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나레스의 총사(39)
이 당시 군대의 행렬에는 수많은 비 전투 민간인들이 따라다녔다. 강국들이 평민들의 터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전쟁을 치렀을 무렵, 피난민들은 도리어 군대의 약탈이 무서워 피하려고 했지만, 장사꾼들과 창녀들과 장교와 병사들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군대의 뒤를 따라다녔다. 거기에는 그들이 끌고 다니는 수많은 말과 소가 뒤따르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복잡한 행렬을 이루다보면 당시의 진군 속도는 겨우 4~5킬로미터에 불과하여, 마치 거대한 괴물이 주변을 사막화하는 것처럼 주변의 식료품들을 징발하여 황폐화하고는 했다.
10년 전쟁 기간에는 이러한 동참 행위를 제약하고는 했다. 장군들은 그들 가운데 첩자들이 있을 거라 의심했고, 기동전이 중시되면서 병사들의 진군속도를 높이기 위해 쓸모없는 비전투요원들을 과감히 배제시키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히스파니아에는 이와 관련하여 남아 있는 제도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전장 아내라고 흔히 불리는 공식 부인제도이다.
이 제도는 꽤나 역사가 오래되었다. 포병대 대신 마법사들이 전장에 나서고, 병사들이 머스킷총 대신 검과 방패를 들 때도 존재했다.
처음에 이 제도는 장교들이 부인을 전장에 데려가기 위해 군대에 합류 시킬 때부터 비롯되었다. 허나 점차적으로 이 제도는 사병들에게까지 널리 퍼졌고, 그리하여 히스파니아군의 한 대대에는 공식적으로 60여명 정도의 공식 부인이 존재했다.
이 여자들 가운데 일부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짝이 맞는 병사들과 결혼한 여인들이었지만, 그외 나머지 여자들은 ‘모든 병사들의 부인’을 자처했다. 물론 출신 성분은 이루어 말할 것 없이 기구했다. 이들 여자 중 어떤 여자는 몇 푼 안 되는 병사들의 돈을 노린 창녀였고, 어떤 여자는 공식 결혼 증서를 가진 정식 부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예식 없이도 스스로를 부인이라고 부르는 여자들이었고, 그녀들은 하나 같이 거칠고 천박했다.
하지만 그들이 거친 여군이고 질긴 잡초 같은 어머니이며, 병사들의 따뜻한 아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일부 히스파니아 지휘관은 이것이 악습이라며 대놓고 험담을 하고 부인들을 멸시하기도 했지만, 부인들은 그런 자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벨린은 까살라에서 적 장교를 사냥하던 시절, 연대 진지를 지나가며 그녀들을 자주 보곤 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장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일부는 창녀에 불과하면서 부인이라 칭하는 자들이었으며, 누구는 병사가 죽어 과부가 됐지만 군대에 남아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들이었다. 벨린은 그런 부인들에게서 욕정을 풀 때면 평소보다 돈을 듬뿍 주었다. 불쌍한 아녀자를 푼돈에 착취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니치의 총사연대에 도착한 직후, 벨린은 아리엘을 그 집단에 집어넣을 계획이었다. 그것이 합법적으로 그녀를 곁에 있게 하는 가장 편한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총사대에도 공식 부인들은 족히 마흔 명 가까이 있었다. 아무리 최정예부대라는 총사대라지만, 도리어 이런 식의 부대가 사생활에서는 좀 더 자유분방한 편이었다.
남부 다니치에 결집한 펠리페 총사연대는 부대의 전부가 총사들로 이루어진 최정예 경보병 부대였다. 이 연대는 총사대 조직의 의리와 전우애가 밀집된 정수로 통했다. 이들은 적의 후위를 급습하고, 적의 포대와 요새를 일거에 점령하는데 능숙했고, 벨린이 까살라에서 벌였던 유격전처럼, 적의 부대를 저격하고 후퇴하거나, 정찰을 나가는데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 연대에서 수많은 총사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이, 어쩌면 벨린 데 란테에게는 더욱 편할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가 아리엘을 이끌고 근위총사연대의 진지에 도착하자마자 낯이 익은 총사가 하나 나타났다.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주안 스피놀라였다.
