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렐로 가는 길
하늘에 별이 무수히 반짝이는 7월의 어느 날 밤, 슐레프 중대는 숲에서 숙영을 했다. 다들 전차를 정비하고 보병들은 참호를 파느라 바빴다. 그리고 오토는 요하네스와 함께 퀴벨바겐을 타고 주변을 정찰했다.
이런 정찰은 전차 부대의 기동을 위해서 필수적인 절차이다. 티거, 판터처럼 무게가 육중한 중전차들이 무사히 기동할 수 있는지, 급경사나 도랑이 있지는 않은지 미리 살펴봐야했다. 오토는 요하네스와 퀴벨바겐에서 하차하고, 요하네스 어깨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이렇게 한 사람 위에 다른 사람이 올라간 다음 지면이 패인 정도를 관찰하면 티거가 기동할 수 있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오토는 지도에 급경사진 도랑이 있는 위치도 모두 표시했다.
혹시나 소련군이나 파르티잔이 대전차지뢰를 설치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근처 롤반도 손전등을 비추며 꼼꼼하게 확신했다. 소련군의 발자국이나 부자연스럽게 모래가 흩어지 흔적은 없는지 점검을 마쳤다. 얼마 전 타 부대가 이 롤반을 무사히 지나가기는 했지만 소련군은 빠른 시간에 수백개에 지뢰를 매설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일 이 롤반으로 기동하기 전에 꼼꼼한 정찰은 필수다.
대충 정찰을 마치고 오토가 요하네스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지."
오토는 요하네스와 퀴벨바겐을 타고 돌아갔다. 다음 날도 슐레프 중대는 오렐을 향한 행군을 계속했다. 중간에 물이 얕은 하천을 발견했고 전차병들은 모두 전차 뒤에 걸어둔 양동이를 가져와서 물을 길었다. 군마에게도 물을 먹이고, 병사들은 발 씻을 시간도 없이 다시 출발했다. 부대가 오래 정지해있으면 파르티잔의 공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병사들은 마을에서 휴식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끝없이 이 흙먼지 속에서 롤반을 따라 진격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때, 오토바이 정찰병들이 2km 전방에 작은 마을이 있다는 소식을 전달해주었다.
"민간인들은 전부 피난간 것으로 보였습니다!"
오토는 티거 위에 올라가서 쌍안경으로 마을을 관찰했다. 보통 마을에서는 정오에 음식을 요리하느라 연기가 나오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마을에서는 연기가 나오지 않았다. 오토의 티거가 우벤의 판터와 함께 천천히 마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전혀 안 보여?'
여태까지 많은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알게 된 것은, 인간들의 고향에 대한 애착은 상상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거의 다 피난갔음에도 불구하고 꼭 자신의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축을 돌보기 위해서 남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 마을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오토는 본능적으로 머리카락이 쭈뼛거리기 시작했다. 현재 마을까지 거리는 800m 정도였다. 오토가 외쳤다.
"정지!"
오토의 티거와 판터가 정지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오토의 본능은 마을로 더 진입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헤드셋으로 슐레프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1중대다! 1소대! 무언가 보이나?"
"수신완료. 아직 이상 없음."
"이상 없으면 5분 뒤 그 쪽으로 가겠다."
티거의 엔진음과 배기음이 중대장의 목소리와 뒤섞였다. 오토는 헤드셋을 귀에서 땠다. 여전히 티거와 판터의 특유의 엔진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마을 2시 방향에는 적 전차나 야포가 엄폐하기 좋은 헛간이 보였다.
오토는 티거 안으로 들어간 다음 명령했다.
"2시 방향으로 포탑 선회하고 헛간 조준. 2호 차량은 11시 방향 조준할 것. 공격은 전차장 재량에 맡김."
그렇게 티거의 포탑과 판터의 포탑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반이 매복해있으면 걸려들겠지! 기우였으면 좋겠는데!'
멀리서 슐레프 중대장은 쌍안경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중대에 명령을 내렸다.
"이상 없으면 마을에서 잠시 휴식한..."
퍼엉!
그 때, 마을에서 불꽃이 번쩍거렸다. 번쩍거리며 발사된 포탄은 티거로부터 고작 8미터 정도 뒤에 착탄했다.
쿠과광!
소련군의 대전차포가 초가집에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토의 티거와 판터가 마을에 더 접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티거와 판터의 포탑이 선회하는 것을 보고 선제 공격을 한 것 이었다.
오토가 외쳤다.
"고폭탄 연속 장전! 자유 사격!"
에밀이 포탑 선회 패달을 밟고 빠른 곳도로 포탑을 선회시켰다.
트으으응
하지만 이미 소련군의 대전차포는 두번째 탄을 발사했다.
펑!
두번째 탄은 티거에서 25미터 정도 앞에서 폭발했다. 흙먼지가 차체 내부로 들어왔다. 티거 차체가 흔들렸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포탑 선회를 마친 에밀이 외쳤다.
"발사!"
퍼엉!
티거의 장포신이 불을 뿜었고, 차체가 순간 덜컹거렸다. 티거의 발포음은 반경 수 km의 대기를 두들겼다. 썩은 건초로 만들어진 초가집의 지붕이 불타올랐고 시꺼먼 연기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11시 방향에서는 소련군이 땅을 파두고 엄폐해둔 T-34의 포탑 토치카가 불을 뿜고 있었다.
