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각
오토는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한스 앞에서 부인했다.
"여태 잡은 포로가 한둘이 아닌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정말 모르냐? 검은 머리에 파르티잔 여성 포로다."
"전혀 모릅니다. 전 임시 포로 수용소 쪽에도 간 적이 없습니다."
그 말에 한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역시 이 녀석이 그럴리가 없다...'
"파르티잔 여성 포로가 재판 과정에서 전차 부대 장교들에게 윤간을 당했다고 증언했는데 정신이 불안정해보였기에 무죄 판결을 받고 현재 수녀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오토는 여전히 그 어떤 내색도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척 한스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한스는 혹시나 이걸로 문제가 생길까봐 피크가 있는 수녀원에 돈을 보내고, 피크 핑커의 상태를 면밀히 알아보도록 했다. 다행히 정신이 완전히 나간 상태라 뭐라고 말하던 증언이 인정되지는 않을 것 이었다. 오토가 말했다.
"전 모르는 일입니다. 아! 근데 여성 포로라면 들은게 있습니다!"
오토는 뻔뻔하게도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가 후원했던 앙뚜완이 여성 포로 있는 임시 수용소에 계속 드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뭔 일 있었다면 그 녀석이 저지른건 아닐까요?"
한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오토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이 곳에 오기 전 피크의 상태에 대해 수녀원에 자세히 물어보았었다. 앙뚜완은 장교 과정을 거치면서 받은 모든 돈을 피크 핑커의 이름으로 입금하고 자신이 전사해도 계속해서 피크가 생존할 수 있도록 결혼을 하고 연금 수령자까지 피크의 이름 앞으로 해두었다. 오토가 이 사건에 대해 앙뚜완에게 덮어씌우는 것은 한스가 들어도 터무니없는 짓이었던 것 이다. 오토는 이마에서 식은 땀을 흘리며 주절주절 말을 이었다.
"제가 소대원들한테 들었습니다! 녀석이 여성 포로 수용소에 음식을 가져다주면서 계속 들락날락거린다고 했습니다! 다른 녀석들한테 들었는데 앙뚜완 그 녀석이 수상하다고 합니다! 그런 놈한테 더 이상 지원도 안해주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스는 오토를 쳐다보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불쌍한 녀석이다."
오토는 부글거리는 심정으로 한스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한스가 그 날 오토를 때리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 이었다. 한스는 황급히 화재를 돌렸다.
"현재 보급 상황은 어떠하냐?"
"연료, 탄약, 식량 전부 보급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이반 놈들은 야간에 쥐도 새도 모르게 도로에 대전차 지뢰를 깔아두고 계속해서 철로를 테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10일 넘게 빵을 보급받지 못했습니다."
"보급은 조만간 될 것 이다."
오토는 여전히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게 이길 수 있는 전쟁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만약 다른 장교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지껄였다간 군사 재판으로 처벌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나폴레옹도 모스크바에서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랑 지금하고는 다르다!!"
"뭐가 다릅니까?"
"아직 라스푸티차까지는 시간이 있고 지금은 무기가 발달하여 빠른 속도의 기동전이 가능하다!"
한스도 자신의 말에 뜨끔했다. 지금 구데리안 기갑군은 보급 문제와 소련군의 막강한 방어선으로 인하여 전혀 빠른 속도의 기동전을 못하고 있었던 것 이다.
"다른 장교들 앞에선 입조심해라."
안 그래도 한스는 육군 최고 사령관이었고 군 내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한스를 견제하려는 세력이 많았던 것 이다. 오토는 점점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유령을 보았습니다."
"뭐라고?"
"복식을 보니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유령 같았습니다. 조만간 저와 제 동기들도 이 러시아 땅에서 전사해서 구천을 맴돌게 될지도 모르죠. 시신도 본토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 차가운 땅에서..."
"닥쳐라!!!"
"어쩌면 우리 조상도 이 곳에서 제대로 묻히지도 못하고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들은 나폴레옹 시절에 어디 있었습니까?"
한스는 오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정신이 나갔군...'
"히틀러 총리도 나폴레옹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쩌면 우리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20년 전에 참호전을 경험하고도 전쟁을 다시 반복할 수 있습니까? 그러고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입니까? 시체 썩는 냄새가 그리웠던겁니까?"
한스는 오토가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신경쓰였다. 솔직히 말해서 오토는 누가 봐도 피크 핑커라는 파르티잔 여성 포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봐라.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냐?"
