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지하철
오토 일행은 이렇게 소련군 점령 구역에 침투하여 통신선을 절단하는데 성공했다. 소련군은 통신선이 끊어졌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것 이고 통신선을 보수하기 위해 통신병들을 보낼 것 이다. 오토 일행은 빨리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야 했다.
오토가 안토노프 정치 장교에게 외쳤다.
"확인은 끝났습니다! 차에 이상은 전혀 없습니다!!"
안토노프가 물었다.
"확실히 점검한건가?"
"네! 확실히 점검했습니다!"
오토는 거의 원어민 수준의 러시아어를 구사하기는 했지만 살짝 악센트가 어색했다. 하지만 안토노프는 오토가 사투리를 쓴다고 생각했다. 그 때, 길을 가던 표도르가 오토의 목소리를 듣고 위화감을 느꼈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참고로 얼마 전 오토가 정치 장교인척 하면서 표도르에게 암호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오토는 일부러 목소리를 평소보다 내리깔았었다. 표도르는 데니스와 바실리에게 물었다.
"혹시 정비병입니까?"
사람의 뇌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한 것이, 표도르는 얼마 전에 마주쳤던 오토를 인식하지 못했다. 지금 오토는 스테판, 데니스, 바실리와 함께 있었고, 머리를 짧게 깎았기 때문에 동일 인물로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 이다. 오토는 표도르를 알아보았고 입을 다물었고, 스테판이 대신 말했다.
"무슨 일인가?"
표도르가 말했다.
"혹시 저 친구들이 정비병이면 제 전차를 잠시 정비해줄 수 있는지 요청하고 싶습니다."
스테판이 말했다.
"자네 부대에 정비 부대가 있을거 아닌가? 우린 바쁘네."
표도르가 말했다.
"정비병들이 단체로 장염에 걸렸습니다."
표도르는 오토 일행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고 오토는 식은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오토는 일부러 다시 안토노프의 GAZ-AA를 살펴보는 척 하고는 평소보다 고음으로 안토노프에게 외쳤다.
"잊을뻔 했는데 요새 파시스트가 특이한 폭탄을 설치한다고 해서 다시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차량 좌석에 사람이 탑승하고, 뒷칸에 하중이 많이 실리면 폭발하는 폭탄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토는 GAZ-AA 운전석에 앉았고 그 옆에는 스테판이 앉은 다음 바실리와 데니스가 GAZ-AA 트럭 뒷 칸에 올라갔다. 표도르는 이유를 모를 위화감에 이 광경을 계속 바라보았다.
"요새 그러한 폭탄도 있습니까?"
바실리가 표도르에게 말했다.
"하중이 가해져야 폭발하도록 설치된거요!"
안토노프가 외쳤다.
"폭탄이 없는게 확실한건가?"
안토노프는 비쩍 마른 바실리와 데니스를 보며 불안함을 느꼈다.
'저 놈들은 비쩍 말라서 폭탄이 작동하지 않는 것 인지도...'
그 때, 데니스가 갑자기 신나서 외쳤다.
"네!! 멀쩡합니다!! 정치 장교 동지도 타 보십시오!!"
스테판에 식은 땀을 흘리며 데니스를 쳐다보았다.
'저 새끼 무슨 생각이야!!!'
안토노프가 불안한 표정으로 GAZ-AA를 보자 데니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지금 탑승해보셔야 다음에도 안심하고 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렇게 뚱뚱한 정치 장교 안토노프가 GAZ-AA에 탑승했다. 폭탄이 작동하지 않자 안토노프가 환호했다.
"확실히 폭탄은 없군!!"
오토가 외쳤다.
"하중이 실리고 시동이 걸려야 폭발하는 차량도 있으니 시동을 걸어봐도 되겠습니까?"
"걸어보게!!"
표도르는 이 광경을 미심쩍게 바라보다가 아무 말이 없는 오토에게 물었다.
