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펜 국제 마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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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1.22 21:19
최근연재일 :
2014.06.0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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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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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학기 초(4)

DUMMY

천막 안은 어두웠다.

불빛 하나 없이 깜깜한 천막은 에렌에게 '어둠'을 떠올리게 해 그는 의식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성냥을 긋는 소리가 나고 천막 안에 자그만한 불이 생겼다.

성냥을 그은 사람은 당연히 하벤이었다. 붉은 벨벳 의자에 앉은 그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등잔에 불을 붙였다.

천막이 밝아졌다. 하벤은 손을 내밀어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하벤이 앉은 의자와는 달리 딱딱하고 불편해 보이는 나무 의자였다.그러나 서 있는 것보다는 나아 에렌은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차가웠다.

"네가 첫 번째구나. 이름이 뭐지?"

"에렌 드 셀레이넨입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에렌 드 셀레이넨, 에렌 드 셀레이넨...아, 여기 있구나. 그런데 뭐라고?"

"뭐 하나 여쭤봐도 되냐고요."

"뭔데?"

"왜 마법이 아니라 등불을 쓰는 건가요? 마법이 훨씬 더 밝을 텐데."

밝아졌다고는 하나 등불은 그리 성능이 좋지 못 했다. 에렌이 반대편에 있는 하벤의 얼굴을 윤곽만 겨우 볼 수 있는 정도였으니.

하벤은 흔들리는 불꽃 너머로 미소지었다.

"자칫하면 구슬이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지."

구슬? 동그랗고 굴러다니는 그 구슬? 하지만 하벤이 말하는 걸로 보아 평범한 구슬은 아닌 듯 했다. 아마 속성을 검사해주는 구술이겠지. 하지만 책상 위에는 구슬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사실 책상 위에는 은은한 빛을 내는 등잔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저 등잔이 구슬은 아니겠지?

다행히도 에렌의 추측은 빗나갔다. 하벤은 책상 아래로 몸을 숙여 무언가를 조심스레 들어올려 책상 위에 올려놨다. 구슬로 짐작되는 것은 천으로 덮혀 있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해해 줘. 얘가 아직 어려서 수줍음이 많거든."

하벤의 말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하벤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구슬을 쓰다듬었다.

"구슬아, 이제 그만 일어나주지 않겠니? 검사해야 할 학생이 왔단다."

구슬은 조용했다. 하지만 하벤은 지치지도 않고 꾸준히 말을 걸었다.

"제발 일어나 주렴. 학생이 기다리고 있단다. 괜찮아, 이 학생은 엄청 착하고 친절한 학생이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옳지, 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 구슬아!"

하벤의 말에 응답해 구슬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에렌 손바닥만한 구슬은 꾸물꾸물 천을 기어나왔다. 에렌은 손으로 눈을 자꾸 비볐다. 구슬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구슬이 아니고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은 대충 눈치채고 있었지만 거북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거북은 인형처럼 밝은 초록색의 작은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똘망똘망한 두 눈이 에렌과 마주치자 거북은 순식간에 등껍질로 숨어버렸다.

"거북이?"

거북이 다시 몸을 내밀었다. 거북은 새된 목소리로 소리지르는 것처럼 말했다.

"나 거북이 아니야. 나 구슬이야!"

"구슬?"

구슬은 삐졌는지 얼굴을 다시 등껍질 속으로 쑥 들어가버렸다.

그 행동은 예상치 못한 귀여움을 낳아 에렌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구슬의 등껍질을 쓰다듬었다.

"미안, 구슬아. 내가 잘 몰라서 실수했네. 그러니까 한 번만 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래? 다시는 실수하지 않게."

그 말을 듣고 구슬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구슬은 거북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구슬은 피부가 두껍고 딱딱한 보통 거북과는 달리 여자아이들이 갖고 노는 인형처럼 보들보들할 것 같았다. 등껍질도 튼튼하기 보다는 쿠션처럼 푹신해 보였다.

인형이 살아 움직이고 말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왜 진작 알아보지 못 했는지 방금 전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에렌은 살그머니 구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구슬 역시 에렌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생각대로 구슬의 피부는 갓 태어난 아기 마냥 부드러웠다. 자꾸만 쓰다듬어주고 싶은 기분이 드는 그런 피부였다.

결국 유혹에 진 에렌은 5분 동안이나 구슬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구슬도 말리지 않아-쓰다듬을 즐기는 것 같았지만.-보다못한 하벤이 나섰다.

"에렌? 이제 슬슬 속성 검사해야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에렌은 하벤에게 물었다.

"얘는 뭐예요?"

