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진출
서울.
UN이 주최한 각성자 관련 회의가 서울에서 열리게 되었다. 홍차나 커피 따위를 앞에 놓고 벌인 회의에서는 주로 봉인 각성자의 처우에 대해 상의했다. UN에서 봉인 각성자들을 모아서 관리하자는 제안에, 상임이사국 중 미국만 동의했다. 중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술잔을 놓은 비공식 회의에서는 홍익의 지분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다. 중국에 2천만의 인명 피해를 주고 20만에 가까운 군인과 각성자를 죽음에 몰아넣은 네 괴물을 2천도 안 되는 피해로 소멸했다. 용병 회사 홍익의 실력과 필요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다.
각국이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부분은, 고등급 괴물이 딱히 사람을 죽이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괴물 부하들이 죽인 사람도 꽤 되지만, 괴물 때문에 도주하다 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고, 도주하다 고립되어 굶어 죽은 사람도 있다. 만약 괴물이 작심하고 사람을 죽이려 한다면, 수억의 피해는 가뿐하게 주었을 것이다.
홍익의 지분에 관한 협상이 끝난 후, 가장 중요한 의제가 남았다. 봉인 각성자의 '정확한 활용'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우선 반동파(반란군이라는 뜻)가 벌인 이번 사태를 중국 정부도 무척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물에는 여러 면이 있고, 이번 사태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지만, 긍정적인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전에 제주도로 협상하러 왔던 돼지 얼굴이 자신감 있는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 통역들이 빠르게 돼지 얼굴의 말을 각국 대표에게 전달했다.
"우선, 봉인한 화산섬과 해저 화산에 대해 괴물들은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들이 화산의 봉인을 감지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일부 화산섬을 봉인하여 그 효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역이 전해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있고 가로젓는 사람도 있고 무표정인 사람도 있다.
"다음, 곤륜으로 유인당한 괴물들은 딱히 목적 있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리도 흩어지지 않았죠. 적당한 크기의 섬, 예를 들어 대만과 같은 섬에 괴물을 몰아넣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신기에게 시선이 몰렸다. 정보를 풀라는 뜻임을 알고 신기는 홍차를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였다.
"해저 화산의 봉인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물론 그 전제로 소각장을 운영해야 하죠. 해저 화산을 봉인하면 해변으로 오는 괴물이 훨씬 적어져서 수비가 쉬워집니다."
"그러나 괴물을 한 곳에 몰아넣는 방식은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규격 외의 괴물이 나타난 건 괴물의 밀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괴물을 대만과 같은 섬에 몰아넣는다면, 대만에서는 고등급 괴물이 무척 많이 나올 겁니다."
많은 사람이 신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나온 규격 외 괴물은 화산의 봉인을 푸는 임무를 받고 왔습니다. 임무를 완수했다고 느끼자 뭘 해야 할지 몰랐죠. 그러나 봉인된 화산이 없을 때 나온 괴물은 다릅니다. 무시무시한 힘을 인류를 말살하는 데 사용할 겁니다."
"그럼 화산섬을 봉인하는 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괴물을 모으는 걸 반대하는 것이지, 일정 지역의 화산을 봉인한 후, 규격 외의 괴물과 그 괴물이 이끄는 부하들을 유인해서 소멸하는 건 동의합니다. 그러려면 봉인한 화산을 지켜낼 힘부터 키워야겠죠?"
그 후에도 많은 의견이 오갔다. 각자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여 강한 주장을 펼쳤다. 신기는 가끔 정보를 조금씩 풀 뿐, 어려운 말을 주고받는 설전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럼 제가 정리하도록 하죠."
"우선, 면적이 작은 화산섬과 해저화산의 봉인에는 다들 동의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물론 봉인이 가져오는 영향을 무마할 정도의 소각장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리고 봉인 속도는 일단 느리게 하고, 데이터가 쌓이면 적절한 속도로 조절하는 것으로 하죠."
"다음, 큰 면적의 화산섬을 하나 봉인하고 괴물의 반응을 지켜보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후보 지역으로는 제주도와 아이슬란드 그리고 대만 등이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실패해도 피해가 적다는 이점이 있고, 제주도는 위치상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지원하기 편하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하면 괴물의 움직임이 단순해져서 수비하기 쉽다는 이점도 있죠. 괴물이 제주도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일본이나 중국 혹은 한국의 본토에서 미리 저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만은 위치상 더 많은 국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스터 신의 의견대로 대만은 소각장으로 남겨두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요. 동남아 지역에서 소각장을 운영할 수 있다면, 대만의 봉인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멕시코 지역의 화산을 봉인하고 남미와 북미 대륙의 괴물 이동 경로를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면 충분한 역량과 자원을 먼저 갖춰야 할 것입니다."