오토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얼굴로 주절거렸다.
"이건 다 아버지 때문입니다. 그 때 왜 절 때리셨습니까?"
'???'
"그 때 패지만 않았어도 앙뚜완이랑 시시덕거리는 그 좆같은 파르티잔 계집을 두들겨패지는 않았을 겁니다!!! 진짜 시발!!!!!!"
한스는 순간 다리가 휘청거렸다.
"뭔 소리를 하는거냐. 페비틴이라도 먹은거냐? 하하하"
오토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채로 식은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한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네 녀석이 그럴 리가 없지 않냐? 헛소리 그만해라."
"네! 맞습니다! 동료들이랑 앙뚜완이랑 그 피크인가 뭔가 하는 계집을 두들겨패고 욕보였습니다! 그러게 시발 왜 그 날 다른 병사들 보는 앞에서 절 팼습니까? 이게 다 아버지 때문입니다!! 시발 이 놈의 좆같은 전쟁만 없었어도....시발....흐흐흐...."
오토는 헛소리를 주절거리며 실실거리기 시작했다. 한스는 뚜벅뚜벅 걸어갔다. 오토는 한스가 자신을 한 대 치려는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들겨맞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한스는 문을 열고 복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문을 잠그고 오토를 쳐다보았다.
"그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한스는 자신의 원수봉을 꽉 쥔 채로 계속해서 말했다.
"이건 내가 수습할테니 절대로 이 사건에 대해서 언급도 하지 말아라. 알겠냐?"
오토는 눈을 크게 뜨고 한스를 쳐다보았다. 여태까지 크게만 느껴졌던 한스는 생각보다 체구가 작았고 얼굴에는 약간의 주름이 패여 있었다.
"이 일을 다른 쪽에서 알게 되면 내가 정치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전부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와하하하!!! 시발 이거 좆같은 새끼네!!"
오토는 작은 방 안에 꽂혀있는 먼지나는 책장을 뒤엎었다.
퍼억!!
오토는 다른 책장까지 뒤엎으려고 했다.
"시발!!!"
한스는 오토에게 주먹을 날렸다.
퍼억!!
"네 녀석은 페비틴 부작용때문에 실수한거다. 이건 내가 다 처리하겠다."
잠시 뒤, 한스는 많은 훈장과 전차 격파장을 받은 보병 소대장 하이에를 불러서 직접 치하했다. 하이에는 각 잡힌 자세로 한스에게 경례를 했다.
"쉬게. 대단한 공을 세웠군."
한스는 하이에에게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 물었다.
"전차 병과와의 보전 협동은 잘 되고 있는가?"
하이에는 한스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보병 전술에 대해 보고했다. 한스는 하이에가 말한 보병 전술을 모두 기억해두었다.
'현재 보병 부대는 지나치게 기관총에만 의존하는데 이는 바꿀 필요가 있지. 제법 쓸만한 전술이군...'
"탄약 보급 외에 문제는 없나?"
하이에는 굳은 표정으로 이반 투르게네프의 생가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주민들도 그 사건을 목격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앞으로 전투에서 더 이상 주민들의 협조를 바라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한스는 그렇게 이반 투르게네프 생가 사건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올라오는 보고가 죄다 엉터리였군...'
군 조직에서는 보고를 올릴 때 지들이 잘못한건 죄다 누락시키고 전공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이다. 이반 투르게네프 생가 사건은 파르티잔의 사건이라고 한스는 보고를 받았지만 이는 역시나 거짓이었던 것 이다. 한스는 하이에라는 이 자가 상당히 강직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주민들의 민심은 어떠한가?"
잠시 뒤, 한스의 부관 프란츠는 한스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퀴벨바겐의 문을 열어주었다. 다그마가 차량을 운전했고 프란츠는 현재 보급 상황이 적혀 있는 서류를 한스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한스는 프란츠의 말을 듣지 않고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프란츠가 다시 말했다.
"서류 여기 있습니다."
그제서야 한스는 정신을 차리고 서류를 받았다. 그렇게 차량은 잠시 뒤 오렐에 있는 사령부로 도착했다. 한스는 자신의 임시 집무실에서 식은 땀을 줄줄 흘렸다.
'어...어떻게 이런 일이...'
피크 핑커 이 여자가 정신이 들면 아마 자신이 당한 것을 고대로 증언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전쟁이 끝나고 파이퍼 가문 전체가 나락으로 갈 수도 있었다.
