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4개
만토이펠 대대는 내일 새벽, 강력한 소련의 방어선을 공격할 예정이었다. 일단 독일 기갑 부대는 소련군이 매설한 지뢰 지대를 건너야 한다. 그 다음에는 티거 전차도 빠지도록 사다리꼴 경사로 깊게 파둔 대전차호를 우회해야 한다. 대전차호를 우회하고 나면 소련군이 촘촘하게 설치해둔 철조망을 짓밟고, 두 개의 작은 언덕 위에 설치된 소련군의 감시 초소를 기습해서 점령해야 한다.
그 감시 초소가 있는 고지를 지나면 그제서야 진짜 전투의 시작이었다. 바로 소련군의 T-34 포탑들로 이루어진 토치카 진지가 쫙 깔린 것 이었다. T-34 포탑들이 대전차포보다 강력한 것이, 빠른 속도로 360도 모든 방향을 공격 가능하기 때문이다. T-34 포탑으로 이루어진 토치카 진지를 지나면, 그야말로 거미줄처럼 구성된 종심이 깊은 참호 지대가 나온다.
대전차포, 대전차 소총 저격수, 기관총 사수 등이 거미줄 같은 참호 지대 곳곳에 보병 진지에 자리잡았다. 이번 전투는 기습이 생명이었고, 만토이펠 대대는 야간에 은밀하게 이 방어선 근처로 이동하고 있었다. 전차들의 전조등도 다 끄고, 위장 전조등만 살짝 킨 상태였다. 오토의 전차들도 앞에 가는 전차 후면에 얇은 차간 거리 표시등만 보며 천천히 이동했다. 이 차간 거리 표시등은 가로로 긴 슬릿으로 붉은 색으로 보이며, 차간 거리가 25~35m 까지 가까워지면 둘로 보이고, 그 이상 가까워지면 넷으로 보인다.
트등 트드등 트드드드등
모두 무선으로도 완전 침묵을 유지해야 했다. 그 때, 하늘에서 항공기 소리가 들렸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소련군의 정찰기였다. 모든 전차의 위장 전조등이 꺼졌다. 박격포, 야포 등을 운반하는 포병대 녀석들과 보병들이 탑승한 장갑 병력 수송차, 트럭들도 모조리 숨을 죽였다. 그렇게 독일군의 전차 부대는 관목림 속에서 소련군의 정찰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참고로 전차는 야간이라고 해도 후방 배기관에서 가스와 화염이 나오기 때문에 관목림 속에 엄폐하지 않으면 상당히 눈에 띈다. 오토는 전방에 보이는 다른 차량의 붉은색 차간 거리 표시등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정찰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배기관에 소염 장치 달아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위이잉 위이이이잉
잠시 뒤 정찰기가 지나갔고, 부대는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트으응 트드드등 트드드등
전차들의 뒤에 달린 공구 상자와 양동이가 차간 거리 표시등 옆에서 달그락거렸다. 그렇게 전차들은 소련군의 방어선으로 서서히 접근했다. 만토이펠 대대장은 통신 차량에서 포병대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독일군 포병대의 집중 포격이 시작되었다.
쿠궁!! 쿠과광!! 쿠궁!!!
정찰에 따르면 소련군은 감시 초소가 있는 고지 뒤에 T-34 중전차 부대를 대기시켜두고 있었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식은 땀을 흘리며 명령을 기다렸다.
"1중대 전진!!"
트응 트드등 트드드드등
고지에 있던 소련군은 저 멀리서 독일군의 전차 부대가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오는 것을 목격했다.
"파시스트 전차다!!!"
독일군 전차 부대는 빠른 속도로 사면을 통해 내려오며 주포와 기관총에서 불꽃을 뿜었다.
"모두 준비해!! 빨리!!"
하늘에서는 루프트바페의 매서슈미트 편대들이 무서울 정도로 저공비행하며 날아오며 독일군 전차 부대를 보조해주고 있었다. 오토는 열려 있는 전차장용 해치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매서슈미트가 오토의 티거로부터 40~50m 위를 지나갔다. 매서슈미트의 엔진 소리와 프로펠러까지 생생하게 들릴 지경이었다. 아까 전에 포병대의 포격으로 소련군의 대전차 지뢰들이 상당히 폭발한 상태였다. 하지만 당연히 안 터진 지뢰들이 많을 것 이었다. 그렇게 오토의 소대는 지뢰밭 사이로 지나갔다.
