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판
모스크바에서 소련군 저격수 류드밀라는 여군 동료들과 함께 한 작은 건물의 창고에서 뭔가 쓸만한게 없을지 뒤적이고 있었다. 한 친구는 발싸개로 쓰기 좋은 얇은 천을 찾아냈다. 그 때, 안나가 외쳤다.
"이거 봐! 축음기다!"
여군들은 모두 그 곳으로 달려갔다. 빅토리아가 말했다.
"축음기 있으면 뭐해! 레코드판이 없는걸!"
그렇게 류드밀라와 여군들은 다시 먼지가 뒤덮인 창고를 뒤적거렸다. 그 때, 류드밀라는 두 장의 레코드판을 발견했다. 류드밀라는 기쁜 표정으로 그 레코드판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한 장은 표지에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류드밀라는 그 레코드판은 숨기고 다른 레코드판을 들고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짠!!"
친구들이 환호하였고 류드밀라는 떨리는 손으로 축음기를 틀었다. 러시아의 민요가 흘러나왔고 류드밀라와 친구들은 불과 얼마전까지 평화로웠던 자신들의 일상을 떠올렸다. 여군들은 이 축음기와 레코드판을 가지고 나와서 진지를 축성하면서도 음악을 들었다. 독일군이 오렐까지 함락되었다는 최악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독일군은 조금 있으면 이 모스크바까지 공격해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소련군들은 이 레코드판을 들으면서 아직까지는 나름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식량 보급도 잘 되고 있었다. 류드밀라 또한 친구들과 함께 까샤를 먹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식사를 마친 류드밀라는 어디론가 향했다. 안나가 외쳤다.
"류드밀라! 어디 가!!"
"잠깐 가 볼때가 있어서!!"
류드밀라는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뒤적거렸던 창고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늘 들고 다니는 저격총을 내려놓고 벽지 사이에 몰래 숨겨두었던 바흐의 레코드판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류드밀라는 바흐의 음악을 좋아했던 것 이다. 류드밀라는 남몰래 그 멜로디를 흥얼거려보았다. 어쩌면 전쟁이 끝나면 이 레코드판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이다.
류드밀라는 다시 벽지 사이에 레코드판을 넣어두고는 소총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친구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다들 표정이 왜 그래?"
빅토리아가 말했다.
"파시스트 놈들이...투르게네프 생가를 엉망으로 만들었대."
"뭐...뭐라고?"
한 소련 병사가 울부짖었다.
"그 망할 새끼들!!"
"책들은 찢고 비석에 오줌을 쌌다더군!!"
"나쁜 놈들!! 류드밀라!! 어디 가!!"
류드밀라는 창고로 달려간 다음 벽지에 숨어두었던 레코드판을 높이 들어올렸다. 류드밀라는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차마 류드밀라는 그 레코드판을 박살내지 못했다. 그 때, 블라슈크가 들어왔다.
"이보게! 류드밀라!!"
블라슈크는 류드밀라 손에 들려있는 바흐 레코드판을 바라보았다. 류드밀라가 중얼거렸다.
"저는 전쟁이 끝나면 이 파시스트의 레코드판을 집에 가지고 가려고 했습니다. 처벌해 주십시오."
블라슈크는 류드밀라의 떨리는 입술을 바라보았다.
"음악은 죄가 없지."
블라슈크는 류드밀라의 손에 들려있는 레코드판을 받고는 말했다.
"따라오게."
그렇게 블라슈크는 류드밀라를 데리고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간 다음 말했다.
"파시스트 놈들로부터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들이 전부 후방쪽으로 이송될걸세. 그 열차를 보호하는 임무에 실력있는 저격수가 필요하네. 어떤가?"
그 날 저녁, 류드밀라는 동료인 안나, 빅토리아를 껴안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류드밀라가 말했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바로 돌아올거야! 그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안나와 빅토리아는 슬픈 웃음을 지으며 류드밀라를 배웅하면서도 속으로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크세니야 또한 류드밀라를 안아주었다.
"잘 지내야 해!"
크세니야의 동생인 나타샤가 장난스럽게 류드밀라에게 말했다.
"블라슈크하고는 마지막 인사 안해?"
"응?"
다들 눈빛을 교환하며 꺄르륵 웃었다.
"아니야! 잘 가 류드밀라!!"
그렇게 류드밀라는 열차역으로 향했다. 크세니야가 말했다.
"류드밀라 쟤도 둔하다니까?"
한편 오렐과 튤라를 잇는 길다란 롤반에 뿌연 먼지 바람 속에서 독일군의 여러 전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 전차에는 제각기 병사들이 대 여섯명씩 위에 타고 있었다. 그렇게 교통 체증 속에서 느릿느릿 진격하다가 슐레프 중대는 한 작은 마을에 머물게 되었다. 왠지 이 곳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좋지 않았다.