'어떻게던 처리해야 한다..'
한스는 청산가리 약을 떠올렸다. 현재 한스가 피크 핑커가 있는 수녀원에 후원을 하고 있었고, 후원 핑계로 수녀원에 사람을 보낸 다음 쥐도 새도 모르게 피크를 죽일 수 있을 것 이었다.
'그래...그 계집만 죽이면...'
한스는 자신의 원수봉을 꽉 쥐었다.
'독일 제국의 명운이 달린 이 때 그 딴 계집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다...빨리 정리해버려야 한다!!'
그렇게 한스는 조만간 피크 핑커를 조용히 죽이기로 마음 먹고는 하고는 보고서를 읽었다.
순간 한스는 앙뚜완이 떠올랐다. 그 녀석한테는 평생의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한스는 어린 시절부터 죽도록 굴러서 얻어낸 이 원수봉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스는 오렐의 사령부에서 서류에 파묻혀 있었다.
한편, 오토는 동기들과 함께 중대 지휘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헬무트가 말했다.
"내가 볼때 전쟁은 올림픽이랑 비슷하네!"
"그게 뭔 소리야?"
헬무트는 베를린 올림픽에 선수로 출전해서 메달을 딴 적이 있었다.
"올림픽 때는 그야말로 온 세상이 내 것이 된 것 같네! 하지만 운동 선수로서 전성기는 짧네. 평생 할 직업은 아니란걸세!"
"전쟁 끝나면 다른 직업 찾겠단 소린가?"
"대학도 가서 다른 공부도 해야지."
솔직히 말해서 다들 전쟁은 지긋지긋했던 것 이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전쟁이 끝나면 군인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지려고 계획을 짜두고 있었다. 블라덱이 말했다.
"난 대학에 가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아버지 공장을 물려받을 예정이네."
스테판 또한 말했다.
"나도 대학에 가서 기계 공학을 공부할 생각이네. 오토 자네도 기계 공학을 공부하겠지?"
오토는 군사 학교 시절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기계 공학 책을 보곤 했던 것 이다. 하지만 오토는 스테판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있었다.
"이봐 오토!!"
"어어?"
"자네도 전쟁 끝나면 기계 공학 공부할거냐고."
"아아...그렇네."
게오르크가 말했다.
"그래도 훈장도 받았는데 그만두고 새 직업을 찾을 수 있을지 &%$#*"
다른 녀석들은 계속해서 자기 진로를 떠들었다. 하지만 오토는 담배를 피우러 간다고 하고는 혼자서 저택 구석에 틀어박혀서 전전긍긍했다.
'괘...괜찮겠지?'
오토도 솔직히 말해서 전쟁은 지긋지긋했다. 애초에 기계 공학이나 공부하러 유학을 갔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이다. 오토는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웩!!!"
한편, 소련군 전차장 표도르는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와 함께 새로 들어왔다고 하는 IS-2 전차를 구경했다. 표도르는 용접 상태도 부실한 T-34/76을 운용해야했지만, IS-2로 이루어진 중전차 부대는 따끈따끈한 신 전차를 받은 상황이었다. IS-2 전차의 전차장이 자랑했다.
"우오오!! 이거보게!! 전차장용 큐폴라도 장착되었네!"
IS-2 전차에는 이제 전차장용 큐폴라와 탄약수용 잠망경까지 달려 있었다. IS-2 전차의 포수가 외쳤다.
"폐쇄기가 개량되어서 발사 속도도 올라갔습니다!"
여태까지는 IS-2의 발사 속도는 1분당 5~6발이었는데 폐쇄기 기량으로 인해서 1분당 6~7발은 발사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뿐만 아니라 IS-2 전차의 대표적 약점이었던 조종수용 해치도 폐지하고, 방탄 유리가 부착된 투시구를 이용하여 전면을 관측할 수 있도록 했다. 조종실 전면 장갑의 경사도 향상되었다. 이제 IS-2 차체 전면의 약점이 상당 부분 보완된 것 이었다.
파벨이 푸념했다.
"우리도 청년 당원 들어가면 IS-2 전차 받을 수 있을까요?"
IS-2 중전차 대대에는 실력이 좋은 녀석들이 아니라 청년 공산당원들이 우선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이다. 표도르가 말했다.
"우리도 조만간 더 좋은 전차를 받을 수 있을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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