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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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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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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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22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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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혼돈무제(混沌武帝) (14)

DUMMY

“프란츠는?”

쥬비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프란츠의 안부를 물었다. 한때 동료였으나 지금은 그녀를 해하려 든 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어찌 전해야 좋을까? 나는 수많은 수식어를 제쳐두고 그저 침묵을 지켰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그렇구나.”

쥬비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내게서 눈을 떼고 묵념을 하는 것처럼 바닥을 내려다본다. 착찹하겠지. 그다지 친교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프란츠는 분명 우리와 목숨을 함께한 전우였으니.

어설프게 위로하는 대신 나는 끝까지 침묵을 지키며 그녀를 안고 안전한 곳으로 달렸다. 차라리 잠이라도 들면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 그녀를 위해서, 나는 더욱 힘차게 경공을 펼쳤다.


마침 멀지않은 곳에 새로이 마법진을 구성하는 블로펜이 있기에, 나는 그들 주위에 쥬비를 내려다주고 다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적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궁극의 무위에 어울리는 절정의 경공을 전력으로 펼친 이상, 나를 가로막을 이는 없었다.

격전이 한창인지 제피온과 드래곤 슬레이어가 있던 곳에서는 마나가 요동치고 있었다. 빠져나올 때하고는 천지차이로 순식간에 성산 한가운데 도착하니, 사투를 벌이는 이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피온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숫자로 완전히 밀린 상황인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제피온에게는 마나 드레인이 있었고, 무엇보다 흡성대법이 있었다. 흡성대법에 당하는 순간 힘을 빼앗기고 제피온은 다시 힘을 회복하니 어지간해서는 접근조차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백전연마의 고수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제피온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감탄할 만한 사실이다.

“도군?”

생사가 오가는 격전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내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말이다. 소렌이 가장 먼저 내 존재를 알아채고 검을 멈춘다. 나는 그런 소렌을 침중한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대체.....”

볼마르그 공작이 흠칫 놀라며 나를 바라본다. 코앞에 있는 제피온을 무시하는 것처럼 내버려 두고는 말이다. 그만큼 내 변화를 잘 알아차렸다는 말이겠지.

“제임스 님은?”

드래곤 슬레이어들에게 다가가며 나는 물었다. 제임스는 벨스터 공왕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서 있었지만 더 이상 싸울 수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나는 쌕쌕 숨을 내쉬는 제임스의 팔목을 잡아서 기운을 흘려 넣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하하, 드디어 그렇게 되었구나 도군.”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키던 제피온이 씩 웃으며 조롱하는 투로 말을 던졌다. 그 말을 한 귀로 흘리고 나는 제임스에게 집중했다. 그러나 곧 나는 제임스의 팔을 놓았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고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임스, 당신은.....”

늙은 몸으로 세상의 법칙을 뒤흔드는 마법을 구사하던 그는 드래곤이 쓰러진 시점에 이미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은 말 그대로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였다. 제임스가 가늘게 눈을 뜨고 혀를 차며 억지로 호기를 부린다.

“그, 그렇게 보지 마라. 나는 후회하지 않으니.”

간신히 말을 꺼낸 그는 연신 미약한 기침을 토해낸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그에게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와 함께 미약하게 꺼져가던 제임스의 마력이 잠시나마 활력을 찾고 제임스의 몸을 휘감기 시작한다.

“이건....”

제임스가 한결 나은 목소리로 묻는다. 나는 그에게 포권을 쥐어 보이며 말했다.

“마력이든 내공이든 근원은 하나. 이걸 깨달았을 때 보여드리기로 했었죠. 약속은 지켰습니다.”

“하...”

제임스가 허탈한 듯, 그러나 기쁜 듯 웃는다. 천상 마법사다. 이런다고 수명이 늘지 않는다는 건 잘 알 터인데 고작 이치 하나를 알아냈다고 저리도 기뻐하다니.

“쓸데없는 짓은 끝났나?”

제피온이 그렇게 말함과 함께 암수를 날린다. 아니, 말 이전에 날린 격공장이군. 나는 그것을 가볍게 쳐내고는 대답했다.

“시간낭비해서 미안하군. 금방 처리해줬어야 하는데.”

여느 때와는 다른 내 태도가 그리도 우스웠을까? 제피온이 박장대소하더니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선다.

“웃기는구나. 네가 그 힘을 과연 얼마나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어린애가 칼을 쥔다 한들 나뭇가리를 쥔 검사를 이길 수는 없지. 하물며 그 어린애가 외팔이라면.”

