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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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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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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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0.06.0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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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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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8)

DUMMY

에드리안과 샤를리즈의 어머니, '뮤리에'의 무덤은 그라니언 공작의 성에서 단 세 사람만이 알고 있는 곳에 있었다. 그라니언 공작과 앨런, 그리고 샤를리즈. 즉, 에드리안은 그의 어머니의 무덤에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샤를리즈가 어머니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한다는 것을 에드리안은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째서 존재하지 않느냐에 대해 궁금해졌을 무렵, 단 한 번 누이에게 어머니에 대해 물어본 이후 그녀의 앞에서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묻지 않았다.


'우리에겐 어머니란 존재하지 않았어. 아예 없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러니 잊으렴, 리안. 네게 가족이라곤 각하와 나뿐이었던 거야. 내가 어머니 몫까지 널 사랑해주고 지켜줄 거야. 약속할게.'


그리고 누이는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 에드리안은 샤를리즈의 말대로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잊었다. 그를 낳고 얼마 있지 않아 죽었다는 그의 어머니.

에드리안은 18살이 되어서야 그 무덤의 앞에 섰다. 어머니에 대한 정은 없었건만 눈물이 날 만큼 조촐한 무덤이었다.


약간 솟아있는 봉오리와 앞에 꽂힌 막대기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 막대기에는 희미하게 '뮤리에'라고 새겨져 있었다. 누가 이 무덤으로 보이지 조차 않는 무덤을, 한 때 공작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의 정부의 무덤이라 생각할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땅에는 물이 흥건하게 있었음에도 에드리안은 그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에드리안은 그의 뒤에서 그가 비에 젖지 않도록 큰 우산을 들고 있는 앨런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무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에드리안은 무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산이 그 손은 하늘로부터 가리지 못하였기에 그의 셔츠가 급속도로 젖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에드리안은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봉오리에 무성하게 싹을 내린 잡초를 쥐어 뽑았다.


"이제야 찾아온 거 정말 죄송해요. 누이의 성격상 아마 누이도 한 번도 오지 않았겠죠. 그리고 앞으로도. 저 또한 마찬가지일 거예요. 어머니를 누이가 대신했어요. 전 결코 누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죄송하다고는 말하되 용서해달라고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분명 저는 불효자이니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에드리안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오늘도 이렇게 찾아온 건 변덕이었죠.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할게요. 그래도 여태까지는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아니니까."


앨런은 에드리안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으나, 그 점을 집어내지는 않았다. 잡초를 정리하던 에드리안의 손은 불현듯 멈추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을 거두어들였다.


아직 잡초는 다 뽑히지 않았으나, 에드리안은 그 이상 정리할 생각이 없었는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덤을 뒤로한 채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앨런은 에드리안이 비를 맞지 않도록 그의 걸음에 맞춰 걷되 에드리안의 앞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앨런은 에드리안의 표정을 알 수는 없었으나, 에드리안의 등이 왠지 모르게 쳐져 있었기에 앨런은 분명 공작과 에드리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나중에 에드리안을 샤를리즈의 곁으로 보낸 뒤, 공작을 추궁하여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반드시 알아내리라 다짐하였다.


"각하께 어머니를 소개시켜준 사람이 앨런이라 들었어요."


에드리안이 실내로 들어가는 문을 열며 말했다. 앨런은 자신이 해온 일들 중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하는 일이 그가 가장 아끼는 소년의 입에 오르자, 정신이 아연해짐을 느꼈다.


그는 우산을 접으며 어찌할까 생각을 정리하였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자신의 실수를 시인하였다.


"예."


앨런은 흥건히 젖은 우산을 털은 뒤, 문 옆에 있는 통에 우산을 넣었다. 그리고 에드리안의 뒤를 따랐다. 에드리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에드리안이 입을 연 것은 앨런이 샤를리즈가 4층에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스스로 걸어가 2층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낱 마구간을 지키던 하녀를 각하께 소개시켜주었다는 것이 항상 궁금했어요."


자신의 모친임에도 감정을 담지 않은 채 담담하게 그녀의 신분을 에드리안은 각인시켰다. '한낱 마구간을 지키던 하녀'. 하녀들이 하는 일 중 가장 궂은일인 마구간일은 천민에 가까운 여인들이 맡곤 하였다.


그렇다. 왕가 다음으로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그라니언 공작가문의 다음 계승자는 그 마구간을 지키던 여인의 자식이다. 공작부인이 그토록 샤를리즈 남매에게 노발대발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차라리 평범한 하녀였더라면, 평민의 몸에서 나온 자식이었더라면 공주의 신분이었던 공작부인의 자존심도 그렇게 상처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샤를리즈 또한 자신의 모친을 경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에드리안도 '어머니'라는 존재가 알아선 절대 안 되는 금기가 되지 않았으리라.


에드리안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3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며 앨런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앨런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의 기억은 벌써 24년 전, 선대 공작이 죽고 20살의 현 공작이 작위를 계승받던 날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해, 그라니언 공작가문의 성을 충격으로 휩쓴 스캔들을 떠올렸다.


