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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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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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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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꽃. 제 3막. 총수 대 총수의 대면

DUMMY

"됐다. 네 놈이 천하의 빌어먹을 놈인데다가 색마인 걸 하루 이틀 안 것도 아니고. 보나마나 우리 어머니한테 잔뜩 깨졌을 건데 굳이 내가 팰 필요도 없을 거고. 거기다 오늘 저녁에는 왕실 무도회 경비를 맡았기 때문에 네 놈 패느라 기운을 뺄 수도 없다."


"왕실 무도회 감사합니다. 너도 오늘 무도회에 참석해, 리안?"


맞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내지르던 클랜디스는 갑자기 궁금해졌다는 듯 에드리안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것은 엘루이즈도 궁금하다는 듯 그를 바라본다. 괜히 기대를 받는 느낌이 되어버려 에드리안은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개를 저였다.


"아니. 지금은 아직 내가 나와야할 때가 아니라고 하시던데?"


"그래? 안타깝네. 리안도 제법 예쁘장하게 생겨서 데리고 다니면 좀 더 여인들의 시선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루이를 데리고 다니면 여자들이 무서워해서 다가오질 않거든. 딱 리안 정도가 적당한데 말이야."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클랜디스가 한숨을 섞으며 말하자 엘루이즈는 발을 들어 클랜디스의 어깨를 툭 찼다.


"이 자식이. 내가 아까도 말했지만 넌 천하의 빌어먹을 놈에 색마다. 어떻게 하루 종일 네 놈의 머릿속에는 여자가 떠나지를 않냐? 거기다 저건 기혼 미혼 가리지도 않아. 사회악이야, 넌. 괜히 순진한 애 끌어들이지 말고 너 혼자 썩어 문드러져."


"썩어 문드러지라니 너무하잖아? 난 단지 내 잘생긴 외모를 좀 더 많은 여인들에게 즐기도록 하기 위해 봉사해주는 거라고. 절대로 내가 먼저 매달린 적은 없어!"


"그걸 자랑이라고 하냐? 하여튼 너랑 결혼할 계집애가 누군지는 몰라도 미리 내가 애도의 뜻을 전해야지."


"하? 너랑 결혼할 여자도 딱히 운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아, 결혼을 못할 수도 있으려나? 하긴 저렇게 성질 더러운 데다가 여자에게 관심조차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하겠어?"


그 말에 먼저 반응한 것은 에드리안이었다. 틀림없이 엘루이즈가 화낼 것이라 생각한 에드리안은 재빨리 엘루이즈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각 외로 평온한 표정이다.


"걱정 마라. 네 놈과는 달리 이 몸은 8살 때 약혼한 여자가 있으니까. 뭐 하는 계집앤지 아직 얼굴도 본 적이 없다만."


자신의 약혼녀 이야기를 하는 주제에 하품이나 쩍쩍하며 시큰둥하게 얘기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클랜디스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저런 녀석들이 꼭 반한 여자한테 빌빌거린다니까. 그리고 고뇌하지. '아, 내게는 약혼녀가 있는데! 약혼녀에 대한 의리는 지켜야하는데! 어째서 그녀는 약혼녀가 없을 때 내 앞에 나타나지 않고 지금에야 나타난 것인가! 애통하도다!' 하고 말이야."


타고난 희극배우라도 되는 것일까? 벌떡 일어서서 비극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클랜디스의 모습은 제법 그럴 듯했기에 에드리안은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그러자 클랜디스는 환호에 호응한다는 듯 과장된 절을 한 뒤 소리쳤다.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사교계에 있던가! 내 아직도 품어보지 못한 여인들이 수도 없이 많거늘! 그 중 가장 으뜸인 것은 애나마리아 님이지!"


"야 인마! 그 분은 태자비 마마시잖냐! 하여튼 저 자식은 빨리 골로 보내버려야 해. 가만 놔뒀다간 에드리안이나 나까지 교수형당할 거라고. 태자 저하가 얼마나 태자비마마를 아끼시는 지 저게 눈으로 똑똑히 봐놓고서도 저렇게 찬양하고 다닌다니까."


에드리안 또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어머니도 모자라 태자비까지 노리고 있었단 말인가? 친구의 어머니도 성공시키지 못한 클랜디스다. 태자비는 결코 무리일 것이라고 에드리안은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로이츠 왕국의 황태자와 황태자비의 로맨스는 왕국을 넘어서 전 대륙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것이었다. 연애를 꿈꾸는 젊은이라면 한 번쯤은 듣고 설레었을 이야기. 현왕이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함에도 백성들 사이에서 욕을 들어먹지 않는 이유는 눈에 띄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태자와 그의 비의 인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에드리안조차 듣고 감탄한 로맨스의 여주인공, 태자비는 본래 다라크 신을 모시는 무녀였다고 했다. 그녀의 신성력과 예언 능력은 신의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될 정도로 가공할만한 것이었으며, 15살의 젊은 나이에 국교를 대표하는 무녀가 되었다.


그러한 그 뛰어난 무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친우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현 태자였다. 소꿉친구였던 그들의 사이가 변한 것은 무녀가 18살, 태자가 21살이었을 때였다. 태자가 사냥을 나간 사이, 태자의 미래에 죽음이 드리운 것을 알아차린 무녀는 신에게 빌어 태자의 목숨을 구해냈다. 그녀의 모든 신성력과 대부분의 예언능력, 그리고 그녀의 시력을 대가로.