“해보면 알겠지.”

그 말과 함께 제피온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그에 맞서 힘껏 검을 뻗어내 제피온의 목을 노렸다. 일격으로 목을 날려버릴 만한 강맹한 위력을 담은 일검이다.

“고작 그 정도냐?”

제피온의 움직임이 극히 현묘하게 변한다. 그리고 가뿐하게 강맹한 검격을 흘려낸다. 그리고 그 기세를 타고 오히려 역공을 가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수법에 당할 내가 아니다. 검을 흘리려는 순간 강맹한 기운이 한순간에 흩어지고 새로운 검이 그를 덮쳤다. 이에 제피온의 몸이 슬쩍 투명하게 변하고, 제피온은 재빨리 내게서 멀어졌다.

“제법이군.”

제피온의 경계심이 깊어진다. 내가 이 힘을 생각보다 원숙하게 다루는 게 놀라운 모양이다. 실제로 나는 과거보다 더욱 능숙하게 이 힘을 쓸 수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만.”

나는 검을 곧추세우고 중얼거렸다. 제피온의 눈이 조금 더 매서워진다. 그리고는 생사대적을 만난 것처럼 경계를 거듭하며 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프란츠는 어떻게 되었나?”

제피온이 난데없이 프란츠라는 이름을 들먹인다. 이에 나는 침묵을 지켰다. 쥬비하고는 조금 다른 이유로 말이다.

“죽은 모양이군. 한때 네 동료였던 자를 죽인 검으로, 이번에는 다른 이들을 지키려는 거냐?”

“제피온의 말을 무시해라!”

벨스터 공왕이 외쳤다. 그 외침이 아니더라도 내가 흔들릴 일은 없었지만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 제피온에게 신경을 기울였다.

“그래, 내가 프란츠를 죽였다. 하지만 네 말에는 두 가지 잘못된 점이 있다.”

제피온이 패도적인 기세로 쇄도해서 일장을 날린다. 과거 제후의 성을 무너트렸다는 극강의 장법. 파성마장이다. 원한다면 이걸 흘려버리는 건 일도 아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제피온에 대한 적의를 담아 파성마장을 받아쳤다.

“첫째.”

피륙과 검이 맞부딪치며 굉음이 인다. 파공음과 함께 제피온과 나를 중심으로 파문이 일어, 그것을 타고 먼지가 훅 퍼져나간다.

“프란츠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은 건 네놈이다. 그리고 둘째. 난 프란츠를 죽인 검으로 저들을 지키려는 게 아니다. 나는 저들을 지키기 위해 프란츠를 죽인 거다!”

압도적인 기세를 뿌리며 날아드는 파성마장을 모조리 쳐내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찰나의 순간 눈을 감자 수없이 많은 무공이 휘몰아치는 바다가 보인다. 그리고 나는 저 혼돈 속에서 한 가지 무공을 정립해서 선보였다.

“강룡압산(降龍壓山).”

산을 짓누르는 것처럼 묵직한 검이 제피온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낸다. 아니, 압도한다. 태산처럼 묵직한 검으로 앞세운 것만으로 제피온의 공격이 모조리 튕겨나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힘이....”

놀랍겠지. 파천마제라는 이름을 가진 이래로 이런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낀 적은 없었을 것이다. 제피온은 별 수 없이 공세를 거두고 무언가 또 다른 수를 쓰려 한다. 천의결로 그 절묘한 시기를 짚어내어, 나는 제피온이 수를 쓰기 직전에 검에 담긴 힘을 앞으로 쏘아 보냈다.

“창해경란(蒼海驚瀾).”

드넓은 바다를 뒤흔들만한 거력이 쏘아져 나간다. 파성마장에 비견되는 극강한 일격이 절묘한 시점에 터져 나오니 제피온은 이를 미처 막지 못하고 온몸으로 이것을 받아냈다.

“크아악!”

검격을 받아낸 가슴팍이 움푹 파인다. 호신강기 덕분에 꿰뚫리지는 않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 억지로 버틴 탓에 심각한 내상을 입었으니 말이다.

“크윽, 빌어먹을.... 여기서 죽으면 모든 게 엉망이 될 터. 유흥은 이만 하도록 하지.”

제피온이 피를 한차례 쏟아내고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중얼거린다. 그래, 엉망이 된다고? 아직도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다니 참 대단도 하군.

