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 총사(38)
8장 - 란츠베르크의 요새
50년에 걸친 전쟁과 휴전의 반복은 모든 에우로파인들에게 참으로 힘든 시기였다. 특히 전쟁의 주요 무대가 된 다니치와 북부 란툰 반도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삶의 기본 가치를 포기하고 살아야 했다.
전쟁 기간 동안, 전쟁에 참여한 각 국가가 채용한 군제 방식도 급속도로 개선되고 혁신되었다. 모든 군대는 생존의 문제 때문에, 기존의 중세적인 전투방식에서 근대적인 전투방식으로 군제를 개혁해야 했다.
이 군제개혁의 시초는 50년 전, 발트인들의 제왕 구스타프스 아돌프스가 진행했다. 국민개병제가 최초로 이루어졌고, 그는 병사, 하사관, 장교 같은 근대식 군대 계급과, 소대, 중대, 대대, 연대, 사단으로 나눠지는 편제를 확립하였다. 발트인들의 부대에는 병사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이동이 가능한 경포가 배치되었고, 그들의 필랜드인 하카펠리타 기병은 저돌적인 공격전술로 경기병 전략의 효시를 마련했다.
구스타프스 대왕은 이 군대를 이끌고 북에우로파의 여러 강적을 격파했다. 급기야 그의 분대는 다니치 지방의 구신교 분쟁에도 참전했고, 30년 전에 벌어진 전쟁에서는 남부 다니치연맹의 카톨릭 군대를 박살내기에 이르렀다.
그의 활약 덕분에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간에는 조약이 체결되었다. 물론 이 합의는 구교인 카톨릭 측이 신교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준 굴욕적인 합의였다. 구교측은 북에우로파에서의 신교도 전파를 인정해야했고, 어느 국가도 이를 탄압할 명분이 없어졌다. 심지어 히스파니아조차도 이를 갈아야 했다. 발트왕국의 군대는 히스파니아에서 무적이라 일컫던 테르시오 방진을 격파한 유일한 군대였던 것이다.
그 후 세 차례에 걸친 대규모 전쟁과 평화 기간 동안, 에우로파의 강국들은 발트인들의 군제 개혁을 배웠고, 자신들의 군대를 그들 수준으로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구교와 신교의 전력이 다시금 팽팽하게 맞서게 되자, 다시금 이념을 명분으로 세운 세속적인 전쟁에 온 국력을 쏟아 부었다.
까살라를 놓고 벌어진 10년 전쟁이 개전하면서 흥미로운 일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바로 더 이상 양측 진영이 종교의 이념에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3차 전쟁이 개전하자마자 히스파니아의 동맹군에는 북부 다니치에서 신교 측에 들었던 여러 소국들이 합세했다. 그들은 전쟁 기간 동안 맹주로 부상한 북부 다니치의 프로시안 왕국에 위협을 느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트 제국 주변에 억압되어 있던 여러 신교 강세국가들도 이 대열에 참여했다.
물론 히스파니아는 동맹을 맺는 대신 그들 국가의 카톨릭 포교를 인정한다는 전제를 걸었고, 이것은 단지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구신교 전쟁이 처음 시작된 30년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 종교로 편을 가르던 시대는 지나가는 양상이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신교도 측에서도 주변 강국에 억압을 받은 카톨릭 국가를 자신들의 진영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렇게 양측 진영은 각국의 이해관계에 얽힌 동맹관계로 재편되어갔다.
이번이 기나 긴 전쟁의 마지막이 될 터였다. 까살라 지역에서 대패한 다니치 신교도들은 별 수 없이 조건부 협약을 맺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카톨릭 측이 이 전쟁을 끝내고 협상을 이루려면 아직 격파해야할 적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검은 제복으로 상징되는 다니치 군대가 조건부 항복을 하고 후퇴하자, 히스파니아군은 서부 다니치에 주둔한 신교도 군대로 병력을 집중했다. 동맹군인 오스트리히군과 프란세 왕국군, 남부 다니치연합군이 그 병력에 합세했다. 가톨릭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자 히스파니아의 톨레도 공작 겸 육군 사령관인 데 피사로 원수는 남부 다니치의 영토를 우회하여 서부에 주둔 중인 빌랜드와 발트왕국 군대를 격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들이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면, 이 시대착오적인 종교전쟁도 막을 내리게 된다. 더불어 히스파니아는 기나 긴 손실의 대가로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을 터였다.
