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돼지
얼마 전까지 모스크바 코 앞, 로슬라블까지 도달했던 슐레프 중대는 구데리안의 제2기갑집단의 24차량화군단, 제3기갑사단에 배속되어 있었다. 제3기갑사단은 발터 모델 중장이 사령관으로 있었다.
슐레프 중대의 모든 전차의 전면에는 구데리안을 뜻하는 알파벳 G가 쓰여 있었고, 전차병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중부집단군에서 헤르만 호트의 제3기갑집단과 구데리안의 제2기갑집단은 서로 경쟁하고 있었고, 슐레프 중대원들은 모두 구데리안의 제2기갑집단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토는 티거 위에 상체를 내민 채로 끝없는 행렬을 바라보았다. 롤반을 지나며 오토는 20~30분에 한 번씩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현재 제2기갑집단은 코노토프로 향하고 있었다.
'키예프에서 소련군을 포위하려는건가?'
표지판을 볼 때마다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오토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뒤, 롤반에서 차량들이 정차하고 식사 시간이 되었다. 요하네스는 딱딱한 갈색 빵, 코미스브로트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돼지 기름을 발라서 식사를 준비했다. 보급받은 인조 벌꿀도 발라서 제법 맛있는 식사가 준비되었다.
전차병들은 노획한 메밀로 까샤를 만들어먹는 것을 포기했는데, 까샤는 오랫동안 끓이지 않으면 먹고 나서 설사를 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막내 요하네스가 농가에서 구해온 우유와 메밀을 이용해서 까샤를 만들었는데 티거 전차병들이 모두 배탈이 나서 행군 도중이 그야말로 곤혹스러운 상황이 터졌고 다른 소대 전차병들에게도 욕을 먹었었다. 장전수 알프레트가 오토에게 물었다.
"소대장님! 질문을 하는 것을 허락받는 것을 요청해도 될지 여부에 대해 문의하고 싶습니다!"
지금 슐레프 중대가 속한 대대의 병사들 사이에서는 희한한 말투가 유행하고 있었다. 어떤 녀석들은 이등병을 아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왜 이런 말투를 쓰는거지?'
"뭔가?"
"남부에 소련군이 중부에서 여태까지 상대했던 소련군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사실인지에 물어보는 것에 대한 여부를 &^%*$"
"그렇네. 소련군은 남부쪽에 정예 병력들을 배치해두었네."
오토의 말에 전차병들은 표정이 어두워졌고 사기가 떨어졌다. 오토는 소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기로 했다.
'이런 흘러빠진 놈들!! 바짝 정신을 차리게 해주지!'
"하지만 독일 육군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육군일세! 그 무엇도 독일 기갑 부대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네!"
오토의 말에 소대원들은 용기가 생긴 듯 했다. 이제 오토는 더 이상 겁많은 신참 장교가 아니었다. 리더십있고 소대원들을 격려할 줄 아는 용감하고 정의로운 소대장이었다. 그렇게 오토는 소대원들을 격려한 이후 포탑 안으로 들어가서 꼬불쳐 둔 초콜릿과 비스킷을 혼자 먹었다.
'다른 녀석들 먹을때 아껴둔거니 안 나눠주는게 맞다!!'
고된 행군은 계속되었다. 45분에 한 번씩 차량을 정비했고, 이 짧은 시간 동안 병사들은 길바닥에 널부러져서 거의 기절 상태나 다름없는 수면을 취했다. 이렇게 한 번 기절하면 여러 번 걷어차고 싸대기를 갈겨도 안 깨어난다.
긴 행군이 끝나고, 슐레프 중대는 휴식을 취할만한 마을을 찾아냈다. 공병 소대장의 수색 이후, 병사들은 마을 집 안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다. 작은 집, 마구간, 헛간 안에 병사들 수십명이 널부러져서 잠을 잤다. 오토의 동기들이 쑥덕거렸다.
"여기 아가씨들 예쁘다!"
"여자는 강한 남자에게 끌리는 법이지! 아가씨들도 우릴 좋아할거야!"
오토와 동기들은 사관 생도 시절 생도복만 입고 있어도 꽤나 인기가 많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인기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토와 동기들은 2주째 씻지도 못한 상태였고, 마을 여자들은 코를 틀어막고는 뒤에서 독일군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냄새가 고약해!!"
"망할 독일군들!!"
"왜 하필 우리 마을에 온 거야?"
오토도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보고서를 쓰는데 무전수 요하네스 녀석이 물었다.
"소대장님! 질문을 해도 되는 것을 허락받는 것을 %$*&"
"그냥 말하게."
