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수집
독도 등대.
둘째 날은 강성철이 미끼 스킬을 사용했다. 박철과 다르게 유인한 괴물의 수가 무척 적었다. 스킬을 30초 사용했을 때 겨우 2천 마리 정도가 몰려왔다. 그래도 강성철 덕분에 김연희 박사가 스킬 경험치 공식을 대충 만들어낼 수 있었다.
"스킬을 자주 발동하고 멈추면 스킬 경험치가 빠르게 쌓입니다."
덕분에 문현은 기력이 찰 때마다 바닥이나 벽을 잡고 철벽 스킬을 사용했다 중지했다를 반복했다. 여덟 명의 파티라서 그런지 스킬 레벨이 빠르게 올라서 지루한 느낌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험치 공식을 만들기 어렵네요. 신기 씨는 다른 분들보다 경험치를 더 받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경험치 유실도 있다고 하니 변수가 너무 많아요."
신기의 노력으로 분위기가 무척 괜찮아졌다. 김연희 박사와 적절히 대화하며 분위기를 풀었고 김연교가 자신도 다음 달에는 대리가 된다면서 너스레를 떨어 분위기를 달궜다.
F급의 김연교가 이미 93레벨이 되었다. 내일은 박철이 미끼를 사용할 예정이니 E급으로 등급이 오를 가능성이 무척 크다. 그리고 E급의 공우진도 레벨이 쑥쑥 오르는 게 느껴져서 곧 대리를 달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신기가 적절하게 보호 특성을 사용한 덕분에 하현주도 많이 나아졌다. 외부의 부정적인 자극을 최소화하니 천천히 우울하던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김연희가 초반에 실수한 게 미안했는지 자주 챙겨주며 둘이 무척 친해졌다.
"원래 상부에 보고하는 내용을 여러분에게 누설하면 안 되지만, 특별히 인심 씁니다. 우리가 첫날 처리한 괴물의 숫자는 총 2만3천 마리 정도입니다. 그리고 울릉도에서 같은 날 처리한 괴물 숫자가 평소보다 8천 마리 정도 적다고 합니다."
일부는 김연희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렸지만 박철을 비롯한 몇몇은 감을 잡지 못했다.
"여기서 울릉도까지 거리를 생각해 보세요. 미끼 스킬에 관한 인터넷의 가설이 정확하다는 걸 우리가 증명한 겁니다. 우리가 괴물을 이쪽으로 끌어오면서 울릉도로 향하는 괴물의 숫자가 현저히 줄었습니다. 즉 등대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괴물 끌어오기가 가능함이 증명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거나 다름없죠."
작은 환호가 일었다. 사실 신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저 물결에 휩쓸리며 뭐가 뭔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래도 이들 대부분 등대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자신들이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 잘 알고 있다.
"빨리 D급이 되어서 마법을 사용해보고 싶네요."
공우진의 말에 차현영이 말을 받았다.
"저도 그래요. 빨리 D급이 되어서 제대로 된 스킬을 쓰고 싶어요."
"나는 큰 욕심이 없어요. 그저 소소하게 우리 팀장님과 같은 검술 스킬 얻고 싶어요."
김연교의 익살스러운 말에 다들 빵 터졌다. 눈치가 조금 부족한 김연희가 어긋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같은 스킬 이름이라도 각자 그 효과가 다릅니다. 검술 스킬을 얻는다 해서 신기 씨와 똑같은 위력을 보인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 김 박사님 남자친구 없었던 게 분명해. 유머를 몰라요 유머를."
김연교의 말에 김연희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진지했음을 깨닫고 얼굴이 빨개졌다. 각성자가 되면 괴물로 인한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는다. 거의라고 한 것은 하현주처럼 괴물에게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드물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부에서는 각성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다며 일주일에 이틀씩 쉬도록 일정을 안배했다.
그래서 하루 쉬는 날에 회의를 명목 삼아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다. 몰래 스킬을 쓰고 괴물을 불러와도 괜찮지 않냐고 은근히 말을 꺼냈지만 휴식도 데이터 수집을 위한 과정이라며 김연희가 단칼에 제지했다.
"함께 영상을 보며 다른 곳에 나타난 괴물들을 좀 알아보죠."
