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 말단은 마신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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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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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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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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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호의 기회

DUMMY

2



지레 찔렸는지, 월영 루주가 서진의 말을 정정해줬다.


“설마요. 서진 공자가 죽길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에요. 단지 알아만 두라는 거죠. 사실 한밤중에 벌어진 일이라 목격자도 거의 없는 상황이에요.”

“봤어도 못 봤다고 했겠지.”

“물론 그럴 수도 있죠. 게다가 제가 추린 목록에 있는 사파들이 했다는 증거는 없는 상황이에요. 심증만 있을 뿐이죠.”

“심증이라도 상관없어. 파헤치다 보면, 뭔가라도 나오겠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될 거예요. 아시잖아요, 사파는 수틀리면 묻어버리는 곳이에요. 정사지간(正邪之間)인 우리와 달리, 사람 죽이는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죠.”

“알아.”

“알면 여기서 멈추는 걸, 솔직히 권해드려요. 서진 공자, 무공 모르잖아요? 아니, 익힐 수 없다고 해야겠죠.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고요.”


이미 서진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그녀였다.

하단전이 존재하지 않는 천형이라는 것까지도.

그 아비의 아비부터 쭉 이어져 내려오던 하늘이 내린 형벌.

강호에서 무공을 익히지 못한 가문이 지금껏 살아남은 것만도 정말 대단한 기사(奇事)였고, 엄청난 수완 능력이었다.

결국엔, 원한을 사 멸문지화를 당하였지만.


“그런 나의 치부까지 알고 있다니. 나에 관한 관심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요?”

“서진 공자만 알고 있었던 치부였던가요? 강호에서 서가장의 천형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요.”


알지.

강호의 모두가 알지.

그래서 사람들은 다들 대놓고 서가장을 욕할 수 있던 거였다. 돈벌레 가문이라고 무시하면서.

재물이 있으면 그걸 지킬 힘이 있어야 했지만.

서가장은 재물만 있지, 힘은 없었다.

물론 고용된 용객(傭客)들은 있었다. 서중영이 빈객(賓客, 귀한 손님)으로 모시며 대접했지만 그들의 무용함은 이번 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들의 시신은 채 절반이 되지 않았다.

나머진 도주할 정도로 누구도 서가장에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가.”

“뭐가요?”

“도주한 빈객 아니, 용객들을 찾으면 심증이 증거로 굳어질 것 같아서.”

“그들을 현상수배 할 건가요? 관병들론 잡기 어려울 텐데요.”

“현상금을 쫓는 강호인들을 고용하면 되지 않을까?”

“과연 서가장의 일에 목숨 걸겠다고 나설까요?”

“보통은 돈이라면, 다 되겠지만. 서가장의 일엔 나서지 않을 공산이 크지.”

“판단력은 여전히 살아있어서 다행이네요. 아무리 돈이 좋아도, 서가장의 일을 돕게 되면 뭇 강호인들의 지탄을 받게 될 거예요. 이번 참사는 강호의 모두가 방관자이자, 묵인하는 모양새에요. 누구 하나 나서주지 않을 거란 뜻이죠.”

“당신조차도?”

“네, 하오문의 윗선에서도 명령이 내려왔어요. 서가장의 참사에 대해 더 이상 파지 말라고.”

“······!”


한마디로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단 뜻이었다.

절망감에 손발이 절로 떨린다.

그야말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을 절실히 맛보는 중인 서진이었지만.


<공황 상태가 다시 악화 되고 있습니다.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재흡수를 차단하여 농도를 높입니다. 아드레날린 수용체를 차단하여, 심박수와 혈압을 낮춥니다.>


오히려 헛웃음이 나왔다.


“놀랍네요,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분통을 터트리기보다 웃으시다니요.”

“······.”


망할 AI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었기에.


“···월영 루주에게 고마워해야 할 거 같아서.”

“뭐가요?”

“하오문에서 따로 지침이 내려올 정도면, 상관에게 밉보일 각오를 하고 내게 알려준 것 아니오?”

“조의금이라고 생각해줘요. 그래도 우리 월영루의 가장 큰 귀빈이었으니까요.”

“진상은 아니고?”

“그럴 리가요.”


월영은 피식 웃고는 그녀가 조사한 명부를 넘겨줬다.

서진은 그 명부를 받아 들었다.

