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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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뇨리따
작품등록일 :
2013.04.05 22:16
최근연재일 :
2015.03.0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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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09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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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DUMMY

터덜 터덜.,


그 주인의 심경을 대변이라도 하는것일까? 말이 힘없이 박차를 가한다.

예일은 축 늘어뜨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장료님은 괜찮으시려나..?"


그 말에 더프도 쉘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되려 분위기만 더 침울해질 뿐이었다. 다만 케이만이 나서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회복하려고 애썻다.


"료님은 괜찮으실 거라니까요?


그런 케이의 위로도 큰 힘은 못되는듯 했다. 케이도 낌새를 느꼈는지 애써 발랄하게 제안했다.


"좋아요 그럼 내기를 걸죠."


"내기?"


그 제안에 세 사람의 시선이 케이에게로 집중됬다.


"네. 1번 장료님은 못 돌아 오신다. 2번 흑영은 못 얻어도 장료님은 돌아 오실거다. 3번 흑영도 장료님도 무사히 돌아 오신다. 기한은 오늘까지. 내기의 보상은 각자 하나씩 소원을 들어주는걸로. 어때요?"


"그런..."


사람의 목숨이 달린일에 내기라니.. 그러나 정작 제안한 케이의 표정에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었다. 결코 1번은 생각지도 않는다는 듯이.


"3번!"


가장 먼저 나선것은 더프였다.


"그 형님과 그 말이라면 당연히 무사히 돌아올걸?"


그말에 케이는 짐짓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저런, 3번은 배당이 가장 낮다구요. 왜냐하면 거긴 제가 먼저 걸었거든요."


그런 능청에도 여전히 예일은 침울했다.


"이, 2번이요!"


다음번에 나선것은 쉘이었다. 예일은 의외라는듯 쉘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에서 근원모를 믿음이 자리잡고 있는것을 발견했다. 적어도 그녀는 장료가 살아 돌아오리라는, 믿음만이라도 확고히 품은듯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쉘 그녀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일 자신을 위해서 라는것도 어렴풋이 느꼈다. 하기사 지금 여기서 홀로 괴로워 한다고 해결되는것은 없었다.


"오오, 누나는 2번이군요! 하지만 괜찮을까요? 그 사람차별하는 영악한 말에게 무슨일이 생긴다는것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일텐데."


케이는 어느새 능숙한 중개자가 되어 있었고, 예일은 쉘과 케이의 부단한 노력을 보고 있자니 느끼는 바가 있었다.


후우~

"어쩔수 없구만. 나도 2번이다."


"예일형까지 2번! 잠깐만, 이러면 1번이 없어지는데.. 더프형, 1번 어떠세요?"


"뭐어? 싫어, 어쩨서.."


"지금은 1번이 최고의 배당이라구요! 더구나 기한은 오늘까지니, 행여 장료님의 행보가 조금이라도 늦춰지시는 날엔 형이 이길 확률도 충분하죠."


"음.. 그, 그래? 그럼 뭐.. 1번으로 가볼까?"


'줏대 없는 녀석..'

예일은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어쩐지 케이의 저런 낙관적인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아무일없이, 흑영도 장료님도 되돌아 오실거라 생각하게 만든다. 신비한 아이였다.


"넌 어쩨서 그렇게나 그분을 믿을수 있는거지?"


예일의 뜬금없는 물음에 케이는 당돌하게 답했다.


"장료님 이니까요!"


그 순간 이었다.


"어라? 누가 뒤따라 오는데?"


더프의 그 한마디에 일동 경직했다.


만약 그 '누군가'가 추격자 들이라면 어찌이리 빨리?

당장 드는 의문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이내 가셧다.


"단 한기네요!"


쉘이었다.


"내기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는걸요?"


케이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예일은 눈에 눈물까지 그렁였다.


"흑영은..?"


그렇게 묻고서도 쉘은 스스로 아차 했다.

장료가 쫒아온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거기서 어떤상황이 있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적으로부터 뭔가를 되찾아온 시간치고는 너무 일렀다. 그렇다면 그냥 되돌아 온것일까? 그게 다시한번 예일의 속을 쓰리게 했다. 그러나 이어진 케이의 말.


