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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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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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2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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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북천(北天)의 망령(亡靈) (1)

DUMMY

나는 거대상단을 이끄는 상가(商家)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하루에 얼마나 큰 돈이 오고 가는지는 물론이고, 무엇으로 돈을 벌어들이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단편적으로 엿보는 그들의 저력을 보고 대충 위세를 가늠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내가 보아도 벽정문이 이끄는 벽상은 그리 작은 상단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변변찮은 실력만 있는 내게 굉장히 호화스러운 대우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천의검문의 소문주가 심상의 후계자에게 받았던 대우와 비견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심하령에게는 미안하게도 나는 딱 잘라서 이곳이 더 마음에 든다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심하령이 내게 딱히 못 해줘서가 아니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부족한 무공을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력에 맞지 않는 안목을 발휘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겠는가?”


그리 길지 않은 수염과 흰 도포가 휘날리는 가운데, 금정하가 목검을 내려트리며 가르침을 시작했다. 태평궁에서 열리는 태평비무회와, 일기당천과의 일전을 앞두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금정하와 비무를 치렀다. 무례를 무릅쓰고 비무를 청한 건 나였지만 금정하 역시 비무대회를 앞두고 내 실력을 다듬어 줄 요량이었는지 별말 없이 수락해 주었다.


“보법이 너무 속도에 치중해 있었군요.”


“그렇지. 때로는 느린 것이 좋을 때도 있는 법이라네. 빠름은 강함을 이기지 못하지만 느림은 강함을 제압할 수 있다고 하지.”


금정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정파 무공의 정수라 할 수 있었다. 실전을 통해 얻은 거친 성취는 그의 가르침에 힘입어 조금씩 다듬어졌다. 실전에만 치우쳐서 잊어버리고 있던 것까지 금정하를 통해 채워지는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대협.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하, 검기도 모르는 내가 무슨 도움을 주었을까?”


금정하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실제로 그는 아직 절정의 문턱도 밟지 못한 이다. 그렇지만 저만큼 기본공이 탄탄한 고수를 본 적이 드물었다. 절정에 이르지 못했기에 더욱 기본에 충실할 수 있었을까? 꾸준히 창을 연마하던 토리나가 떠오른다. 소렌처럼 말도 안 되는 천재성을 가진 이들보다는, 현실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이들이 더 부러웠다. 그리고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나보다는 자네가 출중한 까닭이야. 자네처럼 빨리 배우는 이는 드물지.”


금정하가 빙그레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내 바람을 알 리 없는 그는 아무래도 나를 천고의 기재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건 서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에 불과하다. 지금은 몰라도 어설픈 경험 이상을 요구하는 경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르면 절정의 문턱에서 나는 좌절하게 되겠지.


“절정이라....”


해가 저물어 수련을 마무리하고 인기척 하나 없는 화려한 방으로 돌아온 나는 새삼스레 품속에 갈무리해 두었던 단약을 꺼내서 만지작거렸다. 이미 한 번 썼던 물건이지만 다시금 경계심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도는 덜하다만 이건 혼돈이 준 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물건이다. 서역에서 배운 것이 더는 도움을 줄 수 없을 정도까지 성장한 다음. 그때도 나는 금정하나 토리나처럼 굳건하게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까? 아무 변화도 없는 자신을 원망하며 단약에 의존하고 수련을 등한시하지는 않을까? 하물며 빙룡이며 파천마제같은 문제를 앞둔 만큼, 유혹에 빠질 가능성은 너무 크고 깊었다.


“어렵군.”


이겨냈다 생각한 순간 다시 유혹은 찾아온다. 그리고 내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빌어먹을. 당장 닥칠 문제도 어쩔 수 없는 놈이 왜 또 먼 이야기를 들먹이는 걸까? 핑계를 들먹이려는 자신을 꾸짖고 나는 단약을 서둘러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태평궁으로 가게 될 내일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나는 태평궁에 도착했다. 아니, 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전보다는 비교적 느슨한 분위기의 관문을 지나, 벽상 일행과 더불어 다시 태평궁 깊은 곳의 비무장에 다다랐다.