척살부(刺殺簿)가 될지, 제 목을 치는 자살부(自殺斧)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찾아내고 만다.


“행운을 빌게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월영은 처음 봤을 때의 차가운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서진은 그녀의 처지를 이해했다.


스윽.

떠나려던 월영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반짝이는 눈물 모양의 보석은 그가 준 금강석이었다.


“······.”

“도로 반납할게요. 서진 공자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테니까요.”

“···글쎄, 누구 건지 모르겠군. 난 한 번 내 손을 떠난 물건은 돌아보지 않는 주의라.”

“······!”


월영 루주의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가 말한 게 물건만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꾸욱.

도로 손을 거둔 월영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리곤 서진이 볼 새라 신형을 돌려 사인 가마에 올라탔다.


“······.”

“······.”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마주 봤다.


“···언제든 술 생각이 나면 월영루에 들르세요.”


하오문에 밉보일 각오를 한 그녀의 말에.

서진은 피식 웃었다.


“···삼 년 안에 술을 입에 대면 사람들이 아마 후레자식이라고 날 욕하겠지. 이젠 배가 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고.”


<거짓말입니다. 서진님은 사흘 내내 드신 게 없습니다.>

<시끄러.>


“알겠어요. 이 금강석 값으로 조언 하나 더 해드릴게요.”

“경청하지.”

“몸을 의탁하세요. 어디든 이름난 세가나 강호에서 꽤나 힘 있는 문파에 막대한 재물을 기부금으로 내면 받아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내 목숨이 위험하다는 뜻이군.”

“그래요, 흉수가 누군진 몰라도. 만약 제가 가문의 주춧돌마저 남기지 않고 모조리 불살라버린 흉수라면. 화근은 절대 남기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좋지. 찾아가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까.”

“······!”


서진의 확고한 의지에 월영 루주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떠나갔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그러지.”


꽈악.

서진은 씁쓸한 미소를 베어 물고는, 척살부를 움켜쥐었다.

누구 하나 서가장의 참사를 추모해주는 이도, 안타까워하는 이도 없었다.

다들 인과응보라고,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말했다.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간다고.

하늘이 서가장에 천벌을 내렸다고.

통쾌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한데도 평소 그렇게 제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며 뇌물을 받았던 탐관오리들은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았다.

누구 하나 이번 일을 조사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그저 쉬쉬했다.

대체 흉수가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기에.

강호의 무림맹에서조차도 진상 조사를 나오지 않는 걸까?


<그간 서진님의 기억을 통해 수집한 정보와 현 상황, 타인과의 대화 내용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서가장은 극악무도한 짓도 서슴지 않는 돈에 미친 가문으로 보이며, 강호의 공적에 준하는 위치로 사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곳 강호에서 태산북두를 자처하는 무림맹의 적극적인 개입은 당연히 없을 거라는 판단이 내려집니다. 그간 서가장을 경멸해 접점 자체를 아예 갖지를 않았으니까요.>


사실로 사람을 두들겨 패는 AI에 서진은 실소를 흘렸다.


“잘 알지. 우린 돈밖에 모르는 천박하고, 형편없는 쓰레기 집안으로 불렸으니까.”


<재활용도 안 되는 폐기 처분 할 정도의 쓰레기로 이해하겠습니다.>


“······.”


이젠 부관참시(剖棺斬屍, 죽은 시체를 꺼내 목을 베어 냄)도 서슴지 않는 AI였다.

아까의 각오가 무색하게 술 생각이 간절히 나는 밤이었다.


저벅, 저벅.

한데 때아닌, 늦은 밤에 조문객이 찾아왔다.

서진조차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익숙한 외양의 미청년이었기 때문이었다.


“흥, 꼴 좋군. 정승 집 개가 죽어도 찾아오는 이가 구름 같다던데. 개만도 못한 집안답게. 사람 하나 찾아오질 않다니 말이야.”


무림맹주인 검선의 제자 중 하나인 천무휘였다.

새하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마신 그는 술병마저 들고 있었는데.

맨정신으로 여기 오기가 어려웠나 보다.

해서.


“······방금 월영루의 루주가 왔다 가긴 했는데. 천무휘 형도 왔으니. 사람이 둘이나 찾아왔군. 그것도 강호에서 재색을 겸비한 기재들로.”


