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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夜月香
작품등록일 :
2016.05.31 21:37
최근연재일 :
2016.06.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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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0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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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의도된 정사(情事) 3

DUMMY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공주, 기별도 없이 어인일로 찾아오셨소? ”


보고 싶은 마음이 속에 가득해 의논할 사안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달려온 자혜공주다. 비록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이긴 했으나 좀 더 자상하고 따듯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유운의 메마른 목소리였다.


‘ 왜이러시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여서 그런가? ’


표정 없는 유운의 태도에 서운한 생각이 가슴속에 가득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내색은 하지 못하고 자꾸만 화빙아를 바라보며 말을 머뭇거렸다.


“ 공주, 화문주도 이제 우리 가족이나 다름없으니 마음 놓고 말씀을 하셔도 되오. ”


가족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저 화빙아라는 여인 때문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듯 냉정해 졌는가? 서운함 마음이 자혜공주의 가슴을 짓눌렀으나 그렇다고 여기를 찾아온 목적을 밝히지 않을 수는 없었다.


“ 오라버니, 서문대인이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

“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합니까? ”


지금까지 서문인걸과의 회합 장소에는 유운이 함께 있었다. 그러니 공주에게 직접 듣지 않아도 짐작할만한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무슨 이유인가 되묻었다. 자혜공주는 유운의 달라진 태도를 의아해 하며 내용을 전했다.


“ 자세한 언급은 않고 다만 조평환에 관해 의논할 일이 있다고만 했습니다. ”

“ 그래요? ”

“ 아참, 서문대인 그 사람. 전과는 달리 그냥 만나고자 청하는 공손한 연락이 아니라 저에게 명령하듯 빨리 만날 장소를 정하라 재촉하는 말이었습니다. ”


순간 유운의 눈에 광채가 일었다.


“ 그건, 전날 그가 찻잔 속에 뿌렸던 망아미혼독(忘我迷魂毒)에 우리가 분명히 중독이 되었다 믿는 때문인가? 아니오, 아마 그렇진 않을 거요. 서문 그 어른, 모든 일을 그리 쉽게 판단을 할 인물은 아니오. 필시 말을 전해놓고 공주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을 거외다. ”

“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유운의 말에 자혜공주가 초조한 마음으로 대응책을 물었다.


“ 공주, 내일 신시(申時)에 비연원의 운향원(雲香院)에서 기다린 다고 전하오. 소생도 그 자리에 함께 하겠소이다. ”


늘 찾아드는 손객들 때문에 번잡한 비연원 내에서도 천궁의 가족들만 그곳에 들어 밀담을 나누는 한적한 장소인 선원의 밀실 운향원, 그 은밀한 장소에 서문인걸을 불러들여 그의 속내를 살펴볼 요량이었다.


“ 그리고 학련누님, 내일 손님을 맞을 준비를 단단히 해 두세요. ”

“ 예, 주군! ”


화빙아는 도무지 무슨 말들을 나누고 있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대화에 끼어들 수는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공주의 일행이 찾아오기 전, 분명 이 공자가 자신에게 부탁할 말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기회를 기다리며 듣고만 있던 화빙아가 이제 그들의 대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유운에게 물었다.


“ 공자님, 조금 전에 저에게 부탁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


그러나 유운은 어떤 생각에 잠겨있는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멍한 표정으로 천정만 올려다보았다.


‘ 이상하다. 오늘따라 오라버니의 태도가 너무도 냉정하다. 어떤 사소한 일이 생기더라도 오라버니와 의논을 하고자 했고, 오늘의 일은 보다 중요한 사항이라 여겨 급히 달려왔는데···. ’


유운의 침묵에 오히려 자혜공주가 불안한 마음이 드는지 안절부절 했다. 학련도 유운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낀 것 같았다.


“ 주군,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습니까? ”


자상함과 부드러움을 지녀 아랫사람조차 형제처럼 여기던 유운이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일 만큼 달라진 오늘의 태도! 이상하기만 했다. 더욱이 자혜공주에게는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 순간 유운은 나름대로 깊은 고뇌에 빠져있었다.


‘ 이제 그들의 심계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 그러나 그토록 다짐한 할아버지의 유지를 지키고자 한다면 자혜공주와의 관계부터 우선 정리를 해야 한다. 나중에 공주가 우연히 알게 된다면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상대가 발호를 하려 하는 지금, 마침 하오문주까지 자리하고 있는 오늘이 기회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더욱 공고히 다져 놓아야 할 때다! ’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유운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공주, 화문주 그리고 천궁의 가족들. 나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께 지난날을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까 하오. ”


생각치도 않은 유운의 진중(鎭重)한 태도에 모두 긴장을 하며 귀를 기울였다.


