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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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최근연재일 :
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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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1.02.0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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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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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DUMMY

샤를리즈는 예의의 '고객님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를 최대한 표현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크로이츠 왕립 대학의 최연소 졸업자 맞으시죠?"


그녀의 물음에 좌중이 술렁였다. 크로이츠 왕립 대학은 왕국에서는 물론, 대륙에서조차 그 이름을 인정받는 명망 높은 대학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 대륙의 유능한 젊은이들과 겨루어야 했으며, 대학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졸업 인원이 전체 인원의 10%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크로이츠 왕립 대학의 졸업자라고 한다면 보통 30대 중후반이 많았다.


그러나 란 크로프츠는 기껏해야 2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20대 중반이면 보통 크로이츠 왕립 대학의 신입생들의 평균 나이다. 쓸데없는 정보는 곧장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샤를리즈의 기억에 그의 이름이 남아있는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저 청년의 나이는 25살. 그녀와는 사는 세상이 달라 결코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만나다니 샤를리즈는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와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아 에드리안에게 그를 소개시켜주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에드리안은 유수의 학자들에게 교육을 받아왔기에 학식은 뛰어났으나, 정작 제 또래 친구가 없어 곤란하던 차였다. 물론, 란 크로프츠는 에드리안보다 나이 차가 제법 나긴 했지만, 그래도 50대의 학자들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그러한 샤를리즈의 마음을 알 턱이 없는 청년은 난처하다는 듯 뺨을 긁적이며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요행이 어찌하다 통했을 뿐입니다."


지나친 겸손함에 칼라일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청년의 등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이거, 이거. 요즈음은 겸손함이 유행이라도 되나보오. 두 분은 나를 따르시게."


칼라일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둘을 이끌었다. 샤를리즈는 그의 뒤를 따르다 문득 시선을 느껴 고개를 돌렸다. 마침 눈이 마주친 건지, 혹은 그녀를 계속 보고 있었던 것인지 란 크로프츠와 눈이 마주쳤다.


그것은 제법 긴 눈 맞춤이었다. 서로에 대한 신기함. '30대 중반에서야 도달할 수 있는 자리를 25살의 젊은 나이에 도달한 청년'과 '마녀사냥으로 인해 멸종되다시피 한 분류의 여성'. 둘은 서로가 서로를 신기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동시에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멋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샤를리즈는 칼라일이 소개하는 자들을 보고, 미소 짓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이곳의 모든 이들은 자신을 '샤를리즈 빈트뮐러'로 바라봤다. 천한 마구간 하녀 소생의 사생아도, 무시무시한 재력을 지닌 빈트뮐러 상단의 양녀도, 빈트뮐러의 최종 흑막인 총수도 아닌 오직 작가 샤를리즈로 보고 있었다.


그것은 생각 외로 기쁨을 안겨주었다. 에드리안의 누이로써가 아닌 오직 자기만의 기쁨이었다. 기나긴 시간, 어둠 속에서만 살아왔던 자가 그제야 빛을 바라본 것처럼 그녀는 그들에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샤를리즈는 그들 하나하나의 이름과 영향력과 가문, 그리고 훗날 에드리안에게 혹은 상단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 지 계산하였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숨을 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어둠 속에 적응되어 온 자가 그 특성을 버리지 못하듯.



* * *




샤를리즈가 많은 이들과 관계를 쌓아갈 무렵, 에드리안은 신사처럼 차려입고 왕성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몇 시간 전, 샤를리즈가 상단을 비우자마자 찾아온 공작의 하수인이 그에게 전한 말을 떠올렸다.


'각하께옵서 도련님이 진정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웨어 경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전갈을 스웨어 경께 전해드리라고...'


거짓말이다. 에드리안은 '스웨어 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라니언 공작의 신임을 받고 있는 집사, 앨런의 16살 아래의 동생이었다,


그는. 본래는 스웨어 백작 가문의 장자였던 앨런은 어째서인지 그 작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그라니언의 집사로 들어왔다. 그리고 앨런은 그의 행동에 대한 어떠한 이유도 동생에게 말해주지 않았기에 차남인 현재의 스웨어 경은 '틀림없이 그라니언 공작이 무슨 음모를 꾸몄기 때문에 형님이 붙잡혀 계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였다.


현재의 스웨어 백작, '알베리크 드 스웨어'는 그의 형님을 존경하고 있는 자였고, 동시에 그라니언 공작을 무척이나 싫어하며, 무시무시한 검술 실력을 자랑하는 왕립 기사단의 단장이다.