'이 녀석!! 저 말투를 즐기고 있다!!'
"이 인근에 맷돼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냥을 위해서 스코프와 저격총을 사용해도 되는지를 허가받아도 되는지의 여부를 물어봐도 되는지 *%$%"
"허가한다."
오토는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티거의 성능과 개선점에 대해서 한참동안 보고서 작성에 열중하고 있는데,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오토의 소대원들이 모두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우와!!"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다!!"
요하네스는 에밀과 함께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사냥한 맷돼지를 가지고 오고 있었다. 잠시 뒤, 오토의 소대는 모두 맷돼지로 포식을 할 수 있었다.
"얼마 만에 먹는 진짜 고기냐!!"
여태까지 전쟁에서 먹은 고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통조림에 들어있는 비계덩어리가 전부였다. 야전 취식차량에서 고기 스프를 배급할 것이라고 해서 가보면 건더기는 전혀 없고 멀건 스프만 있는게 대다수였다. 병사들은 고기 건더기는 맨 밑바닥에 있고, 취사병 녀석들이 그걸 혼자서 다 먹고 있을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오토도 요하네스가 사냥한 맷돼지 고기로 배를 채웠다. 벌써부터 몸에 영양소가 보충되고 힘이 나는 것 같았다.
포수 에밀이 물었다.
"소대장님! 질문하는 것을 허락받는 것을 요청해도 되는지의 여부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봐도 되는데 도대체 그 말투는 왜 쓰는거냐?"
"카이저마리네 녀석들이 쓰는 말투라고 해서 흉내내고 있습니다! 그...일단 모스크바 안 가고 남쪽으로 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나라고 알겠냐...'
하지만 오토는 땅에 지도를 그리며 짐작가는 바를 말해주었다.
"지금 중부집단군만 모스크바 쪽으로 이렇게 돌출되어있네. 그래서 우린 남부집단군으로 지원을 가는 걸세. 여기 남쪽에 제1 기갑집단(클라이스트가 지휘)와 함께 포위망을 형성해서 이 키예프를 탈환하는 것이 목표겠지."
장전수 알프레트가 이걸 보고 경탄하며 말했다.
"우와!! 그러면 키예프 따고 모스크바로 가는 겁니까?"
"아마 그렇겠지?"
알프레트가 외쳤다.
"크리스마스까진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알프레트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저런 눈치없는 자식...'
알프레트는 멍청하게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조종수 마티아스 녀석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열심히 편지를 쓰는 포수 에밀에게 물었다.
"또 여자친구한테 편지 쓰냐?"
"에밀 이 녀석 맨날 여자친구한테 편지 씁니다!!"
에밀이 말했다.
"레오니는 저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있을겁니다 그러니 편지를 자주 보내야 합니다!"
"오 부럽다! 여자친구한테 온 편지 좀 보자!"
"아직 안 왔습니다!"
오토가 물었다.
"아직 한 통도 못 받았다고?"
다들 황당한 표정으로 에밀을 바라보았다. 에밀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레오니는 편지를 자주 보냈겠지만 아마 누락된 것 같습니다!"
마티아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가족들이 보내준 편지 다 제대로 오던데...'
하지만 전차병들은 능숙한 티거의 포수인 에밀에게 현실을 말해줬다가 충격 받아서 탈영이라도 할까봐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마티아스 녀석이 몸이 가려웠는지 등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 녀석이 긁기 시작하면 이 가려움증은 모두에게 전염되었다. 다들 옷에 이가 들끓었던 것 이다. 요하네스가 말했다.
"아까 사냥할때 근처에 하천 있던데 목욕하는 것을 허가 받는 것을 요청하는 것에 대한 여부를 &*^*&%$"
오토는 고민이 되었다. 이 마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다른 마을도 전부 남쪽으로 행군하는 독일의 다른 병력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렇게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마을 사이에 있는 하천에서 잠시 목욕을 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 이었다. 그렇게 오토는 녀석들과 함께 하천에 목욕을 가기로 했다.
에밀은 전차에서 지난 번에 농가에서 돈을 주고 구입한 옷이 들어있는 꾸러미를 챙겼다.
독일 군복을 입고 있으면 아무래도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독일군은 마을에 머물 때마다 돈을 내고는 소련 농민들이 입을 만한 옷을 미리 구입해둔 것 이었다.
그렇게 오토, 에밀, 마티아스, 요하네스, 알프레트는 비누와 수건을 가져가서 신나게 목욕을 했다.
"어우 시원하지 말입니다!"
"쉿! 조용히 해!"
