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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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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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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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DUMMY

세르먼드 백작이 개최한 연회에는 제법 그 세가 건재한 귀족들이 초대되기로 유명했다. 많은 귀족 여인들은 그 연회에 참가하여 자신의 딸 혹은 자신의 신랑감을 찾는 데 주력했고, 그렇기에 세력이 있는 귀족들이 많이 참가하되, 그 질 자체는 그리 좋지만은 못하다는 평을 듣곤 했다.


몇 십 년 전 선왕의 치세 아래 여인들에게도 교양을 쌓는 것이 허용되었을 무렵에 이 연회가 개최되었더라면 제법 좋은 평가를 받는 연회가 되었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현왕은 어째서인지 똑똑한 여인들을 경계하였고 몇 년마다 한 번씩 마녀사냥 또한 자행하였기 때문에 귀족 여인들이 절반 정도 참여한 이 연회는 단지 남녀가 시시덕거리는 장소에 불과했다.


연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귀족 영애들을 초대해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생길 정도로 귀족 여성들의 교양은 개국 이래 가장 떨어지는 시대가 바로 지금의 시대였다.


"시시하군."


밤하늘의 그것보다도 훨씬 까만 머리칼을 가진 청년이 저만 들을 수 있도록 중얼거렸다. 그는 이 연회장에서 몇 번이나 귀족 영애들이 말을 붙일 정도로 인기가 있었음에도 그들의 말에 적당히 대꾸하지 않았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귀족영애들의 접근이 없었고, 심지어 '매우 예의가 없는 남자'라는 오명 아닌 오명도 쓰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사실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는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 연회장 구석에서 전체를 바라보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영양가라고는 전혀 없는 시시덕거림에 깔깔거리며 자지러지는 사람들의 모임을 그는 더 이상 보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연회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연회장 밖, 세르먼드 백작가문의 저택 정원은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어 화장품 냄새와 독한 향수 냄새가 나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도 잠시, 정원 구석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신음소리에 청년은 움찔하고는 더욱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현재의 사교계가 문란하다는 소리를 듣긴 하였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그는 혀를 차며 이대로 저택을 벗어났다.




* * *




빈트뮐러 상단 남부지부에 제법 쌓여 있던 일을 처리하느라 샤를리즈는 공작과 그의 일가가 수도에 도착한 지 보름이 지나서야 도착하였다. 상단의 총수인 그녀가 거의 20여 일 간 수도의 중앙 지부를 비웠기에 그곳에 쌓인 일도 엄청나게 많았다.


그러나 중앙의 간부들이 총수가 귀환했다는 것을 안 지 단 이틀 만에 20여 일간의 모든 업무가 정리되었다. 간부들은 얼굴조차 모르는 총수의 수완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둘렀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경지라며, 어쩌면 총수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돌았으나, 그는 총수 대리인 에단을 통해 거짓임이 밝혀졌다.


'한 사람을 대신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둘 이상을 대신하라고 하면 난 사표를 내고 라제칸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무법자들의 도시, 라제칸에서 한 가닥 했다는 에단은 상단 내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을 말할 바에는 입을 다무는 자였기에 총수가 한 명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 후에는 '혹시 총수는 이종족이 아닐까? 예를 들면, 드래곤과 같은...'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전대 총수의 수양딸이자, 빈트뮐러 상단이 자랑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남성 간부들이 장담하길 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인 '샤를리즈 빈트뮐러'는 깔깔거리며 대답했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피도 눈물도 없는 분이시니까 인간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럼 정말로 재미있겠네요. 그에 관해 글이라도 한 번 써봐야겠어요."


그렇게 답하고, 그녀는 중앙 지부에서 간부들에게나 주어지는 사저로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가 버린 샤를리즈는 '총수 이종족설' 때문에 다시 한 번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중앙 지부의 간부들은 모두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자들이었는데 그럼에도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릴 때를 보면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중 가장 어린 자가 그녀보다 6살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생각은 발칙한 것이었지만.


20여 일간 밀린 일을 다 처리하고 나니 정작 오늘 할 일은 무척이나 적어, 생각보다 시간이 남은 샤를리즈는 사저의 책장에 나열되어 있는 소설책 열 권 가량을 뽑아내었다. 그러자 책이 꽂혀 있던 바로 뒤에는 또 다른 책장이 숨어져 있었는데 그 책장에는 마법에 관련된 책들이 가득하였다.


신기한 것은 그 마법에 관련된 책들은 하나같이 '기초'라는 단어가 다 붙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기초 입문에 관한 마법 책을 수집하는 괴상한 취미가 없다면야 이렇게 많은 입문 책은 필요 없을 듯 했다. 샤를리즈는 그 중 가장 두꺼운 책을 꺼낸 뒤 자신의 책상에 가 앉아 그 책의 중간 부분을 폈다.