“그래서?”

차갑게 쏘아붙인 한마디에 제피온이 피범벅이 된 얼굴로 이를 갈며 손가락을 튕긴다.

“잡아볼 테면 잡아보란 말이다.”

제피온의 몸이 흐릿해진다.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대경실색해서 앞으로 달려온다. 제임스도 엉망이 된 몸으로 목청을 높여 소리를 지른다.

“도군! 제피온은 멀리 가지 못했다. 블링크는....”

제임스가 말을 잇지 못하고 기침을 연발한다. 하지만 제임스에게는 미안하게도 설명은 별로 필요치 않았다. 천의결로 한차례 고찰한 것만으로 나는 저 수법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으니까.

“도망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짓이다. 이젠 완전히 자존심을 버렸군. 파천마제가 도망이라는 수를 택할지는 몰랐기에 조금은 당황해서 뒤통수에 검을 날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 제피온은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과연 몸상태가 좋지 않은 모양이군. 절정의 무인답지 않은 형편없는 경공과 허접한 마법으로 도망치는 제피온을 향해, 나는 검을 겨누었다. 도월이라면 닿을만한 거리다. 그렇게 생각하며 힘은 모은 순간 느닷없이 하늘로부터 수십 발의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위험해!”

소렌이 비명을 지르듯 일갈하고 화살을 하나 쳐낸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대단하군. 그러나 소렌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미 화살비로부터 멀어진 뒤였다. 이젠 이 보법을 잠룡보라 부르는 것도 어색하군.

“대체 왜....”

무뚝뚝하던 볼마르그 공작마저 경악해서 화살이 날아온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치 먹구름이 시야를 가리는 것처럼,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우리를 뒤덮기 시작한다.

“엘프여! 왜 우리를 막아서는가?”

제임스가 목이 터져라 가래 끓는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제피온을 끝장낼 수 있는 시점이었기에 더욱 약이 오른 것 같다. 저러다가는 간신히 이은 생명이 또 줄겠군.

“설마 네놈들도 우리를 배신하는 건 아니겠지?”

벨스터 공왕이 치가 떨린다는 듯 잔뜩 분노하며 하늘을 향해 물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저들은 결코 배신한 게 아니다. 그저 모든 문제는 내게 있을 뿐.

“우리는 인간을 배신하지 않았다. 우리는 더 큰 악을 처단하기 위해 황제를 놓아준 것뿐이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나는 흥분하기 시작한 벨스터 공왕을 제지하고 앞으로 나섰다. 모든 건 인과에 따른 결과일 뿐, 이제야 해묵은 매듭을 풀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

“저들은 제게 볼일이 있는 겁니다.”

“도군, 그게 무슨 말이야?”

소렌이 반문하는 순간 엘프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말했다.

“그자는 오래 전 엘프를 참살했던 악적이다.”

“성녀가 죽은 날 말인가? 그건 말이 되지 않는군. 저 청년이 지금은 얼마나 강한 검사이든 그때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을 터. 어찌 엘프가 그런 이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말인가?”

한순간에 냉정을 되찾은 볼마르그 공작이 물었다. 그러나 엘프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너희 인간은 성녀가 그를 악이라 하였는데 어찌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냐?”

엘프는 군체로 이루어진 종족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지. 호비나가 혼돈을 느끼고 나를 악이라 한들 무엇 할까? 그날 호비나는 죽어버렸는데. 그리고 설령 호비나의 말을 들었다 한들, 같은 적을 둔 나를 적대할 리도 없다.

“젠장,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네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한 지 아는 거냐? 네놈들의 사사로운 원한이야 어쨌든 우리는 제피온을 죽였어야 한단 말이다!”

벨스터 공왕이 재차 흥분해서 언성을 높인다. 그와는 상반되는 엘프들은 차가운 눈을 잠시 벨스터 공왕 쪽으로 돌렸을 뿐 그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보여주지 않았다.

“흉적을 벌하라.”

이파리며 줄기가 고스란히 붙어있는 엘프들의 활에서, 마치 가지가 뻗어 나오듯 화살이 뻗어 나와 시위에 매겨진다. 이에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별 도리 없이 나를 둘러싸고 엘프들을 향해 무기를 뽑아들려 한다. 이에 엘프들이 차가운 목소리로 최후의 경고를 날린다.

“우리를 막지마라 인간.”

“질서를 해하는 자를 방관할 수는 없다.”