"정치 장교 동지, 혹시 우리 구면입니까?"
오토는 일부러 고음으로 평소와는 다른 말투를 연기하며 말했다.
"난 자네 처음 보는데?"
표도르는 오토를 기억하기 위해 애를 썼다.
"혹시 고향이 어딥니까?"
"민스크!! 민스크일세!!"
정치 장교 안토노프가 이 말을 듣고 외쳤다.
"민스크 출신이라고? 오! 반갑군!!"
표도르는 계속 오토에게 캐물었다.
"처음 듣는 사투리를 쓰시는군요."
안토노프는 갑자기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민스크에선 저런 말투 안 쓰는데?'
"어디서 사관학교를 나왔소?"
그 때, 오토가 GAZ-AA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표도르가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안토노프 또한 당황해서 트럭 뒤에서 외쳤다.
"지금 어디 가는가?"
데니스가 안토노프를 뒤에서 잡고는 오른쪽 관자놀이에 권총을 겨누었다. 안토노프가 고함을 쳤다.
"우아아아악!!!!"
오토는 NKVD가 검문하던 검문소를 향해 GAZ-AA를 최고 속도로 질주시켰다.
부아아아앙!!!
표도르는 그제서야 자기가 느꼈던 위화감을 알아챘다. 예전에 표도르가 오토와 전차로 교전했을때, 무전기 속에서 오토의 목소리를 몇번이나 들었던 것 이다.
표도르가 외쳤다.
"파시스트다!!!"
검문소를 지키던 NKVD들이 GAZ-AA를 향해 따발총을 겨누려는 순간, 스테판이 NKVD를 향해 토카레프 권총을 발사했다.
탕! 타앙!! 탕!!
이 상황에서 맞출 수는 없지만 NKVD들이 허둥지둥하는 틈을 타서 오토는 차를 질주시켰다.
"고개 숙여!!!"
오토, 스테판 모두 고개를 숙였고, 뒷칸에 타고 있던 바실리와 데니스도 최대한 납작 엎드렸다. 안토노프 또한 팬티에 똥오줌을 지린채로 엎드렸다.
"으아아아악!!!!!!!!!!!!"
GAZ-AA는 순식간에 검문소를 지나갔다.
부아앙! 부아아아앙!
GAZ-AA가 덜컹거리며 빠른 속도로 길을 질주했다. 납치당한 안토노프가 백미러를 통해서 오토의 얼굴을 보고 외쳤다.
"오...오토 파이퍼!!!"
안토노프가 분노해서 외쳤다.
"네 놈들 선봉대가 러시아의 정신적 지주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의 무덤을 훼손한게 사실이냐!!"
안토노프는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데니스를 바라보았다. 데니스는 전형적인 러시아인의 얼굴이었고 발음은 러시아 시골에서 쓰는 발음이었다. 안토노프는 데니스가 러시아인이라 확신했다.
"저 놈들은 러시아의 정신적 지주인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의 무덤을 훼손했다! 어떻게 저런 자와 한 편이 될 수 있는가!!"
데니스가 권총으로 안토노프의 대가리를 때렸다.
퍼억!!!
"그깟 무덤 파헤치던 말던 내가 알바냐? 붉은 군대 네 놈들은 내 가족을 죽였다!!!"
뒷칸에서 일어나는 소란과 상관없이 오토는 식은 땀을 흘리며 머리를 굴렸다.
참고로 아까 전에 오토는 여기까지 오면서 기관총, 대전차포, 박격포가 설치된 위치를 모두 암기해둔 상황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오토는 정찰을 나가서 포탄 구덩이의 위치를 모조리 암기하듯, 소련군의 기관총 배치 패턴까지 암기해두었다.
사람이 제각기 다른 지문을 갖듯이 모든 부대는 공격을 하거나 방어를 하거나 진지를 구축할때 특유의 패턴이 있고, 오토는 이것을 읽을 수 있었다. 오토는 소련군의 방어 설비 구축, 벙커, 기관총과 토치카는 물론이고 장갑차 부대가 있는 곳 까지 기억해두었다. 스테판이 외쳤다.
