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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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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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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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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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1)

DUMMY

성인 두 세명은 거뜬히 누울 수 있는 크기에 용이 승천하는 모양이 조각된 다리가 인상적인 책상은, 그 책상면과 다리를 연결해주는 이음새에 어떠한 나사 흔적도 없었다.


따라서 목재판을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를 통으로 사용해서 만든 듯했고, 원재료가 고가인 흑단나무인 점을 감안한다면 너무나 사치스러운 제작 방식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에스트 미호크는 이 책상이 놓인곳이 어디인지를 떠올리고는 그 사치스러운 제작 방법을 수긍키로 했다.


대신 그는 몇 년산 흑단 나무를 사용해야 이 정도 크기의 책상을 통으로 조각할 수 있을지를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흠.... 이 정도 크기의 책상을 만들려면 최소한 100년 이상 된 나무를 썼겠지?”


궁금한 것은 곧바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기에 거리낌 없이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 질문을 받은 당사자인 미엔 엘리느는 이곳, 바르나프 집무실을 족히 수백번은 방문하는 동안 단 한번도 생각 해본적 없는 질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런 것까지는 생각 안해봤는데... 갑자기 왜?”


“월연방국 기후상 흑단나무가 이 정도로 성장하진 못하니 원산지가 어딜까 궁금했던 것뿐이야. 월 연방국이 아니라면 도시 연합에서 공수한 것일텐데...

도시 연합에서도 수령 100년의 흑단 나무는 카릿치오스 지방에서만 구할 수 있는 귀중품일거란 말이지.

그렇다면 도시연합과 바르나프 가의 친분을 상징하는 물품중 하나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게으름과 냉소적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미엔은 지금처럼 그가 가끔씩 날카로운 면모를 보일 때마다 당황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고가 수입품에 대한 세금은 제대로 냈겠지?”


그러나 상대방의 기분이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태도는 여전했고, 혹시나 자신의 스승에게도 똑같은 실례를 범할까봐 주의를 주려던 찰나였다.


별아간 두 사람이 앉아 있던 뒤편의 문이 열리면서 그 사이로 로브를 쓴 사람이 천천히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품이 넓은 로브를 입었기 때문에 단번에 누구인지 파악 할수 없었고, 때문에 미엔과 에스트는 대화를 멈춘 채 경계심 속에서 그 사람을 살폈다. 그러나 미엔은 곧 거의 매일 보다시피 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는 허탈한 웃음을 내지으며 손사레를 쳤다.


“스승님 뭐에요. 사제인 줄 알고 깜짝 놀랬잖아요.”


“허허. 진월대를 들낙일 일이 많아지다보니 아무래도 그들과 비슷한 옷을 찾게되더구나.”


바르나프가 그렇게 말하며 눌러썼던 두건을 뒤로 젖혔고, 이후 흑단나무 책상과 어울리는 고풍스런 의자에 앉아 허리를 꼿꼿히 핀채로 에스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네. 에스트 미호크라 했었지?”


“벨로나 단장님 구출 작전 이후 처음이군요, 바르나프.”


밝은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던 미엔과의 대화와 달리, 에스트와 바르나프의 짧막한 인사 뒤로 어색한 침묵이 찾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에스트는 영문도 모른채 이곳에 불려와 있는 상태였고, 더군다나 예전과 달리 눈앞의 바르나프는 신흥 조력자라 불릴 정도로 현 사제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였다.

그 정도로 벨로나를 구출하기 위해 함께 했던 때보다 지위가 생긴 그였기에, 벨로나 생존 사실을 입막음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 에스트가 추측할 때, 미엔이 어색한 침묵을 깨트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자자, 에스트. 그냥 우리가 가게에서 나누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돼. 스승님께서도 그런 식의 정보 공유에 흥미가 있다고 하신 거거든.”


미엔의 말에 에스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짜피 우리 대화 그대로 바르나프에게 전달되었던 것 아니었어? 그런데 굳이 이렇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나 싶은데? 그것도 이 벌건 대낮에 위험을 무릅쓰고 말이야.”


에스트의 말에 살짝 날이 서있다는 것을 느끼자 미엔과 바르나프는 선뜻 말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바르나프는 대화를 잇기보단 책상 한켠에 마련된 찻잔에 손을 뻗더니 차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미엔이 돕기 위해 일어섰으나, 바르나프가 가로 막으며 손수 에스트의 찻잔에 물을 따라 주며 천천히 입을 뗐다.


“월영군 최고 단장과 친분이 있다는 오만 탓인지 제정론 시절의 사제들의 정체만큼이나 월영군 또한 상당히 접근하기 어려운 조직이 되었더군. 특히 작전, 인사쪽으로는 접근조차 어렵더란 말이야.”


바르나프가 따르는 물이 출렁거리자 생전 맡아본적 없는 향긋한 차내음이 에스트의 코끝을 찔렀고, 그와 함께 바르나프의 의도 또한 섞여 들어오는 듯했다.


“이해했습니다. 세드릭 코헤인 단장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지요?”


“...이야기가 빨라서 좋군.”


살짝 놀란 반응도 잠시, 바르나프가 그렇게 긍정하자 에스트는 일단 받아든 찻잔을 단숨에 반 이상 마셨다.


