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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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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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0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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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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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칠흑의 꽃. 제 3막. 총수 대 총수의 대면

DUMMY

"아, 나 왕성에서 에드리안을 봤어."


"뭐?"


샤를리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비앙카는 걱정 말라는 듯 양손을 흔들었다.


"걱정 마. 실수 같은 거 전혀 안했으니까. 그 애 이제 인정받은 것 맞지? '그 이'에게 똑바로 눈을 뜨고 자신이 그라니언 공작가문의 후계라고 밝히더라고. 일단, 에드리안과 나는 서로 모른 척 했지만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그 자리에서 끌어안아 주고 싶더라. 네가 네 동생은 정말 잘 키웠어."


그 말에 샤를리즈는 저도 모르게 환하게 미소 지었다. 비앙카는 에단과 마찬가지로 샤를리즈와 에드리안의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비앙카에게 만큼은 솔직하게 모든 일을 털어놓고 공작과 공작부인, 프리실라에 대한 험담을 해버리는 샤를리즈였다. 샤를리즈는 에드리안이 왕성에서 제 할 일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 비앙카의 말을 곱씹었다. 3번 쯤 곱씹었을까?


그제야 이상한 단어를 눈치 챈 샤를리즈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이? 뭐야. 그 사람도 왕성에 왔단 말이야?"


"응. 사실 폐하께 우리 사이를 정식으로 인정받으려고 온 거야. 곧 나와 그 이는 결혼하게 될 지도 몰라."


"사교계에 큰 파란이 일겠군."


샤를리즈는 왕성의 정보를 담당하는 간부를 자르기로 결심했다. 비앙카야 세력이 워낙 한미한 가문의 출신이기 때문에 몰랐다 쳐도 그녀의 '그 이'가 왔다는 엄청난 사건을 그녀에게 알리지 않다니 잘려도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비앙카의 연인은 다름 아닌 왕국의 2대 공작 가문 중 하나인 아스피트 공작 가문의 후계자였으니까.


아스피트 공작 가문. 현재는 북부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서 조용히 송곳니를 감추고 있는 가문이었으나, 한 때는 그라니언 공작 가문과 비견되는 세력을 지녔던 그 보다 훨씬 전 왕국이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때에는 왕가의 권력을 뛰어넘는 권력을 지녔던 가문이었다.


그라니언 공작 가문이 왕국의 문신반열의 거두라고 한다면, 아스피트 공작 가문은 무신 반열의 거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아스피트 공작 가문이 중앙 정계에서 물러나 자신의 영지에 틀어박혀 고요히 숨죽이고 있는 이유는 지금의 아스피트 공작이 선왕에게 '심결의 맹세-기사들이 자신이 섬길 평생의 주군에게 하는 맹세로 기사들이 하는 맹세들 가운데 가장 강인한 맹세라고 한다.-'를 한 선왕의 기사였기 때문이다.



선왕이 병사로 위장한 의문의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이 행방불명되자 아스피트 공작은 자신이 불충을 저질렀다는 명목으로 현왕을 인정한다는 맹세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세력들을 이끌고 제 영지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현왕의 치세 이후 단 한 번도 제 영지에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로 인해 북부지방은 크로이츠 왕국의 땅이라기보다는 거의 아스피트 공작이 다스리는 공국의 형태로 되어버렸으며 이는 현재 왕실의 중요한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아무튼 현 왕실과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한 공작 가문의 후계자가 수도에 방문하다 못해 왕실에 들르다니 이것은 파란을 일으킬 정보였다. 왜 갑자기 이 시기에 온 것일까? 정말로 순수하게 비앙카를 며느리로 들일 생각일까? 샤를리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비앙카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녀는 공작부인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한미한 집안의 출신이다. 귀족들의 결혼은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절대로. 거기다 현 왕실과 사이도 좋지 않으면서 굳이 왕에게 정식으로 인정받을 이유 따위는 없다. 현왕조차 인정하지 않은 공작이 그럴 이유가 없지 않는가?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 드러나지 않게, 저 깊고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파악한 이상 샤를리즈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재빨리 그 움직임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자신과 에드리안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 가늠해야했다. 만일 그 움직임이 그들에게 해가 된다면 샤를리즈는 온 힘을 다해, 그 움직임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막아야할 것이다.


샤를리즈는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바켄바우어를 상대해야할 시기에 이런 중대한 건수가 그녀의 귀에 들어오다니. 이것에 관해서도 하루 종일 생각해야할 텐데 언제 또 시간을 비운단 말인가?


바켄바우어의 총수를 만나고 나면 분명히 그 뒤를 처리하느라 또 눈도 코도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최소한 일주일은 일처리가 빠른 그녀조차도 책상 앞에 앉아 서류만 읽고 결재하고 간부들에게 지시해야할 것이다. 본의 아니게 샤를리즈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준 비앙카는 눈을 또르륵 굴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무튼 에드리안에게 친구가 생겼더라. 2명이던데 너 알고 있었니?"


비앙카의 말에 저도 모르게 꽉 지고 있던 펜을 놓았다. 에드리안에게 친구가 생겼다고? 그러고 보면 근 이틀 동안 에드리안과 대화는커녕 마주치지도 못했다. 바켄바우어 건에 온 정신을 팔고 있었던 터라 다른 일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에드리안과 그녀가 최근에 대화를 나눈 것이라고는


'누님, 저 왕성에 자주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하지만 아직 네가 직접적으로 소개가 되지 않았으니 조심해야 해. 그 정도는 알고 있지?'


