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젖
1940년 5월 31일, 한스 파이퍼 육군 참모 총장은 현재 중부집단군의 보급 상황과 무기들의 상태가 적혀있는 두꺼운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한스는 여태까지 중부집단군을 남부집단군으로 지원 보내서 키예프를 먼저 점령한다는 히틀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모스크바쪽에서 소련군의 병참선은 동쪽에 주요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었던 반면, 독일군의 병참선은 그야말로 한계까지 늘어져 있었다.
'측면이 확보 안된 상태에서 모스크바를 공격했다간...'
한스는 돌출되어있는 중부집단군을 보았다. 어쩌면 중부집단군이 측면 공격을 받고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병력이 포위될 수도 있었다. 한스는 히틀러를 존경했지만, 군사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상병 출신인 히틀러보다 다른 참모들과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다른 장군들과 전쟁을 보는 시각이 달랐던 것 이다.
하지만 한스는 히틀러의 머리가 상당히 좋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틀러는 한스와 참모들이 했던 사소한 이야기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히틀러의 판단이 옳다...그리고 모스크바를 공격하면 스탈린은 분명 최후까지 사수하라고 할 것 이다. 그 새끼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 본인도 모스크바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군이 극동전선군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본명 극동군을 빼와서 모스크바를 방어하는데 모든 힘을 집중할 것 이다..'
한스가 일본군이 극동군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무렵, 한병태는 최근에 입대한 수 많은 조선인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모두 포부가 넘치고 있었다.
'나 또한 일본인으로서 천황의 방패가 되는 영광을 누리고 싶다!!'
'내가 훈장을 받고 장교가 된다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를 자랑스러워할거야!!'
'가난하게 사는건 질렸다..죽더라도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싶다.'
'저 자들은 내가 일본을 위해 일본 육군에 입대했다고 생각하겠지..하지만 나는 조선인으로서 조선을 위해 죽을 것 이다.'
'조선인으로서 유럽과 싸우는 것이 자랑스럽다.'
'내가 일본 육군에 지원하는 것은 모두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다. 조선이 독립하기 위해서는 조선인들도 최신식 무기를 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밥은 잘 주네...저 망할 놈의 장교 새끼들...집에 돌아가고 싶다...'
'봉급 모아서 집을 살거야!'
어린 조선인 병사들은 이렇게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전부 일본 제국군이 세계 제일이고, 소련군은 의지가 나약한 오합지졸 군대라는 말도 안되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조선에 대한 애국심을 갖고 있는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병태는 이렇게 많은 녀석들이 입대한 것에 자기 잘못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병태는 일본 제국군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신문 기사 등에서 엄청나게 홍보가 되고 있었던 것 이다.
'내..내가 무슨 짓을...저 녀석들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그건 전부 내 탓이다!!'
병태는 몇 조선인 병사들한테 모리나가 초콜릿과 캬라멜을 나눠주었다. 그 놈들은 한심하게도 질질 짜면서 모리나가 초콜릿을 먹었다. 병태가 말했다.
"울지 마라! 사내답게 굴어라!"
"하..하지만 저 녀석들도 전부 울고 있습니다! 악!"
저 쪽에 일본인 신병들도 질질 짜고 있었다. 조선인 병사들은 초콜릿과 캬라멜을 먹으며 말했다.
"입대하기 전에는 단거 싫어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조선인 병사들은 눈물젖은 초콜릿과 카라멜을 먹었다.
한편, 에밀, 마티아스, 요하네스, 알프레트는 고된 행군 끝에 들린 한 작은 마을의 아주머니에게 군표를 내밀며 흥정을 하고 있었다.
"염소 젖 한 번만 먹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그 군표를 탐탁치 않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거 필요없어요! 물건으로 주세요!"
알프레트가 생각했다.
'우린 해방군인데 이런 대접을 하다니!!'
하지만 넷은 담배를 두 개피씩 모아서 아주머니에게 8개피를 주고 군용 모포를 준 다음 염소 젖을 반합에 짜낸 다음 한 모금씩 마셨다.
"캬아!! 좋다!!"
그 때, 지크프리트 4인조가 얼쩡거렸다.
"거 참 맛있겠군!!"
지크프리트 4인조는 나이도 많았고 철십자 훈장을 받은 베테랑들이라 전차병들은 염소 젖을 조금 나눠주었다.
"캬 맛 좋다!!"
크리스티안은 숫염소를 보고는 말했다.