김연희는 노트북을 영상 출력기에 연결했다. 화질이 조금 나쁘지만 관람하는 데 영향이 전혀 없었다. 가장 먼저 튼 영상에 나오는 군인의 군복으로부터 미국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청동 로봇과 강철 로봇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덩치가 조금 더 큰 청동 로봇이 우리의 해골에 해당하는 괴물입니다. 강철 로봇은 덩치가 조금 작지만 훨씬 더 단단하다고 합니다."
'내 성휘가 저들에게도 먹히나?'
- 정보가 부족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키는 비슷하게 1미터 정도입니다만 청동 로봇이 조금 더 사이즈가 큽니다. 이들은 인간이 걷는 속도보다 조금 느립니다. 그리고 근접 공격이라 크게 위협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걷는 체력과 단단한 방어력 때문에 점령전에 무척 유용합니다."
화면에 청동 로봇 하나가 확대되었다. 건축용 장비의 거대한 집게에 잡힌 청동 로봇은 두 팔을 열심히 휘젓고 있다. 밑부분을 확대한 화면을 통해 탱크의 캐터필러와 같은 바퀴가 네 개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방형을 이룬 네 캐터필러로 방향 전환을 합니다. 좀비나 해골과는 달리 방향 전환이 무척 원활합니다. 이동 속도는 더 느리지만요."
여러 종류의 총기가 즐비하게 늘려있다. 권총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총기가 있다. 밀리터리 마니아를 자처하는 김연교도 이름을 모르는 총기가 여럿이다.
"보시다시피 청동 로봇은 금속 주제에 잘 깨지지 않습니다. 저지력보다 관통력이 강한 무기가 더 효과적입니다. 제어 장치로 추정하는 금속판의 위치가 일정해서 관통력이 강한 화기로 정확히 조준하면 청동 로봇을 멈출 수 있습니다."
다양한 총기로 청동 로봇을 향해 사격한 후 탄흔을 비교하며 어떤 화기가 효율적인지 설명했다. 다음 강철 로봇으로 바꿨다. 모양도 비슷하고 바닥의 캐터필러도 똑같았다. 다만 청동 로봇과 달리 강철 로봇은 관통력보다 저지력이 더 잘 먹혔다.
"다음 화면을 보시면 놀라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울퉁불퉁한 땅에서도 로봇은 넘어지지 않고 느리게나마 잘 움직였다. 그러다 지뢰를 밟았는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로봇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러자 주변의 로봇들이 다가와서 넘어진 로봇을 일으켜 세웠다. 가끔 돌진하며 앞을 막는 해골의 두개골을 날리기도 하는 좀비와는 달리 동료애가 무척 돈독했다.
"미군은 특별히 저 로봇을 '생포' 했습니다."
김연희의 말과 함께 화면에 방금 그 로봇으로 추정되는 괴물이 아까처럼 커다란 집게에 잡혀있었다. 밑부분을 확인한 모두는 소름이 돋았다. 네 개였던 캐터필러가 세 개로 줄었고 셋은 삼각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과학 수준으로는 설명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입니다. 그리고 로봇을 잘게 해체했지만 동력원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결국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아주 놀라운 가설을 내세웠습니다."
한 호흡 쉬면서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모은 김연희가 엄청 중대한 발표를 하듯 무척 강조하며 말했다.
"금속 생명체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금속 생명체가 등장하는 영화가 무척 많았기에 딱히 놀랍지 않았다. 아는 게 없으니 놀라울 것도 없다. 오직 금속 생명체가 탄생하려면 얼마나 낮은 확률을 거듭 뚫어야 하는지 아는 김연희만 팔에 난 소름을 연신 문지를 뿐이다.
'저거 진짜야? 그리고 설마 해골이나 좀비도 생명체인 건 아니겠지?'
- 인간이 생각하는 생명체의 정의가 불완전하여 적확한 답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미군은 이들에게 EMP 공격을 시도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전술핵을 이용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습니다. 이는 다른 곳에 출현한 괴물들도 마찬가지로 방사능에 의한 피해를 전혀 입지 않고 있습니다."
마지막 십여 분의 대규모 총격전은 모두가 말없이 관람했다. 영화처럼 멋있지가 않았다. 로봇들은 무미건조한 걸음을 반복했고 미군은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사격을 거듭했다. 전장이 주는 감동이나 낭만 따위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곳의 영상도 편집이 완성되는 대로 하나씩 보여드릴게요."
### DUAL SYSTEM ###
울릉도 주둔군 지휘실.
