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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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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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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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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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2)

DUMMY

“그에 대해 알고 있다면 내가 골머리를 썩여가며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진 않았겠지.”


바르나프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투덜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트리스트와 몇 번이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꺼낸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와 오랫동안 함께했다는 사제들조차 그가 어디 출신인지조차 모르더군. 마치 혜성처럼 등장해서 제정론이란 하늘을 갈랐고, 나머지 사제들은 그저 그 불길 뒤를 따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사제의 무엇이 목표인지는 알 것 아닙니까? 정말 월영군을 대거 개편할 계획이라 합니까?”


“현 사제 세력들은 그 일련의 계획들을 힘의 집결이라 부르더군.”


“힘의 집결이요?”


“그래. 신체향상 월영군 병사를 최대한으로 늘리고 그 군사력을 바탕으로 월연방국에서 제국으로 이끌어갈 그 모든 계획들을 그렇게 부르더군.”


바르나프는 그렇게 정리를 하며, 찻잔에 입을 갔다 대었고,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솔직히 그 어마어마한 계획이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이긴 한 상황이지. 아직 월광국을 영향력 아래에 놓고 있지 못하는 마당에 트리스트 사제가 지금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카릿치오스 지방의 일이니까.”


“저 또한 기회가 된다면 카릿치오스 일에 대해서 물어보려 했습니다만.”


에스트가 바르나프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 사제들의 목표에 대해서 이미 미엔으로부터 들은 바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은 전혀 없었다. 대신 카릿치오스로 물자를 수송하는 일은 준비가 완료되어 당장 모레 출발 예정이었고, 그 파견 부대를 편성하는 것이 에스트의 업무였기에 작전의 목적이 궁금했던 것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바르나프는 이야기에 앞서 차로 목을 축이며, 살짝 뜸을 들였다.


“힘의 집결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카릿치오스에서의 일들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더군.”


“그게 무슨 상관 입니까? 아니, 대체 카리스치오스에서 무슨일을 하길래?”


“그것 또한 트리스트 사제의 정체만큼이나 베일에 쌓여있다. 다만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할 수준의 자재들이 몇 년에 걸쳐 공급되어 왔고, 이번에 나가는 물자들이 마지막 공급 건이라 하더군.”


“이번이라고 하시면, 당장 모레 출발할 파견의 건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페니탈. 혹시 카릿치오스에 주둔한 흑표부대로부터 들어온 보고서는 없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던 미엔은 지난 만남에서 흑표 부대 소식이 전달되고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그렇게 물었으나 에스트는 표정을 찡그렸다.


“벌목한 나무그루 수를 알고 싶으면 알려줄수는 있겠지만, 뭔가 ‘이거구나!’ 싶은 정보는 전혀 없었어. 흑표부대는 정찰 및 단순 노역 정도만 맡고 있고, 정작 중요한 업무는 그곳에 파견된 사제가 전담하는 듯?”


“파견 사제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 페니탈 파트마란 사제가 이번에 파견된다고 하더구나. 그렇게 안봤는데 페니탈이란 사제가 병부사를 총괄하는 사제로 나름 입지가 있던 모양이던데.”


미엔은 페니탈이란 사제가 트리스트 사제를 처음 만날 때 길을 안내했던 사제임을 떠올리고는 스승의 말을 수긍했다.


“이쯤에서 그럼 정리해보도록 해요.

현재 모든 실권을 쥐고 있는 트리스트는 그 힘의 집결이란 계획을 실현에 앞서 카릿치오스 지방의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바는 전혀 없는 상태이네요.

그런데 이번 파견을 마지막으로 트리스트 사제는 나름 신임하고 있는 사제를 파견하여 오랫동안 해온 일을 마무리 지으려 하는 거군요.”


미엔이 그렇게 정리를 끝마치자 침묵이 방안을 감쌌다.

어느 하나 확실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던 것이었고, 따라서 에스트는 이번 대화는 여기서 끝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태껏 공유된 정보를 확인코자 이런 자리를 마련했을리 없었고, 그렇게 본격적인 이야기는 미엔의 입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네.”


“..그게 무슨 말이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미엔을 향해 에스트가 되물었고, 미엔은 기세당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답했다.


“카릿치오스 지방으로 가서 무슨일 일어나는지 확인하면 되는 거잖아? 파견된 군 부대나 같은 세력의 사제들조차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인데, 책상에 앉아서 양질의 정보가 들어오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요양이 아닐까?.”


“......”


미엔의 말에 에스트는 턱을 긁적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직접 눈으로 본 것만큼 정확한 정보는 없다는 말도 있잖아. 그래서 부탁하는 건데 에스트.. 혹시 파견 부대에 의약사 자리를 하나 만들어줄 수 있을까? 내가 직접 가보려 하는데..”


그 말에 놀란 것은 비단 에스트뿐만 아니었다.

애초에 파견 부대에 괜찮은 정보원을 넣자는 의견은 바르나프의 것이었으나, 그 정보원으로 미엔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엔! 갑자기 무슨 말이냐?”


“스승님. 저희 쪽 사람 중 누군가 가야한다면 제가 가고 싶어요. 가서 제가 본 그대로를 스승님께 말씀드릴게요.”


“굳이 꼭 그럴 필요 없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접어둬라. 여기서 네가 나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미엔의 돌발적인 발언에 바르나프의 만류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때문에 에스트한테는 이 모든 것이 미엔의 즉흥적인 계획처럼 보였다. 여기에 미엔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가자 모험가의 패기 있는 출사표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머, 스승님도. 이번 일은 순전히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걸요. 그리고 전 여태껏 제가 하고 싶어서 다했지, 스승님을 위해서 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요.”