“ 지난날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공주께 먼저 한마디만 묻겠소이다. 공주께서 이렇듯 황궁(皇宮)을 위해 열의를 다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자혜공주가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둔 생각을 솔직히 말해도 될까 망설였다. 헌데, 유우의 표정이 너무나 진중해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 예, 오라버니. 황실과 조정이 문란해지면 죄 없는 백성들이 고통 받고 피폐(疲弊)해 집니다. 지금 부패에 찌든 이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닙니다. 위로는 황제의 어리석은 생각을 바로잡고 아래로는 사리사욕에 젖어 부정이 만연한 조정을 혁신해 국가를 튼튼히 하고 백성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

“ 공주의 마음이 진정 그러하오? 혹시 힘을 잃은 황실의 권력을 되찾기 위한 방편으로 그런 생각을 가진 건 아니오? ”

“ 이 자혜를 그런 사람으로 보셨어요? 소녀는 그처럼 영악하지는 못합니다. ”

“ 그래요? 그렇다면 내 안심하고 말하지요. ”


유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문을 열었다.


“ 전왕조의 명운이 다하여 새 왕조가 세워질 기운이 싹트는 그시기에 어느 가문을 찾아온 장군이 한분 계셨지요. ”

“ ······? ”

“ 그 당시, 전왕조의 재상이었던 그 노인은 자신의 사가로 찾아온 장군을 맞이해 밀담을 나누었습니다. ”


지금의 왕조가 건국 될 혼란했던 당시의 이야기가 유운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자혜공주뿐 아니라 구와 학련 역시 저절로 긴장의 빛이 떠오르며 다음의 말을 기다렸다.


“ 노인은 그 당시 조야 모두의 신망과 존경을 받던 덕망 있는 재상이었고, 노인을 찾아온 장군은 왕조의 권위를 지키던 용장이었지요. 그 장군은, 이제는 더 이상 부패해 어지러워져 곤궁에 처한 백성들을 보다 못해 나라를 뒤엎을 궐기를 결심하고 노인에게 동참을 권유하기 위해 찾아왔었습니다. ”


지난 역사가 하나하나 드러나자 모두 숨소리 하나 없이 유운을 주시하고 있었다.


“ 노인은 장군에게 말했습니다. 장군의 명분에는 동조를 하나 자신은 조정의 녹을 받는 신하, 아무리 없어져야 할 왕조라고는 하나 그 많은 신료 중 정권과 운명을 함께하는 신하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장군은 노인에게 동참을 하지 않으면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거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노인은 장군의 칼 아래 기꺼이 목을 내어주었습니다. 장군은 눈물을 흘리며 노인의 목숨을 거두었지요. 그리고 거택의 모든 건물에 불을 질러 흔적도 남김없이 모두 태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장군이 현왕조를 세운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전왕조의 존경 받던 재상인 그 노인은 바로 나의 할아버지인 상관후(上官侯) 어른입니다. 말없이 목숨을 버린 그 노인이 말입니다. ”


그토록 밝히지 말라 당부하던 자신의 근본까지 드러내며 말하는 유운의 표정은 침통했다. 그 순간 자혜공주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상관, 상관후? 들은 적이 있다. 그럼 오라버니의 본명이 상관유운이었던가? 그 때문이었구나. 당금 왕조를 세운 인물의 칼에 맞아 목숨을 잃은 어른은 상관오라버니의 할아버지, 난 그 황실의 공주.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불공대천의 원수가 아닌가? ’


그러나 유운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공주를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 그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모두 소멸될 때까지 지켜본 아이가 있었지요. 아이는 그 광경을 마음속 깊이 묻어두고, 불타 황량하게 변한 보금자리를 뒤로 하고는 천애고아로 떠돌았지요. 그 아이가 소생이올시다. ”


그때를 생각하는가, 눈동자에 물기가 촉촉이 담긴 유운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린 몸으로 천하를 유랑하던 아이가 이렇듯 지난날을 딛고 당당한 장부가 되어 눈앞에 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고개를 숙인 자혜공주의 입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유운은 그런 공주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 그래서 먼저 공주의 마음을 물어보았던 것이오. 할아버지께서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 당부를 하셨지요. 그러나 신왕조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변하거나 사리사욕 때문에 국정을 문란케 만들시, 그 폐해를 바로잡지 못하고 방관하는 역사의 죄인은 되지 말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


유운의 손에 이끌려 말없이 눈물만 흘리던 지혜공주가 입술을 꼭 깨물며 단호히 말했다.


“ 오라버니, 설사 황실의 생각이 소녀와 다르다면 저는 단연코 황실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이 나라 백성을 위해 헌신할 겁니다. 소녀도 돌아가신 그 어른의 영전에 맹세를 하겠습니다. ”

“ 공주, 공주의 마음을 잘 아오. 그 마음을 알기에 소생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 거외다. 할아버님께선 결코 나의 근본을 밝히지 말라 했으나, 만약 시간이 지나 무심코 공주께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듣게 되었다면 누군가가 우리들을 이간시켜 불필요한 오해가 싹틀 수도 있겠기에, 오랜 고민 끝에 내입으로 직접 밝힌 것이오. ”


명분이라 말하며 신왕조를 일으킨 것도 유운에게는 허울뿐인 것을! 따지고 보면 당금 왕조는 가문을 몰살 시킨, 그 깊은 한(恨)을 남겨준 원수가 아니던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 깊이 새겨온 공주에 대한 연모, 그리고 다시 만난 공주와 나눈 애련한 연정, 공주와 얼굴을 마주 할 때마다 그 연모와 한(恨) 사이에서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던 유운이었다.