'으아아아악!!!'
전차 부대들은 가급적 앞에 다른 차량이 지나간 궤도 자국을 따라 앞으로 전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차 지뢰를 밟고 기동 불가 되는 전차들이 있었다.
"3소대 4호 차량 기동 불가!!"
동쪽에서 어느덧 동이 트고 있었고, 전차 부대는 대전차 호를 우회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슐레프 중대장이 외쳤다.
"1중대다! 1소대 243 쪽으로!!"
243지점은 소련군의 감시 초소가 있는 고지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오토의 소대는 소련군의 감시 초소가 있는 고지로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트으응 트드드등
그렇게 오토의 소대는 소련군의 감시 초소가 있는 고지를 기습 점령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 사이에 다른 소대들은 소련군의 T-34 포탑으로 만든 토치카들을 하나씩 격파했다.
티잉!! 쿠과광!! 콰광!!
오토의 소대 또한 고지를 점령하고 앞으로 전진했다. 그 때, 오토와 티거 전차병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카가강!!
티거의 전면에 철갑탄이 박힌 것 이었다. 관통하지는 않았지만 티거 차체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으악!!!"
"1시 방향!! 적 대전차포!! 연속 장전!!!"
티잉!! 쿠과광! 콰광!!
엄청나게 힘든 전투가 끝나고, 독일군은 소련군의 방어선을 점령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티거 밖으로 나와서 전차의 상태를 살폈다. 티거의 포방패에는 아까 전에 소련군이 발사한 철갑탄이 절반쯤 박혀서 만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오토는 그 자국을 만져보았다.
현재 티거 전차의 기동륜의 톱니 부위가 마모된 상태라 교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교체할 톱니 부품이 전달되지 않았다. 오토의 소대에서 4호 전차 한 대도 소련군의 대전차 지뢰를 밟고는 기동불가 된 상황이었다. 구난 소대가 와서 오토 소대의 4호 전차에 와이어 두 개를 X자로 교차해서 걸고는 견인해갔다.
이번 전투는 승리했지만 현재 슐레프 중대의 전차 가동률은 65프로까지 떨어졌고 연료도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다행히 대대 본부에서 수송 부대를 편성해서 후방쪽 보급소에서 연료를 받아왔다. 그렇게 오토의 소대 또한 연료를 보급받을 수 있었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완전히 녹초가 된 상태로 소련군이 만들어 둔 부실한 참호 속에 주저 앉아있었다. 식수가 부족해서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좆같네...'
그 때, 누군가 외쳤다.
"야보(적 전투 폭격기)다!!"
"피해!!!"
오토와 전차병들은 재빨리 참호에 대피호로 달려갔다.
"으아아악!!!"
세 개의 거대한 서치라이트에서 나오는 굵은 빛들이 하늘에 거대한 노란색 길을 만들었다. 서치라이트들이 움직이며 하늘 북동쪽 하늘 구석구석을 비추었고, 독일군의 88mm 대공포들이 하늘을 향해 불꽃을 뿜었다.
탕! 탕! 탕!
오토와 전차병들은 참호 대피호에 웅크린채로 벌벌 떨었다.
'으아아악!!!'
그 때, 하늘에서 소련군의 항공기가 독일군의 대공포를 맞고는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소련군의 항공기는 오토와 전차병들이 숨어있는 대피호 근처로 추락했다.
쿠광!! 콰과과광!!
포수 에밀이 팬티에 똥오줌을 지리며 비명을 질렀다.
"우아악!!!"
조종수 마티아스가 패닉이 된 상태로 외쳤다.
"루프트바페 녀석들은 뭘 하는거야!!"
한 시간 뒤, 오토와 전차병들은 대피호 밖으로 나왔다. 소련군의 참호는 그야말로 박살이 난 상태였다. 포탄 파편을 맞은 부상병들이 들것에 실려가고 있었다. 전차병들은 모두 통조림과 흑빵을 배급받았지만 다들 식욕이 없었다.
'나도 죽는건가?'
'일주일 뒤에 살아있을까?'
'이렇게 전투하다간 모스크바 도착하기 전에 죽겠지?'