"이렇게 빠르게 쫒을수 있는건 흑영밖에 없거든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멀리서 뒤따라오는 한기의 인마의 모습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장료님!"


"료형님!"


각자가 반가운 마음에 소리쳐 불렀다. 그리고 장료가 타고있는 흑마 한기. 도무지 범상찮은 기운을 흘리면서 달려오는 윤기나는 털빛의 준마.


"예, 흑영!"


케이는 그제야 비로소 소리쳤다. 장료가 돌아 오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기의 성패는 흑영에서 갈릴터였다.


"이걸로 세분은 제 소원을 들어주셔야 겠군요!"


그 말에도 모두 아랑곳 않고 기뻐하기에 바빳다. 그렇다. 누구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장료가 이토록 짧은 시간에 흑영을 데리고 재합류한것은 일행 모두에게 큰 힘이되었다.


"추격자도 일단은 따돌렸으니 한동안은 안심하고 달려도 될게요."


'대체 이분은..'


일행들은 '오오~' 감탄하며 곧이 곧대로 들었지만 장료의 말속에 숨은 묘한 기운을 감지해낸 것은 예일뿐 이었다.


상식적으로 흑영을 훔쳐 달아났다 손 쳐도, 여기까지 이렇게 순식간에 따라 잡는다는건 힘들었다. 더구나 거기서 추격자들을 뿌리치고 따돌리기까지 하며 달려왔다는것은 설령 흑영과 장료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더구나 정말로 '따돌린 것 뿐'이라면, '한동안' 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는 것은 그 추격자들 로서는 당장 쫒을수 없는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장료에 의한것이며, 얼마나 굉장한 일인지 예일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케물을 필요는 없었다. 아니 케물을 자격조차도 없었다. 그저 장료와 흑영의 무사귀환 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감격해야 할 입장이었으니까.



일행이 예일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병원이 있는 마을까지 당도한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부상자도 있고 쌓인 피로도 있고하니, 이곳에서 하루 지내자는 장료의 제안에 쉘은 뭔가 불안해 하는듯 보였지만, 지금은 예일을 비롯한 모두가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독단으로 모두가 힘들어 하는것은 볼수 없었다. 쉘도 하는수 없이 동의했다. 예일이 치료받는 사이 일행은 여관을 찾아 짐을 내려놓고 여독을 풀었다. 더프와 케이는 식사할 틈도 없이 잠이 들었다. 덕분에 식사는 쉘과 장료 단둘이 해야했다.


후루룩


따뜻한 수프 한그릇이 안쪽부터 몸을 덥혀줬다. 식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둘다 허기졌고 음식은 순식간에 동났다. 배는 찼고 남은것은 두사람 뿐이었다. 덕분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쉘은 장료를 어려워했고, 장료는 꽤 무심했다.


"저.."


쉘은 애써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의외로 그녀의 말을 끊고 먼저 물어온것은 장료였다.


"일국의 왕녀라고 들었습니다."


"아, 네, 네!"


쉘은 예상치 못했던 물음에 당황하며 대답했다가 이내 의기소침해져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동안 숨겨왔던것에 대한 사과였다. 그러나 장료는 이해되지 않는다는듯 물었다.


"뭣이 말이요?"


"예? 그, 그야.."


당황하는 쉘을 보며 장료는 피식 웃었다. 그게 쉘을 적잖이 부끄럽게 했던지 쉘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일국을 책임지는 자는 일개 필부에게 고개숙일수 없소."


"예?아.."


그녀는 어찌 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장료는 이 얼빠진 왕녀의 얼굴을 잠깐 지그시 쳐다보다가 신중하게 입을 떼었다.


"여왕이라니, 우리땅에선 전례없는 일이지요."


"...."


쉘은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여자와 정치라니 얼토 당토 않은 일이지요. 허영이 많아 제 멋대로에,변덕은 죽 끓듯 하고 감정에 치우쳐 냉정하게 시국을 내다보지 못하오."


그말에 쉘의 표정이 굳었다. 장료도 그것을 못본것은 아니었지만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정치는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여자라는 족속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개백정에게 맡기는게 낫다는것 정도는 알고 있지. "


벌떡!

