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상풍 주사
지금 독일군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깨끗한 식수를 구하기가 힘들었고, 보급 상황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병사들은 싱싱하지 않은 음식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병사들 뿐만 아니라 장교들도 설사로 고생하고 있었다. 어떤 녀석들은 완전히 탈진해서 그냥 바지에다가 설사를 지리기도 했다. 이들은 설사로 탈수 증상까지 생겼다. 가뜩이나 식수 공급이 잘 안되고 있었기에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병사들은 엄청나게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이들이 면도도 하고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입고 따뜻한 침대에서 잤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가족에게 온 편지를 읽거나 성경책을 읽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오토는 얼마 전 유령의 말을 떠올렸다.
'혹시 우리도 나폴레옹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오토는 20년 전에 자신의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참호전에 대해 숱한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맥주집에 가면 참전 용사들이 과장 섞인 무용담을 늘어놓았던 것 이다.
하지만 식수 문제로 인해서 다들 장염에 걸려 군복에다가 설사를 지리고 몸에는 빈대와 이가 우글거린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었다. 이가 어찌나 심했던지 병사들은 사타구니에 털을 제모하기도 했다. 병사들의 반합과 수통은 더럽기 그지 없었다. 오토와 부대원들의 몰골은 어린 시절 상상했던 자랑스러운 독일 제국군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전세계 그 누구도 오토와 전차병들만큼 고약한 냄새가 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몸 여기저기 습기찬 곳에서 번식을 하고 있는 빈대와 이 때문에 오토는 가려워서 미칠 것 같았다.
'좆같네 시발...'
오토는 애초에 이 전쟁을 일으키지 말았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너무 찝찝한 생각이라 오토는 억지로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랑 지금은 다르지! 우리에게는 전차가 있지 않은가! 모스크바까지 얼마 안 남았어!! 조금만 버티자! 보급 문제만 해결되면 한 달 전처럼 쾌속 진격을 할 수 있을거야!!'
오토는 슈납스를 한 모금 마셨다가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켁...켁..."
오토의 목에 걸려있는 인식표에 슈납스가 흘렀다. 이 타원형의 인식표는 절반으로 쉽게 자를 수 있도록 가운데에 홈이 파여 있었다. 이렇게 홈이 파인 이유는 전사자들의 인식표를 절반으로 잘라서 쉽게 회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독일군 전사자의 유가족에게는 이 인식표와 함께 이 인식표의 주인은 독일 제국을 위하여 전장에서 영웅처럼 스러져갔다는 편지가 전달된다.
오토는 군사 학교 시절부터 받았던 지옥 같은 훈련을 떠올렸다. 침대 청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거나 그 외의 이유로 벌을 받으면 벌칙방에 들어가야 했다. 그 방에서는 식사 시간에도 숟가락이나 포크가 제공되지 않았고, 개처럼 업드려서 수프를 먹어야 했다.
오토와 동기들이 그런 인격모독을 견디며 군사학교를 졸업한 것은 언젠가는 독일 제국의 장교가 되어 영웅적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거라는 망상 때문이었다. 그 시절 오토와 동기들은 드래곤을 무찌른 지크프리트의 설화를 읽으며 자신 또한 그런 영웅이 될거라 믿었던 것 이다.
하지만 현실은 설사로 뒤범벅이 된 동료들과 비좁은 참호에서 뒤섞여 있어야 했다.
'시발 이렇게 뒤질 수는 없어!'
오토는 자신의 인식표를 만지작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하게 참호를 만드느라 통나무를 덧댈 시간이 없었기에 이 상태에서 소련군이 포격을 하면 다 뒤질 것이 분명했다.
오토는 에밀,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를 데리고 근처 마을로 갔다. 주민들은 이미 다들 피난을 간 상태였다. 오토가 외쳤다.
"문 한짝씩 때어내서 가져오게!"
다른 소대 녀석들이 오기 전에 빨리 문을 뜯어내야했다. 오토는 자신이 무척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통나무 하나씩 잘라와서 참호에 덧대는거보단 문 뜯어와서 덧대는게 훨씬 편하지! 다른 소대 녀석들이 뜯어가기 전에 우리가 빨리 써야겠다!!'
오토는 서둘러서 문을 뜯어내다가 못에 손을 긁히고 말았다.
"아이고!! 아아!!"
"괜찮으십니까?"
오토가 손가락을 붙잡고 울부짖자 에밀이 물었다. 오토는 고작 손가락이 긁혔을 뿐인데도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이러다 파상풍 걸리는거 아냐?'
에밀이 말했다.
"이따가 위생 소대에 가서 파상풍 주사라도 맞으십시오!"
오토는 파상풍에 걸릴까봐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지만 태연한척 했다.