어쨋건 슐레프 중대 병사들은 연료를 보급 받기 시작했다. 커다란 원통 모양의 연료통에는 200리터의 연료가 들어있다. 전차병들은 이 연료통에 호스를 연결한 다음 전차에 직접 주유를 했다. 또한 이 연료통에 제리캔을 호스로 연결해서 제리캔에 연료를 옮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토와 소대원들은 이, 빈대, 그 외 기생충 때문에 몸이 너무 가려워서 전부 웃통을 벗고 작업을 했다. 마을에 아가씨들이 있었지만, 전차병들로서는 이렇게 태양빛에 몸을 쬐어야 조금이라도 소독이 된다는 생각했다.
에밀이 투덜거렸다.
"오늘도 식량 보급은 안되나 봅니다!"
결국 전차병들은 비상으로 갖고 있던 통조림으로 배를 채웠다. 그 때, 하늘에 아군의 군량 수송기가 날아오는 것을 보였다. 모든 전차병들은 그 군량 수송기를 향해 양팔을 흔들었다.
"여기야!! 이 쪽이야!!!"
군량 수송기는 안타깝게도 마을에서 조금 지나간 곳에 낙하산이 달린 식량 폭탄을 우수수 떨어트렸다. 희고 작은 낙하산에 달린 무수한 캡슐이 우르르 늪지대로 떨어졌다. 병사들이 외쳤다.
"안돼!! 안돼!!"
"빨리 가서 끌어내!!!"
다들 늪지대 쪽으로 통나무를 서둘러 얹어서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캡슐 몇 개를 급하게 꺼냈다. 한 녀석은 늪지대로 성큼성큼 무릎까지 잠겨가면서도 커다란 캡슐 하나를 겨우 끄집어냈다.
"도와줘!!"
에밀과 마티아스가 달려가서 그 녀석을 도와서 캡슐을 끄집어냈다. 그런데 그 캡슐에는 콘돔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런 젠장!!!"
"쓰지도 못할걸 왜 넣은거냐!!!"
다행히 식량이 들어있는 캡슐 몇 개를 늪지대에서 끄집어냈고, 병사들은 통조림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슐레프 중대는 이 마을을 거점으로 하고 참호를 파고, 호를 구축하는 등 방어 준비를 했다. 오토는 주변 지형을 정찰했다.
'아무래도 후방으로 공격해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때, BMW 오토바이를 탄 번드르르하게 생긴 루프트바페 군복을 입은 녀석이 마을로 들어왔다. 그 호네커라는 녀석은 보초한테 자신의 신원이 적혀 있는 군사 수첩을 내밀고는 말했다.
"연대장님의 명령을 받고 공군 지휘소에서 왔습니다!"
오토가 호네커라는 이 루프트바페 군복을 입은 자에게 말했다.
"공군 지휘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 번지르르한 호네커가 뒷짐을 지고는 외쳤다.
"그게 기밀이라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양해해주십시오! 대대장님께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토는 이 재수없는 호네커를 만토이펠 대대장이 머물고 있는 대대 지휘소로 데려다 주었다. 만토이펠 대대장은 지휘소 창문을 통해서 또 마을에 있는 어린 꼬맹이들을 보고 있었다. 오토는 순간 만토이펠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저 시발 새끼가!!!'
하지만 만토이펠은 오토가 데려온 호네커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 입니까?"
호네커가 말했다.
"공군 지휘소에서 아주 중요한 명령을 내려서 &%$^%"
만토이펠은 오토, 호네커와 함께 마을을 걸어다니며 앞으로 전선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호네커가 말했다.
"아하! 그렇군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만토이펠이 물었다.
"현재 공군 상황은 어떻습니까? 공군 지원이 더 필요합니다!"
오토 또한 귀를 기울였다.
'소련 놈들 전폭기 전력이 강해지고 있다...내일 전투 때 공군 지원이 강력해야하는데...'
호네커가 말했다.
"하하! 걱정 마십시오! 조만간 새로운 기종의 항공기가 나올 것 입니다! 아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북부 쪽에 있었는데..."
오토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지금 북부는 어떻게 되는거지?'
호네커는 이것저것 떠벌렸다.
"제가 전투기를 모는데 엔진이 고장나서 긴급 탈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탈출이라는게 알다시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자칫하면 아군 항공기의 프로펠러에 몸이 갈릴 수도 있죠!"
오토는 이 말을 듣고 몸서리쳤다.
