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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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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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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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25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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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5)

DUMMY

"최대까지 빌리지."

"예. 즉시 준비해보겠습니다. 워낙 신망이 높으신 분이니 기한은 두지 않겠습니다. 이번 주 내에 유통할 수 있는 전액을 앨런 쪽으로 보내도록 하지요."


샤를리즈는 '그것쯤이야 별 것 아니다'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유쾌할 리가 없는 공작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샤를리즈는 그 미간의 주름이 자신을 향한 짜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도 없는 사람을 상대해온 그녀의 경험이 '저 자는 지금 무언가 고민 중'이라고 말해왔다.


공작의 미간이 서서히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 미간의 주름을 폈음에도 그의 미간이 깊게 패여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인상을 쓴 것 같았다.


"앨런, 빈트뮐러의 총수를 모시게. 나는 에드리안 군과 나눌 말이 있으니."


샤를리즈는 공작이 고민하고 있었던 것을 털어놓지 않았다는 것을 그가 말을 끝맺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작이 그녀가 아닌 에드리안을 남겨두었으니까. 공작에게 있어서 샤를리즈와 에드리안은 그 용도가 각각 달랐다.


공작이 직접 해결하기 꺼림칙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것이 샤를리즈의 일이다. 그리고 에드리안은 공작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 그렇기에 그 어떠한 때도 묻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공작이 에드리안만 남겨둔다는 것은 일을 끝내고 에드리안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기 위함임을 샤를리즈는 잘 알고 있었다.


"예. 가시지요, 빈트뮐러 님."


앨런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샤를리즈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공작을 향해 청했다.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올 제 수족이 있습니다. 그를 위한 방을 가능한 한 제 근처에 배치하여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러도록 하지."


공작의 답을 들은 샤를리즈가 우아한 절을 하자 앨런은 걸어가 서재의 문을 열었다. 끼익 하고 열리는 소리에 이끌려 샤를리즈는 서재를 나왔고 앨런이 곧이어 문을 닫았다.


서재에 들어올 당시의 굳어있었던 표정과는 달리 서재에서 나온 샤를리즈의 얼굴은 개운한 표정이었다. 반면 앨런은 어째서인지 표정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샤를리즈는 앨런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는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앨런 또한 그녀를 바라보았으나, 어째서 그러한 표정을 짓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앨런이 샤를리즈를 오랫동안 봐왔듯, 샤를리즈 또한 앨런을 똑같은 기간 동안 봐왔다. 앨런이 저러한 태도를 지닐 때에는 자신이 무언가 실수를 했을 때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실수를 깨달을 때까지 저러한 태도로 자신을 대한다. 그녀가 자신의 실수를 떠올리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보나마나 자신이 공작에게 본능적으로 송곳니를 드러낸 것을 가지고 저러는 것일 테니까. 그녀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앨런에게 말했다.


"공작 각하께 경솔했던 행동 사과하죠."

"아시는 분이 매번 똑같은 실수를 하십니다.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선대 공작을 비롯해 지금의 공작의 곁에서 항성 조언을 아끼지 않는 앨런의 버릇이 나오자 샤를리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앨런이 간과하고 있는 무언가를 샤를리즈는 짚어주기로 했다.


"저는 이 공작가문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굳이 잘못된 점을 고쳐주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앨런의 연륜을 필요로 하는 자는 저같이 한미한 상인이 아닌, 고귀한 그라니언 공작가문의 사람들이니까요."


샤를리즈는 자신의 말을 들은 앨런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앨런이 안내하기 위해 앞서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공작이 자신을 객실로 모시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저도 모르게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 수가 없었다. 아마 이 저택에서 사는 하인들보다도 자신이 더욱 이 저택의 비밀에 대해서 더 잘 아는데 굳이 안내를 맡기다니 말이다. 그것도 자신이 저택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 공작이 말이다.


객실은 서재가 있는 2층보다 두 층 위인 4층에 있었다. 1층은 연회를 여는 곳과 식사를 하는 곳이 있었고, 2층은 공작의 공간. 3층은 공작의 가솔들이 머무는 곳이며 4층이 비로소 손님들이 머무는 곳이다.


다른 저택은 보통 4층이 집주인의 공간인 경우가 많았고 2층이 손님들이 머무는 곳이었는데 이것이 본래는 옳은 것이었다. 그 어떠한 귀빈이라 할지라도 집주인보다 높은 곳에서 자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니까. 만약 그것을 허용한다면 집주인이 자신을 지나치게 낮춘다는 평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왕국에서 단 세 가문밖에 되지 않는 공작 가문의 주인인 그라니언 공작의 공간이 2층에 위치한 것은 선대 공작이 전장에서 다리를 잃었기에 어쩔 수 없이 구조를 옮긴 저택을 그대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샤를리즈는 저택의 구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불현듯 무언가 떠올라 앨런에게 물었다.


"이제는 저택의 구조를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요?"


샤를리즈가 갑작스럽게 저택의 구조에 대해 언급하자 앨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녀의 말에 긍정의 뜻을 표했다.


"그렇지요. 안 그래도 얼마 전 각하께서 그 점을 언급하셨습니다만."


