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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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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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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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0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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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DUMMY

칼라일 시모어는 여든이 다 되어가는 노마법사였다. 평소 인망이 두텁기로 유명한 그의 저택에는 작은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의 직위나 명성을 생각하면 모두가 명문가 귀족들일 것이라고 착각하기 십상이었으나, 사실 연회에 참가한 자들은 거의 절반이 평민이었으며, 귀족이라 할지라도 그리 영향력 있는 자들은 못되었다.


대신 단 하나, 연회에 참가하는 이들을 묶어주는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그들 모두가 각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신예학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젊고 열정이 가득했다.


그렇기에 연회는 열띤 토론의 장이 되었고, 칼라일 시모어는 그들의 얼굴을 붉히며 열변을 토하고 있는 것을 훈훈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연회에 있어서 그의 역할은 감정이 격해진 청년들을 누그러뜨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토론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까지는 그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칼라일은 조용히 그들이 있는 자리에서 비켜났다. 젊은이들의 토론에 늙은 자신이 끼어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서 그들이 펼치는 토론의 열기를 느꼈다. 사교계에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이 열기를, 칼라일은 사랑했다. 그들의 열기를 느끼기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각지에 있는 현명한 자들을 초대하여 이렇게 간간히 모임을 만든 것이 연회가 되었고, 명성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초대장을 보내지 않아도 저들이 알아서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귀족들이 많아 난처할 지경이었다. 개중에는 자격이 없는 귀족들도 있어 참가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글을 쓰는 것도 칼라일의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되었다.


"어찌 연회의 주인께서 이리 계십니까?"


분명 처음 듣는 목소리임에도 기묘하게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청명한 목소리가 그의 뒤에서 울렸다. 칼라일은 여전히 청년들에게 눈을 붙인 채 입을 열었다.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늙은 것이 끼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꼴불견이 아니겠소?"


그 말에 청명한 목소리의 주인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은 칼라일 경의 현명한 말씀을 듣고자 오는 것인데 스스로를 퇴물이라 여기며 자리를 비켜나 있는 것은 저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이지요."


목소리의 주인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사교계에서 저런 말투를 썼다간 무례하다는 말을 듣고 말리라. 하지만 칼라일은 그 야생마 같은 말투도 좋았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세상에 반기를 들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 칼라일은 생각했다.


그런 것은 젊은이들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현왕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기를 들지 못하는 자신의 비겁함을 젊은이들은 갖지 않기를 바랐다. 그랬기에 그의 뒤에서 말을 하고 있는 청년이 마음에 들고 말았다. 그는 당장 고개를 돌려 그 청년이 누구인지 보고 싶었으나, 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는 그대는 어찌 기대를 저버리는 못난 늙은이의 말상대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오? 이 연회에 참가하는 젊은이들 중 그러한 취미를 가진 자는 내 여태 본 적이 없거늘."


"그거야 저는 이 연회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임에도 칼라일 경을 보기 위해 몰래 들어온 자이기 때문이지요."


그 말에 칼라일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그것은 연회의 불청객을 향한 것이 아닌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자신 또한 소문으로만 간간히 들려오는 젊은 인재들에게 초대장을 쓰는 처지였기에 이 연회에 참가할 자격이 되고, 하고 싶어도 초대장이 오지 않아 못하는 자들이 많음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몰래 들어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칼라일은 자신의 모자람을 자책하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젊은 인재들을 모으고 싶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자네에게는 초대장이...!"


고개를 돌려 청년의 얼굴을 본 칼라일은 그 말을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하였다. 서서히 다해가던 그의 시력조차 청년의 검은 머리칼과 짙은 눈동자, 그리고 그의 이목구비를 확실하게 잡아내었다.


그것은 갑자기 칼라일의 시력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닌, 칼라일의 오랜 기억 속에서 그 청년과 꼭 닮은 자가 청년과 겹쳐졌기 때문이었다. 칼라일은 무릎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청년의 뒤로 보이는, 오래전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자는 청년과 함께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아, 자신이 얼마나 그를 아꼈던가? 40여 년 전, 현명했던 그가 왕위를 계승하였을 때 왕성은 현명하고 재주 있는 이들로 가득하였다.


자신이 연 연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교양이 풍부한 자들이 사교계를 점령할 무렵의 왕. 그 왕이 믿었던 제 동생에 의해 암살되고 폐위되었을 때 얼마나 가슴 아파 하였던가! 그리고 얼마나 오랜 세월을 왕의 아들을 찾기 위해 허비하였던가! 칼라일은 떨리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당신은..."


채 끝을 짓지 못하는 칼라일의 모습을 바라본 청년은 더욱 깊어진 미소로 바라보았다.


"란 크로프츠입니다, 지금은. 연금술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는 별 볼일 없는 청년일 뿐이지요."