“벨린 데 란테!”
두 총사는 서로를 보자마자 우정을 표하는 뜻에서 서로 껴안았다. 처음에는 이사벨 마마를 호위하던 호위총사였고, 후보생이던 시절에는 교관이 되어 벨린을 많이 도와준 이 총사는 변한 곳이 전혀 없어보였다. 아마도 모종의 이유로 전장에 파견된 모양이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의 푸른색 근위 총사대 제복에 달린 견장이 금빛으로 바뀌었다는 것뿐이었다.
“자네가 이곳으로 발령왔다기에 기다리고 있었네. 듣자하니 대위가 되었다면서?”
“선배님도 무언가 바뀐 모양이군요.”
“그래, 맞아.”
주안 스피놀라가 자신의 금빛 견장을 보여주며 웃었다.
“중령으로 진급했지. 이제는 야전 총사연대에서 일개 대대를 지휘할 수 있는 계급이랄까. 아, 참 자네에게 전해줄 것이 있어.”
스피놀라가 그에게 금빛 술이 달린 견장을 선물로 주었다. 벨린은 그것을 받아들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자네는 이 나라 총사대에서 가장 어린 대위일세. 자네가 전장에 있던 사이에 한 기수의 애송이들이 훈련을 수료했으니 자네들이 중대장이 되어 그 녀석들을 거느리면 되겠군.”
아리엘은 그때 벨린의 뒤에 있었다. 평범한 아낙 같은 차림새를 한 그녀는 주변을 지나가는 군인들의 눈길에 부끄러움을 타고 있었다.
스피놀라가 물었다.
“뒤에 있는 처자는 누구인가?”
벨린이 태연히 대답했다.
“제 시종입니다. 연대에서 같이 머무르게 하고 싶은데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저쪽 끝에 부인들이 머무는 숙소가 따로 있네. 자유시간에는 얼마든지 볼 수 있어. 자네는 육군에서 장교였으니까 육군 규정을 따라 공식 부인을 만들 수도 있겠지.”
“그것 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벨린은 그녀의 손을 잡아끌고 부대 안으로 나아갔다. 스피놀라가 잠시 그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는 약간 의아한 상태였다. 시종이라? 그러다 그는 벨린이 끌고 가는 여인의 팔뚝을 보게 되었고, 그곳에 인두로 지진 표식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적잖게 놀랐다. 생전 노예 같은 것은 사지 않을 것 같은 위인이 여자 노예를 데리고 다녔으니 말이다.
물론 벨린은 태평했다. 그가 아리엘을 이끌고 오면서 말했다.
“당분간 내 숙식은 알아서 해결될 거야. 네가 할 일은 그저 내 빨래를 해결하고, 가끔 숙소로 와서 나를 위해 봉사하는 것밖에 없어. 담당 장교가 너를 부인들이 사는 곳에 데려줄 테니 자유시간에는 그곳에서 지내면 돼.”
“네.”
아리엘이 약간 겁에 질린 듯이 대꾸했다. 그녀 같이 가녀린 노예들에게 있어 환경이 변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벨린의 지시는 확고했다.
“이곳은 단체생활을 하는 곳이니 많은 이들과 만나게 될 거야. 그들과 잘 지내는 것은 좋지만, 단 지켜야 할 점이 있어. 일단 도망치다 잡히면 벌을 내릴 거야. 알고 있지?”
그녀가 홀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벨린은 또 한 가지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건 새로운 규칙이야. 너는 철저한 내 재산이니까, 어떤 놈이 너에게 치근덕거리고 부당한 짓을 시키면 절대로 들어줘선 안 돼. 그런 일이 생기면 주인인 나한테 즉각 이야기하도록 해. 만약에 이걸 어긴다면 도망쳤을 때보다 더 큰 벌을 내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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