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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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Gavin
작품등록일 :
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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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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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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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레스의 총사(36)

DUMMY

다음 날 아침, 아리엘이 몸의 고단함 때문에 오전 늦게 되서야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새 주인은 테이블에 앉아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녀는 창밖에 떠오른 해를 보고 자신이 주제에 맞지 않게 늦잠을 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잘못을 빌기 위해 식탁에 앉아 있는 주인에게 몸을 돌리려는 찰나, 바닥에 옷 꾸러미가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곁에는 블라우스와 치마, 그리고 여성에게 필수적인 속옷들이 개어져 있었다.

벨린이 편지에 눈을 때지 않으며 말했다.

“사이즈를 대충 쟀으니 아마 몸에 맞을 거야.”

“주인님….”

“오늘부터 너를 내 시종으로 삼아야겠다. 일어나서 옷부터 입어. 그런 다음에 간단한 먹을 것을 좀 해줬으면 좋겠군.”

“네….”

아리엘이 서둘러 움직였다. 그녀는 오래 누워 있어 뻣뻣해진 몸을 추스르며 일단 옷부터 입었다. 이렇게 제대로 된 옷을 얼마 만에 입는 것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아리엘은 일단 부풀어진 속옷을 입고 허리를 조이는 보디스 위에 하얀 블라우스를 착용했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갈색 치마를 끌어올리고서는 치마끈을 허리 높이로 살며시 조였다.

그녀는 옷 입는 모습을 굳이 주인에게 숨길 필요가 없었다. 벨린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편지에 온 집중을 다하고 있었다.

아리엘은 마지막으로 아낙들이 잘 신고 다니는 나막신을 신고나서, 편지를 쓰고 있는 벨린에게 물었다.

“무슨 요리를 해드릴까요, 주인님.”

“아무 거나. 네가 가장 잘 하는 걸로.”

벨린이 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아리엘은 잠시 주인 곁에 서서 그가 읽는 편지를 내려보았다. 그녀는 까막눈이었기에 주인이 무슨 편지를 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노예로써 필요 이상의 호기심을 보이지 않고, 곧바로 여관방에 딸린 부엌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부엌에는 간단한 화덕과 불을 피울 수 있는 아궁이는 물론이요, 팬과 작은 솥과 국자 같은 요리기구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요리를 한 흔적도 보였는데, 아마도 그녀의 주인이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먹은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요리를 하다 남은 재료들은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계란과, 빵, 아스파라거스, 하몽(훈제한 햄), 양파 따위의 채소들이었다.

아리엘은 요리를 꽤나 잘했다. 전 주인과 있을 때도 주로 요리 담당을 맡았다. 다니치의 요리는 물론이고 히스파니아나 란툰 반도 같은 남부 에우로파 요리 정도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란툰 반도 출신 노예였던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가르쳐준 것들이다.

그녀는 간단한 오믈렛을 만들었다. 얇게 자른 훈제 햄과 기름에 볶은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오믈렛. 계란은 타지 않도록 조심하고, 양파를 달게 볶아 달고 고소한 풍미를 더했다.

열 두 평 남짓한 방 안에 그녀가 만든 맛있는 요리 냄새가 그윽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리엘은 전 주인이 음식을 먹기 전에 음식의 냄새를 맡았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따뜻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도록 혼신 것 요리를 만들었다.

새 주인이 좋아하면 좋을 텐데. 그녀는 다소 떨리는 마음으로 음식을 테이블에 내놨다. 새 주인은 묵묵하게 음식 그릇을 받들더니, 칼로 오믈렛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무표정하게 우물우물 씹더니, 그냥 한 마디 하고서는 계속 먹기 시작했다.

“괜찮군.”

그 일이 아리엘에게 작은 충격을 일으켰다. 다니치 귀족 장교이면서 미식가였던 전 주인은 항상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헌데 무뚝뚝한 면이 있는 새 주인은 단 한마디만 하고서는 열심히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먹는 일은 단지 몸에 힘을 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듯 그는 말없이 오믈렛을 먹는데 열중했다.

아리엘은 차마 그에게 맛있냐고 상냥히 물어볼 수 없었다. 그 사이 그녀의 주인은 오믈렛을 다 먹어치웠고, 곁들여 나온 포도주를 한잔 마신 다음, 코트를 입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과 10분만이었다.

