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점 (17)
“제기X~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갑작스러운 한인교민회의 활동은 이승만에게 당혹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자신에게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시류를 파악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이승만은 갈수록 공고해져 가는 한인교민회의 위상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동안 이승만은 나름대로 한인교민회에 접점을 만들기 노력해왔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 이승만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보루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동지회였고 다른 하나는 구미위원회였다.
문제는 두 가지 보루 모두 위태롭다는 점이었다.
동지회의 경우는 한인교민회의 위상이 커질수록 알게 모르게 이승만의 장악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하는 주장이나 다짐이 말뿐인 것과 달리 한인교민회는 자신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현실로써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는 그의 주장과 비전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실제로 자신의 영향력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구미위원회였다.
구미위원회는 이승만이 가진 두 가지 보루 중에서도 최후의 보루라고 볼 수 있었다. 흔들리는 동지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축 중의 하나가 바로 구미위원회, 즉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은 단체를 이승만이 대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이승만은 박사라는 학위와 미국 전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의 제자라는 타이틀로 미주 한인들의 대외이미지와 외교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임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재임은 이승만의 가진 전 미국 대통령의 제자라는 타이틀보다 더 큰 현 미국 대통령의 가장 큰 후원자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동안 자신이 가진 타이틀로 다른 한인들의 무시하고 업신이 여겼던 상황이 자신에게 닥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다행인 것은 재임이 한인교민회의 수장인 이상설의 양아들이라는 명분과 실제로 재임이 미주 한인사회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 그나마 이승만이 숨통을 부여잡을 수 있는 틈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재임이, 한인교민회가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한다면 사라질 틈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승만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이승만이 사실상 주력한 것은 구미위원회를 계속해서 장악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힘이 떨어졌고 미주 한인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고 해도 임시정부가 한인들에게 가지는 위상은 여전히 건재했고 이는 이승만이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이 굳이 미주 한인사회의 현실을 감춘 보고서를 보내고 따로 김구에게 편지를 보내서 미주 한인사회의 현실을 왜곡한 것도 임시정부의 눈을 가리고 자신의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속셈이었다.
문제는 김구가 미국에 왔다는 점이었다. 이 일은 사실 이승만의 계획에는 없던 일이었다.
급히 김구를 만나서 재임과 한인교민회의 위험성을 설파한 것도 어떻게든 김구의 눈을 가리고 자신의 위상이 건재함을 알리고자 함이었다.
이를 위해서 징병제 가부를 놓은 지지연설장에 김구를 부른 것이고 말이다.
이승만이 믿은 것은 한 가지였다.
과거 윤치호가 왔을 때 보여주었던 재임과 한인교민회의 태도 말이다. 윤치호가 미국에 도착한 초기에 이승만은 윤치호와 만났었다.
그때 윤치호는 재임의 무관심과 한인교민회의 활동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MMC란 단체에 대해서는 우려를 넘어 비난을 표시했었다.
이승만은 윤치호의 말에 호응하면서 은연중에 윤치호가 가진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킴으로써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만남 이후로도 윤치호가 재임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으로 이승만은 안도한 상태였다. 더구나 서둘러 윤치호가 출국했다는 것으로 결국 윤치호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이 돌아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윤치호라는 전례가 있었기에 이승만은 김구에게도 같은 방법을 쓴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뛰어난 연설과 자신을 지지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좀 더 자심을 어필할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예상대로 김구는 자신의 이야기에 동감하는 표정을 보였기에 이승만은 그의 주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하다고 판단한 것은 김구가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더 정확히는 구미위원회와의 어떠한 행사도 없이 출국하고 난 후였다.
제한적인 정보지만 들리는 소식에 김구가 재임과 만났다는 이야기도 들렸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으로는 기겁할만한 일이었다.
흔들리는 동지회를 단속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인교민회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정보의 부족이라는 독이 되어 돌아온 상황이었다.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이승만은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이 급하게 하와이에서 재미한족대회를 열고 외교위원장으로 임명을 받은 것도 이런 불안감을 떨치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이한족연합회측에서 요구한 외교위원부의 문호를 개방하여 위원을 확충하고 적극적인 대미 외교활동을 전개하라는 요구를 위험을 무릅쓰고 거부한 것도 같은 불안함의 발로였다.
이승만은 앞으로 한인교민회와 경쟁을 넘어 주도권 다툼이 시작될지는 모르는 상황에서 재미한인연합회의 이런 요청이 자신을 견제하려는 뜻이란 것을 알고도 수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직이 동지회를 결성하면서도 느꼈지만, 자신만을 지지하는 이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승만이었다.
결국, 이승만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재미한족대회에서 의결한 외교위원회는 소수 이승만 측근들만의 사조직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이러한 이승만이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대로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어!!!”
이승만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한인교민회의 이런 대외활동을 횡포라고 규정지으며 여론전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 이러한 한인교민회의 무차별적인 대외활동은 다른 한인 단체의 다양한 목소리를 말살시킬 뿐만 아니라, 건전하고 다채로운 목소리를 억압하는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언론의 자유마저 억제할 것이다. ......”
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승만의 이런 주장이 그동안 그가 주장해왔던 모든 미주 한인 단체들이 하나로 뭉쳐, 한목소리를 내야지만 미 정부에게 제대로 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며, 단결을 주장해온 그동안의 주장과 배치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승만으로서는 궁여지책조차도 자신을 점차 궁지로 몰아넣게 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승만으로서는 어떻게든 다시 돌파구를 만들어야만 했다.
결국, 이승만이 선택한 방법은 재임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상황의 중심인 재임을 만나야만 돌파구가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감도 있었다. 어떻게든 재임을 만나기만 한다면, 이승만은 충분히 그를 설득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지원을 얻어낼 수 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인들과는 다르게 재임은 여태까지의 행한 태도로 보면 지극히 미국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과 공통점이 많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승만은 한인교민회의 안창호에게 지속적으로 만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이승만의 요청에 대한 재임의 대답한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재임은 이승만의 요청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그의 집앞에서 농성이라도 하려는 마음까지 먹었지만, 그는 하이랜드로의 출입조차 허가되지 않았다.
결국, 이승만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고 그는 조금씩 궁지에 몰리는 자신을 느끼며 갈수록 초조해 질 수밖에 없었다.
- 작가의말
찰아이스님 후원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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