벨린 데 란테는 대위로 승진했다. 황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일까. 그는 서부 다니치에서 펠리페 총사연대와 합류하라는 발령서를 받고, 다니치로 가는 히스파니아군 대열에 합류하여 출발했다.
벨린은 상부의 배려로 편안한 승객용 마차를 탈 수 있었다. 다른 장교 셋이 그 마차에 탔다. 그들 가운데 하나는 소령이었고, 나머지 둘은 대위였다. 그들은 각자 서부 다니치에 임무가 있어 향하는 자들이었는데, 그 임무는 기밀로 간주된 모양인지 서로의 목적에 대해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다.
다른 세 장교는 히스파니아군 특유의 청색 제복을 입었지만, 벨린은 녹색의 총사대 제복 차림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시선은 자연히 벨린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벨린은 대위 치고는 무척 젊어보였고, 그것도 흔치 않은 총사대 장교였기 때문에 더더욱 눈총의 대상이 되었다. 일반 군대의 총사대에 대한 견해는 여러 가지였는데, 정예화된 임무를 맡는 총사대에 존경을 갖는 자들도 있었지만, 장교들 중에는 총사대가 장교를 사냥하기 시작하면서 멸시의 감정을 지니는 자들도 많았다.
마차가 다른 수송용 마차와 함께 행군하는 병사들 옆을 달리며 덜커덕거리는 가운데, 장교들은 서로 여러 가지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사람을 사냥하는 사람은 동지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 슬슬 드러났다. 세 장교는 자기들끼리만 히히덕거리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벨린은 그들의 쓸데없는 이야기에 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주변에서 총사에 대해 뭐라 험담을 하던 간에 삼각모를 눌러쓰고 낮잠을 잤다. 저런 자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었던 것이다.
마차는 정오쯤에 되서야 잠시 멈춰 섰다. 각반을 차고 머스킷총을 든 병사들이 행군을 멈추고 길가의 양 옆에 앉아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2시간 정도 휴식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벨린은 장교들을 위해 차려진 식탁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취사병에게서 여러 가지 음식들을 좀 얻어왔다. 소시지와 빵, 물 같은 음식들이었다.
그는 장교용 마차의 뒤를 따라오던 마차로 갔다. 그것은 까살라에서 징발한 흔히 보이는 천막으로 지붕을 포장한 수송용 마차였다.
벨린은 마차의 천막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군납용 포도주 상자들 한 가운데에 긴 머리칼을 둥글게 묶고 하얀 머리수건을 쓴 아리엘이 기대어 잠이 들어 있었다.
벨린이 마차 안으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들어오자 그녀가 잠에서 깨었다. 벨린은 말없이 먹을 것을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주인님. 고맙습니다.”
아리엘은 연거푸 절을 하고서는 먹을 것의 포장을 풀어내었다. 그녀는 수송용 마차에 숨어있느라 아침도 먹지 못하고 오전 내내 굶었다.
아리엘은 대뜸 빵을 한 입 열심히 베어 물기 시작했다.
아리엘은 근 하루 동안 이 마차에 숨어 있었다. 벨린은 그녀를 시종으로 삼았지만 여러 모로 번거로운 일이었기에, 벨린은 차라리 그녀의 존재를 도착할 때까지 숨기기로 했다. 그래서 수송용 마차를 모는 마부에게 뇌물을 주었고, 그녀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었다.
벨린이 열심히 빵을 뜯어먹는 아리엘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쯤이면 다니치의 전장에 도착할 거다. 그곳이라면 너를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겠지.”
“그렇다면….”
그녀가 먹던 빵을 내려놓고 내려놓으며 가냘프게 말했다. 벨린이 덧붙였다.
“걱정할 필요 없어. 군대에는 나와 너에게 잘 맞는 제도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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