쉘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말로 화가 났는지 굉장한 박력이었다. 그러나 입속에 웅얼진 어떤 말을 내뱉진 못했다. 그래도 은인 이었다. 지금은 냉정하고 날이선 말로 자기를 상처주고 있지만, 목숨을 몇번이나 빚진 은인이었다. 그렇기에 차마 그녀는 장료를 비난할수 없었다. 다만 배신감이니 분노니, 슬픔이니 하는 복합적인 감정을 품은 눈으로 지그시 그를 노려 보는것 밖에는 할수 있는게 없었다. 그러나 장료는 멈출줄 몰랐다.


"눈빛 하나만 봐도 알수 있소. 내앞에 공주가 아니라, 왕자가 있었다면, 그는 자기의 왕위에 의문을 품는자를 대할때, 그게 누가되었건, 은인이었건 친족이었건 순수한 분노 이외에는 어떤것도 품지 않소이다. 그리고 그 순수한 분노만이, 지배자가 품을수 있는 위엄을 내뿜지. 그대 에게선 그 어떤 위엄도 느낄수 없소. 화가 나면서도 이도 저도 못하는 여자의 눈은, 되려 남자에겐 안고 싶다는 욕망만을 부추길 뿐 이지."


"그만!!"


화끈!

안그래도 붉었던 쉘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훨씬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홱!

그녀는 더 듣기 싫다는듯이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러나 장료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보시오. 그녀들은 그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고개를 돌리지. 심지어 그 말에는 논리도 근거도없고, 대화의 여지조차도 없소. 그렇게 자기들이 하고싶은 말이 끝날라 치면, 잔뜩 심술난채로 더 이상 상대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이 귀를닫고 자리를 피하지. 왕은 그러지 않소. 옳은 말을 듣거든 상을주어 구하고,

궤변을 들으면 재갈을 물리지. 장담컨데 그대 아비가 내린 결정은 더없이 어리석었소."


휘익~

찰싹!!

간신히 부여잡은 인내의 끈이 '아비' 라는 단어 하나에 허무하게도 끊어져 벌ㅆ다.


"하아..하..."


폭박해버린 감정을 추스르며 숨을 골랐나. 어찌나 세게 때렸던지, 장료의 볼 못지 않게 그녀의 손바닥도 벌겋게 물들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스스로 한 행동에 자책하며, 표정을 누그러 뜨리고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에 관한것 만큼은..."


그러나 또다시 그녀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또 틀렸소! 도저히 자비를 베풀수 없을 만큼 화가 날 지경에 이르거든 검을 뽑아 목을베어 기강을 바로 해야지! 믿을수 없군. 대체 선왕이란 자가 얼마나 못났기에 자식된 자가.."


휘익~

텁.

다시한번 자기 아버지가 거론되자 쉘은 참지 못하고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번엔 뜻을이루지 못했다. 장료의 손에 가로막힌 탓이었다.


"가르친지 몇초 지나지 않았건만.. 진심어린 충고도 그대는 욕보여 졌다는 감정만 앞서 냉정히 판단하고 받아들일 줄을 모르지. 여인의 손으로 암만 드세게 때린데봐야, 잠깐 아픈것으로 끝이외다. 되려..."


장료는 남은 한팔로 쉘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장료와 쉘의 얼굴은 지척간이 되고 쉘은 당황해 어쩔줄 몰랐다.


"남자들의 농락거리가 될뿐이지."


움찔

그말에 쉘은 놀림받고 있다는것을 깨닫고 팔을 빼려고 애썼다. 그러나 가능할리 없었다. 놔 달라는 말도 자존심 때문에 할수 없었다. 얼굴이 가까워 차마 노려볼수도 없었다.시선을 피하고 그저 장료의 품 속에서 되도않는 힘을 써서 부들부들 떠는것만이 그녀가 할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실로 무력한 존재.."


장료는 한숨 쉬었다. 여전히 허리를 두른채로 그녀의 손목을 속박하던 손을 풀고 언월도를 찾았다. 그녀는 나머지 한쪽손이 풀리기 무섭게 장료를 밀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가능할리 없었다.


턱!


장료가 언월도를 찾아 그녀의 손이 닿을 만한 위치에 꽂아넣었다.