샤를리즈는 무척이나 능력이 많은 자였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상단을 책임지고 있었으며 이종족설이 나돌 정도로 무시무시한 수완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사람을 포섭하는 능력이나 피해자를 섬뜩하게 만들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능력에 아름다운 외모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 그녀가 딱 두 가지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법과 무술이었다. 그녀는 에단의 말을 빌리자면 '하늘이 등을 돌린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어 검술과 같은 무술에는 소질이 없었다.


또한, 그녀의 몸에는 마법을 쓸 때 꼭 필요한 '마나'라는 이상한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마법을 배울 수도 없었다. 이론은 완벽하게 이해함에도 그것을 끌어낼 능력이 없다는 것에 그녀는 좌절했으나 악바리로 노력한 끝에 그 어떤 사람들도 배우기만 한다면 쓸 수 있다는 창조마법 한 가지를 간신히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창조마법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이 못 되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 뛰어난 검사라던가, 천재 마법사정도가 되었다면 에드리안이 공작의 작위를 계승하였을 때에도 막강한 영향력으로 그를 보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는 분명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공작을 보호할 수 있는 영향력은 없었다. 그것이 그녀의 한이었다. 물론 뒷세계에서 돈을 움직여 그를 보호해줄 수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녀의 성에 차지 않았다.


'내가 이 아이의 누이이고, 내가 있는 한 이 아이를 건드릴 수 없다.'라는 사실을 모든 이들이 알아주길 바랐다.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것 따위가 아닌 정정당당한 명예로써.


샤를리즈는 신경질적으로 마법 입문 책을 덮었다. 수도 없이 많은 입문 책을 읽었고 이제 입문에 관해서라면 논문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정작 그녀는 마법을 쓸 수 없다.


그녀는 덮은 책을 책상의 끝에 놓은 뒤 서랍을 열어 무수히 많은 편지들을 꺼내었다. 그 편지들은 모두 귀족들이 그녀에게 보내온 초대장이었다. 이 시대에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교양 있는 여류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담긴 초대장.


그 중에는 제법 고위귀족이 보낸 초대장도 있었으나 그녀는 과감하게 그 초대장을 마법 입문 책이 있던 곳으로 밀어 넣었다. 고위 귀족들일수록 자신들의 권위를 들이밀길 좋아하며, 그녀같이 교양 있고, 아름다운데-그 쪽에서는 그녀의 얼굴을 알지 못할 테지만.- 하필이면 서민인 여성에게 무엇을 요구할 지는 눈에 보였다.


샤를리즈는 초대장이 어디서 온 것인지 재빨리 확인하고는 넘기고 또 넘겼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그 초대장에 대한 거절문구가 삭삭 지나갔다. 그렇게 빠르게 초대장을 넘기던 그녀의 손이 별안간 한 초대장에서 멈추었다.


샤를리즈는 제법 흥미롭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초대장의 명의를 확인하였다. 왕립 마법사 연맹의 수장인 칼라일 시모어의 인장이 찍힌 초대장이었다. 그녀는 최초로 그 초대장을 열어보았다.


제법 멋들어진 글씨가 종이를 가득 매우고 있었는데, 결론은 '뛰어난 학식을 가진 자들의 모임이 있을 예정인데 귀하가 초대되었다.'라는 것이었다.

칼라일 시모어가 주최하는 연회는 그 질이 높기로 유명하였다.


연회보다는 학술회에 가까운 그 모임에는 비록 참가하는 자들 중 귀족의 비율이 조금 적은 편에 속하였으나, 모이는 자들 모두가 뛰어난 학식을 지닌 자들이었기에 나라의 대소사에 대해 논하고 가끔씩은 거기서 나온 대안들이 국정에 반영될 정도라고 하였다.


한낱 베스트셀러 작가인, 게다가 여성인 자신에게 이 연회의 초대장이 온 것은 조금 의아했으나 이는 분명 좋은 기회였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연회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학문을 닦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초대받길 원하는 그 연회에 참가한다면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샤를리즈는 곧장 펜을 들어 재빨리 양피지에 그 연회에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적어 내려갔다.







샤를리즈라고 만능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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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6 2,663 27 12쪽
21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5 2,684 32 12쪽
20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5 2,717 26 10쪽
19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4 2,781 25 9쪽
18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4 2,709 2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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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0.10.10 3,161 34 10쪽
»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4 10.10.10 3,240 27 9쪽
11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10) +2 10.06.05 3,421 29 8쪽
10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9) +2 10.06.05 3,490 30 10쪽
9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8) +2 10.06.03 3,597 28 11쪽
8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7) +2 10.05.31 3,640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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