서진의 반박에 천무휘가 잘생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난 조문을 표하러 온 게 아니다! 그리고 천 형이라니? 감히 누구를 친구로 여기는 거냐!”

“그럼, 화풀이라도 하러 온 거요?”

“그래! 아주 잘 죽었다고 비웃으러 왔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고 얼마나 잘 먹고 잘사나 했는데, 이렇게 가문이 풍비박산이 났으니, 얼마나 통쾌하겠느냐? 아하하하하!”

“······.”


그러면서 술병을 연신 들이키는데.

조금도 통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비애감에 젖어 보일 뿐.


“···그럼 짧게 부탁하지. 오늘은 좀 너무 많이 고돼서.”

“······.”


천무휘는 술을 꿀꺽꿀꺽 마시더니, 흐린 눈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의 눈빛은 조금도 주눅 들어 아니, 죽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모종의 결의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게 무슨 결의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천무휘였다.

복수겠지.


“···지 주제도 모르는군.”

“뭐?”


천무휘가 소매로 입가를 신경질적으로 비볐다.


“네까짓 게 복수는 가당키나 하느냐?”

“그럼 머저리 같은 천무휘 형처럼 가만히 손이나 놓고 있으라고?”


쨍그랑!

술병을 던져 깨트린 천무휘가 살벌한 눈빛으로 말했다.


“뚫린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뚫린 입이라서 말은 바로 해야지. 제 부모 복수는 자신이 해야 하는 법이고!”


덥석!

서진의 멱살을 틀어쥔 천무휘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한다.


“무공도 익히지 못하는 반푼이 주제에, 대체 뭘 믿고 이렇게 까불지? 오늘 줄초상 치르게 해줘?”

“믿긴 뭘 믿어, 후지게. 그냥 너처럼 개 같이 구는 거지.”

“하!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온 놈이었네. 만약 네놈이 무공 한 자락이라도 익혔다면, 당장 피떡으로 만들어줬을 것이다.”

“그래? 조만간 그 뜻을 이루겠군. 나 무공 익힐 거거든.”

“네까짓 게, 무슨 수로?”


천무휘는 세상에 다시 없을 재미없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썩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가문의 비밀이라 알려줄 순 없고. 설령 뒤지더라도 무공을 익혀서 복수는 해야지. 그게 자식 된 도리 아니겠느냐?”

“······!”


한마디 한마디가 촌철살인처럼 비수가 아닌 게 없었다.

천무휘는 일그러진 얼굴로 서진의 멱살을 더욱 거세게 틀어쥐었다.


“······너, 그러다 정말 죽는다.”

“왜 뭐라도 알고 있느냐? 그래서 꼴도 보기 싫은 예까지 찾아왔고?”


파앗!

천무휘는 대답 대신 서진을 거칠게 밀쳤다.


우당탕탕!

서진은 꼴사납게 넘어지다 못해, 바닥을 사정없이 굴렀다.

그 정도로 천무휘가 가진 힘은 괴력 그 자체였다.

조문객들을 위해 차려놓은 음식 상들과 함께 와장창! 한데 뒤섞인 서진이었다.

천무휘는 음식들로 엉망이 된 서진을 보며 경고했다.


“일찍 죽고 싶다면, 말리진 않으마. 어차피 부모 말도 안 듣던 개망나니인 네놈이 사람 말을 들을 리는 없을 테니까.”

“······.”


제대로 긁힌 서진.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는 상복에 묻은 음식들을 털어냈다.


“···그래. 해서 나도 무공을 좀 알아야겠다. 대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익힐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뭐?”

“너도 마침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잖아?”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왜 싫은가? 잘 생각해 봐. 네가 못 한 복수를 이룰, 네 철천지원수인 서가장의 대를 끊을 절호의 기회잖아.”

“······!”

“이 계집애 같은 자식아!”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엔 끝까지 갈 수 있도록,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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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날 도와 24.09.11 255 8 12쪽
6 검선의 제자 천무휘(2) +1 24.09.10 308 9 14쪽
5 검선의 제자 천무휘(1) 24.09.09 370 11 10쪽
» 절호의 기회 +2 24.09.08 416 14 12쪽
3 무공을 익히는 걸 추천합니다 24.09.07 485 10 11쪽
2 마신(魔神) 등록 완료 +1 24.09.06 561 18 12쪽
1 서장, 변고가 생기다 +2 24.09.06 729 1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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