그의 말에 칼라일은 무릎을 꿇을 뻔하였다. 모를 리가 없었다. 란이라는 이름은 그가 따랐던 왕이 제 아들에게 지어준 애칭이라는 것을. 그리고 크로프츠라는 성은 왕국의 이름, 크로이츠를 변형시켰다는 것을.


칼라일은 저 청년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청년의 '자신을 일단 모른 척 해 달라.'는 무언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칼라일은 힘겹게 자신의 충격을 다스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칼라일 시모어일세. 나라의 녹을 먹는 별 볼일 없는 마법사이지."


그 말을 겨우 맺은 칼라일은 손을 내밀었다.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청년, 란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란이 무어라 말하려던 찰나, 시동의 목소리가 란의 입도, 열변을 토해내던 청년들의 입도 막아버렸다.


"샤를리즈 빈트뮐러 양께서 오셨습니다!"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이 열린 그 곳에는 사내들만 있는 연회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존재가 서 있었다.


* * *


문 너머로 들려오던 사내들의 목소리가 자신의 등장에 일순 멈추자 샤를리즈는 묘한 긴장감에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사람들 앞에 서는 건 처음이 아닌가?


그것도 구성원 모두가 남자들인 모임에는 더욱이. 게다가 중간에 에단이 그녀를 붙잡고 서서 상단에 대한 것을 물어 답해주다가 연회에 지각해버려서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어림 잡아도 40명은 될 것 같은 사내들의 시선에 샤를리즈는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만일 자신이 오랫동안 사람을 상대하지 않았더라면 기절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샤를리즈는 천천히 눈을 돌렸다.


비록 연회에 참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론적으로 연회장에 들어갔을 때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잘 알고 있다. 그녀의 눈은 사내들의 무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서 멈추었다. 젊은 이들만 있는 이곳에서 그녀만큼이나 이색적인 존재가 검은 머리칼을 가진 청년과 서 있는 것을 발견한 샤를리즈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뒤 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생아였고, 상인이었으며, 남을 항상 속여야했던 흑막으로써 살아왔던 샤를리즈는 긴장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사내들 사이로 걸어갔다. 그녀가 걸어가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내들이 길을 비키어 섰다.


이윽고 그녀가 연회의 주인, 칼라일의 앞에 멈춰 서자 모든 이들은 그 쪽을 바라보았다. 샤를리즈는 그녀의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의식하며, 칼라일에게 흠잡을 데 없는 절을 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칼라일 시모어 경. 부족한 저, 샤를리즈 빈트뮐러를 이리 초대해주시다니 이는 저와 제 집안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에 칼라일은 미소 지었다. 왕국엔 이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빼어난 교양을 지닌 여성의 참석이 그는 너무나도 반가웠다. 게다가 평민 작가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귀족식 예법에도 능통한 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칼라일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환영하였다.


"나야말로 유명한 작가분이 이 자리를 빛내주어 어찌 감사해야할 지 모르겠소."


"유명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단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니까요."


샤를리즈가 환하게 미소 짓자 칼라일 또한 웃음을 터뜨린 뒤 말했다.


"여태껏 낸 소설 4권 모두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운이 좋아서였다면 나는 자네의 운을 전 재산을 갖다 바쳐서라도 사야겠구먼. 샤를리즈 양은 이 연회에 처음 참석한 것이니 내가 직접 여기에 있는 이들을 소개해주겠네. 우선, 내 옆에 있는 청년은..."


"란 크로프츠라고 합니다."


칼라일이 채 소개도 하기 전에 그가 샤를리즈에게 손을 내밀었고 샤를리즈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그 낯익은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는지 빠르게 그녀의 머릿속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정보 속에서 샤를리즈가 그 청년의 이름을 찾은 것은 둘이서 악수를 끝낸 뒤 어색한 침묵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크로이츠 왕국에서의 작명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족 : 이름 애칭 드 성

ex)라르비카이츠 란 드 크로이츠

귀족 : 이름 드 성

ex)프리실라 드 그라니언

평민 : 이름 성

ex)샤를리즈 빈트뮐러


칠흑의 꽃은 총 15막에 5개의 외전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법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 편에 주인공이 안나올 수도 있어요

아직 나오지 않은 아이들도 많으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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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6 2,663 27 12쪽
21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5 2,684 32 12쪽
20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5 2,717 26 10쪽
19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4 2,781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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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3 2,740 30 10쪽
»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3 2,966 2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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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0.10.10 3,161 34 10쪽
1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4 10.10.10 3,240 27 9쪽
11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10) +2 10.06.05 3,421 29 8쪽
10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9) +2 10.06.05 3,490 30 10쪽
9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8) +2 10.06.03 3,597 28 11쪽
8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7) +2 10.05.31 3,640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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