'물론이에요. 제 걱정은 하지 말고 누님의 일에 집중하세요.'


였다. 에드리안은 그녀가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웬만해서는 그녀를 방해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화가 없었던 것이다.


에드리안의 배려가 샤를리즈는 고맙기도 했지만 서운하기도 했다. 그녀의 동생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듣는다는 것은 그리 썩 유쾌한 일은 못되었다. 샤를리즈가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젓자 비앙카는 걱정스럽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한 분은 스웨어 백작의 자제분이셔. 너도 알 거야. 앨런 씨의 조카분. 엘루이즈 드 스웨어.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몰라. 하지만 다른 한 쪽이 조금 뭐랄까? 신경 쓰여. 클랜디스 드 로즈퍼드."


"...로즈퍼드라고?"


"그래, 서류상 에드리안의 외가. 그 사람, 왕실 기사 제 2부대의 대장이라고 하더라. 엘루이즈 경에 비하면 실력은 아래지만 그래도 실력자라고 들었어. 뭐, 이런 것 때문에 걱정하는 건 아니고. 그 자, 우리 가문의 영지에까지 들릴 정도로 안 좋은 소문이 많아."


그 말에 샤를리즈는 흥미가 생겼다. 비앙카의 가문이 있는 영지에까지 그 소문이 들릴 정도라면 왕국 내 모든 귀족들이 다 안다는 뜻이다. 샤를리즈는 계속해보라는 듯 비앙카를 빤히 바라보았고, 비앙카는 눈을 굴리다가 얼굴을 살짝 붉힌 뒤 중얼거렸다.


"그... 엄청 문란하대. 노소를 가리지 않고 막..."


비앙카가 차마 끝을 맺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자 샤를리즈는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거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거 맞아? 늙은 여자 젊은 여자 안 가리고 달려든다는 그거? 세상에. 그런 취향이 얼마나 격했으면 네 귀에까지 들려? 여러 의미로 대단하네. 존경할만하다."


"얘는! 그런 사람이 네 동생 친구라니까."


"아아, 그건 좀 걱정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다행이야. 너도 알다시피 에드리안은 너무 순진해서 탈이라고. 그 애는 앞으로 공작 가문을 짊어져야할 애인데 아직까지도 아기가 배추 속에서 태어난다고 믿고 있으면 곤란하잖니?


차라리 잘 됐네. 솔직히 누나의 입장으로 그런 거 말하기도 되게 껄끄러운데 뭐, 그런 애랑 다니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그러다가 잘못된 길에 빠지면? 예를 들어 환락가에서 살게 된다거나."


"에드리안을 뭐로 보고. 그 정도 자제력이 없을까봐?"


그런 일이 있으면 환락가를 차례대로 망하게 만들면 되는 일이다. 그 정도 재력이야 눈도 깜빡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그녀이다. 물론, 에드리안을 믿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다. 절대로 만약.


"그런데 리즈. 정말로 에드리안이 애가 어떻게 생기는지 모르니?"


비앙카의 물음에 샤를리즈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소리쳤다.


"얘가 진짜! 모를 리가 없잖아!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 이론적인 건 걔도 다 알아! 단지 내가 아는 한 아직 첫사랑도 못해본 데다가 여성의 맨살이라고는 팔꿈치 위 10cm정도까지 밖에 본 적이 없는 애니까 문제라는 거지. 아, 진짜! 내가 왜 이런 걸 설명해야 하는 거야?"


샤를리즈가 진심으로 짜증을 내자 비앙카는 깔깔거리며 자지러졌다.


"알아. 농담 한 번 해본 것 가지고. 하여튼 에드리안에 관한 일이면 저렇게 과민반응이라니까. 사실 이렇게 놀려고 온 게 아닌데. 지금 시간 되니?"


"왜?"


"나 오늘 왕성 무도회에 참석해야하거든. 별 생각 없었는데 네가 내 드레스보고 부농의 부인 같다고 했잖아. 난 그런 걸로 흉잡히는 거 상관없는데 아무래도 그 이가... 직위가 직위이다 보니까. 물론, 그 사람은 내가 뭘 입든 다 좋다고는 하지만."


"안 돼. 절대로. 네가 그 드레스 입고 왕성 무도회에 참석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내가 목을 매겠어. 애초에 그 사람이 네가 아무 옷을 입으나 예쁘다고 하는 건 눈에 가득 쓰인 콩깍지 때문이잖아."


"그러니까.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안목이 없잖아. 그러니까 드레스나 액세서리 고르는 것 좀 도와주면 안 될까?"


그 말에 샤를리즈는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4년 간 공을 들인 계획의 결실이 오늘의 담화에서 맺어진다. 한가하게 친구의 드레스를 골라주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저 꼴로 친구를 무도회에 참석시킬 수도 없다. 안 그래도 한미한 집안 출신 주제에 공작가의 후계자를 꿰어 찼다고 안 좋은 소문들이 나돌 것인데 저런 꼴로 나갔다간 귀부인들에게 트집잡혀 온 마음이 너덜거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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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0.10.10 3,161 34 10쪽
1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4 10.10.10 3,240 27 9쪽
11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10) +2 10.06.05 3,421 29 8쪽
10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9) +2 10.06.05 3,490 3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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