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2)
주로 도시연합과 거래시, 상인의 호위를 도맡았던 삼백명의 용병들.
그들은 바르나프에게 언제든 쓸수 있지만 남아 있음으로 심적인 안정감을 주는 비상금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트리스트로부터 용병 차출 명령을 받았을 때 거부감은 물론, 월영군을 대신으로 사용될 그 어떤 합리적인 이유도 없었기에 반발심마저 들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비상금은 필요 할 때 요긴하게 쓰여야지 그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따라서 용병 차출을 통해 트리스트의 신뢰를 얻는다는 손 쉬은 계산법으로 결정을 내렸던 바르나프였으나, 방금전의 세드릭 단장과의 대화는 그 셈법이 너무나 단순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마법사는 적 마법사를 상대할 아군 마법사와 보병이 있어야 잡는다.’
세드릭 단장은 현재 보병은 있으나 마법사가 충분치 않다고 말하며 작전 실패 가능성을 점쳤었다.
하지만 월영시에서 혁명을 성공시킨 트리스트가 정말로 이번 작전에 필요한 전력 수준을 몰랐을까?
역 쐐기 모양의 진형의 꼭지점.
즉, 가장 후방에 위치했던 바르나프는 위험을 무릎쓰고 전방을 향해 나아가며 그렇게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미 세드릭 군단장은 신체향상을 통해 전방으로 이동한 듯 시야에 보이지 않았고, 때문에 홀로 작전 지역을 쏘다니는 상황이었으나, 그 위험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머리속은 복잡했다.
‘작전 실패를 바라는 군단장과 실패를 고의로 조장하는 작전 지휘관. 그리고 용병들...’
분명 트리스트는 이 모든 사실을 염두 한 채 이번 작전을 계획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이번 작전에서 용병들의 역할이 있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엄밀히 말해 용병들의 전투력은 월영군의 하위호환 할 수준조차 아니었기에 차라리 용병들 절반 수준의 월영군을 추가 동원하는 편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장점이라 말하기 애매하지만 확실히 월영군과 차별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용병들은 국가 소속의 정규군이 아니다.’
그 생각과 함께 좀 전의 세드릭 단장의 의심스런 언행을 떠올리자 ‘마법사는 적 마법사를 상대할 아군 마법사와 보병이 있어야 잡는다'라는 전술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월영군이 월광국 제정론 사제의 편으로 돌아섰을 때를 대비해서 트리스트 측 또한 보병이 필요했기 때문에 용병을 요청한 것이 아닐까?
그 순간, 바르나프의 모든 사고를 정지시키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자작 나무들 사이를 뚫고, 붉은 연기를 내 뿜으며 신호탄 하나가 올라온 것이었다.
“공격 신호...?”
전투에 문외한인 바르나프일지라도 작전에 쓰이는 신호탄 쳬계 정도는 외우고 있었다. 따라서 그 신호탄이 공격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의문을 띄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호탄과 동시에 마침내 시야에 들어온 월영군들이 그 공격 신호에도 꼼짝하지 않으채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모습에 바르나프의 불안은 한층 더 심해졌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군인들만큼이나 이치에 어긋나면서도 두려움을 유발하는 존재는 없음을 새삼스레 느끼며, 눈 앞의 월영군 진지로 뛰어들어 그 중 가장 어려 보이는 병사를 붙잡았다.
“세드릭.. 세드릭 군단장은 어디에 계신가?”
“···동편 중앙 지휘본부로 향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병사의 미심쩍은 표정을 무시한 채, 그가 가리킨 방향만을 눈에 꽂은 바르나프는 지체 없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걸음 한걸음씩 전방으로 나아갈 때마다 더 많은 월영군들을 마주할 수 있었지만, 그 누구도 붉은 신호탄에 반응을 하는 자는 없었다.
때문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나 월영군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들 중 원하는 대답을 해줄수 있는 이는 없어 보였고, 따라서 공격자가 없는 공격이라는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드릭을 찾는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언제 이렇게 뛰어나 싶을 정도로 수 십의 진지와 수 백명의 월영군을 지나쳤을 때, 마침내 간이 천막 앞에서 십수명의 병사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세드릭의 모습을 발견한 바르나프였다.
“세드릭 군단장..!”
바르나프는 그렇게 외마디 외침을 터트리고 나서 숨을 골라야 했다. 그 사이 세드릭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에 등장에 살짝 당황했고, 이내 주변 병사들에 급하게 내릴 명령들을 전달하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거친 숨을 내몰아쉬며 그렇게 물었으나, 기대한 답변 대신 지나쳐 왔던 월영군 병사들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세드릭의 얼굴을 보게 된 바르나프였다.
“.. 솔직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모르겠다니?”
“월영군은 대기 명령을 받은 가운데 공격 명령이 내려졌긴 내려졌는데..”
“그렇다면..?”
“예. 용병단과 그들을 인도하는 일부 월영군만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 말을 들은 바르나프는 체면을 차릴 것도 없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말았다.
동시에 방금전 떠올렸던 용병들의 장점 아닌 장점을 다시 곱씹으며,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했던 또 다른 용병 활용 방법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병들은 국가 소속의 정규군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해도 상관없다.’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이 전방에서 울려 퍼지더니, 이어서 충격파가 바르나프는 물론 주변 월영군을 덮쳤다. 대다수의 월영군이 밀려 쓰러질 정도로 강한 충격파에 삽시간에 진영은 혼돈에 빠졌으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낙하물 조심해!”
누군가의 비명 같은 외침에 바르나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머리털이 곧두서고 말았다. 충격파가 전달된 전방에서 눈과 뒤섞인 잔해 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곧이어 발 밑에서 전달되는 진동이 점차 심해지더니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그에 심연에서 허우적대는 손처럼 나무가지들이 미친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비현실적인 악몽속에서 모두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채 바닥에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찾아 들어간 어둠에 익숙할 틈도 없이, 모두는 흙먼지와 자갈, 그리고 나뭇가지 등의 잔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을 온 몸으로 느껴야 했다.
돌덩이에 맞아 부푼 손등을 차마 볼 생각도 못한 채, 바르나프는 이 위협스러운 빗줄기가 지나갈 때까지 부디 몸이 성하길 기도했다.
그리고는 이 폭발의 근원지는 얼마나 참혹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고, 그 속에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자 절로 몸서리를 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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