"오늘 독도 팀이 쉰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협회에서 각성자들까지 지원해 줬으니 오늘 괴물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한 마리 오차도 없이 체크해.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
수하가 명을 받고 나간 후 지휘관은 큰 한숨을 몰아쉬었다.
"제길, 각성자 여덟이서 하루에 2만 마리가 넘는 괴물을 처리했다고? 이러다 아예 군대가 사라지고 각성자와 경찰만 남는 게 아닌가 생각되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일본은 이미 무정부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도 만주 땅 대부분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그곳들을 수복하고 관리하려면 당연히 군대가 필요합니다. 그게 아니라도 북한 땅을 수복하려면 당연히 군대가 없어서는 안 되죠."
지휘관은 박영광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박 대위, 군에서 서로 편 가르기 하지 말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자네 말에는 동의해. 그런데 이런 일은 좀 더 높은 분이 나서서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닌가? 자네와 나는 지금까지 친분이 전혀 없었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건 좀 그런데."
나이 차이도 나고 계급 차이도 있고 친분이 전혀 없다. 비록 헌터 협회의 각성자들의 통솔자 신분으로 왔지만, 그건 핑계에 불과하다.
"저는 어떤 세력을 대표한 게 아니라 그저 제 생각만 말씀드린 것입니다. 저랑 같은 편 먹자는 게 아니고 모두가 같은 편 먹자는 거죠. 그리고 태운 정밀에서 만든 무기가 여기에서 꽤 환영받는다고 들어서 부하들에게 한 수 배우게 하려고 특별히 찾아온 겁니다."
"그쪽에서도 이미 많은 양을 주문했다고 들었어.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속 시원하게 말해보게."
박영광은 그제야 웃음을 거두고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독도 팀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계실 겁니다. 만약 저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우리는 다시 괴물이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거기에 북한을 수복하고 일본과 만주 땅까지 노릴 수 있게 됩니다. 러시아가 버린 원동 지역의 땅도 언젠가는 우리 국토로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박영광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이 박영광의 머리가 아닌 더 높은 분 머리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휘관은 박영광의 말에 무척 집중했다.
"지금 상부에서 각성자를 전부 직업 군인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군대는 각성자 세상이 됩니다. 괴물을 상대하는 데 훨씬 유용한 각성자들이 우리 자리를 다 빼앗을 겁니다. 군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각성자를 따로 독립시켜야 합니다. 군부와 밀접한 협력 관계에 있는 독립된 세력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네랑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가 많은가?"
"열심히 친분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군대는 국가의 영토와 국민을 지키는 존재여야 합니다. 그런데 각성자가 들어오고 모든 게 각성자 위주로 돌아가면 군대는 변질합니다. 괴물 퇴치가 최우선이 되겠죠. 국가를 위협하는 건 괴물뿐이 아님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맞는 말이야. 나도 박 대위랑 친분 쌓고 싶은데 참 안타깝네. 여긴 군사지역으로 변해서 주류 반입이 안 되니 말이야."
"그래서 제가 부상 소독용으로 사용하는 양주 몇 병 들고 왔습니다. 여기 목록입니다."
식량과 의복 그리고 여러 가지 소모품들이 적혀있는 목록을 보며 지휘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자신에게 뇌물 따위를 찔러줬으면 무척 실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자기 마음에 꼭 들게 군인에게 필요한 물품을 선물로 준비했다.
"군대와 각성자는 서로 다른 역할이 있지. 섞어서 혼잡하게 만드는 것보다 당연히 각자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서로 돕는 게 훨씬 효율적이야."
최근 부업으로 태운 그룹의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박영광은 연이은 성공에 기쁜 웃음을 지었다. 북한과의 통일을 앞두고 괴물의 침공에 시달리는 이때 각성자가 군에 들어오면 군 체계에 혼란이 생긴다.
각성자를 군에 편입시키려는 상부의 의도를 무산시키기 위해 박영광은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다.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 재물을 찔러주고, 군에 자부심을 가진 자는 그 자부심을 건드리고, 원칙에 충실한 자는 원칙으로 설득했다.
'등대 프로젝트 꼭 성공해라. 이 박영광의 모든 걸 너에게 걸었다.'
- 작가의말
박영광은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강유성의 평가처럼 독기가 충만해 시킨 일은 어떻게든 해내는 사람이죠.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