"검으로 나를 베는데 밀어낼 필요는 없소."


그렇게 말하는 장료의 손이 그녀의 뒷 목덜미를 향했고, 허리를 감았던 손은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쉘은 더 큰 수치심에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장료가 그녀의 뒷못을 살포시 감아쥐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가느다란 목을 꺾는것은 나뭇가지를 꺾는것 만큼이나 쉽소. 더이상 수치심을 느끼기 싫다면 죽여달라고 비는것도 방법이오. 아니면.."


점차 장료의 허리를 감은 손이 그녀의 둔부를 향했다.


"여기서 내 여자가 되기로 한다면 그깟 작은 나라 하나쯤이야 얻어다 줄수도 있지."


그말이 효과가 있던 탔이었을까? 발버둥 치던 그녀의 움직임이 이내 멎었다.

대신 한층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다른 누구도 아닌 제게 책임을 맡기신 나라. 이대로 죽는것은 무책임하고, 또 정조를 바쳐 남의 힘으로 얻은들 그게 무에 의미가 있습니까?"


스윽.

그녀의 두손은 이미 언월도의 자루를 쥐고 있었다.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다음번엔 휘두르겠습니다."


그제야 장료는 그녀의 두손이 언월도의 자루를 쥐고 있다는것을 깨닫고, 물러섰다. 하지만..


"말로는 무엇이든 하지요. 그대에게 정녕 휘두를 각오가 있을까?"


장료의 도발은 끊이지 않았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핫!"


비명성에 가까운 기합을 지르며, 그녀는 눈을 질끈감고 언월도를 휘둘렀다.

휘익~

언월도는 생각보다 강한 기세로 장료의 허리를 향해 쇄도했다. 그 무게 때문에 여자인 쉘이 제압하지 못한것이다. 쉘은 당황한 나머지 언월도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텁!

그러나 곧 끔찍한 광경이 들이 닥치리라 생각했던 그녀의 우려와는 달리 그녀가 다시 눈을 떳을때 장료는 멀쩡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물론 한손으로 언월도의 날을 막은 채였다.


"여인의 몸으로 남자의 몸통을 두동강 내는것은 어렵소."


울컥!

쉘은 성이나서 뭔가 외치려해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료의 잔잔한 미소와 말에 그녀는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다음번엔 목을 노리시오. 자루도 놓쳐선 안될겝니다."


아!


".. 예.."


쉘은 얼굴을 붉히며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험히 달려온 기색이 역력합니다. 씻고서 조금 쉬시지요. 남은 얘기는 그때 하지요."




팔에 부목을 댄 예일이 안으로 들어왔을때 이미 쉘도 쉬러 올라가고 없었다. 1층에 남아있던것은 언월도를 어루만지고 있는 장료 뿐이었다.


"다들 쉬고있나요?"


예일이 다가오며 물었다. 장료는 시선을 옮기지 않고 답했다.


"그렇소."


"....."


잠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예일이 뭔가 애써 말하려는 듯 했지만 장료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번번히 입을 닫았다.


"그녀는 왕녀로서 훌륭하오."


"예?"


장료의 뜬금없는 말에 예일은 퍼뜩 정신차렸다.


"하지만 왕재로서는 아주 많이 미숙하지요."


"......"


딱히 부정할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고작 일개 용병이 논할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아니, 어쩌면 사실은...


"사실은 나와 같은걸 느꼈기 때문에, 문밖에서 쓸데없는 시간을 할애한것이 아니오?"


장료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물어왔다. 예일은 잠깐 당황한듯 하더니 이내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눈치채고 계셧군요."


사실 예일이 돌아온 시간은 꽤나 전이었다. 장료가 그녀를 한창 꾸짖고 그녀가 화가 나기 직전의 시점이었다. 말리자면 충분히 말릴수 있을때였다. 그러나 예일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왕녀로서 갖는 긍지나 신념은 존중하는 바였다. 하지만 왕으로서는 뭔가 부족했다. 장료는 경솔한 남자가 아니었고, 이 사소한 분쟁이 아무 의미없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판단에서 그는 말리지 않는쪽으로 결정한 것 이었다.