그 번민 중에 떠오른 한마디. '백성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주었으니 아무도 원망을 하지 말라.' 던 할아버지의 유언 한마디가 홀연 유운의 평정심을 일깨워 주었다. 하여 유운은 자혜공주의 마음을 먼저 물어 그녀의 결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유운의 긴 이야기가 끝난 실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 적막을 깨뜨린 사람은 다름 아닌 하오문주 화빙아였다.


“ 공자께서 들려주신 이야기, 모두가 충심으로 마음 깊이 새길 말이었습니다. 저도, 하오문이 강호에 온갖 못된 짓은 모두 저지른다는 추문(醜聞)을 불식시키고 조정의 박해를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문주의 직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니 저와 하오문의 앞길도 모두 공자와 함께 할 것이니 공자께서 이끌어 주세요. ”


모두들 긴장한 탓인가, 적막이 흐르는 답답한 분위기였다. 그러한 낌새를 감지한 듯 유운이 짐짓 밝은 목소리를 내며 껄껄 웃었다.


“ 하하하···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확고해 졌으니 이제는 우리의 결속(結束)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할 것이오. 마침 모두가 모인 이 자리를 빌려 화문주께 한 가지 부탁을 드려야겠습니다. ”

“ 예, 공자님.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저와 하오문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던 도울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께서 서두에 언뜻 천궁의 가족들이라 말하셨습니다. 혹시 천궁이라면 강호의 풍문 그 천궁이 분명합니까? ”

“ 예, 문주. 문주께서 생각하고 있는 그 천궁이 맞습니다. 그리고 여기 구와 학련은 천궁의 좌우시자입니다. 물론 화문주역시 천궁의 가족이나 다름없다 여겨 부탁을 드리려합니다. ”


화빙아에게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 공자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당당함이나 몸에 지니고 있는 그 위엄이 범상한 인물은 아니리라 짐작은 했으나 그가 전설에나 전해오는 천궁의 지존이라니, 강호 최고의 지위를 지닌 인물이 아닌가?


“ 예, 공자. 어서 하문을 하십시오. 저와 하오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


갑자기 유운을 대하는 화빙아의 태도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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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第 11 章 혼란의 시작 1 16.06.01 6,044 46 16쪽
47 자혜궁 연정 2 16.06.01 6,004 43 14쪽
46 第 10 章 자혜궁 연정 1 16.06.01 6,049 45 12쪽
45 치밀한 계략 5 16.06.01 5,821 41 12쪽
44 치밀한 계략 4 +1 16.06.01 5,952 43 14쪽
43 치밀한 계략 3 16.06.01 5,950 44 13쪽
42 치밀한 계략 2 16.06.01 6,072 44 11쪽
41 第 9 章 치밀한 계략 1 16.06.01 6,260 44 14쪽
40 의도된 정사(情事) 5 16.06.01 6,337 43 13쪽
39 의도된 정사(情事) 4 16.06.01 6,432 39 17쪽
» 의도된 정사(情事) 3 16.06.01 6,432 46 13쪽
37 의도된 정사(情事) 2 16.06.01 6,557 50 10쪽
36 (2券) 第 8 章 의도된 정사(情事) 1 16.06.01 6,884 46 12쪽
35 보이지 않는 손 5 16.06.01 6,370 47 12쪽
34 보이지 않는 손 4 16.06.01 6,783 49 11쪽
33 第 7 章 보이지 않는 손 3 16.06.01 7,270 52 11쪽
32 보이지 않는 손 2 +1 16.06.01 6,796 58 14쪽
31 第 7 章 보이지 않는 손 1 16.06.01 7,044 51 11쪽
30 싱그러운 육체 2 16.06.01 7,847 49 19쪽
29 第 6 章 싱그러운 육체 1 16.06.01 8,040 52 14쪽
28 서문발호(西門跋扈) 5 +2 16.06.01 7,707 51 12쪽
27 서문발호(西門跋扈) 4 +1 16.06.01 7,740 54 10쪽
26 서문발호(西門跋扈) 3 16.06.01 7,521 57 14쪽
25 서문발호(西門跋扈) 2 16.06.01 7,593 54 12쪽
24 第 5 章 서문발호(西門跋扈) 1 +1 16.06.01 7,996 52 14쪽
23 음모의 단초 4 16.06.01 8,173 53 16쪽
22 음모의 단초 3 16.06.01 8,045 59 13쪽
21 음모의 단초 2 16.06.01 8,344 5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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