미국 대표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가 끝나려는 조짐이 보이자, 신기가 손을 들어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이번 규격 외 괴물에게 마력 각성자의 스킬이 제대로 된 효용을 보이지 못함을 느끼셨을 겁니다. 각국에서는 기력 각성자의 양성에 힘을 기울이기 바랍니다. 제주도에 양성 시설과 훈련 교본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습니다. 화산섬이어서 레벨도 올릴 수 있고요. 많은 이용 바랍니다."
"미스터 신, 혹시 생각하고 있는 계획이 있습니까?"
"각성자의 수량과 역량을 최대한으로 키우는 게 선결 과제입니다. 충분한 힘을 갖추면 그때 제 생각을 말씀드리죠. 괴물이 다시는 못 나오게 막을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 DUAL SYSTEM ###
미국.
놀랍게도 공항에 수천 명의 팬이 몰려있었다. 물론 신기의 팬이 아닌 제이크와 하현주의 팬이 대부분이다. 공우진의 팬들도 조금 있고 김태풍의 팬도 몇몇 보였다.
한국의 등대와 소각장, 일본의 등대 겸 소각장 그리고 중국 남해의 '신 만리장성' 덕분에 아시아 지역은 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신기는 아시아 지역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고 미국에서 각성자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안정시킨 후, 러시아와 유럽을 도와 각성자를 만들어낸다. 그다음 중동 지역을 도운 후, 아프리카의 화산들을 봉인한다. 화산을 적당히 봉인하면 해골용에 비견하는 초월자 등급의 괴물이 나타날 것이다. 그 괴물을 처리하면 아프리카는 인류의 영지가 된다.
그 전에 D가 나와도 좋고 안 나와도 좋다. 일단 영지 하나만 확보하면 D의 계획은 완전한 실패다. 차츰차츰 영지를 넓혀가면서 괴물을 다 몰아내고, 그러고도 D가 안 나오면 끄집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찾으면 D를 소멸시키고 찾지 못하면 기록을 남겨 경계하면 된다.
'혹시 이미 멸망한 문명 중에 D에 관한 기록이 있는 건 아닐까?'
아프리카를 가장 먼저 영지로 만들려는 이유는, 아프리카가 가장 힘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다음으로는 남미를 생각하고 있다. 그다음은 중동 지역을 생각하고 있고, 남은 지역들은 국가가 보유한 힘에 따라 약한 곳부터 해결할 생각이다. 만약 아시아부터 해결한다면 중국이 딴마음을 품을 게 분명하고, 북미부터 해결하면 미국이 패권을 다지기 위해 소극적으로 나올지도 모른다.
박철과 사대천왕은 곧바로 전장에 투입되었고, 열여섯 개 방송국에서 생방송까지 한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피규어를 더 팔아먹기 위한 제이크 혹은 오언가의 수작질로 보인다. 최영웅의 철강팀은 이들의 호위로 함께 움직이고, 신기만 덩그러니 홀로 남았다.
시체 조종사와 미노타우로스의 처리를 통해 힘을 먼저 보여주었고, 괴물이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할 방법을 안다고 공표했다. 각국의 수뇌 모두 신기가 사태 해결의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인식을 갖췄기에, 신기는 암살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체 조종사와 미노타우로스를 처리하며 기력을 투사할 수 있는 범위가 반경 30미터로 늘었다. 동시에 각성자로 만들 수 있는 인원이 늘었다는 뜻이다.
등대처럼 지어진 건물의 중심에 기둥이 있고, 신기는 기둥 안에 몸을 숨겼다. 신기가 진화 스킬을 사용한 후 벨을 울리면 각성자들은 안내인들을 따라 검증기로 가서 각성 여부를 검증받는다. 각성자가 되어 치유를 받으면 모든 병이 치료되고, 마약에 절은 자들의 뇌도 회복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각성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어서 신기는 하루에 16시간씩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신기 본인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미국은 신기의 스트레스를 걱정하여 일주일에 하루의 휴식 시간을 주었다. 신기는 워싱턴의 유명 건축물을 구경하고 상가에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며 간만의 휴식을 즐겼다.
### DUAL SYSTEM ###
누런 돌 공원.
짧은 며칠 사이에 화산구 주변의 등대가 2배로 늘었다. 박철의 미끼 스킬 위력을 확인한 미국 군부는 2배의 화력을 배치하기로 했다. 정확히 오전 8시가 되자 지휘관이 박철에게 신호를 보냈다.