"염소도 권투할 수 있을까?"
호르스트가 외쳤다.
"염소는 박치기를 잘하네!!"
에밀이 눈치를 보다가 지크프리트 4인조를 말렸다.
"그...염소 주인 아주머니가 까다로운데 괜히 건드리지는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거 괜찮아! 이랴!! 이랴!!"
올라프는 숫염소 주위를 얼쩡거리면서 약을 올렸다. 숫염소는 열이 받아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박치기를 시도했다. 올라프는 잽싸게 박치기를 피했고 주위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우헤헤!!!"
숫염소는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자 더 화가 났다. 올라프는 계속해서 숫염소를 약올렸다.
"약오르지!!!"
마티아스가 불안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저러면 안되는데!!'
숫염소는 열받아서 몸을 일으키며 박치기를 준비했고, 올라프는 이번에도 잽싸게 피했다. 숫염소는 비료로 쓰기 위해서 쌓여있는 분뇨더미에 쳐박혔다. 독일 병사들은 모두 껄껄거렸다.
"우하하하하!!!"
"멍청한 염소 녀석!!!"
아주머니가 이 광경을 보고 얼굴이 시뻘개지며 펄펄 뛰었다.
"아이고!! 이게 왠 일이래!!"
결국 보병 소대장과 올라프는 아주머니에게 사과를 하고 군용 빵을 내어준 다음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보병 소대장은 20대 초반이었기에 40대의 지크프리트 4인조를 다루는 것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제발 사고만 치지 말았으면!!!'
마을을 떠나 한참을 행군하다가, 다시 정차하고 부대는 숲에서 숙영하였다. 부대의 통신차량에서는 무전수들이 암호화된 내용을 암호해독기를 이용해서 해독하고 있었다. 인도 출신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이 정수론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이 암호 시스템은 그 어떤 천재도 풀 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슐레프 중대장은 명령을 받은 다음 전차 부대 장교들을 전원 집합시켰다.
"38 확인점에 놈들의 강력한 전차 부대가 있다는 정보가 있다! T-34 최소 50대 이상!"
'!!!'
"우리 중대가 확인점 19, 확인점 27을 따라서 전면으로 놈들을 공격하고, 2중대가 측면에서 놈들을 기습공격할거다!"
그렇게 슐레프 중대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가면서 소련군과 전투를 벌여야 했다. 슐레프 중대장이 말했다.
"앞으로 코노토프로 전진하면서 계속해서 놈들과 산발적인 교전을 벌여야한다! 중요한 것은, 가급적 놈들로 하여금 아군의 전력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야하는 것 이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여..역시 키예프에서 소련군을 포위하려던 것이 맞았군!!'
'주력 부대가 남부집단군을 지원간다는 것이 알려지면 놈들은 만반의 준비를 할 것 이다!'
현재 독일군은 전차들이 쐐기 대형으로 전진하면 그 뒤를 따르는 보병들을 사다리꼴로 배치되어서 넓은 범위에서 적군을 공격하는 전술을 쓰고 있었다. 그 때, 오토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T-34 전차는...'
오토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건의했고, 슐레프 중대장은 콧수염을 꿈틀거렸지만 이를 위에 건의하기로 했다. 스테판, 게오르크, 블라덱은 오토의 아이디어에 경악했다.
'그..그럴듯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
'그게 성공할까?'
'실패하면 좆될텐데!!'
1소대 판터 전차장 우벤은 이 소식을 듣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말도 안된다!!'
그리고 소련군의 베테랑 T-34 전차장 표도르는 자신의 T-34에서 지도를 보고 있었다. 표도르가 속한 부대는 최근에 남부 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던 것 이다.
'젠장..나는 모스크바에서 싸우고 싶단 말이다!!'
모스크바로부터 머지 않은 스몰렌스크가 함락되었고, 이제 머지않아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공격할 것 이라는 것을 표도르는 잘 알고 있었다. 표도르는 모스크바를 지키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 때 조종수 드미트리가 장전수 파벨과 함께 마을에서 염소 젖을 얻어와서 표도르에게 내밀었다.
"고맙네!"
표도르가 염소 젖을 마시고는 말했다.
"모스크바가 위기에 쳐했는데 나는 편하게 있는게 죄스러운 심정이군."
드미트리가 말했다.
"아까 정치 장교들 이야기하는거 들었는데 파시스트 놈들도 병참선이 늘어져서 당분간은 공세를 하지 못할거라고 했습니다!"
