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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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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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10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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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꽃. 제 3막. 총수 대 총수의 대면

DUMMY

샤를리즈는 한숨을 푹 내쉰 뒤 그녀의 책상 가장 아래에 있는 서랍을 열어 메모지를 한 장 꺼내었다. 그리고는 말을 내뱉는 속도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펜을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짙은 붉은 색, 공단 제 드레스에 어깨 라인 다 드러나는 걸로. 넌 몸매가 좋으니까 그걸 부각시켜야하니까 좀 붙는 걸로 사. 입기 불편하다고 커다란 드레스 입은 거 내 귀에 들어왔다간 넌 나랑 인연 끊을 각오해야 할 거야.


액세서리는 내가 여기 적어놓은 걸로 사. 내가 여기 거리 이름까지 다 적어놨으니까 여기서 사. 비싸다고 칭얼거리지 말고. 공작부인이 되면 훨씬 더 많은 부를 가지게 될 건데 지금 그깟 돈을 아낄 때니? 알아들었지?"


"그래. 알았어."


"그리고 또. 귀부인들이 어떻게 그의 마음을 붙잡았는지에 대해 물어보거든 그 자리에서 그냥 노래 불러."


샤를리즈가 아주 시크하게 그녀에게 지시하자 비앙카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게 뭐야! 그런 짓을 어떻게 해?"


비앙카의 외침은 당연한 것이었다. 왕실 무도회가 무슨 장기자랑 시간도 아니고 뭐 잘 하냐고 물었을 때 대뜸 노래를 부르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었다. 그러나 샤를리즈는 여전히 표정하나 바뀌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뭐, 예의에는 어긋나는 일이지만 날 믿는 게 좋을 걸? 내가 인정하는 네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가 네 노래이니까. 네 노래실력은 믿어도 좋아.


네가 노래를 마친 순간 그 누구도 너를 손가락질 하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게. 뭣하면 내기를 해도 좋아. 난 에단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내기에 진 적이 없으니, 당연히 내가 이길 테지만."



* * *



"아, 정말 너희 재미없게 산다."


듣기 좋은 청명한 목소리가 왕립 기사단 소유 대련 장을 울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자신의 아름다운 금빛 머리칼을 쥐어 잡으며 빈 대련 장에서 뒹굴며 절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붉은 머리칼의,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청년과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갈색 머리칼의 청년이 바라보고 있었다. 갈색 머리칼의 청년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뒹굴던 청년을 발로 차버렸다.


"이 자식이! 시비 거는 것도 아니고 뭐야?"


발로 차버리는 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갈색 머리칼의 청년, 엘루이즈는 벌떡 일어나 주먹을 쳐들었고 그에 깜짝 놀란 붉은 머리칼의 청년, 에드리안은 따라 일어서 엘루이즈를 붙잡았다.


다행히도 진심으로 패줄 생각은 없었는지 완력이 엘루이즈에 비한다면 연약하기까지 한 에드리안의 만류에 엘루이즈는 씩씩거리기만 할 뿐 쳐든 주먹을 내리꽂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금발의, 누구든 한 번쯤은 흘긋 보고 지나갈 외모의 청년 클랜디스는 그의 붉은 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미소 지었다.


며칠 전 왕성에서 처음 만난 에드리안과 둘은 생각 외로 친해졌으며, 엘루이즈의 '앞으로 매일 우리 쉬는 시간 마다 여기로 와라.'는 명령 아닌 명령에 에드리안은 그 후로 계속 왕성을 출입하였다.


난생 처음으로 사귄 친구들이었기에 그들과의 시간은 에드리안에게 있어서 하루 일과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특히 요즈음 그의 누이는 눈도 코도 뜰 새 없이 바빴고, 그녀가 바쁘면 자동적으로 에단 또한 바빴기에 말동무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엘루이즈와 클랜디스의 존재는 에드리안에게 있어서 정말로 소중했다.


그들이 노는(?) 래퍼토리는 아주 단순했다. 클랜디스가 엘루이즈의 성질을 건드리는 말을 하면 엘루이즈가 폭발하여 주먹과 발을 휘두르고 그것을 에드리안이 막는다.


단순하되 아주 격한 순환의 고리였기 때문에 결코 그것이 질리는 일은 없었다. 만약 말리는 에드리안이 없었다면 엘루이즈의 폭력에 못 이긴 클랜디스가 도망을 쳐버리는 것으로 그 고리는 끊겼을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말이다.


"리안이 오고난 후부터 루이에게 맞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어.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둘은 제법 상성이 맞는 듯해서 나로썬 다행이지."


이름을 줄여 부르는 것이 취미인 클랜디스는 에드리안과 엘루이즈를 곧잘 리안이나 루이 따위로 부르곤 했다. 에드리안이야 어린 시절의 애칭이 그것이었고, 15살 정도 때까지 그의 누이가 그렇게 불렀기에 불만이 없었으나 엘루이즈는 그의 이름을 루이라고 부를 때마다 클랜디스를 쥐어박으려고 달려들곤 했었다.


지금도 에드리안이 둘 사이에 있지 않았더라면 분명 엘루이즈는 클랜디스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었을 것이다.


뭐, 그렇게 맞는다 하더라도 상처하나 없는 클랜디스였지만 말이다-사실 지칠 기색 없이 패는 엘루이즈보다 그 폭력을요령껏 당해주면서 상처 하나 남기지 않는 클랜디스가 더 대단해 보이는 에드리안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의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것 봐. 너희는 너희의 삶을 너무나도 삭막하게 살아가고 있어. 보통 너희 정도의 세도가문의 자제들에게 '보통 밤에 무엇을 하시나요?'라고 물으면 홍등가를 간다거나, 연인을 만난다거나 하는 좀 더 건설적이고 즐거운 일을 하기 마련이라고.