'으으...전투기 조종사 녀석들도 쉬운건 아니군!'
잠시 뒤, 만토이펠이 공병을 불러서 호네커를 지뢰가 설치되지 않은 길목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도록 했다. 호네커가 외쳤다.
"모스크바에서 봅시다!!"
오토는 저 호네커라는 녀석이 뭔가 재수없게 느껴졌다.
'나도 전투기 조종사 할걸 그랬나?'
만토이펠은 호네커를 보낸 다음 마을에 있는 꼬맹이에게 접근해서 러시아어로 말했다.
"꼬맹아, 내 구두 닦을래? 닦으면 이걸 주지!"
그렇게 말하며 만토이펠은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꺼냈다. 꼬맹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꼬맹이는 만토이펠의 대대 지휘소로 따라갔다. 오토는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저...저 시발!!!'
만토이펠은 지휘소에서 의자 위에 구두를 올려놓았고 꼬맹이에게 구두를 닦으라 시켰다. 꼬맹이가 외쳤다.
"다 닦았습니다!!"
만토이펠은 꼬맹이에게 초코바를 주었다. 배가 고팠던 꼬맹이는 우걱우걱 초코바를 먹기 시작했다. 만토이펠은 꼬맹이에게 더 많은 초코바와 사탕을 보여주었다. 꼬맹이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거 주시면 안돼요?"
만토이펠이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줄 수 있지! 네가 군인으로서 테스트만 통과하면 말이다!!"
그 꼬맹이는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초코바를 바라보았다. 그 때, 대대 지휘소의 문이 덜컥 열렸다. 그리고는 오토의 소대 병사들이 빵을 얹어서 만든 케이크를 가져와서는 만토이펠을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호이!! 호이!! 호이!!!"
만토이펠이 외쳤다.
"이게 무슨 일이야!!"
게오르크가 외쳤다.
"대대장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오토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초코바를 꺼내어 꼬맹이에게 쥐어주고 대대 지휘소 밖으로 내쫓고는 동료들이랑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만토이펠이 외쳤다.
"오늘은 내 생일이 아닌데 이게 무슨 짓거리냐!!"
"죄송합니다!! 착각했습니다!!"
잠시 뒤, 마을에는 병사들이 교대로 보초를 섰다.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잔뜩 열 받은 만토이펠 대대장이 보초를 서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보통 이반 놈들은 경계가 흐트러지는 새벽에 침입한다! 교대 시간까지 경계를 늦추면 안된다!! 알겠나!!"
"네!"
지크프리트 4인조는 마을 근처에 +형태의 호를 파고는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소총을 겨눈 채로 모든 방향을 경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소련군은 어느 방향에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이에는 지크프리트 4인조가 못 미더웠지만 그래도 훈장도 받고 교전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기에 이들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긴 것 이었다.
"이반놈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히 접근합니다! 그러니 날이 저물면 절대로 목소리를 내지 말고, 적군의 인기척이 보이면 발을 툭툭 건드려서 신호를 전달해야 합니다!"
올라프가 물었다.
"소대장님! 질문을 해도 될지 여쭈는 것을 허락받는 것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어보십시오!"
"방구가 마려우면 어떻게 합니까?"
하이에는 순간 지크프리트 4인조를 중요한 경계 임무에 맡긴 것이 옳은 결정이었나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바꿀까?'
그래도 나이도 40대 초반에 1차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기에 하이에는 이들을 믿기로 했다.
"가능하면 소리는 내지 마십시오!"
로베르트가 말했다.
"근데 놈들도 방구 냄새를 맡지 않습니까?"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맞아!! 우리도 놈들 특유의 마호르카 담배 냄새로 구분하는데 방구 냄새가 나면 분명 우리들을 눈치챌거야!"
호르스트가 말했다.
"오줌 마려우면 어떻게 하나?"
잠시 뒤, 하이에는 뒷목을 잡고는 중대 진지로 돌아왔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위생병한테 두통약을 처방받아야 할 것 이었다.
- 작가의말
자료 조사 위해서 2월3일까지 휴재했다가 그 이후에 계속 이어서 쓰기로 하겠습니다!
독자분들과 댓글로 계속 소통은 하고, 휴재 기간 동안 가벼운 외전은 쓸 수 있습니다!
휴재하는 동안 궁금한거 있으시거나 작품 관련해서 원하는 내용 있으시면 댓글 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겟습니다!
액션씬이 지루하다, 캐릭터 누구 비중이 늘었으면 좋겠다 이런 의견 모조리 받습니다!
제가 첫 작품이라 작품의 액션, 코믹 등의 비중을 어떻게 둬야할지, 캐릭터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기 있을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은 조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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