"저는 천한 일개 용병입니다. 그런자가 감히 일국을 책임지는 왕도王道를 논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지요. 하지만 당신은 다르십니다. 뭐하나 명확히 알수있는게 없지만, 어쩻든 장료님 께서는 뭔가..자연스럽달까요?"


"......"


"료님 말씀대로 그녀는 여느 공주들과는 달리 훌륭한 왕녀입니다. 선하게 마음쓸줄 알고 남을 배려할줄 알며, 낯선 역경에 직면한데도 불평할줄을 모르고 이겨내려 애씁니다. 하지만, 결국 이겨내는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예일은 천장을 올려다 보며 얘기했다.


"그녀는 여느 공주들과는 다르지만, 그녀 역시 여느 공주들처럼 드넓은 창공이 아니라 궁전의 천장을 올려다 보며 자라신 분. 료님의 가르침은 그녀에게, 궁전 에서는 겪을수 없던 병이되고 상처가 되지만, 그것을 잘만 이겨낸다면, 흉은 아물고, 병에는 면역이 생길테지요. 그렇기에 저는, 물론 그럴 힘도 자격도 없지만, 장료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말리지 않고 지지해 드릴 생각입니다."


"듣기로 용병과 고용주 사이라고 들었는데.. 그대들의 계약에는 '忠' 이라는 조항도 있는가보군."


긁적긁적.


"잘은 모르겠지만.. 그또한 그녀의 재능 아닐까요? 아하핫."


예일은 그렇게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케이와 더프가 정신을 차리고 내려온것은 해가질 무렵의 시점이었다. 저녘 식사때가 되자 더프는 손해본 한끼 식사를 보충하겠다는듯 세끼분의 식사를 먹어치우고 있었고, 케이는 졸린눈을 부비며 맥없이 식사를 했다.

곧이어 쉘이 목욕을 하고 나왔고, 넝마같은 옷들로는 그녀의 새하얀 피부를 흉보일수 없었다. 느즈막이 식탁에 앉는 그녀는 뭔가 어색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저런 잡담이 오가면서 식사가 마무리 되고 가장 먼저 일어난것은 역시 가만 있지 못하는 더프와, 혈기왕성한 케이였다.


"케이, 말이나 타러 갈까?"


"좋죠!"


두사람이 의기투합하는 데에는 몇초 걸리지 않았고, 두사람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가장 활발한 두사람이 사라지자, 쉘의 어색한 기운은 더해졌고, 예일은 기운을 읽고 피하듯이 자리를 털었다.


"저도 아직 못다한 감사 인사를 하러 이만..."


그는 웃으며 일어났지만 쉘에게 있어서는 가장 잔혹한 웃음이었다.


'치, 치사해!'





예일은 여관 뒤에 있는 마구간으로 향했다. 거기엔 응당 있어야할 일행들의 말 두필이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빠르군, 이녀석들..'


그러나 용건이 있는것은 그 두사람이 아니었다.


"흑영.."


예일이 어색한 발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자 맥없이 감겨있던 흑영의 눈이 뜨여졌다. 옅은 달빛의 여운만이 마구간안에 남아 있을뿐, 그안은 대체로 캄캄했고, 흑영의 밤의 색깔과 잘 어울리는 털빛 때문에, 눈 두개만 덩그러니 허공에 떠있는듯 보였다.

예일은 그옆에 건초더미에 자리를 털고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달빛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정말 고마웠다."


한마리 말을 향한 표현이었건만, 그속에는 강렬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흑영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하지만 그를 부정하는 식의 반응은 아닌듯 보였다. 마치 '그딴것 쯤이야'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한..


'새삼 느끼지만, 주인과 정말이지 닮았군.'


작게 웃었지만, 곧 맥없이 고개를 늘어뜨리며 예일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미안하다.."


그말에도 여전히 흑영은 개의치 않는다는듯 시큰둥하게 앉아 있었다.


'....'


이 한마리 말과 사람사이에 잠깐동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예일은 살짝 눈을 돌려 흑영을 쳐다봤다. 순간 이 두 존재의 눈이 마주쳤다. 예일의 눈에는 가시지 않는 자책이 담겨 있었고, 때문에 생기가 없었다. 흑영은 그런 예일의 눈을 잠시동안 쳐다보더니..