그와 동시에 어디까지 정보를 내어줄지 결정했고, 잔을 내려 놓음과 동시에 말을 이어갔다.


“알고 계시듯 바로 어제, 사제들이 세드릭 코헤인 칼라칼 군단장을 흑표 부대의 군단장이자, 벨로나 세라트너에 이어 차기 최고 군단장으로 임명하는 것을 건의, 발표하였지요.

군단장 임명 건은 해당 부대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었기에 즉시 흑표부대 참모 회의가 열렸고, 만장 일치로 동의가 이뤄졌습니다.

물론 최고 군단장 임명이야 군단장 중 사제가 지명하는 사항이니 월영군이 왈가불가할 사항은 아니지만, 크게 불만은 없다는 것이 주된 의견입니다.”


“흑표군단 참모 회의에선 별다른 말이 없었나?”


“회의내용 전문은 일급 비밀이라 알수 없으나, 어깨 넘어 들은 바에 따르면 세드릭 군단장이 임시 지휘 체제 운영을 제안했고, 그것에 참모 전원이 동의했다고 들었습니다.”


“임시 지휘 체제?”


미엔이 고개를 갸웃뚱하며 되물었다.


“그래서 추측컨데 세드릭 단장이 월영시로 오는 도중 벨로나 일행을 만났을 거라 생각해. 실제로 그와 함께한 월하국 병사들 중 벨로나와 사제, 그리고 다른 월영군 병사, 즉 카니엘과 조우했다는 병사들이 있었으니..”


“...그렇다면 세드릭 단장과 흑표 군단 참모들은 진짜 벨로나가 살아있다고 믿는 건가?”


“적어도 진월대에서 사망한 벨로나가 가짜라 믿는 자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에스트의 말에 바르나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군의 분위기가 결코 현 체제에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사제측 사람이라 여기는 에스트가 이런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이유는 하나뿐이라 생각했다.


‘벨로나가 살아있는 사실만으로 현재 흑표군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바르나프는 그렇게 결론지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 지휘권자에 대한 사항을 알고자 했다.


“세드릭 코헤인 단장은 어떤 자인지 아는가?”


“굳이 구분하자면 중도적인 성향에 가까운 군단장입니다. 나서서 무리한 전투를 벌인 적은 없으나, 내려진 명령은 철저히 완수해 나가는 사람이라 들은 바, 걱정하는 일을 월영시에서 벌이진 않을 겁니다.”


“..허허.”


정확히 자신의 의도를 파악하여 답변을 해주는 에스트의 태도에 바르나프는 너털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외로 협조적인 그의 태도에 적어도 한가지 목적은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던 찰나였다.


“자. 그럼 저도 궁금한 것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미엔과는 항상 정보를 주고 받는 식으로 대화를 했으니, 저도 질문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좋을 대로.”


“세드릭 코헤인 단장에 대해 물어봤듯이 저도 동일하게 인물 정보에 관해서 묻도록 하겠습니다.”


에스트는 게으르다, 냉소적이다, 날카롭다 등등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수식하는 표현 중 그나마 ‘이해타산적’이란 표현에 대해서는 동의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방금전 정보는 물론 윗선의 눈치를 보면서 업무 시간에 나온 것까지 포함하여 손해 보지 않을 정도의 정보를 얻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바르나프를 쳐다보았다.


“트리스트 듀에. 대체 이 사제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르나프는 답변하기 가장 까다로운 질문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고는 눈을 지긋시 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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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2) +1 20.10.19 57 2 7쪽
94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1) +1 20.10.15 60 2 8쪽
93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3) +2 20.10.07 58 3 8쪽
92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2) +2 20.10.06 59 3 8쪽
91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1) +2 20.10.05 71 3 12쪽
90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3) +1 20.09.29 44 2 11쪽
89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2) +1 20.09.28 41 2 10쪽
»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1) +2 20.09.23 49 3 9쪽
87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3) +1 20.09.16 63 2 9쪽
86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2) +2 20.09.15 41 3 10쪽
85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1) +1 20.09.15 55 2 11쪽
84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7) +1 20.09.11 43 2 8쪽
83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6) +1 20.09.10 43 2 7쪽
82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5) +1 20.09.10 46 2 10쪽
81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4) +1 20.09.03 45 2 8쪽
80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3) +1 20.09.03 38 2 11쪽
79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2) +1 20.09.03 41 2 10쪽
78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1) +1 20.09.03 36 2 8쪽
77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3) +1 20.08.11 38 2 12쪽
76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2) +1 20.08.05 42 2 11쪽
75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1) +1 20.08.05 39 2 11쪽
74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3) +1 20.07.29 41 2 7쪽
73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2) +1 20.07.29 38 2 8쪽
72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1) +1 20.07.28 35 2 9쪽
71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5) +1 20.07.24 42 2 7쪽
70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4) +1 20.07.24 42 2 8쪽
69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3) +1 20.07.16 44 2 10쪽
68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2) +1 20.07.14 40 2 9쪽
67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1) +1 20.07.14 43 2 8쪽
66 [2권] 6장 - 변곡점_ 1화_ 변화의 바람(3) +1 20.07.13 4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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