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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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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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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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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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2)

DUMMY

월영시의 광명대로는 마법 등불로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시간이 늦을 대로 늦었던터라 길 위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단 한사람.

미엔 엘리느 혼자 그 울적할 정도로 쓸쓸한 거리를 거닐고 있었고, 그렇게 불빛을 받아 휘청대는 그녀의 그림자는 광명대로 그 끝을 향하고 있었다.


『길 끝의 쉼표』


그렇게 그녀의 그림자가 움직임을 멈춰선 곳은 광명대로 끝에 위치한 작은 선술집 앞이었다.

본디, 와자지껄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을 때, 일년에 한 두번 정도 방문하는 곳이었지만 이번 달에만 벌써 세번째 방문으로 그 기록을 갱신 중에 있었다.


물론 그녀가 뒤늦게 술에 눈을 뜬 것은 아니었다.

다만, 사제들의 일이 일어나기 직전, 카니엘과 에스트와의 만남을 이곳에서 처음 가진 이후로도 정보 교류 장소로 주기적으로 이용해 왔던 것이었다.

그렇게 선술집 간판을 보며 올해 첫 방문 기억을 떠올리던 리네는, 더 이상 카니엘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리며, 씁쓸한 마음을 지닌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여! 오랜만! 그날 이후 두번째 인건가?”


선술집 2층의 다락방과 같은 공간.

그 안에 이미 에스트가 월영군 셔츠 단추를 한 개 더 푼 채,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는 이미 오물이라는 생선구이를 중심으로 증류주 한병과 말고기 장조림 등이 이미 놓여있는 상태였다.


“누가 들으면 얼굴을 못 본지 최소 몇 개월은 되는 줄 알겠네.”


“음? 그날 이후 몇 개월 지난 것 아니었나? 체감상 몇 년은 지난 것 같은데?”


“하긴..사제들의 혁명 이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으니 나도 정신 없네.”


그 말에 자리에 앉은 미엔의 술잔에 술을 따르려던 에스트의 손길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다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혁명이라... 그렇게 부르는 군. 하긴 바르나프 가(家)가 이번 일의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닌가라고 할 정도로 사제들과 밀착하게 일을 하고 있으니, 그쪽 입장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네.”


“...감정의 날을 세우려고 만나는 자리가 아니잖아? 서로 득이 되는 것만 취하는 것이 어때?”


받은 술잔을 단번에 비워버리며 내뱉은 미엔의 말에는 그 내용과 달리 날이 서있었다. 게다가 바르나프 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월영군이 크게 관여할 바는 아니었기에 에스트는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게 좋겠지? 그럼 일단 서로 바쁜 이유부터 들어볼까?”

에스트가 그렇게 질문을 던지면서, 오물의 살코기를 한점 뜯어 입속에 넣었다.


“신체향상 구슬을 대량 생산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


“그에 맞춰서 군을 재편 할거라는 소문은 무성하지. 현재 13군단에서 무려 20개 군단으로 증설될 수 있다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내용은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 쪽도 아직 생산이 이뤄지거나 하진 않아. 다만 시설 장비를 바꾸거나 예상 생산량을 산출하는 것만으로 벅찬 편이지. 그 외에도 음... 이건 월영군과도 관계 있을 것 같은데? 카릿치오스로 대량 물자를 보내는 건에 관해서 말이야.”


몇 일 굶은 사람처럼 계속해서 음식을 입에 넣고 있었던 에스트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것으로 그녀의 말에 동의를 했다.

이어서 할 말이 있는듯 손가락을 들어올렸고, 그렇게 입안의 모든 음식을 넘기고, 증류주로 입가심을 한 뒤에서나 에스트는 잠시 멈췄던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 일,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일인데? 이미 파견 부대 편성은 끝내서 세부적인 것만 남았고, 앞으로 작전로만 수립하면 되는데... 아직 귀측에서 정확한 물자 정보를 안주셔서 말이야. 이왕 말 나온김에 일정 좀 물어봐도 될까?”