아아, 그 것을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스캔들을 아는 자는 모두 입막음을 당하였다. 그리고 앨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스캔들의 여주인공'이 죽임을 당한 이후, 결코 그 일에 대해 발설하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그 맹세를 깰 수는 없었다. 앨런은 최대한 담담함을 가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왕국 대부분의 이가 그러하듯 진한 갈색 머리칼에 갈색 눈을 가진 미인이었습니다. 샤를리즈 아가씨의 미모는 그녀에게서 비롯된 것이지요. 항상 올곧은 일만 하고, 글을 몰랐지만 세상의 이치는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또..."

"아뇨."


앨런의 말을, 에드리안은 끊었다. 그러더니 계단을 오르던 걸음을 빠르게 하여 4층까지 올라갔다. 그리고는 휙 돌아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따스한 초록빛 눈동자가 앨런을 내려다보았다.


그 눈은 이제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순간, 에드리안과 20살이었던 공작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졌다. 언젠가 20살이었던 공작도 꼭 저러한 표정을 짓고 그를 내려다본 적이 있었다고 앨런은 생각했다.


그것이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앨런은 그 때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것을 기억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쓰라림이 앨런의 가슴을 지배하였다.


"그거면 됐어요. 18살이 되어서야 어머니에 대해 묻게 되었는데 그 이상 자세히 알고 싶다 한다면 그건 욕심인 것 같아요. 게다가 더 이상 앨런을 괴롭히고 싶지도 않고요. 그 기억이 앨런에게 있어서는 고문과 마찬가지라는 걸, 잘 아니까."


말을 맺은 에드리안은 빙긋 미소 지었다. 앨런이 에드리안을 떠올릴 때면 항상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미소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안정시키게 하는 미소. 앨런은 그 미소를 보고 안도했다.


저 소년이 제 어머니의 일로 자신을 원망이라도 한다면, 아마 앨런은 샤를리즈와 공작부인에게 느끼는 죄책감만큼이나 괴로운 감정을 평생 지고 살았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죄송해요, 앨런. 오늘 기분이 좀 좋지 않아 어쩌면 앨런에게 화풀이를 한 것일지도 몰라요."

"도련님의 화풀이대상이 될 만큼 친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영광이로군요."

"하하하... 자주 애용해도 된다는 것인가요?"


에드리안의 유쾌한 웃음소리에 앨런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시사철 열려있으니까요."

"그거 정말 믿음직스럽네요. 그럼 앨런, 이만 가보세요. 여기까지 절 데려다주신 것도 감사한걸요."

"예. 그럼 저녁때 뵙겠습니다, 도련님."

"그 때 뵈어요."


그렇게 말한 뒤 에드리안은 몸을 돌려 샤를리즈가 있을 방으로 걸어갔다. 앨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저 소년의 따스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길 간절히 기도했다.



* * *



똑! 똑! 똑! 하고 세 번,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에 샤를리즈와 에단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샤를리즈가 무어라 말할까 생각하는 새에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샤를리즈는 안도했다.


일부로 자신의 처소에 와서, 허락조차 받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자는 이 성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열린 문 사이로 그녀와 꼭 같은 붉은 머리칼과 녹색 눈을 가진, 소년을 보고 샤를리즈는 그녀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미소로 그를 반겼다.


"각하와의 이야기가 오늘은 좀 길었구나?"


그녀의 미소에 화답하려던 에드리안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사내를 보고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에단 씨 벌써 오신 거예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어. 게다가 이렇게나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데 성벽을 기어올라 왔대. 경비병들한테 안 들키고 싶다고."

"무, 뭐라고요? 에단 씨! 그런 위험한 짓을 하면 어떡해요? 아니 그 전에 시야가 확보는 되시는 거예요? 춥지는 않으셨고요?"


에드리안이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걸어오며 그 걸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에단에게 질문을 쏟아내자 에단은 특유의 담담한 표정과 어투로 그를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에드리안!"


다가온 에드리안을 본 샤를리즈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의 팔을 낚아챘다. 아차! 에드리안은 속으로 혀를 찼다. 무덤을 손질하느라 젖어버린 셔츠를 미처 말리지 않고 와버린 것이다. 샤를리즈의 표정은 금세 죄인을 추궁하는 기사의 그것으로 변해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밖에 나갔었니? 이 날씨에? 내가 알기로 넌 에단처럼 강한 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아니에요. 각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물을 쏟았을 뿐이에요. 여기만 젖은 걸 보세요."


에드리안은 그 말을 내뱉고는 금세 후회하고 말았다. 최악의 변명이다. 그럴 리는 없지만 샤를리즈가 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믿는다면 아마 귀족들의 예의범절에 대해 엄청난 훈계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샤를리즈는 그런 어설픈 변명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미심쩍은 표정을 하며 잡고 있던 에드리안의 팔을 놓아준 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툭 내뱉듯 중얼거렸다.


"뭐, 네게도 말하지 못할 사정이라는 것이 있겠지. 굳이 캐묻지는 않아."


그 말에 에드리안은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샤를리즈의 옆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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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16 태류(太柳)
    작성일
    11.06.08 02:22
    No. 1

    뮤리에 다른 비밀이 있지는 않은건가요?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4 가엘프
    작성일
    11.07.13 07:48
    No. 2

    어머니라 부를 수 없게 된다니... 양자인가요?

    그럴 리는 없을 텐데...

    혹, 그 듣보잡 자작가문에 들어가게 해서(어쩌면 공작가의 유령가문일지도)

    신분 세탁을 한 다음 다시 공작가로 들어가는 방식인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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