쾌활하게 말하는 미엔의 고집을 꺽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에 바르나프는 한숨을 내쉴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네가 그래 준다면 정말 고맙겠다만.. 우선, 에스트. 파견 인원을 추가하는 것이 어렵진 않겠는가?”


“지원자가 없어 인원을 겨우 채운 상태라 예비 인원, 그것도 의약사로 편성한다고 하면 그 누구도 불만을 가지진 않을 겁니다.”


“그럼 부탁해도 되겠는가?”


“...두 가지 조건을 걸지요.”


군과 밀접한 의약사를 부대에 편성하는 것이 그리 예외적인 일은 아니었으나, 바르나프 가(家)의 사람인줄 알면서 부대에 편입시킨다는 것을 다른 이야기였다.


“.. 말해보게.”


“첫째로 미엔이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면, 이.. 책상 제가 가져도 됩니까? 제 사무실 책상이 워낙 작아서요.”


나름 거창한 부탁이라면 부탁이었지만 상상했던 방향성에서 많이 벗어난 부탁이었기에 순간 당황한 바르나프였다. 게다가 나름 애착을 가지고 있던 책상이라 대답하기 망설여졌지만, 이내 출발 기일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뭐.. 마음대로 하게.”


에스트로서는 한번 떠볼 심상으로 던져본 질문이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자 자신감이 붙은 그였다.


“둘째, 미엔 엘리느의 감시역으로 저 또한 따라갈테니 거기에 불만을 가지지 마십시요.”


“뭐?”


에스트의 두번째 부탁은 부탁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고, 따라서 두 사람, 특히 미엔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 혼자 어찌 그 험한 곳을 보낼 수 있겠어? 그러니 내가 따라가서 챙겨 드려야지.”


“.. 헛소리 하지말지? 그리고 그 차별적인 말을 들을만큼 나약하게 자라오지 않았거든?”


에스트는 미엔이 의외의 말에 반응한다는 것에 호기심을 느끼며 좀더 반응을 끌어내려 할 때였다.


“물론 자네가 함께하는 것에 불만은 없네.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테니까. 그럼 모레 출발 인원에 미엔과 자네가 포함된다고 이해하면 되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자, 그럼 먼길을 이동할 준비를 해야 할 테니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시간 내어줘서 고맙네. 그럼 난 약속이 있어 자리를 먼저 떠봐야 하니 양해를 구하겠네.”


약속 시간에 늦은 듯 바르나프는 그렇게 말하면서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고, 벗어 놨던 사제복을 다시 걸친 뒤 집무실 밖으로 나섰다.

다시금 처음과 같이 에스트와 미엔, 두 사람만이 바르나프 집무실에 남게 되었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전에 에스트는 좀 전에 느낀 호기심을 이어가보기로 했다.


“만약 여행중에 짐이 된다거나 그러면 알아서 해.”


“...그 말 그대로 너한테 해줄게. 솔직히 뼈만 있는 너보다 힘쓰는 일이라든지, 행군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더 잘 할 자신 있으니까.”


이외의 일격에 남자의 자존심, 그것도 군인의 자부심을 동시에 타격한 말에 에스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를 노려보았다.


“왜! 지금 한 번 붙어볼래?”


미엔도 이에 질세라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고, 에스트는 그렇게 마른 편은 아니면서도 탄탄한 미엔의 몸을 한번 훓어보았다.

그것을 본 에스트는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어서 정말로 그녀와 싸워서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준비나 잘해오셔.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카릿치오스로 가는 길에서 알게 되겠지.”


에스트가 마치 방을 나서려고 일어섰다는 듯이 그런 말을 하고서는 방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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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2) +1 20.10.19 57 2 7쪽
94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1) +1 20.10.15 60 2 8쪽
93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3) +2 20.10.07 58 3 8쪽
92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2) +2 20.10.06 59 3 8쪽
91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1) +2 20.10.05 71 3 12쪽
90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3) +1 20.09.29 44 2 11쪽
»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2) +1 20.09.28 41 2 10쪽
88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1) +2 20.09.23 48 3 9쪽
87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3) +1 20.09.16 63 2 9쪽
86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2) +2 20.09.15 41 3 10쪽
85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1) +1 20.09.15 55 2 11쪽
84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7) +1 20.09.11 43 2 8쪽
83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6) +1 20.09.10 43 2 7쪽
82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5) +1 20.09.10 46 2 10쪽
81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4) +1 20.09.03 45 2 8쪽
80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3) +1 20.09.03 38 2 11쪽
79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2) +1 20.09.03 41 2 10쪽
78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1) +1 20.09.03 36 2 8쪽
77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3) +1 20.08.11 38 2 12쪽
76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2) +1 20.08.05 42 2 11쪽
75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1) +1 20.08.05 39 2 11쪽
74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3) +1 20.07.29 41 2 7쪽
73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2) +1 20.07.29 38 2 8쪽
72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1) +1 20.07.28 35 2 9쪽
71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5) +1 20.07.24 42 2 7쪽
70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4) +1 20.07.24 42 2 8쪽
69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3) +1 20.07.16 44 2 10쪽
68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2) +1 20.07.14 40 2 9쪽
67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1) +1 20.07.14 43 2 8쪽
66 [2권] 6장 - 변곡점_ 1화_ 변화의 바람(3) +1 20.07.13 40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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