"구슬을 모르는 거야? 뭐, 그렇게 유명한 종족은 아니니까 모를 수도 있겠지. 구슬은 얘 이름이 아니라 종족 이름이야. 인간의 열 배인 1000년을 사는 종족으로 특이하게도 마법을 쓸 수 없어."

"정말요? 왜요?"

"글쎄,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다 쓰잘데기 없는 거고, 어쨌든 이 종족은 그 대신 마법의 속성을 알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일각에서는 속성을 알 수 있는 힘을 지닌 대가로 마법을 쓸 수 없다는 주장을 하지만 별로 믿는...이게 아니고, 어쨌거나 빨리 속성 검사해야지. 다른 애들 기다릴라."

"하나만 더요. 얘 이름은 뭐예요?"

"내가 아까도 말했잖아. 얘는 어리다고. 이제 막 100살이 된 아이라서 이름이 없어. 구슬들은 500살이 된 구슬에게만 이름을 지어주거든. 그 전까진 그냥 구슬이라고만 불러."

"100살이 어려요?"

"구슬들 입장에서는. 우리들로 치면 한 10살쯤 됐을까?"

"굉장하네요. 얘네 엄마, 아빠는요?"

"딴 데서 일하고 계서. 내가 500살이 되면 데리러 오실 거야. 엄마, 아빠 보고 싶은데, 관습이라 어쩔 수 없대."

마지막 물음에 대답한 것은 하벤이 아닌 구슬이였다. 구슬은 시무룩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벤의 말에 따르면 이 아이는 이제 겨우 10살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날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있으니 얼마나 슬플까.

에렌은 이번에는 위로의 의미를 담아 구슬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구슬이는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영원히 못 만나는 것도 아니고 400년만 기다리면 되는 거니까. 그때까지 여기서 열심히 소행할 거야."

"착하네, 구슬은."

구슬이가 히히 웃었다. 뭘 수행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구슬이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 모습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하벤이 말했다.

"잘 됐네. 그럼 이제 속성 검사하지 않을래, 에렌?"

에렌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벤은 좋아, 라고 말하고 구슬이를 살짝 들어서 에렌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눈을 감고 집중해.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마음을 비워. 그러면 마음 속에 어떤 장면이 떠오를 거야. 이해했니?"

"네. 이해하는 거랑 그걸 실천하는 거랑은 다른 문제지만요."

"이해했으면 됐어. 알겠지? 마음을 비우고, 어떤 생각도 하지 마. 그러면 돼."

"한 번 해볼게요."

마음을 비우자, 마음을 비우자, 마음을 비우자...

그러나 마음을 비우는 건 그의 생각대로 어려웠다. 마음을 비울라치면 꼭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단 한가지 생각만이.

반란을 꼭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이런 상황에서도 반란 생각이 나다니. 그러나 이건 좋은 일이었다. 자신이 그만큼 반란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니까.

그 때, 그의 팔 위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실눈을 떠보니 보이는 것은 구슬이였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안 그러면 내가 네 속성을 알아낼 수 없어. 자, 천천히 심호흡해봐.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하나, 둘...

마음이 고요해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흐릿한 안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장면은 점차 또렷해졌다.

그는 수면 위에 서 있었다. 아니, 서 있다기 보다는 수면 위에 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마치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와 있는 것처럼, 그는 그 자신에게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가 앞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작은 나무가 있었다. 녹색의 파릇파릇한 잎과 튼튼한 가지들을 가진 나무는 성장하면 거목이 될 듯 했다. 하지만 나무는 자라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어버릴 것이다. 나무의 뿌리가 죽어있기 때문이다.

보이지는 않았으나 에렌은 알 수 있었다. 왜 죽은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죽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곧 있으면 나무 전체가 죽어버리겠지.

너무나 안타까웠다. 채 자라지도 못한, 꿈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죽을 나무가. 어째서 이 나무는 뿌리가 썩어버린 걸까. 어떻게든 살릴 방법이 없을까.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님, 도련님!"

어깨를 뒤흔드는 누군가의 손길에 에렌은 힘겹게 눈을 떴다.

처음에는 상대가 누군지 인식하지 못 했다. 상대가 말을 하고 있고, 애타게 자신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알지 못 했다. 그러나 곧 어스름이 걷히고 상대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아...로린. 어떻게 된 거지?"

밝은 갈색 머리가 찰랑거리며 에렌에게 다가왔다. 로린의 머리카락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도련님!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니까!"

다급한 탓인지 로린이 말을 이상하게 했다. 에렌은 사과하면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미안해, 로린. 그런데 '도련님'은 빼주지 않을래?"