푸흉~


맥없는 콧방귀를 뀌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하하.."


'설마 이 말이 나를보고 한심하다고 한숨쉰건가..?'


예일은 스스로 터무니 없다고 생각하며 쓰게 웃었지만, 흑영이라면 썩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벌떡!


그때 흑영의 갑작스러운 기상에 예일은 순간 당황했다.


"흑영..?"


그러나 이어진 흑영의 행동에 비하면 그것은 놀랄 거리도 못되었다.


까닥까닥.


고개를 뒤로 젖히는 시늉을 하는 흑영. 예일은 대체 뭐하는 건가 멍한눈으로 잠시간 쳐다 보다가 이내 의도를 깨닫고 놀라 물었다.


"지금 나보고 혹시.. 타라는거냐?"


흠!

흑영은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예일을 쳐다볼 뿐이었다.


"정말 괜찮은거냐?"


흑영은 귀찮다는듯이 다시한번 고개를 까닥 거렸다.


우와!

예일은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달려 들었다. 전에는 여유가 없어 좀처럼 느끼지 못했지만 정말이지 편안한 느낌이었다.


으럅

예일은 가볍게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흑영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그렇게 몇걸음만에, 순식간에 마굿간은 점이 되어 있었다.


"우핫!"

그 터무니 없는 속도감에 예일의 입은 벌어질데로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곧..


"이얏호오~!!!"


웬남자의 하늘을 울리는 괴상한 함성이 한동안 계속 되어야 했다.





"그대의 삼촌이, 베르마닐이라는 자라고 했던가?"


움찔

사전준비도 없이 갑작스레 찔러들어온 핵심에 그녀는 순간 당황했다.


"쉘님은 그자가 나쁘다고 생각하시오?"


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쉘은 말문이 막혔다.


"..그건..그야.."


"배신자에 간악하고, 의리를 모르는 인물이라서, 그가 나쁘다는 순진한 소리는 마시오."


"....."

그럼 대체 뭐가 나쁘단 말인가? 그녀는 반문하고 싶었지만, 이미 어떤 대답이 나올지는 예상하고 있었고, 그가 백번은 옳으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인간 관계아 아니라, 대의와 국기가 걸린 싸움이요. 인정도 의리도, 스스로 확신할수 없는 그 무엇도, 결국은 잘 짜여진 권모와 술수앞에 무너지게 마련이오.그것은 곧 힘이되고 국고를 가득 체우는 수단이 되며, 강한 병사를 기를수 있는 명분이 되오.

정치엔 선도 악도 없소. 도덕도 윤리도 명분만 갖춰지면 충분하지. 그것을 아는자와 모르는자, 쓸때와 쓰지 않을때를 구분하는 자. 거시서 유능한 지배자와, 무능한 지배자가 갈리는거요. 솔직한 입장에서 베르마닐 이라는 자는 '유능한' 왕의 자질을 갖고 있소. 적어도 그대보다는.."


장료의 말이 계속될수록 그녀는 의기소침해질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대와 그자 둘중 하나를 주인으로 섬겨야 한다면 난 몇번이고 주저없이 그자를 택할 것 이외다."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그말에 그녀는 속이 아려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장료의 모습이 자신의 편이 되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장 든든한 남자와 겹쳐보였던 탔이다. 체르바키가 나라의 규모에 비해 강대한 군사력을 구축할수 있게한 일등공신. 최강 군사 권력자 힐데군트. 처음 그에게서 배신 당했다는 것 을 깨달았을때가 그녀의 최대의 위기였다. 치솟아 오르는 배신감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장료는 그 쓰라린 감각을 다시금 끄집어 올려 되세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고통이야 말로 그녀가 감내해야 할 고통 이었다. 그녀가 이겨내야 할 장애물 이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잘 알겠어요. 저도 그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그가 싫고, 미워하는것은 어쩔수 없을테지만. 하지만 그가 정말로 왕권을 원했더라면 나는 순순히 물러날수도 있었어요. 이런 비열한 수단을 쓰지 않아도 그는 충분히 왕이 될수 있었다구요."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게 순진하다는 거요."


그러나 장료는 끝없이 차가웠다.


