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
한병태는 자신의 동료 황룡, 켄타 등과 함께 장교용 대피 참호에서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춥지는 않았지만 앞으로는 진정한 지옥이 올 것 이었다. 황룡 녀석은 조선인 출신으로 한병태와 함께 많은 전공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가난하여 많은 차별을 받아 조선을 증오하고 있었다. 한병태가 속으로 생각했다.
'일단 지금은 버티고 있지만 앞으로 전선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지? 어차피 조만간 잃을 땅을 위해서 뭐하러 병력을 소모했지? 아니다...그것보다 더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한다...소련의 군사를 조금이라도 극동에 붙들어두기 위하여? 하지만 그건 독일에 도움되는 것이 아닌가? 일본 제국이 얻는 이득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야 현재 병태로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본이야 뭔가 기술을 전수받았겠지...하지만 그 외에는 무슨 이득이 있지? 됐다! 이건 참모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황룡이 중얼거렸다.
"지금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네...빨리 소련 놈들을 포위 섬멸시켜야 하네..."
켄타가 말했다.
"소련 놈들의 육군이 이렇게 강할줄은 몰랐네. 놈들의 공업 생산력은 일본보다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네."
황룡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일본 제국은 전세계 그 어떤 국가보다 강하다! 소련 따위는 우리 병사들의 정신력과 투지로 %*^@*&$"
병태, 켄타, 히로, 하루토는 황룡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일본 본토에서 대량의 소포가 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다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방한용품인가? 식량?'
솔직히 편지만은 아니기를 다들 바랬다. 어린 아이들이 응원하라고 써주는 편지는 전혀 쓸모가 없었던 것 이다. 확인해보니 아주 커다란 상자들이 여러 개 오고 있었다. 병태가 속으로 외쳤다.
'좋았어!! 편지는 아니다!!'
황룡이 외쳤다.
"천황 폐하께서 하사하신 선물이다!! 감사히 받고 더 열심히 싸우자!!"
그렇게 병사들은 신나게 상자를 뜯었다. 첫번째 상자에는 종이학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병사들은 종이학 속을 손으로 뒤적거려보았다.
"뭐...뭐야 이게?"
"안에 잘 살펴봐!! 뭐라도 있겠지!!"
하지만 종이학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상자 열어봐!!"
하지만 다음 상자에도 종이학이 있었다. 한 병사는 아예 종이학이 가득 담긴 상자 안으로 풍덩 들어가보았다. 그런데 정말 종이학 밖에 없었다. 병태는 그 종이학을 꺼내어 살펴보았다.
"호...혹시 도청에 걸리지 않도록 암호를 전달하려던 것은 아닐까?"
병사들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으며 다른 상자도 열어보았다. 이번에도 역시 종이학이었다. 지친 병사들은 모두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늘은 소금으로 양념한 주먹밥만 먹어야 할 것 이었다. 최근 이들이 먹는 도시락에는 멸치는 커녕 우메보시도 없었다.
이 광경에 장교들조차 모두 할 말을 잃었다. 히로가 말했다.
"이걸 어디 쓰지?"
"추워지면 옷 속에 방한용으로 넣으면 좋을 것 같군."
"불쏘시개는 어때?"
황룡이 더듬더듬 말했다.
"이...이것은 천황 폐하께서 하사해주신 것이나 다름없네. 모두 잘 보관하고..."
한 조선인 병사가 조선말로 수근거렸다.
"이런걸 보내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일본놈들 좀 이상해..."
그 말을 듣고 황룡이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방금 그 소리한거 누구야!! 누구냐!! 일본인 이상하다고 한 새끼 당장 나와!!"
켄타가 울부짖었다.
"왜 지랄이냐!! 맞는 말이다!!! 전쟁터에 쓸모도 없는 종이학 수백만 마리를 보내는게 정상이냐!!"
"이..이건 천황 폐하를 위해 열심히 싸우라는 격려다!!"
"일본인인 내가 봐도 이상한데 황룡 네 놈이 왜 지랄이냐!!"
