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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뇨리따
작품등록일 :
2013.04.05 22:16
최근연재일 :
2015.03.0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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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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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2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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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DUMMY

"대공이 부재중인 것은 유감이지만, 화급을 다투는 사안이니 우리끼리 시작합시다"


근엄한 왕의 목소리가 의회의 시작을 알렸다.

사리판단이 확실하고 뛰어난 재지를 갖춘 팔라시오스 대공의 부재는 실로 유감이었지만, 지금의 왕으로서 한편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명백한 반대 한표와, 그 지대한 말과 영향력이 지금은 행사되지 않을 거라는 부분에서..


왕은 상석에 앉아 있었다. 그 좌 우로 기다랗고 고풍스러운 원목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앞에는 의회의 참석자들로서 발언권을 가진, 힘 있는 제후들이 도합 14명 앉아 있었다. 물론 대공의 공석은 그대로 비워진 채였다. 그 뒤로는 국사에 관심이 많을수 밖에 없는 참관 귀족들이 서있었으나 발언권은 없었고, 세레나는 그 가운데에 -왕의 정면- 심판을 기다리는 죄수마냥 앉아있었다. 그녀를 제외한 일행들은 참관 귀족들에 섞여 눈에 띄지 않았다.


"역시 썩 호의적인 분위긴 아니군요."


옆에 서있던 장료에게 예일이 속삭이듯 말했다. 어조는 꽤 씁쓸했다. 장료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겠지.'


저토록 인정많은 왕이 망하지 않은것은, 기꺼히 제후들의 말을 듣는 공명정대함 때문이리라. 그 만큼 이나라의 제후들은 자기 의사에 솔직할 것이었고, 이성적인 제후들이라면 전쟁의 불씨를 달가워 안을리 없었다.


"다음 행선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구료."


장료의 말에 이번엔 침묵을 지킨것은 예일쪽이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중인듯 했다. 이미 다음 행로를 정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 그의 눈은 세레나를, 가혹한 심판대에 올라있는 가녀린 비운의 왕녀를 향해 있었다.


"무의미한 논의. 득 될 것은 전무합니다."


처음 입을 뗀것은 안톤 백작이었다. 그는 고집스럽게, 그리고 확고한 표정으로 단호히 말했다. 그말에 자연스레, 일부의 표정은 굳을수 밖에 없었다.


"당찮은 소리! 여기서 의를 저버리거든 면목이 없습니다. 아보카도는 대외적으로 신의를 잃을 겁니다!"


그 목소리 만으로 장내를 가득 체우는 장엄한 기운. 단지 클 뿐만이 아니라 웅장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의 주인은 마리오 백작이었다.


'당찬 사내로군.'


장료는 이 전부터 이 사내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일견에 범상찮은 무장일거라 예측할 수 있었다. 의기넘치고 호전적이고 감정적인.. 그러나 대게 정치적 수완은 그저 그런. 그가 아는 그런 인물이 몇몇 머리에 떠올랐다. 그런 생각을 뒷받침 하듯..


"무엇에 대한 면목이요, 신뢰란 말입니까? 언제부터 반역자를 품는 것이 의리가 되었단 말이지요?"


안톤의 날카로운 지적이 마리오의 말을 잘랐다.


'반역자..'


그 싸늘한 어감이, 세레나의 뇌리에 감겼다. 문득 선왕이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 근심이 늙은 왕의 눈에도 들어와, 왕은 한숨쉬었다.


"아직 반역자라 단정짓기엔 조금 이르지 않습니까..? 섣부른 판단으로 배척하기엔 은혜가 너무.."


누군가 나서 우유부단한 목소리로 변호하려 했으나, 안톤의 날카로움은 가시질 않았다.


"우리의 판단은 중요한게 아니오! 체르바키 당국과, 대외적 판단이 중요한 것이지요. 주변국 모두가 그녀를 반역자라 인식하는데, 우리가 아니라고 우긴들 아무런 설득력도 없지요."


'그렇지..'


장료는 말없이 수긍했다.


"더구나 그 은혜라는 부분도, 체르바키의 은혜이지 그녀에게 입은 은혜는 아니지요. 그런데 도리어 은혜입은 나라의 반역자를 감싸고 그들로부터 대립한다니, 밖에서 보면 이런 배은망덕이 또있겠습니까!?"


안톤의 지칠줄 모르는 맹공에 좌중은 침묵했다. 그리고 대게 수긍하는 바람이 강했다.