오토 또한 마가린을 바른 흑빵을 먹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절대 안 죽는다...나는 절대 안 죽는다...'
요하네스는 옆에서 동전 던지기를 하는 알프레트에게 물었다.
"너 아까부터 뭐 하냐?"
"이게 앞면이 나오면 다음 전투에도 살아남는거야. 두 번 앞면이 나오면 일주일 동안 살아남는거고. 세 번 앞면이 나오면 안 죽고 집에 돌아가는거지."
알프레트가 동전을 던진 다음 그 위에 다른 손을 덮어서 아직 확인을 안했을 때, 요하네스가 알프레트의 손에서 동전을 빼앗고는 집어 던졌다.
"뭐야!!"
요하네스는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난 절대 안 죽어..."
"뭐라고?"
"난 절대 안 죽는다고..."
딱봐도 요하네스는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오토가 요하네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한 달 뒤 집에 돌아가서 뭐하고 쉴지나 생각해두게."
"하..한 달 뒤에는 전쟁 끝나겠죠?"
오토는 순간 멈칫했다.
"그렇네. 전투 몇 번만 더 하면 전쟁은 끝날걸세. 티거의 강력한 장갑을 믿으라고!"
요하네스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안심한 듯 했다.
"며칠 정도는 전투 없겠죠?"
"그렇다고 들었네."
하지만 다른 대대에서 지원 병력을 요청했고, 만토이펠 대대장은 오토의 소대를 지원보내기로 하고는 무선으로 연락했다.
"알았다! 조만간 통조림 4개(전차 4대를 지칭하는 암호)를 보내겠다!!"
그렇게 오토의 소대원들은 또 다시 전투를 하러 가야했다. 마티아스가 울부짖었다.
"왜 맨날 우리만 전투 갑니까!! 억울합니다!!"
오토가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우리가 제일 잘 싸우니 그러는걸세!!"
분명히 이건 만토이펠 대대장이 악의적으로 오토를 괴롭히는 것 이었다. 어쨋거나 시키는대로 해야했고 오토의 소대는 먼지를 내뿜으며 이동했다.
한편, 한스 파이퍼는 2기갑군 24차량화군단 3기갑사단장 발터 모델과 함께 사단장 지휘 차량에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런 지휘 차량에는 사령부 연락용 무전기, 포병부대 관제용 무전기 등이 있다. 발터 모델이 한스에게 보고했다.
"플랍스크로 향하는 1차 방어라인을 돌파 완료했습니다! 다만 2차 방어라인 돌파에는 시간이 걸릴 것 입니다!"
한스는 발터 모델을 상당히 신임하고 있었다.
'이런 실력있는 놈들은 가급적 빨리 진급시켜야지...'
한스는 이런 저런 보고를 받고는 다시 오렐에 있는 사령부로 향했다. 현재 한스가 신경써야하는 것은 소련과의 전선 뿐만이 아니었다. 한스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라스푸티차 전에 모스크바 점령이 실패한다면 동계 전투를 대비해야 한다...'
한스가 미리 동계 장비를 준비해야한다고 한참 전부터 건의해온 덕분에 동계 장비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된 상황이었다. 비록 농업부, 식품부 쪽에는 몇 달 안에 전쟁이 끝날거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전쟁에서는 아무리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도 부족하다. 현재 독일 제국은 드골, 페탱 등과 접촉하고 있었다. 혹여나 이번 겨울 전에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프랑스와 양면 전선을 형성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던 것 이다.
히틀러는 예전부터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을 지지했고, 이로 인해서 드골은 상당히 히틀러에게 우호적이었던 것 이다.
'프랑스 놈들도 머저리가 아니면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깨닫겠지...'
현재 독일은 식량 부족으로 인해서 미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식량을 수입하고 있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은 독일에게 식량을 수출할 수 있어서 기뻐할 것 이었다. 독일의 무리하게 군 규모를 늘리며 군수 공업에 의존하며 독일 경제를 돌리는 상태였다. 설령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독일 제국의 경제는 큰 위기를 맞을 것 이라고 한스의 장인이 여러 번 말하고 했던 것 이다.
이런 상황에 전쟁이 길어진다면 그야말로 끔찍했다. 그야말로 독일 제국의 모든 것이 달린 상황이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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