샤를리즈의 그 '하늘이 등을 져버린 운동신경'이 공작에게서 비롯된 것을 감안하면, 공작이 얼마나 그를 껄끄러워하는지 안 봐도 훤했다. 앞도 뒤도 가리지 않고 무시무시한 검술로 그를 위협하는 백작은 지략으로 정세를 움직이는 공작에게 있어서 천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급하게 전해야 할 전갈은 생겼고, 그를 직접 만나러 가긴 싫고, 하인을 시키자니 하인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에드리안 자신이 떠올랐을 것이고... 에드리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그 사람이 무섭다고 하면 될 걸, 굳이 명분을 내세울 필요는 없으신데. 공작 가문의 후계자로써 인정받는 것과 백작에게 인정받는 거, 아무리 생각해도 상관관계가 없잖아.'


그러나 그것이 불만인 것은 아니었다.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인간적인 면모가 아닌가? 다만, 공작이 가기 싫어하는 곳에 자신을 보냈다는 점과 공작도 그토록 싫어하는데 그의 아들이라고 좋아하겠는가.


그러한 이유로 에드리안은 벌써 30여분 째 왕성 앞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그의 그러한 행동은 경비병들의 의심을 사기 충분했고 결국...


"어이, 거기! 볼일이 없으면 그만 물러가는 게 좋을 거요! 옷은 신사 계급처럼 차려입고 무얼 그리 왔다갔다 거리는 겐지."


라는 타박을 받았다. 에드리안은 경비병의 말에 얼굴을 붉혔으나 이때가 기회다 싶어 그에게 다가가 공작의 하수인이 전해준 '그라니언 공작가문의 인장'을 그에게 내밀었다.


"스웨어 경을 뵈러 왔습니다만 왕성은 처음인지라 길을 잘 모르겠군요. 혹여 안내해주실 수 있습니까?"


에드리안의 친절한 부탁은 사실 필요도 없었다. 경비병들은 에드리안의 말을 채 듣기도 전에 그가 내민 공작 가문의 인장에 기가 질려서는 곧장 길을 내어주었다. 그리고는 마치 서로 짰기라도 했는지 동시에 소리쳤다.


"스웨어 경은 왕성 제 4구역에 있는 왕립 기사단 대련장에 계실 겁니다. 저희는 왕성 입구를 지키는 중대한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귀빈의 안내를 할 수 없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아, 아아. 감사합니다. 왕성 제 4구역의 왕립 기사단 대련장이라고요."


그렇게 말해도 찾아갈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는가! 왕성에 처음 방문한 에드리안으로써는 왕성이 몇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는 것조차 방금 알았다. 그러나 에드리안은 그 이상 경비병들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태도가 너무나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자의 존댓말은 고사하고 '귀빈'이라는 호칭이라니!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대우에 에드리안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 뒤 비켜선 경비병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왕성의 내부에 조금 실망했다.


황금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던 왕성은 생각 외로 소소하여 남부 지방의 그라니언 공작 가문의 성에 익숙해져 있었던 에드리안의 눈에는 그다지 새롭게 보이지 않았다. 에드리안은 혹시나 신기한 것이 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역시 그가 기대했던 것들은 없었다.


'귀족보다 더 대단한 왕족이 사는 성이라 기대했는데 그라니언 성과 다른 건 막강한 인원수뿐이었네...'


사람이 북적이는 것을 싫어하는 그라니언 공작이 자신의 성에 최소 인원만을 수용하고 있는데 반해 왕성은 어딜 둘러봐도 항상 사람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다행히도 왕성 제 4구역을 찾아가는 것은 쉬웠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묻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일단, 왕성 안에 들어오면 그가 수상한 자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왕성 내에 있는 자들은 그를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에드리안은 이 사실을 결코 그의 누이에게 말하지 않기로 다짐하였다.


왕성 내부의 경계가 생각 외로 삼엄하지 않다는 것을 그녀가 깨닫게 된다면 또 어떤 무시무시한 계획을 짜낼 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성사시킨 바켄바우어 건만 하더라도 그랬다. 에드리안은 그의 누이가 상단의 총수가 되자마자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바켄바우어와 슈드레거를 망가뜨리는 거지. 이건 제법 장기 프로젝트가 될 듯싶어. 길게는 10년 정도 잡고 있지만, 내 예상대로 모든 일이 흘러간다면 3년에서 5년 안에 결정이 날 거야.'


당시 14살이었던 에드리안은 그 말을 우스갯소리로 넘겼지만, 그것은 결국 사실이 되어버렸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계획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항상 살얼음판 위에서 살 운명을 선택한 그의 누이. 에드리안은 자신이 공작이 된다면 그녀가 딛고 있는 살얼음판이 그 어떠한 충격에도 깨어지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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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7 Meg
    작성일
    11.04.19 11:26
    No. 1

    의심받지 않는 것을 왜 굳이 누이에게 말하려하지 않는건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4 가엘프
    작성일
    11.07.13 08:43
    No. 2

    Meg님, 아마 그녀가 어떤 계획을 세움으로써 위험을 자초하게 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아드리안은 아마 누이에게 상당한 부채감을 가지고 일을 테고, 왠만하면 그녀가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 아닐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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