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마우스
판터 전차는 경사장갑이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언뜻 T-34와 구분이 힘들다. 또한 T-34 전차는 상부 장갑에 해치 두 개를 열면 미키마우스처럼 보이는게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슐레프 중대에 각 4개 소대의 판터 전차 상부 장갑에 두 개의 동그란 철판을 페인트로 색칠한 다음 붙여서 T-34인 것 처럼 위장했다.
그렇게 4대의 판터를 앞세우고, 그 뒤를 4대의 티거가 따라가면서 마치 소련군으로 하여금 네 대의 T-34로 보이도록 했던 것 이었다. 이 8대의 전차들은 소련군 진지를 순식간에 초토화했다.
티잉!!
쿠광!! 콰과광!!
퍼엉!! 쿠구궁!! 쿠과광!!!
티거, 판타의 철갑탄은 T-34의 전면 장갑을 관통했다. 하지만 T-34의 철갑탄은 티거와 판타의 장갑에 그대로 도탄되었다.
탕! 타앙!!
티거는 45도 각도로 티타임각까지 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 거리에서 T-34로 절대로 티거의 장갑을 관통할 수 없었다.
표도르가 외쳤다.
"전진해!! 무조건 거리를 좁혀야 한다!! 지그재그로 전진!!"
조종수 드미트리는 식은 땀을 흘리며 T-34를 앞으로 전진시켰다.
'으아아...으아아아!!!'
그 때, 소련군 장교가 전차 부대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퇴각해!! 퇴각하라!!"
이 명령은 깃발을 통한 수기 신호로 전달 되었다. 결국 표도르 또한 조종수 드미트리에게 명령했다.
"퇴각한다!!"
T-34는 판터와 티거보다 속도가 빨랐고, 2km쯤 너머에 저지대로 엄폐할 수 있는 능선이 있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퇴각한다면 전력을 유지한 채로 퇴각이 가능할 것 이었다. 그렇게 아직 남아 있는 T-34 30여대가 퇴각하기 시작했다.
'저 능선만 넘어가면 엄폐가 가능하다!!'
그 때, 표도르는 좌측에서 쉿소리를 들었다.
쉬이잇!!
회전하며 공기를 가르고 날아온 철갑탄은 소대장의 T-34 전차의 측면 장갑을 드릴처럼 꿰뚫으며 관통했다. T-34 측면 장갑과 포탄 파편들은 전차 내부에서 사방 팔방 흩어졌고, 연료 탱크에 부딪쳤다.
쿠과광!! 콰광!!!
표도르가 측면 관측창을 보고 외쳤다.
"측면에 적 전차 8대!!"
슐레프의 1중대의 전차들이 정면에서 소련군을 공격하는 동안, 독일군 2중대가 우회해서 퇴각하는 소련군의 측면을 공격한 것 이었다. 수 많은 T-34가 시뻘건 불과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기동정지 되었고, 전차병들은 온 몸에 불이 붙은채로 전차 밖으로 탈출하면서 울부짖었다.
T-34의 한 조종수는 전면에 조종수 탈출용 해치를 통해 나오려다가 미쳐 탈출하지 못하고 죽고 몸에 불이 붙은채로 몸이 그슬리고 있었다. T-34는 내부가 무척 비좁기 때문에 전면 경사 장갑의 해치로 조종수가 탈출하려면 몸을 구겨야 겨우겨우 탈출할 수 있었던 것 이다.
티잉!! 탕!!!
그 때, 표도르의 T-34의 우측 궤도가 포탄 파편을 맞고는 궤도 한 조각이 팅 튀어올랐고 우측 궤도는 탄력을 잃고는 츠르르 벗겨졌다.
"우측 궤도 피격!!"
"탈출해!!!"
표도르는 자신의 전차병들과 재빨리 해치를 열고는 탈출하고 앞으로 달렸다. 200m 너머에 능선이 보였고 그 쪽으로 빨리 달아나야 했다. 그런데 조종수 드미트리 녀석이 전면 조종수 탈출용 해치를 열고는 힘들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표도르가 파벨과 다른 녀석에게 외쳤다.
"너넨 빨리 가!!"
표도르는 달려가서 전면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드미트리를 끌어낸 다음 같이 도망갔다.
'으아아악!!!'
넓은 개활지 여기저기서 T-34 전차들이 불타오르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탈출에 성공한 한 소련군 전차병은 다리가 날아간 상태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측면에서 기습한 2중대 전차들이 T-34 전차의 잔해가 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트드등 트드드등 트드등
소련군 전차병들이 손을 들고는 항복을 표시했다. 그 때, 2중대 티거의 기관총이 불꽃을 뿜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르르륵
항복한 소련 병사들은 모두 바닥에 퍽 쓰러졌다. 그렇게 2중대 전차들은 기관총으로 꼼꼼하게 살아남은 소련 병사들을 모조리 사살하고는, 능선으로 전진했다. 오토를 포함한 슐레프 중대장의 1소대 전차들은 뒤늦게 전진해서 이 광경을 보았다. 오토의 티거 조종수 마티아스 또한 관측창으로 이 처참한 광경을 보았다.