주인은 삼각모를 쓰고서는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한편 텅 빈 그릇을 본 아리엘은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옛 주인은 그녀의 요리를 먹고서는 그녀가 먹을 수 있도록 요리의 반을 남겨놓고는 했다. 그러면 그녀는 그 남겨진 요리를 가지고 부뚜막에 앉아 조촐하게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아리엘이 그렇게 허무한 얼굴로 텅 빈 그릇을 들고 있는데 벨린이 문을 열고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네 식사는 앞으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해. 저녁 늦게 돌아올 테니 밀린 빨래와 청소도 좀 해놓고 말이야. 뭐가 부족하거든 잔돈을 조금 서랍에 넣어놨으니까 시장에 가서 사오도록 해. 단 내가 돌아올 때까지는 이 자리에 있어야 해.”

벨린은 그렇게 나가버렸고, 아리엘은 방 안에 서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제 나는 뭘 먹지?’

* * *

벨린은 마차를 타고 까살라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히스파니아군의 대규모 주둔지로 갔다. 그곳은 원래 작은 건물들이 있던 시가지였는데, 전쟁이 시작되면서 히스파니아군은 이 시가지를 작은 요새로 만들어버렸고, 지금은 주민보다도 군인들이 더 많이 주둔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탈바꿈했다.

그는 지금은 폐허가 된 고대 란툰 제국의 건축물로 들어갔다. 그곳은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 받을 곳이 아니었기에 밀회를 하기에는 딱 적당한 곳이었다.

벨린이 이곳에서 만나야 할 자는, 막 천한 노예와 만나고 온 것과는 역설적이게도 이 세상에서 제일 고귀한 여인이었다.

그는 금이 간 기둥들을 지나 중앙의 큰 방으로 나왔다. 문득 도도한 여성의 목소리가 홀 가운데로 울려 퍼졌다.

“오랜만이로구나, 데 란테.”

보라색 외출복을 입은 이사벨 데 아라고른이 기둥에 서 있었다. 그녀는 베일과 챙이 넓은 숙녀용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마마.”

벨린은 모자를 벗어 절을 한 다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벨린에게 천천히 다가오며 말했다.

“네가 사냥한 사냥감들을 보고받았다. 너는 정말 훌륭한 사냥꾼인 모양이더구나.”

“황공합니다.”

“너의 공적을 치하하는 뜻에서 오늘은 짐이 친히 이 자리에 나왔노라. 실은 신교도들과의 막판 협상을 진행하다 잠시 들린 것이지만, 네게는 큰 영광이 될 테지.”

벨린은 이사벨 황녀의 손을 잡고 키스를 했다. 벨린이 의례를 마치고 똑바로 서자, 이사벨은 슬며시 베일을 벗었다.

그녀의 새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이 벨린의 눈에 드러났다.

“신교도들은 아직 오만에 빠져 있노라. 비록 북부의 다니치 신교도들은 격파됐지만, 발트왕국과 빌랜드의 협잡꾼들은 짐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계집애처럼 비웃더군.”

“마마를 위해 그들을 사냥하겠나이다.”

벨린이 차분히 말했다. 이번에는 이사벨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서는 천천히 말했다.

“짐과 너는 꽤 오랫동안 서로를 보지 못했지. 오늘은 네가 사냥한 댓가만큼 짐이 네게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사실은 스스로에게 내리는 상이 될 테지. 벨린은 속으로 생각하며 그녀가 마음대로 움직일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사실 그녀는 벨린에게서 맛을 안지 오래되었고, 이쯤 되면 그에 따른 금단현상이 최고조에 이르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이사벨이 그에게 보낸 편지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단지 시간과 장소만 적어 보냈던 것이다.

이사벨은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더라도 체면 치례를 해야만 했고, 그것이 바로 그녀의 큰 비극이라고 할 법했다. 하지만 황녀는 그 동안 많은 발전을 이뤘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벨린을 쳐다보다, 천천히 지그시 눈을 감으며 안았다.

벨린은 이사벨의 허리를 안고 더듬었다. 그리고는 아주 자그마한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녀는 이번에는 코르셋을 입고 오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이사벨이 이룩한 작은 전진이었다.

이윽고 두 남녀는 천천히 서로의 입술을 탐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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