"우리에겐 무의미한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무모한 싸움을 감당할 힘도 없습니다."


그렇게 안톤이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탕!

통쾌하게 탁자를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오가 천천히 일어나며 으르렁 거렸다.


"힘은.. 있소이다."


낮은 소리로 뇌까렸지만 모두가 똑똑히 들을수 있었다. 그렇게 무게감 있는 한마디였다. 그 위압감에 안톤은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냉정한 표정으로 맞대응 했다.


"글쎄 그리 감정적으로 생각할 문제는 아니레도.."


이후 의회의 토론은 격화되었다. 대게의 반대파가 맹렬히 몰아붙였고, 소수의 찬성파는 간신히 변호해 나갈 뿐이었다. 그나마도 왕의 위엄에 의지해 버텨나가는 정도였다. 예일은 세레나의 가녀린 어깨를 쳐다봤다. 위축된 몸, 숙여진 고개. 그녀에겐 상처가 될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관통하고 있었다. 예일은 당장 다가가 그녀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주고 싶었으나 그럴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대게의 제후들이 한마디씩의 발언은 하고 있을때,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한남자가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섬세한 콧날을 가진 깔끔한 인상의 귀족. 중년의 권력가들 사이에 서 유유히 젊음을 빛내는 사내였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일관 하던 이 사내는 격렬한 잡음으로 시끄러운 이 의회장에, 날카로운 말로 핵심하나를 내던졌다.


"그녀는 어쩨서 여기 있습니까?"


움찔!

큰 목소리도 아니었건만, 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날카롭게 좌중의 귀를 파고드는 오묘한 힘이 있는 목소리였고, 좌중은 그에게 집중했다. 왕도, 세레나도, 장료와 그 일행들도. 단 한마디로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듯 한 정적이 생겨났다. 그 과분한 주목에도 이 젊은 귀족은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의미인지 물어도 되겠나, 큐라소 백작?"


왕이 묻자 그는 차분하게 답했다.


"자신을 반역자라고 부르는 이 거북한 자리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앉아 있는거라면 이유가 있으실테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세레나 공주님?"


반역자라는 날카로운 호칭 사이에, 목소리는 차가웠어도 예를갖춰 공주님이라 불러주는 그 말의 따뜻함을 세레나는 잠시간 음미했다. 그러다 이내 그 눈을 마주하고 아찔하게 환한 미소로..


"배려에 감사합니다, 로드 큐라소."


활짝.

하고 피어난 그 압도적인 미소에, 그 수려함에 좌중은 넋을 잃었다. 그 미소를 정면으로 받은 큐라소 역시 순간이나마 표정에 냉정을 잃었다. 그러나 이내 기색을 가다듬고 말했다.


"천만의 말씀."


큐라소의 에스코트가 없었다면, 좌중의 시선은 그와 그녀에게 몰리지 않았을 것이고, 창백하도록 순수한 그 미소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도 그녀도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 미소 하나가 작은 변수가 되어, 반역자라는 오명이 주는 위화감을 한꺼풀 벗겨 냈는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한다해도 뻔뻔한 입장인줄 알고, 감히 발언할 자격도 없음을 압니다. 그러니 어떤 결과든 감수할 생각입니다. 다만 그 이전에 반역자가 아닌, 긍지높은 왕가 프리드리히의 후예로서, 체르바키의 공녀로서, 당당히 한말씀 드려도 될런지..?"


떨리는 목소리로 여리게 묻는 그녀의 표정은 소녀였다. 그녀의 맑고 투명한 눈은 큐라소를 시작으로, 좌중의 시선을 한번씩 맞추고는 왕에게 머물렀다. 왕은 조용히 그 눈을 마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는 살풋 미소지으며 겸허히 눈을 감았다.


그 신성하고 경건한 모습앞에, 찰나의 침묵은 차라리 은혜로울 지경이었다.


"그러시다면.."


번쩍. 하고 우아하게, 기다란 속눈썹의 무게감을 느끼며 천천히 뜨여진 그 투명한 눈속에는 일국의 명운을, 그 책임을 짊어진 왕가의 긍지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기품을 잃지 않고 천천히 일어났다. 가슴을 펴고, 당당히 한발 나섰다.


"일국의 대표이자, '적법한 왕권의 후계'로서 당당히 제 견해를 피력하겠습니다!"