“그는 악이다.”

“우리를 막는다면 너희 또한 악이다.”

“전쟁이다.”

꽤 복잡한 생각을 꺼내는지 지금까지 계속 한 목소리로 말하던 엘프들이 중구난방으로 의사를 전해왔다. 그러나 드래곤 슬레이어들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는 엘프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아직 엠펠로니아가 건재한데 이런 식으로 상황이 엉망이 되어서는 안되겠지. 이제 상황을 정리할 때다.

“여러분.”

이 한마디에 드래곤 슬레이어 전원의 시선이 내게 몰린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몸을 돌려 엘프들을 뒤로 하고 씁쓸한 해명을 시작했다.

“저는 성녀 호비나가 악이라 칭했던 사람이고, 엘프들을 죽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내 편을 들지 마십시오. 지금은 엘프와 싸울 때가 아닙니다.”

“도군 뒤!”

소렌이 외침은 화살이 날아드는 소리에 완전히 파묻혀서 금세 사라졌다. 화살이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도달했을 때, 나는 문득 소렌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실소를 머금었다. 오랫동안 알았던 사람과 나누는 작별인사 치고는 꽤 멋대가리 없었으니까.

“하압!”

발을 구르고 몸을 돌린다. 그리고 검을 내뻗었다. 검에서 뻗어나간 무형의 기운이 수십의 화살을 단번에 흩어버린다. 엘프들이 다시 활시위를 재는 시간을 빌어, 나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이들에게 말했다.

“어차피 적이 될 수밖에 없다면, 내가 먼저 적으로서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게 멋대로 마무리를 짓고 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엘프들의 활시위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소렌이 내 검을 보고 무언가 깨달아 주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오히려 검을 집어넣고 가슴 속에 잠들어 있는 검의를 모조리 끄집어냈다. 검의가 한데 어우러지며, 또한 뒤섞이고 서로 충돌한다. 그 혼란을 한데 모아서 만든 궁극의 검의를, 나는 외쳤다. 그렇게 궁극의 검이 다시금 세상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천검(千劍).”

의념으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검이 사방을 빼곡히 메운다. 어떤 일에도 평정을 잃지 않을 것 같던 엘프들이 당황해서 주위를 메우기 시작한 천 자루의 검에 우왕좌왕한다.

“만쇄(萬碎).”

천 자루 검이 엘프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아직 하얀 부분이 많은 날개가 두 동강, 세 동강나서 뜨거운 피에 물들었다. 날개는 물론이고 사지며 내장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지옥도를 가로질러서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몇몇 엘프가 끈질기게 나를 막아서지만, 더욱 강력한 검의 폭풍에 휩쓸려 아예 먼지가 되어버린다.

“맙소사.”

“정말로 엘프를....”

드래곤 슬레이어들이 경악을 금지 못하는 것이 느껴진다. 제임스가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눈을 감고 있다. 벨스터 공왕이 기어코 무릎을 꿇고 궁극의 검을 바라보고 있다. 볼마르그 공작은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소렌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악적을 벌하라!”

수십의 엘프를 도륙한 건 어찌보면 실수에 가까웠다. 나를 아군이 아니라 적으로 인식하도록 그리한 것일 뿐, 결코 엘프에게 악감정이 있던 건 아니다.

“그래 좋다.”

갈팡질팡하는 이들과 날 죽이려 드는 엘프를 보는 순간 문득 짜증이 밀려왔다. 힘을 얻어도 영 되는 일이 없다. 이런 힘으로도 고작 사람 몇 구하는 게 전부라니. 그저 웃음만 나올 일이다. 하지만 나약한 생각 따위는 들지 않는다. 오히려 굳건한 의지에 불을 지필 뿐이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엘븐 포트리스에서 쏟아지는 엘프들을 바라보며, 나는 검을 굳게 말아 쥐었다. 내가 이 세상의 혼란을 일으키는 자라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걸로 끝나지는 않겠다. 나는 그 혼란마저 완전히 끝내버릴 것이다. 바로 이 힘으로.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어째 쓰는 편마다 마무리가 영 개운치 않은 것 같네요. 전개도 뻔하기 짝이없고요. 그래도 처음으로 이렇게 길게 글을 쓰는 거라 보람차다는 생각도 듭니다.


ps .요즘 분위기가 너무 뒤숭숭해서 올릴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올립니다.

이 자리를 통해 고인의 명복을 빌고, 또한 믿을 수 없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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