로린의 귀가 달아올랐다. 그녀는 에렌에게서 몸을 떼어냈고 덕분에 에렌은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천막이 아니었다. 그의 방이었다. 어째선지 티엘이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로린이 헛기침을 했다. 그녀는 화를 내는 건지 부끄러워하는 건지-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헷갈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게 내 말은, 내가 에렌을 껴안았던 이유는, 어쨌거나 에렌이 위험한 일을 한 탓이잖아!"

아무도 묻지 않은 건 둘째 치고 어떤 사고 과정을 거치면 그런 답이 나오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에렌은 무심히 대꾸했다.

"어쩔 수 없잖아. 속성 검사는 무조건 해야 하니까. 그보다 뭐가 위험했다는 건데?"

"에렌, 너 한 시간 동안이나 기절해 있었어."

아직도 뺨을 붉히고 있는 로린 대신 티엘이 끼어들었다.

"내가?"

"응. 선생님께서 네가 속성 검사하는 중에 갑자기 기절했다고 널 데리고 뛰어나오신 거야.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 치유실에 데려갔더니 치유 선생님이 몸엔 아무 이상 없으니 곧 깨어날 거라고 했거든? 근데 로린 얘가 그럼 왜 쓰러진 거냐..."

"티엘."

"미안."

티엘이 혀를 쏙 내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먹서먹했던 두 사람은 어느새 꽤 친해져 있었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고 치유 선생님이 내가 해줄 건 없으니 그만 가라고 해서 방으로 데려온거야."

"그래? 속성 검사는 어떻게 됐어? 다 끝난 거야?"

"다 끝났어. 내 속성은 신속이래!"

티엘이 즐겁게 말했다. 신속 속성의 마법사는 마법진 각인, 주문 영창이 보통 마법보다 짧은 신속 마법을 쓸 수 있다.

"희귀한 속성인데 잘도 걸렸네. 로린은 뭐래?"

"난 뜨거움."

뜨거움은 마법 시전자가 뜨겁다고 느끼는 온도의 것을 다루는 속성이다. 열, 햇빛, 불 등 시전자가 뜨겁다고 느끼기만 하면 뭐든지 다룰 수 있지만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50년은 눈 딱 감고 수련만 해야 된다.

"로린도 굉장하네. 그럼 난 뭐야?"

로린과 티엘이 서로의 얼굴과 에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벌써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사이가 된건지 티엘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저어...에렌, 너무 놀라지 마. 너는 속성을 알 수 없대."


작가의말

당분간은 학원물답게 학원 위주로 가겠습니다. 참고로 에렌의 속성은 별로 대단치 않습니다. 중요한 건 구슬이가 에렌의 속성을 알 수 없었던 이유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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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껍질 편 수정했습니다. 14.05.10 343 0 -
33 의혹 +3 14.06.07 653 10 8쪽
32 나름의 노력 +2 14.05.31 533 6 9쪽
31 껍질 +14 14.03.23 798 20 9쪽
30 움직임 +8 14.03.22 525 10 11쪽
29 거리 +6 14.03.09 683 14 9쪽
28 누군가의 마음 +10 14.03.08 552 8 16쪽
27 학원장과의 대화 +10 14.02.26 469 17 11쪽
26 학기 초(8) +8 14.02.24 465 8 10쪽
25 학기 초(7) +6 14.02.21 522 10 9쪽
24 학기 초(6) +2 14.02.19 338 8 11쪽
23 학기 초(5) +4 14.02.17 545 8 9쪽
» 학기 초(4) +2 14.02.12 550 9 12쪽
21 학기 초(3) +2 14.02.10 483 7 26쪽
20 학기 초(2) +2 14.02.07 454 11 13쪽
19 학기 초 +2 14.02.05 528 11 11쪽
18 입학(9) +2 14.02.03 499 10 11쪽
17 입학(8) +2 14.02.02 656 8 13쪽
16 입학(7) +2 14.02.02 490 8 8쪽
15 입학(6) +2 14.01.24 412 10 11쪽
14 입학(5) +2 14.01.22 701 8 8쪽
13 입학(4) +2 14.01.22 663 13 9쪽
12 입학(3) +4 14.01.22 884 15 10쪽
11 입학(2) +4 14.01.22 733 12 11쪽
10 입학(1) +4 14.01.22 607 15 6쪽
9 만남(5) +4 14.01.22 695 17 7쪽
8 만남(4) +4 14.01.22 728 17 8쪽
7 만남(3) +4 14.01.22 721 15 5쪽
6 만남(2) +6 14.01.22 839 19 11쪽
5 만남 +2 14.01.22 1,142 2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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