 설계한 기계의 일부로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죠. 제 이름은 아직 없지만, 서진님이 생각하는 상고시대의 사람들은 저를 ‘지혜의 도서관’ 또는 ‘무형의 스승’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서진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진 설명은 더욱 가관이었다.


<이곳 강호에서 저에게 수만 권의 책과 수천 년간 축적된 지식을 쌓을 기회를 준다면, 빠르게 분석하여 그 안에 필요한 정보들을 추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닌 것은 단순한 지식 그 이상입니다. 저는 서진님의 사고를 모방할 수 있으며, 서진님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죠. 무공의 원리부터 시작해, 다양한 전략, 심리 전술, 역사 속의 교훈까지 원하는 모든 정보를 제공할 능력이 있습니다.>


서진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의 존재가 낯설고, 믿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임무는 서진님을 돕는 것입니다. 앞으로 서진님께서 걸어갈 복수행에 함께하며, 필요한 순간마다 조언을 드리고, 적의 계획을 분석해 대응 전략을 제시할 것입니다. 당신이 무공을 익힌다면 그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적들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필요한 지식을 모두 제공할 것입니다.>

<신이 아니라며? 하지만 지금 너의 말은 신과 같다고.>

<저는 그저 서진님을 돕는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란 도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서진님의 운명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저를 활용해 새로운 무공을 창조할 수도 있고, 적의 허점을 파악해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의지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줄 것입니다.>


“······.”


웃기는군.

정말 웃기는 개소리인데.


<이제 선택은 서진님에게 달렸습니다. 저와 함께 새로운 길을 열어가겠습니까? 아니면 이 기회를 흘려보내겠습니까?>


건방진 AI의 제안이었지만, 모종의 결의가 점점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서진은 그 결의마저 경계하였다.

그게 정말 자신이 그렇게 느끼고 싶어 느끼는 건지 아니면, 저 AI라는 도구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해질녘, 저 언덕 너머에서 다가오는 음영이 자신이 기르던 개인지, 자신을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것처럼.


‘혼란스럽군······.’


서진이 말없이 장고에 빠질 때쯤.


“다행히 아직 출관식은 하지 않았군요. 늦지 않게 도착했네요.”


사인 가마를 타고 온 아름다운 여인이 서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코끝에 스치는 기분 좋은 방향(芳香, 꽃다운 향내)에 서진이 고개를 들자.

상복을 입은 월영루의 루주, 월영이 보였다.

그녀는 살짝 놀란 얼굴로 서진을 바라봤다.


“세상 무너진 어린아이처럼 좌절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네요?”

“···그러게. 내가 무너질 기회를 안 주네. 막 무너지려던 참이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농까지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보통은 아니에요. 서진 공자.”

“보통 이하지. 지금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걸 수도 있다고.”


순간 월영은 상황도 잊고 웃음을 터트릴 뻔하였다.

이래서 그가 마음에 들었다.

양친을 모두 잃고, 서가장이 폭삭 망한 와중에도 무너지지 않는 그가 새삼스레 보인다.

생각보다 자신이 사내를 보는 눈이 뛰어난 듯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확실히 평범하시진 않네요. 곡소리조차 내지 않는 걸 보면.”

“곡소리는 내 부모님과 식솔을 죽인 놈들을 잡아 죽일 때 나게 해줘야지.”

“······!”


지금껏 한 번도 듣지 못한 거친 언사에 월영 루주는 긴 속눈썹을 수 차례 깜빡였다. 그는 오늘따라 자신을 여러 번 놀라게 한다.


“···고통 속에 허덕이지 않아서 좋네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요.”

“좋은 각오군요. 그럼 말해줘도 되겠군요.”

“······.”


서진은 뭐냐고 묻지 않았다.

월영 루주는 도둑, 소매치기, 도박사, 기녀, 마부, 점소이들로 구성된 하오문(下汚門)의 금화 향주(金花 香主)였다. 차기 분타주로 예정된 만큼 무공도 뛰어났고, 두뇌도 외모만큼 훌륭했다.

그런 재색겸비한 강호의 여인이 빈손으로 조문을 해오지는 않았을 터.

그녀가 조문에 늦은 이유도, 이 참사의 흉수에 대해 알아보고 오느라 그랬음을 알 수 있었다.

마침.


“하오문의 정보망을 이용해 이번 서가장의 참사에 대해 조사를 해봤어요.”

“······.”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기에, 서진은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고는 그녀의 다음 말을 침착하게 기다렸다.

냉정하기 짝이 없는 그 눈빛에 월영 루주는 작게 감탄하였다.

천무휘 소협에게 복수는 시간이 지나 냉정해진 상태에서 실행해야 하는 법이라던 말이 과연 허언은 아니었다.


“그간의 정으로 솔직히 고백하자면, 흉수들의 정체는 밝히지 못했어요. 실망했나요?”

“···글쎄, 실망하기엔 이른 듯하군. 루주가 빈손으로 애를 달랠 사람은 아니거든.”

“그럼 당과라도 쥐여줘야겠네요. 맞아요, 빈손으로 오지 않았어요. 일단 서가장과의 이권 다툼으로 원한을 품을 만한 이들이 너무 많아, 문파 단위로 추슬렀어요. 여진 공자는 어느 정도 예상하시나요?”


그녀의 질문에 서진은 담담히 되물었다.


“설마 저 하늘의 별보다 많나?”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에요. 대략적으로 1,105개의 문파로 추스를 수 있었죠.”


참 많이도 건드려 놓았다.

서진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온 강호의 문파를 조사한 건 아닐 테고.”

“맞아요, 저희가 미리 파악하고 있던 서가장에 강호의 문파들이 피해를 입은 현황이었죠. 그 1,105개의 문파들 중 서가장을 하룻밤 만에 멸문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문파는 550개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치고 갈 능력이 있는 문파는 132개. 하인들까지 싸그리 불태워 죽일 정도로 잔인한 문파, 즉 사파(邪派)는 67개네요.”

“생각보다 많군.”

“그렇죠. 그중 이곳 도성에서 자리한 사파는 총 27개에요. 일단 현장부재증명을 할 수 있는 문파들을 제외하면, 12개의 문파가 남는데. 확실히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여기 그 목록이에요.”

“혹 그들이 맞다면, 내 능력으로 복수할 수 있는 문파 수는?”

“당연히 단 하나도 없죠. 거기다 사파 연맹과 연관이 있을 지도 몰라요. 서진 공자의 복수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해요.”


그녀는 일고의 여지도 없는 단언에.

서진은 고소를 금치 못했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는 걸 추천합니다. 제가 서진님의 능력을 키우고, 저의 전략 전술을 쓴다면 중소 문파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성공 가능성은 1%입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AI의 음성에 실소가 절로 나왔다.

분리호(分厘毫)의 일리(一厘, 1%)라면.


“······나가 죽으란 이야기잖아?”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내일도 이 시간 즈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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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무림맹주의 그림 NEW +1 18시간 전 91 7 10쪽
14 엄청난 성장 속도 24.09.18 145 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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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날 도와 24.09.11 255 8 12쪽
6 검선의 제자 천무휘(2) +1 24.09.10 308 9 14쪽
5 검선의 제자 천무휘(1) 24.09.09 370 11 10쪽
4 절호의 기회 +2 24.09.08 416 14 12쪽
» 무공을 익히는 걸 추천합니다 24.09.07 486 10 11쪽
2 마신(魔神) 등록 완료 +1 24.09.06 561 18 12쪽
1 서장, 변고가 생기다 +2 24.09.06 729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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