"이대로 가다가 진짜 뒤져!!"
지금 어느 쪽으로 가던 소련군의 장갑차나 전차, 토치카와 마주쳐야 했다. 바실리는 공구 상자에서 연막을 꺼내어 던졌다.
쿠과광!!
한편, 블라슈크는 소식을 듣고는 검문소로 달려왔다.
"차량 뒷칸에 정치 장교 동지가 납치되었다!! 차체 전면에만 사격해!!!"
기관총 사수가 GAZ-AA를 향해 기관총을 긁었다.
드륵 드르륵 드르르륵 드르륵
GAZ-AA의 전면 차체와 앞쪽 우측 바퀴에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인근 건물에 자리잡고 있던 류드밀라가 놀라운 솜씨로 뒤쪽 우측 바퀴를 저격했다. 바퀴 두 개가 터진 GAZ-AA는 우측에 있는 건물 외벽으로 박고 말았다.
콰과광!!!
교전 경험이 풍부한 소련 병사들이 GAZ-AA로 접근했다.
"나와!! 당장 나와!!"
GAZ-AA의 차체 앞면 유리는 완전히 박살난 상태였다. 블라슈크도 토카레프 권총을 들고 가서 GAZ-AA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운전수가 탑승해야할 앞칸에는 아무도 타지 않았다.
'???'
GAZ-AA의 후방 짐칸에는 안토노프가 머리를 감싸고 엎드린 채로 팬티에 똥오줌을 지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으아아...으아아...으아아..."
블라슈크가 외쳤다.
"그 새끼들 탈출했어!!"
오토는 GAZ-AA가 계속 도로를 따라 질주하도록 한 다음, 동료들과 함께 차량에서 탈출하고 지하철로 도망간 상태였다. 모스크바에 지하철에는 집이 없어서 가족들과 함께 노숙하는 사람들로 꽉 찬 상태였다. 다들 여기저기 짐덩이처럼 몰려 있었다. 모스크바에 지하철 역은 그야말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러시아 특유의 돔 천장과 모자이크화, 조각상 장식들과 함께 천장에는 멋드러진 샹들리에가 난민들을 비추고 있었다.
알렉산더 두시킨의 이 천재적인 건축물은 그야말로 경탄스럽기 그지 없었다. 3m 간격으로 아치형 기둥 장식들이 늘어서있었고 천장 부분에 아치형 인테리어 장식들은 걸작이었다. 오토는 건축물에 관심이 많았고, 지금 같은 상황만 아니었다면 이 광경에 감탄했을 것 이었다. 하지만 오토, 스테판, 데니스, 바실리는 사람들을 밟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데니스는 노란색 천장을 장식한 화려하기 그지없는 장식, 그림과 샹들리에를 쳐다보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촌구석에서 수백 만명이 굶어죽고 있을때 모스크바는 지하철 따위에 돈을 물처럼 쏟아부었군!! 모두가 평등해? 이런 지랄같은 빨갱이 새끼들이!!'
평소 모스크바에서 거주하던 러시아인들은 지하철에 간이 침대를 설치해둔 상태였다. 이 부유한 난민들은 피곤에 찌든 상태였지만 상당히 옷을 잘 차려입고 있었다. 여자들은 상당히 고급스러운 원피스에 코트를 입고 있었고, 어린 아이들 또한 잘 먹고 성장한 티가 났다. 참고로 러시아 시골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아무 곳에나 오줌을 지리고 이빨도 다 썩고 못 먹고 비실비실했다.
한 러시아 여인이 흰 테이블에 우유가 담긴 유리 병을 가득 올려놓고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토 일행은 달려가면서 이 우유를 한 병씩 가져갔다.
휘익!! 휙!! 휘익!!
