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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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최근연재일 :
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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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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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DUMMY

'그 때의 일'이란, 에단이 샤를리즈의 밑으로 들어온 지 1년이 갓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 때의 샤를리즈는 아직 총수의 자리를 인계받지 못하고, 단지 선대 총수의 직속 부하로 활동하던 때였다.


그 당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정체를 드러내놓고 다니지 않았기에, 대외적인 샤를리즈의 위치는 총수가 가장 아끼는 수양딸정도였다. 그랬기에 본래 직무는 '총수 직속 간부의 호위'였던 에단 또한 겉으로는 '수양딸의 호위기사'정도였다.


그런 그를 본 바켄바우어의 총수가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말 뼈다귀 같은 놈을 호위기사로 삼다니, 총수가 아끼는 수양딸이 제법 머리가 좋다고 들었는데 그도 아닌가보군.'이었다.


체질상 우락부락한 근육보다는 잔 근육이 몸에 붙는 에단이었기에 '말 뼈다귀'같다는 바켄바우어 총수의 표현은 어쩌면 맞을 지도 몰랐다. 다만, 둘은 초면이었고 그 당시의 에단은 무법자의 도시, 라제칸에서 상경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삐가 덜 매어져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만일 그 때 바로 샤를리즈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상대가 바켄바우어의 총수이든, 귀족이든 상관하지 않고 그 안면에 주먹을 내리 꽂았을 에단이었다. 그 때를 기억한 샤를리즈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 에단이 이렇게 점잖아질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이제는 웬만한 시비는 그냥 무시할 수 있다며?"


"그 때는 어렸으니까요. 뭣도 모르고 까불거렸던 시절입니다."


"그래, 그렇다 쳐두지."


샤를리즈가 애써 인정한다는 투로 말하자 에단의 미간은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나 꽤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에단에게는 샤를리즈의 사소한 놀림거리보다 훨씬 더 골치 아픈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바켄바우어의 총수는 언제 만나주실 생각이십니까? 남부지부장이 구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불티나게 서신을 보내고 있어서 난처합니다만. 오늘로써 벌써 100통을 달성했거든요. 무시하는 선을 넘어섰습니다."


그녀의 만년필을 굴리던 손가락이 멈추었다. 바켄바우어의 남부지부장이 구금되고 그가 통솔하던 남부지부가 그의 동의아래 빈트뮐러의 손에 넘어간 지는 20여일이 지나있었다.


이 사실이 수도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최소한 이틀이 걸릴 테니 그럼 거의 18일 정도 동안 서신을 100통 보냈다는 것이 된다. 샤를리즈는 재미있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벌써 그렇게나 많이 보냈단 말이야? 내가 지시한 바를 간부들이 잘 해내고 있나본데?"


"예. 일반 상인들과 귀족들은 물론 사창가에까지도 '바켄바우어의 남부지부장을 빈트뮐러가 구금하였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라는 소문을 쫙 퍼뜨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아서인지 별 희한한 추측들이 난무하더군요.


이제 바켄바우어도 한 물 갔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지요. 빈트뮐러에 가입하려는 행상인들도 늘었습니다. 근 3주간 가입 신청을 한 자들이 지난 세 달간 가입 신청한 자들의 수를 앞지르고 있으니까요.


바켄바우어 상단에서 탈퇴한 자들이 빈트뮐러로 들어오는 걸로 추정되었고, 이로 인해 귀족들의 바켄바우어에 대한 신용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에단은 숨을 돌릴 겸 샤를리즈를 바라보았다. 기대한대로 만족하고 있는 표정이다. 그녀는 계속 말해보라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게다가 사교시즌 때문에 카를로의 드레스를 원하는 귀족들이 모두 빈트뮐러로 눈을 돌리고 있죠. 그라니언 공작가문에서 한 벌을 사갔으니 나머지 한 벌을 차지하기 위해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더군요. 하여튼 그 천조가리가 뭐가 그리 비싼 건지. 아, 방금 말은 취소하겠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측에 들어오는 이윤 또한 어마어마하니까요."


귀족들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에단에게 있어서 카를로의 드레스는 단지 '돈을 많이 주는 천조가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우스워 샤를리즈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흐음. 슈드레거에서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어?"


"예. 그 쪽의 총수가 심하게 앓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달을 넘기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쪽은 다음 대 총수를 뽑기 위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답니다. 말이 논쟁이지 거의 혈투나 다름없다고 하더군요. 이쪽을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는 것이겠죠."


왕국의 3대 상단이 유지하고 있던 균형이 깨지고, 100여 년 간 그 명맥을 유지하던 상단이 대 상단이 된 지 5년도 되지 않은 빈트뮐러에게 집어삼켜진다는 데도 이쪽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에 샤를리즈는 코웃음을 쳤다.


"흥! 머저리 같은 것들. 바켄바우어의 세력이 조금만 약했어도 이참에 슈드레거까지 집어삼키는 건데. 그건 정말 안타깝네."


"욕심도 과하면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빈트뮐러의 세력이 극도로 강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쁜 슈드레거의 간부들입니다. 그들 중 하나가 총수가 된다면 더욱 흡수하기 쉬울 테지요."