'마흐땅 2 중대장은 포로를 잡지 않지...'
오토 또한 이 광경을 보고는 표정이 굳었지만 무전으로 명령했다.
"앞으로 전진한다!!"
2중대 차량들은 이미 능선 너머로 도망간 나머지 소련 병력들에게 기관총과 고폭탄을 발사하는 중 이었다.
드득 드드득 펑! 퍼엉!!
한편 표도르를 포함해서 이번 전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련군 전차병들은 이에 대해 상부에 보고했다. 정치 장교가 어마어마하게 호통을 쳤다.
"이런 멍청한 놈들!!! 고작 파시스트 전차 16대도 상대 못하고 이게 무슨 꼴이냐!!!"
표도르 T-34의 장전수 파벨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같은 거리에서 놈들이 발사한 탄은 T-34를 관통할 수 있는데 T-34는 놈들의 장갑을 관통 못한다!! 좋은 전차를 주고 싸우라고 하던가 우리보고 어쩌라는거야!!'
정치 장교는 침을 튀기면서 계속해서 울분을 토했다.
"지금 조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다! 모스크바에서는 여성, 아이, 노인들까지 방어선을 구축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그런데 자네들은 파시스트 전차 몇 대도 못 막았는가!!!"
전차병들은 정치 장교에게 화가 났지만 속으로 울분을 삼켰다. 조종수 드미트리가 생각했다.
'그..근데 왜 티거 8대, 판터 8대가 이 쪽으로 갑자기 온거지? 독일군에서도 티거와 판터는 주요 전력이라 모스크바를 공격한다면 전부 그 쪽으로 갔을텐데?'
정치 장교가 펄펄 뛰면서 계속 고함을 쳤다.
"지금 놈들의 주요 전력은 모스크바로 향하고 있다!! 자네들이 상대한 놈들은 파시스트 군에서도 실력이 없는 놈들이라 그 말이다!!"
표도르가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오늘 교전한 독일군 전차 부대는 주력 부대로 예상됩니다."
정치 장교가 콧수염을 꿈틀거리며 표도르를 바라보았다.
"놈들은 상당히 준비를 하고 기습 작전을 시행했고 다른 독일군 전차 부대에 비해 상당히 포 정확도가 높았습니다. 놈들은 정예 부대로 예상되며 이에 따른 대비가 필요할 것 으로 예상됩니다."
정치 장교가 말했다.
"부사관이...말대꾸?!"
다른 전차장도 말했다.
"그..그렇습니다! 여태 많은 파시스트 전차 부대를 상대했지만 오늘 상대한 그 놈들이 가장 실력이 좋았습니다! 놈들은 분명히 정예 부대입니.."
"닥쳐라!! 네 놈들이 뭐라도 되는줄 아냐? 현재 파시스트 주력은 전부 모스크바로 가있지 여길 왜 오겠냐!!! 패배를 변명하려고 적 전력을 올려치다니 이런 비열한 놈들!! 파시스트 전차 16대? 7대 정도 있는걸 부풀린거 아니냐!!!"
"원거리에서는 아군의 전차가 놈들의 티거나 판터에 비해 교전에서 불리합니다!"
정치 장교는 계속해서 펄펄 뛰다가 회의를 마무리했다.
"스탈린 동지께서는 자네들을 위해 맹수를 때려잡을 수 있는 강력한 전차를 준비하고 계신다! 이상 해산한다!"
그렇게 소련군 전차병들은 엿 같은 표정으로 정치 장교의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드미트리가 말했다.
"근데 왜 판터와 티거가 저렇게 한꺼번에 이 쪽으로 왔을까요?"
파벨이 말했다.
"모스크바 가다가 길 잃은건가?"
"지금 놈들이 크게 돌출부 형성하고 있잖아. 측면에서 기습받을 수 있으니 이 쪽에선 놈들이 방어태세로 전환하는거 아닐까?"
한 소련군 전차장이 말했다.
"모스크바에서 주력이 방어하는 사이에 우리가 놈들의 측면을 공격해서 한꺼번에 공격하는걸세!"
표도르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자네 뭐라고 했나?"
"독일 놈들은 다 모스크바로 주력을 보낼거 아닌가? 그러면 우리가 놈들의 거대한 돌출부를 이렇게 측면에서 잘라내면 되는걸세!"
다른 전차장이 낄낄거렸다.
"아주 장군 납셨군!"
표도르의 얼굴 색이 변했다.
'독일 놈들도 그걸 걱정할거다!!! 그렇다면 설마 놈들의 주력 부대가 전선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남쪽으로?'
표도르는 중부에서 싸울 때 독일군들의 보급 상황이 좋지 않아서 식량을 노획한다는 소문을 들었었다. 만약 독일군이 남부에 이 비옥한 땅을 차지하게 된다면 식량 보급 문제가 해결될 것 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표도르를 보며 파벨과 드미트리가 쑥덕거렸다.
"또 저러시네."