러시아 여인과 어린 아이들은 이 광경에 당황해서 입을 크게 벌렸다. 데니스는 그렇게 한 병 낚아챈 다음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튀었다.
와장창!!!
대기근 때 농촌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굶는 일이 다반사였다. 못 사는 지역에 살던 녀석들일수록 더 위험한 부대에 배치되고, 총알받이로 앞세우는 것은 소련군의 관례였다.
데니스는 이런 궁전 같은 지하철에서 우유까지 쳐먹는 애새끼들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던 것 이다. 모스크바인들이 부유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부유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이들을 돌보던 여인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우유를 기대하던 애새끼들은 울기 시작했다.
"우아앙!!! 우아아앙!!!"
간이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던 러시아 부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도망가는 오토 일행에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오토 일행은 빠른 속도로 달려가면서 누워있는 러시아 부인들의 발을 계속 밟았다.
"꺄악!!"
"꺅!!"
"꺄아악!!"
데니스가 러시아 부인들에게 외쳤다.
"발 저리 치워!!!"
잠시 뒤, 블라슈크와 NKVD가 지하철을 따라 달려왔다.
"수상한 자 못 보았습니까?"
부인들이 외쳤다.
"저 쪽이에요!!!"
하지만 이미 오토 일행은 반대편 지하철 출입구로 탈출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또 파시스트가 침입했다는 소문에 모든 검문소들은 검문을 강화하고 NKVD들이 수색하고 있었다. 오토는 아주 태연한척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앞에는 나타샤가 검문소를 혼자 지키고 있었다. 크세니야와 함께 검문소를 지키고 있었는데, 크세니야는 배탈이 나는 바람이 화장실에 간 것 이었다.
나타샤는 명단을 보고 검문을 할 준비를 했다.
"당원증 보여주십시오."
오토는 나타샤에게 당원증을 보여주고는 우유 한 병을 내밀었다.
"한 잔 하시겠소?"
마침 목이 말랐던 터라 나타샤는 우유를 마셨다. 오토가 말했다.
"그럼 수고하시오."
"이...이름 확인해야 하는데..."
나타샤가 당황한 틈을 타서 오토 일행은 그냥 검문소를 지나쳐버렸다. 나타샤는 얼빠진 상태로 오토 일행을 쳐다보다가 신경을 끄기로 했다.
'다른 검문소에서 확인하겠지?'
오토 일행은 길을 가다가 두위를 살피고는 하수구로 들어간 다음 빠른 속도로 하수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스테판이 오토에게 물었다.
"너 뭘 또 훔친거냐!!"
아까 전에 지하실에서 난민들을 위한 식량이 쌓여있었는데, 오토는 그걸 잔뜩 잡낭에 넣어서 훔친 것 이었다. 참고로 데니스와 바실리도 식량을 잔뜩 챙긴 상태였다.
"됐고 빨리 튀어!!!"
이렇게 오토는 오늘도 멋지게 침투 임무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오토는 신나게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게오르크가 물었다.
"지하철역이 그렇게 휘황찬란한가?"
스테판이 말했다.
"무슨 궁전 같이 꾸며놨더군!"
오토는 정치 장교 안토노프가 했던 이야기를 했다.
"우리보고 톨스토이랑 투르게네프 무덤을 훼손했다고 헛소리를 하더군!"
"투르게네프 무덤이야 그렇다쳐도 톨스토이 무덤은 상관없잖아!"
볼프강이 말했다.
"근데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가 그렇게 대단한가? 어차피 러시아인들 대다수 문맹 아닌가?"
볼프강은 사관학교 도서관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번역판을 읽으려다가 너무 두꺼운걸 보고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블라덱이 말했다.
"농촌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스탈린이나 레닌이 누군지도 모르네. 러시아인 10에 9는 톨스토이고 투르게네프고 책도 읽어본적 없을걸세. 책을 읽어볼 정도면 모스크바에 사는 부유한 계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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