“자네는 이제부터 홍산검객 금정하의 제자, 양요평이 되어 주게.”


네 개의 전각이 사방을 차지한 비무장의 윤곽이 보일때쯤에 벽정문이 조용히 일러 주었다. 그와 함께 금정하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벽정문에게 말했다.


“이보게 정문. 아무리 그래도 명백히 사문이 있는 소협에게 너무한 처사가 아닐까 싶네. 그보다는 벽상의 식객 정도가 어떠할까 싶네만.”


“나도 그러고 싶네만 그랬다가는 비무도 못해보고 내려올 걸세. 자네도 알지 않는가? 이 태평비무회에는 정도의 명숙이대거 참가할걸세. 그들이 자칫 잘못해서 이름없는 자에게 일검이라도 허용한다 생각해 보게. 그걸 생각해 보면 대결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야.”


온갖 암계와 배신이 판치는 사파 무림과는 달리, 정파 무림에서 명숙이라는 위치는 참으로 많은 것을 요구한다. 아니, 많지만 단 하나뿐인 요구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수많은 무림인이 본받을 만한 무인상이다. 오로지 강한 자만을 추앙하는 사파와는 확연히 다르지.

그렇기 때문에 명숙에게 비무란 양날의 검이다. 비무를 통해 출중한 무공과 올곧은 성품을 무수한 이들에게 내보일 수 있지만, 반대로 부족한 무공과 성품을 들킬 수도 있다. 더욱이 완전무결한 이상적인 무인상(像)을 강요받는 만큼, 작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공든 탑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이를테면 무명소졸에게 일검을 허용한다거나 하는 일 말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나 역시 그런 무인상을 강요받는 위치라 이런 작은 핑계 거리라도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아무 이름도 없는 자에게 상처를 입는다면 큰 흉이 되지만, 조그마한 이름이라도 가진 자에게 상처를 입는다면 그건 큰 흉이 아니라 무림의 홍복이 된다. 그렇기에 벽정문도 어렵사리 이런 말을 꺼낸 것이다.


“허나....”


“괜찮다니 다행이로군. 그럼 조금 서두르세. 늦었다가는 비무대에 엄청난 고수만 남을 테니 말이야. 하하하.”


요령 좋게 금정하의 걱정을 덮어 두고, 벽정문이 바삐 걸음을 옮겼다. 금정하에게 눈짓으로 다시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고 나는 벽정문의 뒤를 따랐다.


네 개의 전각을 기둥처럼 삼고 있는 비무장은 꽤 넓었다. 단순히 검공뿐만이 아니라 보법. 혹은 경공까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넓다. 절로 얼굴이 굳어간다.

실수였다. 이 정도 넓이라면 경공을 펼치면서 싸우는 것도 고려해서 수련해야 했다. 지금까지 검공에만 치우쳐 있던 것이 이토록 후회될 줄은 몰랐다. 검에 열중했던 만큼 후회가 점점 마음을 괴롭혀 온다.


“긴장되는 모양이군.”


금정하다 내 어깨를 두드려 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격려해주려는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심 부차적인 일로 여기고 있었지만 벽상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그는 과연 내가 경공을 펼치면서 싸운다면 제 실력을 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을까? 모르겠지. 그는 내가 그런 임기응변도 보이지 못할 둔치라는 걸 모른다.


“긴장하지 말게. 만약 지더라도 우리는 자네를 탓하지 않을 게야.”


금정하가 무어라 말을 했지만, 그 목소리는 거센 함성에 휩쓸려 반절 이상이 사라졌다. 넓은 비무장 주위를 가득 메운 군중의 함정이 점점 커졌다. 그들의 이목은 비무대 위를 향하고 있었다.


“청류곡의 유문이 이겼소이다!”


비무대 한가운데서 승패를 선언하는 사내가 청삼을 입은 문사풍의 청년을 가리키며 외쳤다. 군중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벽정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문무쌍절 유문. 과연 대단하군. 벌써 세 번이나 연달아 이긴 모양이야.”