"긁혔을 뿐이네!"
그렇게 오토 일행은 문짝을 때내와서는 자신들의 참호 위에 뚜껑을 덮듯 문짝을 덮었다. 에밀,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가 흙과 나뭇가지도 덮어서 참호를 위장하고 있을 때 오토는 위생 소대를 찾아갔다. 그 곳에서는 도살자 녀석이 싱글벙글 웃으며 뺀찌를 들고는 새로운 환자를 찾고 있었다.
'윽!!'
"이빨이 아픈가?"
"파..파상풍 주사를 맞으러 왔네!"
오토는 손가락을 소독하고 파상풍 주사를 맞고는 참호로 돌아왔다. 그런데 몸이 희한하게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으어어..으어어어...'
뿐만 아니라 얼굴이 팅팅 붓기 시작했다. 오토는 신경이 곤두서서 다시 위생 소대를 찾았다.
"호...혹시 파상풍에 걸리는건 아닌가?"
위생병이 오토의 상태를 보고는 말했다.
"가벼운 파상풍 주사 부작용이네!!"
"부...부작용!!"
"가서 쉬게!"
오토의 소대원들은 팅팅 부은 오토의 얼굴을 보고는 기겁했다.
"소...소대장님!! 얼굴이!!"
"입술이 팅팅 부으셨습니다!"
오토의 파상풍 주사 부작용은 점점 심해졌다. 결국 오토는 간이 치료소에 누워서 담요를 덮고는 벌벌 떨었다.
"으어어어...으어어어..."
마침 스테판 녀석이 야전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복귀한 터라 동기들이랑 같이 오토를 보러 왔다.
"자네 괜찮나?"
"으어어...흐어어어..."
오토는 자신이 파상풍에 걸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저..전우들...나 대신 독일 제국의 승리를 위하여..."
게오르크가 물었다.
"이보게! 그게 무슨 말인가?"
1소대원들도 와서 오토의 상태를 살폈다. 오토가 말을 이었다.
"자네들과 같이 훌륭한 동료들과 싸울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네. 그...그리고..."
"야 이 새끼 왜 이래!"
헬무트가 위생병에게 물었다.
"야! 내 친구 다 죽어가는데 신경 좀 써주라고!"
위생병은 방금 전에도 오토의 상태를 확인한 터라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오토의 상태를 체크했다.
"하루 정도만 버티면 열은 내려갈겁니다."
"모르핀이라도 놔주게!"
하지만 오토는 계속 죽을 소리를 했다.
"스..스테판. 어머니는 항상 자네에게 죄책감을 가졌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볼프강이 오토의 소대원들에게 물었다.
"오토 이 녀석 통조림 어디다 숨겨두지?"
"매일 티거 포탑 안에서 드셨습니다! 아마 티거 내부에 자폭용 폭탄 놔두는 칸이랑 구급 상자에 있을 겁니다!"
오토의 동기들은 오토에게 통조림을 먹이기 위해 티거로 달려갔다.
한편 마르틴 또한 치료소로 와서 오토에게 말했다.
"오토!"
"밀리나에게 내가 사랑했다고 전해주게. 도..독일 제국을 위해 전사하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밀리나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꼭 살아돌아갈거야!!"
오토가 이렇게 횡설수설하고 있을 때, 오토의 동기들은 1소대 티거 내부를 살펴보고 있었다.
게오르크가 외쳤다.
"이렇게 동료를 잃을 수는 없네!"
"맞아! 좀 쪼잔하긴 하지만 녀석은 최고의 친구야!"
"그 좋아하는 캐비어 통조림 먹으면 좀 낫겠지!"
"그 녀석 맨날 혼자만 쳐먹었는데 요샌 그래도 통조림 한 두개는 우리한테 나눠주잖아!"
우당탕 쿠당탕
티거 포탑 안에서 소대 전체가 며칠을 먹을만한 엄청난 통조림과 수북히 쌓여있는 초코릿, 에너지바를 발견했다. 다들 할말을 잃고는 이 어마어마한 식량을 바라보았다. 볼프강이 말했다.
"오토 저 새끼..."
다음 날 오토는 겨우 몸을 회복했다. 파상풍에도 걸리지 않았고 손가락은 멀쩡했다. 다행히 오토 소대 차량들은 모두 정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다행이군...'
현재 독일군과 소련군은 대치 상태에 있었고 간헐적으로 서로에게 포를 한발씩 쏘고 있었다.
쿠궁!! 쿠과광!!
공병 녀석들은 소련군이 공격해올만한 길목, 인근 포탄 구덩이나 도랑 등에 대인 지뢰를 설치해두었다. 독일군은 지뢰가 설치되어있지 않은 좁은 골목으로만 지나다녔다. 슐레프 중대의 전차들 또한 전차가 들어갈만한 구덩이를 파둔채로 잘 엄폐되어 있었다.