"오토 파이퍼인가 뭔가 하는 그 독일놈이랑 싸우는거 맨날 상상하잖아."
"근데 새로운 전차는 뭘까?"
"티거랑 판터보다 강하겠지?"
"그렇게 강력한 전차라면 이 쪽이 아니라 모스크바가 급하니까 그 쪽에 먼저 줄 것 같은데..."
한편 독일군 슐레프 1중대장은 마르셀 마흐땅 2중대장에게 항복한 소련군을 사살한 것에 대해 항의를 했다.
"부상자들까지 사살할 필요는 없었소."
슐레프도 딱히 정의감이나 도덕심이 있는 자는 아니었고, 혹시나 이게 나중에 자신의 진급에 불이익을 줄까봐 걱정되었던 것 이다.
마르셀 마흐땅 2중대장이 말했다.
"전차 부대는 진격 속도가 생명이오. 부상까지 당한 포로를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오."
슐레프는 이 잔혹한 마흐땅 2중대장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나도 알지만 내 진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단 말이다!!'
오토는 게오르크, 헬무트, 블라덱과 함께 수근거렸다.
"마흐땅 2중대장은 왜 저렇게 잔혹한걸까?"
블라덱이 혼자서 맛 좋은 초콜릿을 먹으며 말했다.
"프랑스인이잖아! 프랑스인들은 잔인하다고!"
오토와 동기들은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스테판은 자리에 없었다. 오토가 블라덱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인종차별적인 녀석..'
'네 놈이 구두쇠인건 유대인이라서냐?'
마르셀 마흐땅 2중대장은 노획한 소련군의 보드카를 자신의 중대원들과 나누어 마시다가 오토와 동기들한테도 걸어와서 나눠주었다. 방금 전까지 2중대장의 흉을 보고 있었던지라 뜨끔했지만 오토와 동기들은 보드카를 받아서 마셨다.
"매번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르셀 마흐땅 2중대장이 말했다.
"파이퍼 중위, 나도 자네 아버지에게 빚진게 있네!"
'???'
마흐땅 2중대장이 말을 이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이 끝나고, 내가 7살 때 자네 아버지의 전차에 들어가서 장난을 치다가 혼이 난 적이 있지!"
입을 크게 벌린 오토와 동기들에게 마르셀 마흐땅 2중대장이 말했다.
"간식도 얻어먹고 전차에 들어가서 잔뜩 구경도 할 수 있었네!"
1차대전이 끝날 무렵, 한스 파이퍼의 티거 전차에 들어와서 까불다가 혼났던 꼬맹이 마르셀은, 그 당시 한 보병 대대장의 도움으로 군사 학교에 입학해서 이렇게 중대장이라는 자리까지 오르게 된 것 이었다.
[작가 주석 : 387회 마지막 포성 참조]
마르셀 마흐땅 2중대장이 떠나고,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전쟁 고아라서 저렇게 된건가?'
게오르크와 헬무트, 블라덱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때 볼프강이 걸어왔다. 참고로 볼프강도 전쟁고아였다.
"너네들만 보드카 먹었냐?"
게오르크가 볼프강에게 보드카병을 넘겨주었다.
"자네가 마시게."
"진짜? 내가 먹는다?"
블라덱은 주머니 속에 있던 고급 초콜릿을 꺼내어 볼프강에게 주었다.
"이것도 자네가 먹게."
볼프강은 초콜릿과 보드카를 먹다가 갑자기 친절해진 동기들이 수상했다.
"우물우물 너 여기 독탔냐?"
그리고 오토는 어머니 에밀라에게서 받은 초코릿을 잡낭에서 꺼내어 스테판에게 조금 나눠주었다. 참고로 스테판은 에밀라로부터는 당연히 아무 소포도 받지 못하고 있었고, 할머니 엠마한테서만 소포를 받고 있었다.
스테판은 초콜릿을 먹다가 눈에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오토는 스테판의 어깨를 두드렸고 이번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어린 아이들이 고아가 된 것을 떠올렸다.
'그..그 녀석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전쟁을 하면서 연막을 치기 위해서 초가집에 불을 피우는 것은 예사였다. 소련군도 퇴각을 하면서 수많은 집들을 불태웠다. 엄청나게 많은 민간인들이 집을 잃었고 수 많은 아이들이 고아가 된 것 이었다.
'괘..괜찮다! 독일 제국은 복지 제도가 잘 되어있으니까 이들에게도 독일 제국의 점령을 받는 것이 더 좋을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는 마음 속 한 구석이 계속 찜찜했다. 어쨋거나 이번 전투는 승리했지만 계속해서 슐레프 중대는 마르셀 마흐땅 중대장의 2중대와 함께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진격해야 했다. 조만간 소련군은 독일군의 움직임을 눈치챌 것 이다. 놈들이 눈치채거나 군대를 움직이기 전에 빨리 이동해야 했다.
[작가 주석 : 해치를 둘 다 열면 미키마우스처럼 보인다고 해서 독일군이 미키마우스라고도 불렀던 T-34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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