“청류곡은 무공을 연구하는 문사들이 있는 곳인데 그곳에서 저만한 젊은이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절정고수와 싸워서 이겼다는 소문도 도는 자일세. 어지간해서는 싸워 이길 자가 없지.”


금정하가 간략히 문무쌍절이라는 청년에 대해 평했다.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내가 감히 저런 자와 검을 겨눠야 한다고?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온 것처럼 시선을 불안하게 좌우로 향했다. 단순히 구경을 위해 온 이들 사이로 유문 못지않아 보이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그렇다. 저런 이들과 싸우기에는 아직 멀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자. 조금 더 수련을 한 다음에 오는 것이 옳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는 도망치듯 입을 열었다.


“벽 어르신.”


그때였다. 불안하게 좌우를 헤집던 시선이 한곳에 멈추었다. 한눈에 보아도 상석으로 여길만한 자리에 앉아있는 이들이 보인다. 비룡검파의 진운이 차양막 아래서 여유롭게 비무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를 필두로 정도용봉회가 비무를 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잘난 체 늘어놓았던 설교가 떠오르며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겨우 이렇게 도망칠 주제에 그리도 잘난 체 했던가?


“음, 왜 그러는가 소협?”


벽정문이 되묻는다. 그러나 나는 대답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계속해서 시선을 옆으로 옮긴다. 차양막 한가운데서 정도용봉회를 비롯한 귀빈을 휘어잡고 있는 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는 면사를 쓴 묘령의 여인도 보았다.


“알아보았는가?”


벽정문이 내 시선을 따라 눈길을 주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어서 금정하 역시 조심스럽게 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가운데 있는 자가 바로 천의검문의 소문주일세. 후기지수 중 그에게 대적할 수 있는 자는 없다 하지.”


도군. 내 행세를 하는 문영은 정말로 천의검문의 소문주다운 모습으로 비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정고수 못지않은 실력을 갖췄다는 여유. 그리고 천의검문의 소문주라는 위압감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도군의 정체를 의심하랴? 감히 그를 의심했다가는 단숨에 목이 떨어져 나가리라는 확신마저 든다.


“이런, 이보게. 아무래도 소협이 눈을 빼앗긴 건 소천검 쪽이 아닌 듯 하이. 비록 임자가 있는 몸이라지만 사내라면 모름지기 천금화(千金化)에 먼저 시선이 가지 않겠는가?”


한참이나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나를 보고, 벽정문이 장난스레 금정하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천금화. 본인은 속되어 보인다며 싫어했지만, 심하령은 천금의 가치를 가진 꽃이라 불리고 있었다. 그만큼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천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녀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묘한 이름이다.


“양 소협. 혹시라도 절벽 위에 핀 꽃에 미련을 갖지 말게. 그리고 농으로라도 천금화를 입에 올리지 말게. 그건 정말로 위험한 일이라네.”


금정하가 진지하게 진솔한 충고를 던진다. 내 진짜 정체를 알게 되면 그야말로 뒤집어질 말이군. 한편,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문영과 심하령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가슴이 뛴다. 내가 본래 있었어야 할 자리를 보고서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무엇을 느꼈어야 할까?


“헌데 갑자기 나를 부른 이유가 뭔가?”


벽정문이 묻는다. 나는 깊은 한숨을 들이쉬었다. 복잡하던 마음이 정리된다. 나는 천의검문의 소문주다. 양요평 행세를 하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나는 저토록 고고한 자리에 앉아서 자신을 드러내야 할 자다. 그런 자가 이런 곳에서 도망쳐서야 하겠는가? 가당치 않은 소리다. 하물며 천의검문의 일원이라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벽 어르신.”


다시 벽정문을 부르며 나는 비무대 위를 가리켰다. 두려워 말라. 자신의 검을 믿고 나아가라. 그리고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문무쌍절과 싸워보겠습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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