“실물 준비는 거의 다 끝났는데 목록 작성하는 것만 이틀정도 걸릴 듯? 내가 의약사인지 아니면 중개 무역상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물량이거든.”


“...수송 부대 위주로 편성하긴 했다만.. 대체 카릿치오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에스트가 그렇게 말하며 증류주가 담긴 술잔을 비워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진득하게 조사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술잔을 채우는 것만큼이나 눈 앞에 산재한 일이 많아 카릿치오스의 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엔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에스트가 새 술잔에 입을 대자 마자 지금 당장 필요한 정보들을 모으려 했다.


“월영군 분위기는 좀 어때?”


“분위기라.. 일단, 오해하지 말고 들어. 아까 전에 네가 했던 사제들의 혁명이란 그 말. 혹시 흑표군단 앞에서 말했다간 강냉이가 털릴 수 있어.

아.. 너한테는 최대한 예의는 차려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정도겠지만...

아무튼 그만큼 사제란 단어가 흑표군단 내에서 금기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불만이 가득해.”


“···따로 특별한 일이 있었어?”


사제들의 혁명이든 반란이든, 아무튼 그 일이 성공한 뒤로 사제와 전투 부대인 흑표군단과의 교류는 많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리네였다.

때문에 더욱더 감정의 골이 깊어 졌다는 에스트의 말이 선뜻 이해가지 않아 그렇게 되물었고, 질문을 받은 에스트는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음으로 리네를 무색하게 했다.


“저기요? 아무리 사제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가라고 해도, 월영군 최고 지휘자가 사망했는데 지금 아무 일도 없는 거.. 눈치 못채셨나요?”


“하지만··· 아!..”


리네는 그때서야 자신이 한가지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벨로나가 살아있다는 것은 자신을 비롯한 극소수만 아는 사실이었지 공식적으로 벨로나 세라트너 월영군 최고 단장은 사망한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국장을 치루고 애도 기간을 가져야 할 사안인데, 벨로나 단장의 장례 건이 사제들에 의해 무시된 것으로 알고 있어. 그 때문에 불만이 가득한데 카릿치오스 파견이다, 곧 있을 월연방국 고위사제 회의를 위한 병력 차출은 꼬박꼬박 이뤄지고 있으니 불만이 상당할 수 밖에.”


“월연방국 고위 사제회의?”


“그... 월영국, 월하국, 월광국의 모든 고위 사제가 모이는 회의 말이야.”


“알아. 하지만...”


연례 행사처럼 일어나는 회의였지만, 그 시기가 너무 빠른 편이었다.

그렇기에 분명히 뭔가 있다고 생각한 리네였지만, 에스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었기에 우선은 월영군의 일에 집중코자 했다.


“아무튼 흑표 군단은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이 오롯한 지휘권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지 피를로니아 부단장을 당장 복귀 시켜 달라고 매일 같이 사령부에 건의를 하고 있지.

그런데 뭐 우리라고 그럴 권한이 있나?

게다가 피를로니아 부단장 복귀 소식은커녕 오히려 다른 군단장이 차임자로 온다는 말까지 있으니...”


“다른 군단장?”


“세드릭 토드. 월하시의 칼라칼 군단의 군단장인데, 아마 오늘 새벽 중에 오백명의 군사를 이끌고 월영시에 도착 할거야.”


“월하시 군단장이··· 왜?”


“나도 모르지. 전례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흑표 군단의 빈 지휘권 자리를 임시로 지휘하기 위함이 아닐까? 젠장, 어찌 알겠어.”


에스트가 그렇게 말을 마친 뒤 또 다시 술잔에 입을 댔다.