박철은 절반 정도의 기력을 소모하여 미끼 스킬을 사용했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로봇들이 꽤 빠른 속도로 기어 나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질주하던 로봇들은 바닥의 장애물로 인해 속도가 늦춰졌다. 뒤에서 오는 로봇들과 느려진 로봇들이 충돌하며 난장판이 벌어졌다.
"칼바람.","천둥."
김태풍은 생방송 한 번으로 인기 스타가 되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칼바람 마법 때문에 인기가 부족했고 풍압 스킬 덕분에 그나마 30위 정도 순위를 차지했는데, 풍화륜과 천둥바람 덕분에 4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번개 조각들이 부채꼴로 넓게 퍼져나갔다. 총은 여럿이 같은 로봇을 맞추며 낭비하는 게 다반사지만, 마법은 100% 효율을 자랑했다. 하나의 벼락이 하나의 괴물을 적중했고, 천둥바람에 가격당한 로봇들은 모조리 멈췄다.
"참매 부대 준비."
지휘관의 예상대로 거대 로봇이 나타났다. 규격 외는 아니고 불사족의 악령과 같은 4등급으로 분류된 괴물이다. 쏟아지는 총탄을 무시하고 정지한 로봇들을 덥석덥석 삼킨 거대 로봇은, 뒤꽁무니로 멀쩡한 로봇을 내보냈다.
"발사."
미사일을 닮았지만 길이가 1미터도 안 되는 세 발의 폭탄이 거대 로봇의 입으로 들어갔다. 거대 로봇의 배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거대 로봇의 뱃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껍데기가 일부 사라져서 뱃속이 훤히 드러났지만, 거대 로봇은 개의치 않고 계속 정지한 로봇을 삼켰다. 그러나 뱃속에서 정밀하게 돌아가던 기계 역시 폭발에 망가져서 로봇을 수리하지 못했다.
삼키기만 하고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니 어느새 배가 꽉 찼다. 거대 로봇이 움직임을 멈추자 제이크가 소환한 흙 거인이 달려가서 사커킥을 날렸다. 뒤로 구르던 거대 로봇은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자멸했다. 폭발 범위에 있던 로봇들도 전부 움직임을 멈추고 정지했다.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기계들로 폭발을 관찰하던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대 로봇이 폭발하며 주변 로봇들을 멈추는 원리만 알아내면 미국은 아주 쉽게 괴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검측 설비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했지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법사들의 마력이 전부 소모되자, 화기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저지력이 강한 탄약으로 로봇의 접근을 제한하고 관통력이 강한 탄으로 제어 장치를 파괴하려 노력했다. 화망을 뚫고 접근한 로봇은 근접 전투 각성자들에게 맡겼다. 무기에 기력을 실을 수 있는 각성자들이 무식하게 패서 접근한 로봇을 멈췄다.
전투가 끝나자 로봇의 잔해를 빠르게 치웠다. 갈고리를 밑에 캐터필러에 걸면 기계들이 알아서 끌어갔다. 그 로봇들을 한쪽에 쌓아놓으면 '쇠똥구리'라는 이름을 단 벌레들이 와서 먹어치운다.
금속을 재활용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고온으로 녹여서 분리하면 금속의 성질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이용하려 해도, 제어장치가 사라진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밖에 내놓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버린다.
몇 번을 반복하여 괴물을 처리한 후 미끼 스킬을 사용해도 괴물이 나오지 않았다. 넉넉하게 괴물을 막아내는 미국이 굳이 박철을 데려다 미끼 스킬을 사용하게 하는 건, 각 화산의 최대 출력을 알아내려는 목적이다. 각 화산의 최대치를 알아내고, 거기에 맞춰 화산섬 및 해저 화산을 봉인하려는 계획이다.
"당신들의 헌신에 미연방 군부를 대표하여 숭고한 경의를 표합니다."
최대 출력을 알아냈기에 다른 화산으로 이동해야 한다. 미군의 환대를 받으며 '전용기'를 타고 이동했다. 호화로운 전용기가 아니라 미국이 홍익에게 선물로 준 전용 비행기다. 인터넷도 되고 전화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뭐야? 신기가 저격당했다고?"
핸드폰을 들고 인터넷을 살피던 최영웅의 외침이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을 모두 일으켰다.
- 작가의말
이 글은 예약연재로 올라갑니다. 이 글을 올리는 시점에서는 비축분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비축분을 열심히 장만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필요 없는 내용을 지적하는 것으로 느꼈는데, 묘사와 표현이 부족했다는 말씀이군요. 좀 더 마음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더위의 영향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가장 큰 원인은 저에게서 찾아야겠습니다. 조언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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