조금밖에 남지 않은 예언 능력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는 순식간에 신전에서 퇴출되었고, 시력도 잃은 터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신전 앞에서 멍하게 서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냥에서 돌아온 태자는 그 사실을 듣고 그녀에게 걸어가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서 청혼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세상의 빛마저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그 여인을.


"네가 만약 태자비마마를 0.0000001%도 안 되는 희박한 확률로 넘어뜨렸다 하더라도 넌 그 날로 백성들한테 돌 맞아 죽을 거다."


그 말에 클랜디스는 한숨을 내쉬며 정말로 안타깝다는 듯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그래서 시도도 하지 않잖아. 못 오를 나무이기에 더 아름다워 보인다고나 할까? 너희는 그런 거 모르지? 딱 보고 '아, 저 아가씨는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겠어.'라는 감정이 드는 여자를 본 적도 없지? 그렇게 치면 너희 너무 눈이 높은 거 아냐?"


무슨 말이냐는 듯 에드리안과 엘루이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클랜디스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클랜디스는 기지개를 펴 듯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뒤 외쳤다.


"예쁜 여성에게 눈길을 주기는커녕 예쁜 여성이 어떤 여성인지도 모르는 너희는 눈이 높다고 밖에 설명 안 되거든?!"


"어떤 여성이 예쁜 여성인지 정도는 나도 알아. 내 여동생 같은 애가 예쁜 애지."


엘루이즈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참으로 담담한 표정과는 달리 에드리안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엘루이즈! 여동생이 있었어?"


"어. 있어. 아직 어려서 사교계에는 못 나오지만 영영 안 나올지도 모르는 애증하는 여동생이 있지."


"애정이 아니라 애증이야?"


"그래, 애증. 뭐, 에드리안이라면 한 번 우리 집에 초대해서 보여줄 수도 있어. 클랜디스 네 놈은 절대 안 되지만."


마치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처럼 이야기하는 투와 '애증'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묘하게 인상을 찌푸리는 엘루이즈가 괜히 신경 쓰였으나 남의 가정사에 대해 물을 정도로 예의 없는 에드리안이 아니었기에 입을 꾹 다물려고 했다. 그러나 클랜디스가 엘루이즈의 여동생에 대해 무어라 물으려고 하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치면 우리 누이도 예뻐.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자신할 수 있어."


에드리안의 자신에 찬 말에 클랜디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아, 프리실라 양도 예쁘긴 하지.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은 아냐. 그냥 귀여운 정도? 프리실라 양이 인기가 많은 건 그녀의 배경이 너무나도 화려하기 때문이지.


황후 마마께서는 몸져누워 계시지, 태자비 마마께서는 평민출신이지. 사실상 사교계에서 가장 고귀한 피를 가진 아가씨가 프리실라 양이기 때문일 뿐이라고."


"에?"


에드리안이 멍하게 클랜디스를 바라보자 엘루이즈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마도 에드리안이 제 누이에 대한 객관적인 평을 듣고 놀랐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건 저 녀석 말이 맞아. 사실 사교계에서 인기를 끄는 방법이 외모뿐만이 아니라는 건 정설 아니겠어? 배경이 화려하면 추녀도 미녀가 되는 사교계라고.


네 누나는 엄청난 배경에 조금 귀여운 외모를 가진 아가씨일 뿐이야. 인기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녀의 인기이지만 뭐, 객관적으로 보면 그냥 귀여운 아가씨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싶어 하는 귀여운 아가씨 정도. 그러니까 너무 놀라지만은 말라고."


아니다. 에드리안은 그 때문에 놀라서 벙 찐 것이 아니었다. 에드리안이 놀란 것은, 자신의 누이 이야기를 하는데 어째서 프리실라의 이름이 나왔느냐는 것이다.


프리실라. 에드리안에게 있어서 프리실라는 단지 '금발을 가진, 얼굴을 도통 보기 힘들지만 딱히 보지 않아도 상관없는, 누이와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난, 자신에게 길가의 돌멩이만한 관심도 가지지 않고 있는 여자'였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은 그의 누이라는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프리실라를 떠올린단 말인가?


아니다. 프리실라는 자신의 누이가 아니었다. 비록 반은 같은 피가 흐르고 있지만 에드리안에게 있어서 누이는 샤를리즈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그 누구도 뒤집어엎을 수 없는 진리와도 같은 것이다.


'에드리안 님께서 그 자작가문 영애의 아드님이 된다 한들 무슨 상관입니까? 샤를리즈 님은 여전히 에드리안 님을 사랑하는 누이일 것이고,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겁니다. 단지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에단의 말이었다.


'맙소사! 에드리안, 설마 그걸 염려하고 있었던 거니? 정말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사람들이 너를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서민으로 알지만 너와 각하의 연이 끊이지 않았던 것처럼, 네가 귀족이 된다 한들 너와 나의 연이 끊이지는 않아.'


샤를리즈의 말이었다.


이들의 말을 굳게 믿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그와 그의 누이와의 관계는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고. 에드리안이 세상에서 가장 따르는 두 사람의 말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의 유일한 친구 둘에 의해 그 믿음이 흔들렸다. 굳게 믿고 있던 것이 흔들리자 에드리안은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대련장의 바닥이 꺼지는 충격을 느꼈다. 에드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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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6 2,662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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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0.10.10 3,161 34 10쪽
1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4 10.10.10 3,239 27 9쪽
11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10) +2 10.06.05 3,421 29 8쪽
10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9) +2 10.06.05 3,490 30 10쪽
9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8) +2 10.06.03 3,597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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