그 뻔뻔함에, 아니 그 위엄에 좌중은 감탄했다. 오로지 예일을 비롯한 그녀의 일행들만이 웃었다.


'성장했군.'

장료의 감상이었고,


'뭔가 달라졌구나.'

늙은 왕도 그제사 눈앞의 어린소녀를 새삼스레 쳐다봤다.

그곳엔 더 이상 어린소녀는 없었다.


"처음 제후들의 충정어린 비명과 피를 방패삼아 이 비루한 목숨을 부지 할 때, 전 그저 저주스러운 운명을 원망할 뿐인 무력한 계집애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미간의 근육이 떨렸다.


"특별할 것 없는 나는 살아야 했고, 그들은 어쩨서 희생되어야 했는지 처음에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피를 토하며 아보카도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의문을 지우지 못한 채- 가혹한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좌중은 숨죽였다. 그녀의 표정에서 당시의 절박함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그 모험속에서 다행스럽게도 필생의 스승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일행들의 모습을 찾았다.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 나가는 방법을 가르치셧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물자, 예일은 온화하게 웃었다.


"용맹하게 견뎌내는 법을 가르쳐 주셧습니다."

더프는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해맑게 웃는 케이를 스쳐 장료에게 머물렀다.


"시국을 내다보는 냉정한 시각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 했지만, 그 등에서부터 근원모를 든든함을 느꼈다.


"그분들의 조력에 힘입어 여러 역경을 해쳤습니다. 땀도, 피도, 오로지 흘리지 않은것은 눈물 뿐... 그 와중에도 가장 괴롭던 것은 숱한 희생의 무게를 더한 이 한 목숨의 무게감 이었습니다."


늙은 왕은 속으로 한숨쉬었다. 만수를 누리고 있지만, 가신들의 희생, 반역자의 오명이 가져 올 그 부담감을 늙은왕도 그저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것은 여인이, 그것도 아직 어린 아이가 지기엔 터무니없어 가혹한 짐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 있습니다. 이 목숨의 무게도, 그들의 기대감도 고스란히 이곳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곳으로 가져 온 것, 나의 스승들이 성장시킨 것, 그리고 그들이 희생으로 지켜낸 것은 그저 나라는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눈은 똑바로 정면을 향했다. 그 찬란하고도 영롱한 눈빛이 마법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나의 조국, 나의 국민, 나의 아버지. 그들의 대의와, 그 숭고한 의지를 지킨 것 이라는것을.. 나의 사명은 사는게 아니라, 그 의지를 받들어 고스란히 후대에 전하는 것 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습니다!"


여린 소녀는 온데간데 없고, 긍지높은 왕가의 후예만이 있었다.


"대의는 등을 돌렸고, 군사력은 물론, 권력도, 대외적 호소력도 그들에 대항할 무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있는것은 지금도 뜨겁운 피가 흐르고 있는 이 왕가의 핏줄과,껍데기뿐인 명분과, 의지의 대를 잇고자 하는 무모한 호기 뿐."


한층 더 담대한 표정으로


"귀국에 무엇하나 쉬울것 없는 문제들을 떠맡기는 뻔뻔한 처사임을 알지만, 이 역경을 딛고 적법한 자리에 서거든 그때는 한가지만은 약조드릴수 있습니다."


"그게 뭐지요?" 안톤이 냉정한 눈으로 물었다.


"아보카도는, 귀국을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 않을 결연한 맹우를 얻을 것 임을, 왕녀가 아닌... 여왕으로서!"


그 눈빛에, 난데없는 위엄에 일부는 압도 되었을 것이다.

그를 증명하듯이 장내는 엄숙했다. 숨소리 하나도 허용치 않는 적막이 팽배했다. 그 적막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그 긴장감을 깨뜨린 것은, 늙은 왕이었다.


"일국의 후계에 대한, 혹여 있었을지 모를 소홀한 대우를 용서하시오, 체르바키의 여왕이여."


늙은 왕의,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았다는 그 감격에, 요동치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녀는 마침내, 조금은 소녀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 기꺼히 용서합니다, 아보카도의 왕이시여."


어느 때 보다도 형식적인 내용이지만, 그 사이사이에 은근한 온정을 모두가 느낄수 있었다. 늙은 왕도 비로소 푸근하게 웃었다. 한결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이제는 자라버린, 더는 어린 소녀가 아닌 일국의 여왕이 짊어질 짐의 무게를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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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1 13.04.15 546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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