"그대가 그리 말한들, 사람의 마음은 변덕스럽고, 입은 간사해서, 언제 입장을 바꿀지 모르는 잠재적인 위험을 그는 끌어들이지 않은거요. 더구나 명분 싸움이라는것은 그리 단순치 않소.당신이 그냥 물러나는 것 보다는, 역적의 탈을 쓰고, 그가 영웅의 탈을 쓸때 비로소 그의 뜻과 명분이 같은 곳을 향하지. 설령 그대가 아니라, 그자가 왕위를 계승했대도 그대가 무사했으리라고는 보장할수 없소."


"....."


"여기서 포기하는것도 방법이오. 적어도 백성을 생각한다면 그쪽이 훨씬 쉬운 방법이외다."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삼촌은 야망이 커도 너무 큰분.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왕의 야망이 잠재적으로 백성들을 얼마나 괴롭힐지는 생각해 보셧나요?"


"그래서 그대가 통치자라면 백성들을 괴롭게 하지 않을거라는 거요?"


"적어도 무리한 싸움을 요구하지는 않겠어요! 작다고 무시받고, 약소국이라 놀림받고, 싸울줄 모른다고 지탄 받는데도, 백성들이 괴롭지 않다면 그정도 수모는 기꺼히 받아 들이겠어요!"


쉘이 확고한 표정으로 말했다.


"각자 분수에 맞춰 살아가므로 작지만 평화롭고 약하지만 풍족하며, 조촐하지만 행복하다. 탐욕없이 서로 나누고 존중하며 살아간다. 그런 것 이외까?"


"... 적어도 나의 백성들은 평화속에서 살게 하고싶다는 거예요."


하, 장료는 헛웃음 쳤다.


"그야말로 모순. 평화는 만드는게 아니라 지켜야 하는 것 이외다. 먹기 좋게 작은 약소국은 언제나 강호의 표적이 되게 마련이오. 적어도 그들에게 드러낼 이빨과 손톱을 기르지 않으면, 그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나라는 약소국 이라는 이유만으로 전쟁속에서 살게 될것이오. 그대가 부르짖는 평화야 말로 부유하고, 강대한 나라속에 존재할 수 있는것. 밖에서 싸울자가 있어야, 안에서는 평화가 싹트는 법이요."


장료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군주도 아니고, 하물며 일개 위정자도 되지 못하오. 그러나 난세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고개를 들었다 사라지는 수많은 이상론들을 접했으므로, 내가 배운 유일한것은, 근거없는 희망은 안타깝도록 허무하게 바스라진다는 것이요."


쉘은 뭔가 대꾸하려 했으나 장료에 의해 또다시 막혀야했다.


"약한 나라가 백성을 위한답시고, 그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할때, 그들은 지치고 상처입는거요. 백성을 지킬 힘마저도 얻을 의지가 없는 나라는, 그 어떤 백성을 위한 명분을 내세운들, 안하느니만 못하지. 나라가 야망을 가지면 백성들은 희망을 보고 강한 병사가 되지만, 나라가 허울좋은 꿈만을 쫒는다면, 백성들은 무기력한 농민일 뿐이오. 그들은 통치자의 신념에따라 수십 수백가지의 형태로 변하오."


장료는 당부하듯이 말했다.


"기억하시오. 그대가 약했으므로, 실로 쓰라리게 희생되어진 것들을. 그대가 조금만더 강했어도 지킬수 있었을 것들을. 강한 힘속에 평화는 깃들고, 원대한 야망으로 힘은 싹트오."


그대가 약했으므로 실로 쓰라리게 희생되어진 것들. 그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 그녀를 옹호한 귀족들중 일부는 참형을 당했을 것이고, 잘됬데봤자 필시 감옥에서 편찮은 생활고를 겪을 것 이었다. 예일의 부상도 일행들의 피로도 모두 그녀로 인해 비롯되었다.


"잘생각해 보시오. 그대의 허황되고 이기적인 의지를 관철시킬수도 있을것이고, 그들 모두를 위해 포기하는것 또한 방법이라고 했소. 어느쪽을 선택한들, 약속드리지요. 적어도 아보카도로 가는 동행길에는 힘을 보태 드리리다."


장료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밤은 한층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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