"닥쳐라!!!"
켄타가 종이학을 움켜쥐고는 외쳤다.
"이건 광기야!!! 황룡 네 놈도 좀 적당히 해!!"
한병태가 외쳤다.
"둘 다 그만 싸워!!"
한편 이 시각, 소련군의 대공포는 독일군의 항공기를 향해 대공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펑! 펑! 펑! 펑! 펑!
대공포가 발사될 때마다 시커먼 하늘을 뒤덮고 있는 독일군의 항공기들이 보였다. 예광탄들이 번쩍거리며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소련군의 무수한 항공기를 격추한 에이스 권터의 매서슈미트의 꼬리 날개가 대공포에 맞았다.
'으아악!!!'
권터는 매서슈미트의 캐노피 투하 레버를 당겼다.
뻥!!
강력한 스프링이 풀어지며 캐노피가 날아갔고 권터는 서둘러 탈출을 준비했다. 이미 매서슈미트에는 불이 붙은 상황이었다.
'우와와와왁!!!'
불이 붙은 매서슈미트는 독일군이 점령한 지역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군 진영 쪽에서 오토는 시커먼 하늘에서 불이 붙은채로 이 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매서슈미트를 보았다.
"저...저거!!"
항공기에서 탈출하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었다. 제 때 탈출하더라도 꼬리 날개에 부딪치면 몸이 꺾일 수도 있고, 탈출하다가 다른 항공기 프로펠러에 갈려나갈 수도 있다.
오토와 동료들은 제발 저 매서슈미트 파일럿이 제대로 탈출하기를 바랬다. 천만다행히 권터는 탈출에 성공했고, 낙하산에 매달린 권터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매서슈미트는 뒤에 불이 붙은 상태로 비스듬하게 빠른 속도로 회전하면서 추락하다가 순식간에 커다란 파편들로 쪼개져서 사방으로 날아갔다.
쿠과광!!!
매서슈미트 파편들은 흰 연기 자국을 남기며 여기저기로 날아갔다. 잠시 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권터가 독일군 보병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헉...허억..."
잠시 뒤, 권터는 보병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정말로 고맙네!! 자네 들쥐(landratte)들 덕분...아니 육군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네!!"
이 당시 공군은 육군을 들쥐(landratte)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 이다. 그렇게 권터는 트럭을 타고 후방으로 보내졌다.
오토와 동료들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다른 부대 녀석들은 모스크바로 진입하게 될 것 이었다. 지금 구데리안 기갑군의 각 사단들은 치열한 모스크바의 방어망을 뚫기 위해 많은 경로를 우회해서 진격해야 했다. 덕분에 기동거리가 대폭 증가해서 전차, 그 외 차량, 말, 병사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전차의 엔진이 덜덜거리듯 병사들과 군마의 관절 또한 덜덜거렸다.
잠시 뒤, 슐레프 중대의 티거 중전차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그곳에서도 모스크바를 막고 있는 강력한 방어선을 뚫어서 다른 부대가 모스크바로 진입하는 것을 도울 것 이었다. 티거 중전차 부대는 전선의 소방수로서 기갑군 직할로 운용되며, 꼭 필요한 곳에 가서 전투를 하고 이동하는 것을 반복한다.
오토와 동료들은 독일이 이 전쟁을 한 것이 잘한것인지 아닌지 가끔 회의감이 들고는 했다.
하지만 오토와 친구들은 14살 정도에 베를린 길 모퉁이를 지나기만 하면 노숙자와 실업자들이 들끓던 것을 떠올렸다. 노동 청년단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백수, 정치 깡패들이 여기저기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토와 친구들은 나이가 어렸지만 어른이 되고 자기들도 저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는 했다.
블라덱이야 아버지의 공장을 물려받으면 될 것 이었다. 유대인인 블라덱의 집안은 대공황 시기에도 필수품인 속옷과 양말을 생산했기에 그럭저럭 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헬무트는 집안이 대대로 프로이센의 군인이었다. 헬무트의 집에 가면 응접실에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헬무트의 선조가 받은 친필 편지가 벽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친애하는 폰 &$%@ 소령에게! 나는 귀관의 전공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 귀관의 전공으로 %@#%& 귀관의 자비로운 왕으로부터!]