앨런의 긍정에 샤를리즈는 빙긋 웃었다.


"각하께서 직접요? 그렇다면 얼른 바꾸셔야겠네요. 마친 저희 상단에 뛰어난 분이 계신데 말이에요. 원하신다면 중개를 넣어드릴 수도 있어요."


샤를리즈는 4층으로 가는 나선형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며 말했다. 앨런은 그녀의 말에 질리고 말았다. 그 어떠한 사건도 그냥 허투루 듣지 않고 곧장 돈을 끌어들일 사업으로 생각한다.


그는 어린 시절의 샤를리즈를 추억했다. 지금의 그녀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음침하고 조용했던 어딘가 모르게 기가 죽어있는 소녀였다. 지금과 꼭 같은 것이 있다면 지나치게 뛰어난 머리뿐이었다. 공작조차 '저 아이가 사내아이였다면, 하다못해 내 적통이었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한탄했을 정도로.



그런 그녀가 저런 식으로 변해버린 것은 그녀가 9살 때, 공작과 알고 지내던 빈트뮐러 상단의 전대 총수에게 입양되었을 때부터였다. 입양된 후 3년 뒤 공작의 성에 들른 샤를리즈는 변해있었다. 완벽한 상인의 모습. 습득능력이 지나치게 빨랐던 소녀는 단 3년 만에 상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10년도 채 되지 않은 지금은 모든 상인들이 부러워하는 지위에까지 올라 있다.


앨런은 그 사이의 샤를리즈에 대해 더 생각하려고 했으나 관두게 되었다. 3층에 다다른 샤를리즈가 갑자기 우뚝 멈춰 섰기 때문이다. 샤를리즈가 먼저 걸어가고 있었기에 앨런은 그녀가 어째서 걸음을 멈추었는지 알 수 없어 고개를 들어 그녀의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사고가 멈추었다. 샤를리즈가 결코 만나선 안 될 여인 둘이 샤를리즈가 서 있는 계단의 위쪽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화사한 금발을 가진 두 여인은 놀랐다는 듯 샤를리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적막 속에서 가장 먼저 움직임을 보인 것은 샤를리즈였다. 그녀는 완벽하게 절을 하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라니언 공작부인. 그리고 그라니언의 아가씨."


13년 전, 성을 떠날 때의 그 작은 소녀는 저 둘 앞에만 서면 파들파들 떨곤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메말라버린 목소리로 당당하게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금발을 높게 틀어 올린 공작부인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샤를리즈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샤를리즈의 뒤에 서 있던 앨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 앨런은 그제야 다급히 걸어 올라가 샤를리즈의 앞에 섰다.


"샤를리즈 양은 각하께서 보자 청하셔서 오신 겁니다."


앨런의 말에 샤를리즈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자신을 높게 칭하는 앨런의 저 버릇은 분명 공작부인의 신경을 긁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작부인의 날카로운 음색이 그녀의 귀를 때렸다.


"샤를리즈 양? 오신 것? 앨런! 그대는 이 가문을 그토록 모셨는데도 아직까지 예법을 모른단 말인가! 마구간에서 태어난 계집을 내 앞에서 굳이 높이는 이유는 날 멸시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인."


공작이 아무리 아끼는 가신이라고는 하나 공작부인에게는 멸시를 당할 수밖에 없는 앨런이다. 소국이라고는 하나 한 나라의 공주님이었던 공작부인이다. 어쩌면 공작보다도 훨씬 드높은 위세를 가졌던 여인.


그런 그녀가 무리를 해서 짝사랑해왔던 공작과 혼인을 감행 했지만, 정작 공작은 앨런의 소개로 알게 된 천한 마구간을 지키던 계집을 사랑했다. 그 일로 그녀는 샤를리즈와 에드리안은 물론, 앨런조차도 경멸했다.


그리고 앨런은 그녀의 모든 멸시를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멸시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공작부인의 분노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샤를리즈는 턱을 살짝 올려 입을 열었다.


"저는 각하와 공적인 자리에서 뵙길 청하였습니다. 그러니 앨런 씨의 말씀에는 틀린 것이 없습니다, 부인."

"하! 고작 글 따위 짓는 계집이 각하와 공적인 자리에서 뵈었다? 우습지도 않군."


공작부인은 코웃음을 친 뒤, 꼴도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려 다른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 버렸다. 샤를리즈가 정확히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도 모르는 공작부인이다. 고작 글 몇 자 깨작거리며 일용할 양식 정도 겨우 벌어먹고 사는 수준이라 여기고 있을 뿐이었다.


대외로 그녀는 몇 편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였지만, 그녀가 쓴 글은커녕 제목조차도 보지 않았을 공작부인이 그녀의 글의 가치를 알 리가 없었다. 글을 깨나 좋아하는 귀족들은 한 번쯤 그녀에게 자신의 연회에 초대장을 보내었다는 것도, 그 모든 초대를 거절하여 사교계에서 그녀의 이름이 제법 알려져 있는 것도 2년간 사교계를 떠나 있었던 공작부인이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 때 공작부인의 옆에 서 있던 금발의 아가씨가 샤를리즈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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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4 10.10.10 3,239 2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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