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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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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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0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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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DUMMY

란 크로프츠는 순간 자신의 상념 속에서 떠오른 단어를 붙잡았다. 그는 여전히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외양을 살폈다. 붉은 머리칼에 녹색 눈동자. 저 기묘한 색 배합은 그가 그 재능을 높이 사고 있는 공작의 것과 같았다.


그는 공작을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확연한 색의 차이가 그의 존재를 머릿속에 각인시킬 정도로, 붉은 색과 녹색의 조화는 기묘했고 또 드물었다. 애초에 공작 이외에 저런 색 배합을 가진 자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이전에 샤를리즈 빈트뮐러의 책을 읽었을 당시, 작가 소개에서 그녀의 생년월일을 기억해냈다. 22살. 그녀의 나이였다. 또한, 공작의 단 하나 뿐인 적통, 프리실라의 나이이기도 했다. 그 순간 샤를리즈 빈트뮐러의 생년월일과 프리실라의 생년월일이 같다는 것을 란 크로프츠는 알아차렸다.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금욕적이라는 걸로 유명한 공작에게 사생아 아들이 있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었는데, 사생아 딸이라니... 그것도 적통과 같은 날 태어난? 어이가 없군.'


공작의 젊은 시절을 알지 못하는 그였으나, 지금의 공작을 볼 때 부인 외의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색과 가장 거리가 먼 귀족을 고르라고 하면 모든 귀족들이 입을 모아 그라니언 공작이라 말할 정도로 금욕적으로 유명한 공작이다.


오죽하면 제 부인과 공작의 사이에서 딸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그라니언 공작 부부는 단 한 번도 앓아누운 적이 없는 몸이 건강한 자들이거늘. 그랬기에 얼마 전, 그가 그의 저택에서 열린 연회에서 그에게 사생아 아들이 있으며 그 소년에게 그의 작위를 물려줄 예정이라는 발언을 했을 때, 그 연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바로 왕에게 불려가기까지 했다. 단지 왕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그런 그에게 또 다른 사생아가 있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샤를리즈 빈트뮐러와 프리실라의 생년월일은 꼭 같지 않는가? 이는 즉, 공작이 두 여인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라니언 공작의 평판을 미루어 보아 그럴 일은 결코 없었다.


란 크로프츠는 쓸데없는 생각이라 치부하며 고개를 저은 뒤 다시 눈을 돌려 샤를리즈 빈트뮐러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평민이든 혹은 희박한 확률로 그라니언 공작가문의 사생아이든 그런 것은 필요 없었다. 그라니언 공작에 버금가는, 저 젊은 인재가 탐이 났다.


자신이 이룰 대업에 큰 힘이 될 것이라 그는 확신했다. 애초에 공작과의 동맹은 그가 프리실라와 혼인을 하겠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동맹이었다. 그러나 만일 더욱 좋은 혼처가 생긴다면 당연히 그는 프리실라를 버려야한다. 그럴 때 그라니언 공작을 견제할 능력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저 여자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어딜 그리 보고 있소?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면 샤를리즈 양인 것 같은데."


혼자만의 상념에 너무 빠져있었던 것일까? 누군가가 그의 옆에 서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란 크로프츠는 고개를 돌렸다. 애초에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인, 노년기에 접어든 마법사가 서 있었다.


란 크로프츠는 그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돌려 여태까지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질리지 않았는지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청년들을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보기 드문 여성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요즈음 저렇게 사내들 사이에서 토론을 할 수 있는 여성은 없으니까요."


"또한 보기 드문 미녀이기도 하지요."


노마법사 칼라일의 말에 란 크로프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맙소사. 그래서 바라보고 있다 생각하셨습니까? 저는 순수하게 빈트뮐러 양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칼라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란이 무슨 의도로 그에게 그러한 말을 한 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떤 능력에 감탄하셨는지는 내 모르겠으나, 이리 몰래 훔쳐보는 것보다 직접 이야기해보는 것이 좋지 않겠소? 마침 샤를리즈 양도 내게 할 얘기가 있는 눈치이니."




* * *




샤를리즈는 슬슬 입가의 근육이 굳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3시간 정도 되었을까? 지어지지도 않는 미소를 띤 채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던 것은. 샤를리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열을 올리며 하는 이야기들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들처럼 위의 귀족들이 토론을 하고 정치를 한다면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정치에 반영되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항상 밝은 곳만 바라보고 따뜻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세상은 결국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진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동생 수준이다.


샤를리즈는 아무도 모르게 눈을 내리 깔았다. 이토록 순수한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숨이 막혀왔다. 그녀가 결코 걸을 수 없었던 길을 당당하게 걷는 그들 사이의 공기는 너무나도 맑아, 하수도 아래의 생쥐와 같은 삶을 산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래서 괜히 심술을 냈다. 이 토론이 끝나지 않도록 영원히, 그래서 결국은 이 순수한 자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지쳐버리게 하기 위해 이 쪽 저 쪽 힘을 실어가며 그들을 조종했다.