이렇게 블라덱, 헬무트, 그 외 군사 학교에서 집안이 좋은 녀석들은 대공황에도 피해를 덜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아였던 볼프강이나 그 외 평범한 집안 출신 녀석들은 군사 학교를 졸업하지 않으면 백수가 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군사 학교에서 아무리 가혹 행위를 당해도 어떻게던 졸업해야 했던 것 이다.
오토와 친구들은 나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기억했다. 독일은 군비를 확장하면서 수 많은 백수들이 일자리를 얻게 될 수 있었다. 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낸 히틀러는 그들에게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전쟁은 대공황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일수도...'
이 전쟁의 명분은 표면적으로는 독일의 안보적 위협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독일이 백수와 노숙자를 구제하고자 군비를 확장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전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슐레프 중대장이 와서 외쳤다.
"시동!!!"
오토와 동료들은 모두 각 전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간 간격 유지하고 출발!!!"
트으응 트드등 트드드드등
슐레프 중대는 차간 간격을 유지하고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오토의 소대 또한 관목림을 우측에 끼고 차량을 전진시켰다. 이런 관목림에는 소련군의 매복이 있을 확률이 높아서 주의해야 한다. 다행히 나무 위에 은신해있던 아군 보초병이 이상 없다고 수신호를 보내주었다.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등
오토는 전차장 해치를 열고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하늘은 아까부터 먹구름으로 어두컴컴했다. 조금 있으면 비가 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제발 우리 도착할 때까지만 비 안 왔으면!!'
슐레프 중대가 도착하고, 전차병들은 전차를 정비했다. 오토는 커다란 관목림 위에 올라가서 쌍안경으로 인근 지형을 살폈다. 그리고 드디어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오토의 슈탈헬름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쏴아아!
"좆됐다!!"
각 전차에는 방수포가 씌워졌다. 병사들은 모두 작은 초가집 안에 들어가서 이 엄청난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길은 진흙으로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창 밖으로 오토바이병 닐스가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아직 오토바이는 기동 가능했지만 엄청난 진흙을 사방으로 튀기고 있었다. 보병 녀석들은 자신을 향해 진흙이 튀기자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시발!!"
스테판이 말했다.
"고...공병들이 길 만들어주겠지?"
공병들은 근처에 관목림에서 나무를 베어오고 있었다. 이 통나무로 길을 깔아야 할 것 이었다. 얼마 전에 이 인근에서는 전투가 벌어졌었고, 독일군의 시체는 묻었지만 소련군의 시체는 아직 묻지 못해서 진흙 속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뒤늦게 이 곳으로 오던 4호 전차 한 대가 진흙탕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달되었고, 구난 부대가 가서 크레인으로 4호 전차를 구난해주기로 했다. 오토 또한 구난 부대와 같이 가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이럴수가!!"
진창에는 4호 전차만 빠진 것이 아니었다. 말들도 넘어지고 빠지고 쓰러져버려서 난리도 아니었다. 병사들은 말의 궁둥이를 때리며 계속해서 말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화물 트럭 또한 완전히 진흙에 바퀴까지 빠진 상태였다.
병사들은 결국 진흙에 빠진 대포를 자신의 몸에 감아서 끌어야 했다.
"으랏차!!!"
"하나 둘 셋!!"
대포 뿐만 아니라 오늘 병사들이 먹을 식량이 담겨있던 수레 또한 병사들이 진흙탕에서 직접 끌어야 했다.
구난 소대는 크레인으로 진흙탕에 빠진 4호 전차를 구난해주고 있었다. 오토는 이 구난 작업을 도운 다음에 자신의 소대원들이 있는 작은 오두막으로 걸어갔다. 그 때 옆에서 퀴벨바겐이 지나가면서 엄청난 진흙을 오토에게 튀겼다.
"시발!! 옆에 안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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