그런데 너희가 한 대답이라고는 고적 '수련하는데?' 랑 '책 읽어.'잖아. 내가 장담하건데 너희는 우리 왕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재미없게 사는 돈 많은 인간들'일 거야."


"보통 책을 읽거나 엘루이즈처럼 검을 수련하는 게 더 건설적인 거 아냐? 이성을 만나 젊은 날을 허비하는 것은 현인들이 가장 멀리하라는 행위들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에드리안이 머뭇거리면서도 제 소신을 밝히자 클랜디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까지도 윤리 책에서 가르치는 내용 그대로 사는 샌님이 있었군. 넌 정말 천연기념물이다, 리안. 뭐, 하긴 그라니언 공작 각하께서 사는 모습을 보면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라니언 공작 각하는 사생아가 있잖아. 그런 걸 보면 딱히 금욕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아버지가 날 갖게 되신 건 젊은 날의 실수니까 그런 거잖아."


"말 잘했어, 리안! 그게 중요한 거야. 늙어서 실수하면 그건 손가락질이지만 젊은 날 실수는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고."


"아니, 보통 실수는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실수를 함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실수는 어떤 현인의 가르침보다 더 위대한 거란다, 어리고 순수한 리안 군. 네 아버지도 그러니까 너 이외의 사생아는 갖지 않으신 것 아니겠어?


보통 귀족들에게 사생아가 얼마나 많은 지 너는 모를걸? 그런 의미에서 루이의 아버지이신 스웨어 경은 대단하셔. 사생아가 하나도 없으시니까. 하긴, 스웨어 백작 부인의 기세는 스웨어 경보다 더하다니 당연한 거겠지."


"우리 아버지가 제 부인에게 벌벌 떠는 얼간이로 만들다니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그게 사실이니까 내가 관둔다."


웬일로 엘루이즈가 클랜디스의 말에 동의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어머니라는 존재가 없었고, 누이가 그 역할을 대신해왔기 때문에 에드리안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이미지란 '상냥하고, 따뜻하며, 모든 일의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위대한 사람'이었다.(물론, 누이에게 있어서 그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가 에드리안 뿐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러한 에드리안에게 있어서 엘루이즈의 어머니에 대한 설명은 제법 이색적인 것이었다. 천하의 엘루이즈와 그보다 훨씬 성질이 사납다는 그의 부친을 벌벌 떨게 만드는 성격의 소유자라니. 여태껏 많은 책을 섭렵한 에드리안조차 상상이 되지 않았다.


"네 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우신 분이야?"


그의 물음에 엘루이즈도, 심지어 클랜디스도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마라. 지금 우리 영지의 가장 골칫거리인 용병단을 처리하러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가셨다는 거 아니겠냐? 그 놈들이 아주 빌어먹을 놈들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서 어머니를 끌어내준 그 점 하나만큼은 감사하게 여기지."


"나도 일전에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절대 적으로 돌려서는 안 돼. 괜히 수작 부렸다가 죽는 줄 알았거든."


클랜디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의 내용을 들은 에드리안과 엘루이즈는 삽시간에 굳어버렸지만. 에드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엘루이즈를 바라보았다. 틀렸다. 이건 아마 절대 못 막는다.


"어이, 내가 지금 잘못 들었냐? 지금 누가 누구한테 수작을 걸었다고?"


친구의 어머니에게 작업을 걸었다는 사실을 저도 모르게 발설한 순간이었다. 그것도 클랜디스에게 있어서 최악의 성질머리를 가진 친구에게 말이다. 클랜디스는 애써 미소 지으며 에드리안을 바라보았으나 에드리안은 그의 애절한 눈빛을 외면했다. 클랜디스는 눈을 꾹 감았다.


여태까지는 장난삼아 패왔던 그 매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왕실 기사단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1부대의 대장이자 현재 왕국에서 가장 눈길 받는 젊은 검사였다. 클랜디스 또한 왕실 기사단 2부대 대장이라고는 하나 그 실력은 차마 비교할 수 없었다.


그 때 털썩, 무언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려 클랜디스는 저도 모르게 눈을 떴다. 엘루이즈는 기운 빠진다는 듯 제 어깨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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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칠흑의 꽃. 제 3막. 총수 대 총수의 대면 11.02.07 2,732 23 10쪽
2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6 2,663 27 12쪽
21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5 2,684 32 12쪽
20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5 2,717 26 10쪽
19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4 2,781 25 9쪽
18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4 2,709 24 10쪽
17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3 2,740 30 10쪽
16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3 2,966 26 10쪽
15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1 3,182 25 10쪽
14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6 10.10.12 3,078 31 9쪽
13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0.10.10 3,161 34 10쪽
1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4 10.10.10 3,240 27 9쪽
11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10) +2 10.06.05 3,421 29 8쪽
10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9) +2 10.06.05 3,490 30 10쪽
9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8) +2 10.06.03 3,597 28 11쪽
8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7) +2 10.05.31 3,640 28 11쪽
7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6) +3 10.05.28 3,813 35 12쪽
6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5) +1 10.05.25 3,764 42 11쪽
5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4) +4 10.05.24 3,986 37 13쪽
4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3) +2 10.05.23 4,143 36 12쪽
3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2) +1 10.05.22 5,033 3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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