그 때,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탕!
그리고 붉은색 조명탄이 위로 쏘라올려졌다.
퍼엉!!
오토 일행의 얼굴이 모두 하얗게 질렸다.
'으아악!!!!'
마티아스가 서둘러 군복을 입으려는데 오토가 외쳤다.
"파르티잔일 수 있다!! 군복 입지마!!"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이걸 입는다!!"
근데 문제는 에밀이 챙긴 옷 꾸러미에는 상의만 다섯벌이었다. 결국 오토와 전차병들은 상의만 입어야 했다.
"팬티 입지마!!소련인들은 팬티 안 입어!!"
군에서 보급하는 독일군 팬티를 입으면 파르티잔에게 독일군이라는 것을 들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오토 일행은 상의만 입은 채로 포신을 덜렁거리며 신발도 신지 못한 채로 마을로 달려왔다. 마을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악!!!"
마을에는 구데리안 상급대장이 자신의 부관과 함께 슐레프 중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구데리안 상급대장에게 아부를 하던 슐레프 중대장이 이 광경을 보고 기겁했다.
'이 망할 녀석들이!!!'
오토는 여전히 상의만 입은 채로 경례를 하고 외쳤다.
"초..총소리와 붉은 조명탄을 목격했습니다!!"
알고보니 총소리는 보병 소대에서 맷돼지를 사냥하러 갔던거고 붉은 조명탄은 경계병의 실수였다. 슐레프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구데리안 상급대장이 오토를 보고는 말했다.
"자네가 오토 파이퍼로군. 자네 소대가 여태까지 이룬 전공에 대해서는 보고를 들었네."
놀랍게도 구데리안은 딱히 격식을 따지지 않고 유머 감각이 있는 유쾌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식은 땀을 뻘뻘 흘리는 오토에게 말했다.
"하지만 파이퍼 중위! 팬티는 입고 오는게 좋겠군! 팬티도 안 입고 행군할 수는 없지 않겠나? 허허허"
그렇게 오토와 전차병들은 다시 경례를 하고는 마을 밖으로 걸어갔다. 마을 여자들이 손으로 눈을 가리고는 비명을 질렀다.
"꺅!!!"
마을 여자들은 얼굴을 가린척 하면서 손가락 틈으로 오토와 전차병들을 훔쳐보았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포신을 덜렁거리며 다시 하천으로 달아났다. 요하네스가 울부짖었다.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오토가 외쳤다.
"닥쳐! 니가 목욕하자고 했잖아!!"
다음 날 슐레프 중대는 계속해서 코노토프로 행군했다. 롤반이 끊어져 있었기에 통나무를 덧대어 길을 만드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이 인근에서는 얼마 전에 파르티잔과 교전이 있었다!! 사주 경계!"
다들 사주 경계하며 행군하는데 누군가가 외쳤다.
"저..저거!!!"
상체를 해치 위로 내밀고 있던 오토도 그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을 지켜보았다. 티거 밖에 걸터앉아있던 에밀이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파르티잔의 시체가 세 구 널려있었고, 맷돼지가 입에 피칠갑을 한 채로 파르티잔의 내장을 뜯어먹고 있었다. 마티아스가 구역질을 했다.
"우웩!!!"
어제 맛있게 먹었던 돼지 고기가 생각났다. 아마 이제 몸에 다 소화가 되었을 터였다. 오토는 파르티잔의 시체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티거는 뿌연 연기를 뒤로 뿜어내며 코노토프로 향했다.
트응 트드등 트드드등
작가 주석 : 526~528회차 시점 현재 오토소속된 부대의 이동 방향
구데리안의 제2기갑집단은 제24기갑군단, 제46기갑군단, 제47기갑군단, 기갑 집단 직할 부대로 이루어져있다! 이들은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었는데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남부집단군을 지원하해서 키예프를 탈환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림의 빨간색 색연필로 표시된 것이 현재 전선이다! 보라색으로 표시한 24에 동그라미 표시된 것이 현재 오토의 부대가 소속한 24기갑군단이다! 이들은 남쪽으로 내려간 다음, 키예프에 있는 소련군을 포위할 예정이다!!
24기갑군단은 현재 코노토프로 향하고 있다!
저 파란색 색연필로 표시된 것은 바로 드네프르강이다! 드네프르강 쪽, 그니까 남부에서도 클라이스트 장군의 1기갑집단이 키예프를 포위하러 북쪽으로 올라갈 것 이다! 그런데 남쪽은 늪지대라서 전차 기동이 힘들다!보시다시피 어마어마한 포위망을 형성해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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