표도르가 생각했다.
'정치 장교 그 아가리만 놀리는 새끼들 말은 믿으면 안 된다!'
장전수 파벨이 말했다.
"항공 정찰 사진을 보니 파시스트의 공세는 확실히 소강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한 두달 정도는 시간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표도르가 말했다.
"파시스트 놈들이 몇 달만 공세를 늦춰도 우리는 10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징집할 수 있네! 놈들은 한 달 내에 모스크바를 공격할 것이 분명하네!"
그 때 경계병이 외쳤다.
"1시 방향 전차!!"
"뭐야!!"
"빨리 탑승!!!"
표도르와 전차병들은 모두 T-34로 신속하게 들어갔다. T-34 전차는 해치에 손잡이가 없기 때문에 연결부의 튀어나온 부분을 발로 밟고 허리를 굽힌 다음 직접 손으로 여는 구조였다. 표도르가 이걸 개선해달라고 위에 건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
소련군 장교들이 쌍안경으로 1시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군이다!!"
T-34 전차는 상부에 두 개의 해치가 있었고, 이 해치가 두 개 모두 열려 있으면 마치 미키마우스의 귀처럼 보인다고 해서 독일군은 T-34를 미키마우스라고 부르곤 했다. 그리고 장교들은 쌍안경을 통해서 경사 장갑에, 미키마우스처럼 해치가 두 개 열린 전차들 4대가 이 쪽 방향으로 오는 것을 목격했다.
"저거 어디 부대냐?"
"모르겠습니다!"
"지원 부대인가 봅니다!!"
소련군은 아군이라는 말에 안심했다. 가끔 독일군이나 러시아 제국군이 노획한 T-34 전차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정신나간 새끼들 아니면 저렇게 소규모 병력으로 해치를 연 상태로 대놓고 소련군이 있는 진지로 오지는 않을 것 이었다.
하지만 표도르가 장전수 파벨에게 말했다.
"철갑탄 장전한다."
"장전!!"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다!!'
소련군 전차병들도 아직까지는 공격을 하지 않았지만 전부 전차에 탑승한 상태였다.
"지원 부대 온다는 연락 있었냐?"
"없었습니다!"
'뭐지?'
저 멀리 보이는 미키마우스처럼 해치 두 개를 모조리 열고 있는 경사장갑의 전차는 이제 소련군의 진지의 1.5km 정도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표도르는 해치 위로 머리를 내민 상태로 엔진 소리에 집중했다. 이 엔진 소리는 분명 T-34의 엔진음이었다.
'기우였나?'
그 때, 표도르는 불꽃이 번쩍거리는 것을 목격했다.
'!!!'
쿠과광!!!
소련군의 T-34 전차가 포탄을 맞고는 모든 해치가 활짝 열리며 뚜껑이 위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제서야 발사음이 들렸다.
퍼엉!!
"적이다!!"
"방어 대형으로 바꾸고 연속 사격!!!"
2km 너머에서 불꽃이 번쩍거리며 포탄이 발사되었다.
"1시 방향!! 거리 1.5km!! 적 전차 4대!!!"
뿌연 연기 속에서 소련군은 총 8대의 전차를 볼 수 있었다. 4대의 경사 장갑 전차와 함께 그 뒤를 따라오던 수직 장갑의 4대의 티거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티거다!!!"
작가 주석 : 526~528회차 시점 현재 오토소속된 부대의 이동 방향
구데리안의 제2기갑집단은 제24기갑군단, 제46기갑군단, 제47기갑군단, 기갑 집단 직할 부대로 이루어져있다! 이들은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었는데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남부집단군을 지원하해서 키예프를 탈환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림의 빨간색 색연필로 표시된 것이 현재 전선이다! 보라색으로 표시한 24에 동그라미 표시된 것이 현재 오토의 부대가 소속한 24기갑군단이다! 이들은 남쪽으로 내려간 다음, 키예프에 있는 소련군을 포위할 예정이다!!
24기갑군단은 현재 코노토프로 향하고 있다!
저 파란색 색연필로 표시된 것은 바로 드네프르강이다! 드네프르강 쪽, 그니까 남부에서도 클라이스트 장군의 1기갑집단이 키예프를 포위하러 북쪽으로 올라갈 것 이다! 그런데 남쪽은 늪지대라서 전차 기동이 힘들다!보시다시피 어마어마한 포위망을 형성해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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