"그럴 테지."


샤를리즈는 조용히 중얼거린 뒤, 고개를 숙여 책상의 가장 아래에 있는 서랍을 열어 제법 긴 양피지를 꺼내었다. 그 양피지의 가장 위에는 커다란 글씨로 '총수가 되고 난 후 처리해야할 일들.'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1부터 45까지 여러 일들이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것들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새카만 줄에 의해 지워져 있었다. 샤를리즈는 만년필을 들어 5번째에 적혀 있는 '5. 바켄바우어를 손에 쥐기'의 숫자부분에 세모를 그렸다.


그리고는 그 끝부분에 오늘의 날짜를 적은 뒤 +4라고 적었다. 그를 본 에단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흘이나 뒤에 만나실 생각이십니까?"


"응. 그쯤 되면 저 쪽도 애가 타다 못해 현기증이 나겠지. 손해를 메우느라 공예가들에 대한 대우가 나빠질 거야. 지금의 바켄바우어 총수는 공예가를 끔찍하게 아끼지 않거든.


거기다 그 작자는 제 이름으로 너무 많은 사업을 벌여왔어. 그 사업들이 손해를 보고 망하게 된다면 그 자의 위신이 깎이게 되겠지. 아마 슬슬 공예가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을 거야. 우리는 바켄바우어와 공예가들의 사이가 바닥을 찍을 때 쯤 만나서 그들을 요구하면 돼."


"그래도 상단의 근간이 공예였는데 쉽게 내어주겠습니까?"


"응. 내어줄 거야. 에단, 우리가 갖고 있는 패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패이거든."


에단은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기묘하게 일렁인다고 생각했다. 그는 저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계획한 바가 완벽하게 이루어졌을 때면 저 일렁임은 꼭 나타났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모험가의 눈빛과 같은, 까마득한 세월을 기다려온 연인을 만난 자의 눈빛과 같은, 그리고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러 심판을 기다리는 자의 눈빛과 같은 것이었다, 그 일렁임은.


"정통성이 없는 현왕은 제 왕권이 무너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지. 왕가의 인장을 받은 상단이 왕명을 어기고 마약을 유통시켰다는 것을 들으면 현왕이 어떤 짓을 벌일까? 제 형을 폐위시키고 끝내 제 조카를 백성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자야.


그 과정에서 흘린 피는 아직까지도 수도의 거리를 적시고 있다 하지. 잔혹함으로 따지자면 내 이상인 자야. 내가 왕이라도 그 상단이 받은 왕가의 인장을 회수하고 그 간부들을 모두 처형시켰을 텐데 현왕이 어떻게 나올지는 안 봐도 뻔하지.


상단 유지는커녕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고 싶다면 내 발아래 무릎을 꿇어도 시원치 않을 거야."


"그렇군요."


에단은 수긍하자 샤를리즈는 조금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바켄바우어의 총수께는 이렇게 전해. 지금 빈트뮐러의 총수는 제 상단의 일만으로도 벅차 나흘 후에나 시간을 낼 수 있다고."


"알겠습니다."


그렇게 답한 뒤 에단이 일어섰다. 그가 일어서자 샤를리즈는 자신의 의자에 몸을 한껏 기대었다. 에단은 그녀가 20여 일 동안 밀린 상단의 일을 처리하느라 근 이틀간 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괜찮은 체 하지만 사실은 온 몸이 피곤함을 호소할 것이리라.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는지 문을 열던 그의 손이 멈추었다. 에단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샤를리즈에게 물었다.


"4년 전 카를로는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었죠. 그럼에도 당신의 명 때문에 떠났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제게 아케인 시의 프루덴스를 조사하라는 명을 내림과 동시에 카를로에게 돌아오라는 명을 내렸고요.


이 모든 것이 계획된 일이었습니까? 바켄바우어의 주 고객인 귀족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서였습니까? 바켄바우어의 손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에단의 물음에 샤를리즈는 지친 눈을 돌려 에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잘 알면서 왜 물어, 에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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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3 [탈퇴계정]
    작성일
    10.10.14 15:51
    No. 1

    제가 모르는 새에 올려놓으시다니ㅠ
    잘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춤추는소녀
    작성일
    10.12.19 16:42
    No. 2

    선호작 추가하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화첨
    작성일
    11.04.05 15:21
    No. 3

    재미있어요 잘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소나마
    작성일
    11.05.16 15:13
    No. 4

    패이거든. -> 패거든.
    대부분의 글자 사이에 '이'를 붙이는 것은 옳은 말이 아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4 가엘프
    작성일
    11.07.13 08:26
    No. 5

    카를로도 장미녀 손 안의 사람이었군요.

    일 년에 두벌만 만들라고 시킨 것도 그럼 그녀의 의도인가요?

    그던데 삼대 상단을 공개적으로 먹어버리면 귀족측의 견제가 심해질 수도 있을텐데요...

    근간인 공예가만 먹고 껍데기의 우두머리는 꼭두각시로 교체해서 부려먹을 생각이려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 라울리
    작성일
    13.04.15 15:19
    No. 6

    ㅋㅋㅋ 샤를로즈 멋짐당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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