그리고 안주보다 술잔에 손이 더 나가는 그런 에스트의 모습을 보면서, 리네는 월영군 내부 사정이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월영군의 군단장 및 부군단장을 임명하는 권한이 사제들에게 있기 때문에 사실상 흑표군단은 사제들의 명령만 받아야 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일 것이리라.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암울한 상황에서 에스트를 위로라도 해줘야하나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그가 목소리에 힘을 줘가며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되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을 추측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어.”


“... 그게 정말이야?”


“합리적인 의심이지. 카니엘 덕분에.”


“카니엘?”


뜻밖에 이름에 미엔이 놀라 되물었고, 에스트는 한껏 목소리를 낮춘 채 이야기를 이어갔다.


“카니엘이 인형 파괴자라고 불린 것은 잘 알고 있지? 인형을 만나는 족족 다 처분해 버려서 붙은 그 별명 말이야. 나름 유명한 그 행동 때문에 그날 밤, 카니엘이 죽인 것은 인형이 아닐까하는 소문이 돌고 있어.”


에스트는 이제 거의 비어가는 술병을 집어 자신의 술잔에 가득 부은 뒤, 곧바로 고개를 젖혀 잔을 비웠다.


“게다가 그날 밤 벨로나와 같이 있었던 사제가 렌소 협곡 매장자.. 그러니까 그나마 월영군과 함께 전투를 치룸으로서 신뢰가 있었던 자였단 말이야.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은 뒤, 위기에 처한 벨로나가 렌소 협곡 매장자에게 도움을 청해서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 사제 세력들이 가짜 벨로나를 이용해서 흑표군단을 조종하던 와중에 카니엘이 그 인형을 파기했다라는 사실에 가까운 추론도 하고 있는 실정이지.”


미엔은 복잡한 심정으로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바르나프 가(家)의 입장에서 본다면 현 사제 세력의 비호 아래 그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 속에서 군이 그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바르나프 가의 입장과 별개로 미엔 개인적으로는 진신에 접근하는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었지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과연 월영군의 그 믿음이 대세를 바꿀 만한 힘이 될 수 있을까?”


이미 현 사제 세력은 월하시까지 영향력 수중에 넣은 상태였다.

따라서 월영군이 현 체제에 불만이 있어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 될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인형과의 전투만을 주업으로 하는 월영군이 본래의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꿀 신념과 신념을 이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젠장. 그런 일을 할 만한 조직이 아니라는거.. 알아, 잘 알고 있다고.”


월영군의 속성과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에스트는 미엔의 잔인할 정도로 현실적인 말에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아 술병에 남은 술은 모조리 털어 넣어야 했다.


“그럼에도 말이야... 모두의 신념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 하지만 벨로나 세라트너는..”


“쫓겨났지.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대륙 최고의 검희, 복수의 화신, 루진의 공주로 불렸던 단장님이란 말이야. 그 많은 별명과 수식어가 마치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사라진다는 것이 더 믿을 수 없어.

그러니... 벨로나 세라트너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채 신념을 지켜간다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에스트의 희망 어린 말에 미엔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신이 채운 기억은 전혀 없었지만, 술잔 안에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술이 채워져 있었다.


그 신기한 현상에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미엔은, 이내, 고개를 한번 끄덕인 뒤 술을 단숨에 들이키는 것으로 생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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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2) +1 20.09.28 41 2 10쪽
88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1) +2 20.09.23 49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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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2) +2 20.09.15 41 3 10쪽
85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1) +1 20.09.15 55 2 11쪽
84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7) +1 20.09.11 43 2 8쪽
83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6) +1 20.09.10 43 2 7쪽
82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5) +1 20.09.10 46 2 10쪽
81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4) +1 20.09.03 45 2 8쪽
80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3) +1 20.09.03 38 2 11쪽
79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2) +1 20.09.03 41 2 10쪽
78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1) +1 20.09.03 36 2 8쪽
77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3) +1 20.08.11 38 2 12쪽
»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2) +1 20.08.05 4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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