별다른 특별한 점은 없는 것 같았다. 오토는 오토바이병 닐스와 함께 사이드카가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 지형을 정찰하기로 했다. 사실 요하네스를 데려가고 싶었지만 최근 정찰 때 너무 요하네스만 데리고 간 것 같아서 이번엔 닐스와 함께 가기로 했다. 오토바이병 닐스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조종했다. 오토는 지도케이스에서 지도를 꺼낸 다음 지형을 상세하게 메모했다.
오토는 쌍안경으로 전차가 기동하기에 좋은 지형을 샅샅이 살폈다.
'놈들이 전차 부대로 공격을 한다면 아마 63확인점을 거쳐서 올 가능성이 높...'
그런데 갑자기 소련군의 일제 포격이 시작되었다.
쿠궁!! 쿠과광!! 쿠궁!!
"으아악!!!"
"돌아가!! 빨리!!!"
닐스는 빠른 속도로 오토바이를 운전했다. 다행히 소련군 포병대의 착탄점은 오토와 닐스를 향하지 않고 있었고, 제 때 도착만 한다면 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 때 오토는 사이드카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하늘에서는 무시무시한 소련군의 전폭기들이 벌떼 마냥 대형을 이루고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그 전폭기들은 상당한 저고도로 이 쪽을 향해 비행해오고 있었다.
"야보다!!"
"우아악!!!"
오토와 닐스가 탑승한 오토바이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제발 따라오지 마!!!'
그런데 전폭기 한 대는 오토와 닐스의 오토바이가 있는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오토가 외쳤다.
"내가 신호하면 우측으로 방향 꺾어!!!"
오토는 뒤를 돌아보았다. 소련군 전폭기는 점점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꺾어!!!"
닐스가 우측으로 급격히 방향을 꺾었고, 소련군 전폭기는 엉뚱한 곳을 향해 기관총을 긁어댔다.
드득 드드득 드득
하지만 다행히 닐스가 제때 방향을 꺾은 덕에 오토와 닐스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닐스의 오토바이는 숲으로 우회해서 부대로 복귀했다. 오토와 닐스는 오토바이에서 내린 다음 재빨리 참호 속으로 들어갔다.
'으아아아아!!!'
하늘에서 수 많은 소련군의 전폭기들의 폭탄 투하구가 열리고 있었다.
쿠궁!! 쿠과광!! 쿠궁!!
소련군의 전폭기들은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독일군의 진지에 폭탄을 투하했다. 폭발은 계속해서 대지를 진동시켰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모두 귀를 틀어막고는 최대한 입을 벌렸다.
'으아아아악!!!'
용감한 대공포병들은 소련군의 전폭기를 향해 대공포를 발사했다.
탕! 탕! 탕! 탕! 탕!
그리고 한 대의 소련군 전폭기가 날개에 대공포를 맞고는 시커먼 꽈배기같은 자국을 남기며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헀다.
2시간쯤 지나고, 갑자기 포격이 멈추었다.
"준비해!!"
"빨리!! 빨리!!"
그리고 독일군 기관총 사수들은 저 멀리서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소련군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라!!!!!!!!!!!"
'으아아아악!!!!'
드득 드드득 드드득
수 많은 소련군이 기관총을 맞고, 지뢰를 밟아서 다리 한 짝이 날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끝도 없이 계속해서 몰려왔다. 어떤 소련군은 기관총으로부터 몸을 엄폐하고자 구덩이 속에 들어갔다가 지뢰를 밟고는 폭사했다.
퍼엉!!! 쿠과광!!
독일군의 대전차포는 소련군의 대전차포를 향해 계속해서 포탄을 발사했다.
펑! 퍼엉!!
소련군 보병들은 앞서 쓰러진 동료를 엄폐물로 삼아서 엎드린 다음에 독일군의 진지를 향해서 조준 사격을 하고 있었다.
탕! 쉬잇! 쉬잇!
"조심해!!"
슐레프 중대의 전차들은 소련군의 전차와 교전하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27확인점!! 적 전차!! IS-2 3대!!"
오토는 하필이면 자신의 소대가 가야하는 지점에 스탈린 전차가 3대나 있다는 말을 들고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으아아악!!!'
한편 한스 파이퍼는 부관 프란츠, 다그마와 함께 탈출에 성공해서 오렐에 있는 궁뎅이에서 발목을 치료 받고 있었다. 부관 프란츠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으헤헤...흐에에...으헤헤..."
한스는 게오르기 주코프의 소련군이 3기갑사단을 공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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