순수한 이상주의자를 가지고 노는 것은 현실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그녀가 생각한 대로였다. 그들은 어쩌면 정말 쉽게 찾을 수 있었을 답을 그녀의 의도대로 움직이느라 찾지를 못했다.


기뻤다. 아니, 기뻐야할 터였다. 그럼에도 샤를리즈의 마음속을 지배하는 메스꺼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끈덕진 것인지라, 굳이 비유하자면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에단의 묘사를 통해서만 알고 있는 '프루덴스의 향'과 같았다.


그 때,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당황한 샤를리즈는 고개를 돌려 와인이 담긴 잔을 들어 황급히 입가를 가렸다. 아아, 역시 3~4시간 정도 억지로 미소 짓는 것은 한계였나 보다. 하긴, 여태까지 항상 얼굴을 가리고 상단을 이끌어온 그녀였다.


실제 고객을 만날 때에는 되도록 짧게 용건만 간단히 하길 원하는 VIP고객들이었으니 이토록 오랜 시간 억지 미소를 지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와인을 마시는 채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경험이 필요하다는 건가?'


얼마 전 에단이 총수 대리의 일을 불평하면서 '고객을 상대하는 일을 제게만 맡기셨다가는 나중에 큰 코 다치실 겁니다.'라고 잔소리를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것이 떠오르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참, 사람을 베는 것이 특기라는 무시무시한 이미지에 비해 귀여운 투정이 아닌가? 그녀는 입가의 경련이 멈추자 잔을 내려놓았다. 그 때,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먼저 눈이 마주친 것은 오늘 이 연회의 주인이자 단 한 번도 이 연회에 직접적으로 참석하지 않은 칼라일이었으나 그녀의 시선을 잡은 것은 칼라일 옆에 서 있는 검은 머리칼의 청년이었다.


'이름이 란이었던가? 왜 온 거야, 저 사람?'


샤를리즈는 아까 칼라일이 그녀와 란을 다른 이들에게 소개시켜줄 때를 떠올렸다. 사람에 관해서는 눈썰미가 빠른 편에 속하는 샤를리즈가 확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장담하건데 아마 저 남자는 칼라일이 소개시켜준 사람들 중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인원만을 외우고 있을 것이다. 거기다 저 남자는 칼라일의 옆에서 같이 쫓아다녔던 그녀에게조차도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순간, 샤를리즈는 이 자리가 상단의 일 때문에 모인 자리가 아닌 단순히 학식을 교류하기 위한 자리라는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


만일 상단의 일에 관한 모임이었더라면, 어떻게든 상대방의 정보를 얻기 위해 옆에서 알랑거리기라도 해야 했을 테니까. 그것만큼 짜증나고 또 자존심 상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도 자신보다 고작 몇 살 많은, 무슨 대학 최연소 졸업생이라는 것 외에는 별 볼일 없는 인간에게는 더욱이 말이다. 그녀에게 학식이 뛰어난 젊은 친구들이 필요한 동생이 없었더라면 저 작자의 이름은 아마 30분도 채 되지 않아 지워버렸을 것이다. 속으로 그 정도 불만을 토해내고 나서야 샤를리즈는 쓴웃음을 지으며 인정했다.


'아아, 그래. 첫 인상이 별로... 아니, 최악이었지. 그래도 에드리안을 위해서라면 친한 척을 해야 한다니 그게 짜증난다고.'


동생을 위해 무슨 짓을 해왔던 그녀였다. 그녀를 보릿자루 취급 하든, 혹은 막말로 거지 취급을 하든 얼마든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친한 척 해줄 수 있다. 여태까지 해온 일에 비하면 누워서 떡 먹기보다도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러나 역시 그 자에게 갑자기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은 꺼려졌기에 그녀는 칼라일을 보고 방긋 웃었다. 칼라일에게라면 물어볼 것도 엄청 많지 않은가? 애초에 그녀가 어째서 마법에 그토록 소질이 없는지에 대해서만 물어도 오늘 밤이 샐 것만 같았다.


칼라일은 일단, 왕국 최고의 마법사이니 분명 그녀에게 답을 내어 주리라. 거기까지 생각하자 샤를리즈는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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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4 가엘프
    작성일
    11.07.13 08:59
    No. 1

    한 번 있었던 일은 두 번도 있을 수 있는 법이지요.

    그런 면에서 장미녀가 공작과 관계있다는 것에 좀 더 무게을 실어서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텐데... 선입관이란 무서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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