퍼엉!
우벤의 판터와 몇 번 포탄을 주고 받은 끝에, T-34의 포탑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오토가 외쳤다.
"마을로 진입하지말고 우측으로 우회한다! 2호차는 좌측으로 우회! 보병 지원 전까지 마을로 진입하지 않는다!"
판터는 후진 속도가 유난히 느리기 때문에 마을로 섣불리 진입했다가 T-34에게 측면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오토의 티거는 마을을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천천히 둘러보았다.
"9시 방향으로 진입! 철갑탄 연속 장전!"
오토의 티거는 천천히 초가집 사이로 들어갔다. 장전수 알프레트는 재빨리 철갑탄은 장전했다.
스으윽
어차피 이 거리에서 포 맞으면 영점사격으로 한번에 뒤진다. 오토는 해치를 열어둔 상태로 헤드셋을 귀 뒤로 제꼈다. 머리를 해치 위로 살짝 올렸다가 잽싸게 내렸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 때, 우측에서 T-34의 엔진음이 들렸다. 티거의 엔진 소리와 배기음에 묻혀있었지만 오토는 순간적으로 그 소리를 식별할 수 있었다.
"포탑 3시로!!! 우측 적 전차!"
트으으으
소련군은 마을에서 땅을 파두고 T-34의 아랫부분을 묻어두고 엄폐해두었다가, 천천히 티거의 뒤통수를 치기 위해 묻혀있던 호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대전차포, 전차를 호 안에 파묻어두었다가 이동시키는 것은 소련군 특유의 전술이었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우측에서 T-34의 주포가 발사되는 포성을 들었다.
퍼엉!
T-34이 발사한 철갑탄은 오두막의 벽을 으스라뜨리듯이 관통해서 회전하며 날아왔다. 벽을 두 번이나 관통했음에도 철갑탄은 여전히 빠른 속도로 공기를 가르며 날라와서는 이는 티거의 뒤쪽 궤도를 맞췄다.
카가강!
샛노란 불꽃을 사방으로 뿜으며 티거의 우측 궤도 한 칸이 튕겨져 나왔고 궤도가 스르르 벗겨졌다. 엄청난 충격 속에서 오토가 외쳤다.
"발사!"
3시 방향을 향해 티거의 주포는 불꽃을 뿜으며 철갑탄을 발사했다. 철갑탄은 우측 오두막을 관통하고는 T-34 전차의 장갑을 뚫고 엔진을 박살냈다.
쿠궁!쿠과광!
T-34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포탑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마티아스가 외쳤다.
"우측 궤도 피격! 기동불가!"
오토가 외쳤다.
"적 보병 발견하면 자유 사격!"
오토는 MP40을 들고 포탑 해치 위로 고개를 내밀고 6시쪽을 조준했다. 역시나 소련군이 이 쪽으로 칵테일 화염병을 손에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오토는 소련군이 화염병을 던지기 전에 조준사격으로 MP40을 긁었다.
탕! 탕! 탕!
소련군은 화염병을 바닥에 떨어트리고는 억!하고 엎어졌다. 그 때 1시 방향에 있던 건초 속에서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드르륵
오토는 잽싸게 고개를 숙였다.
'으익!'
티거 차체에 기관총이 콩알처럼 튀겼다. 계속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면 오토도 뒤질뻔했다. 무전수 요하네스는 잽싸게 전면 기관총을 1시 방향에 건초를 향해 긁었다.
드르륵
"고폭탄 장전!"
에밀이 건초를 향해 고폭탄을 발사했다.
퍼엉!
그렇게 슐레프 중대는 마을에서 엄폐하고 있던 소련군을 사살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티거 밖으로 나왔다. 정비반 녀석들이 예비 궤도를 이용해서 티거의 우측 궤도를 수리했다. 전차 후미등도 박살난 상태였다.
알프레트는 아까 전에 충격으로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고 에밀도 전차 내부 파편에 맞아서 앞니가 하나 빠졌다.
그 때, 마을 외곽을 정찰하던 하이에가 외쳤다.
"대전차호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
마을 외곽에는 티거도 못 빠져나올만큼 깊은 대전차호가 파여있었는데, 소련군은 여기 기름을 잔뜩 채워둔 것이었다. 여기 빠졌다가 놈들이 불을 붙이면 그야말로 오싹한 상황이 벌어질 것 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전차병들은 모두 경악했다.
"시발!"
"망할 이반 새끼들!"
스테판이 제 딴에 기발한 농담을 했다.
"재수 없으면 슈바인 학센(독일식 돼지고기 요리)가 될뻔했군!"
하지만 아무도 스테판의 말에 웃지 않았다.
오토는 잠을 자지 않고 티거 안에서 소련군의 방어 전술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걸 상부에 올리면 다른 전차 부대도 이런 매복 전술에 대비할 수 있을 것 이다.
다음 날, 다시 슐레프 중대는 롤반을 따라 전진했다. 어제 사건으로 다른 때보다 신중하게 정찰을 했다. 길가에 표지판에는 오렐까지의 거리가 적혀있었다. 거리는 점점 줄어들고는 있었지만 오렐까지는 여전히 기나긴 길을 가야했다.
한편 한스는 일부러 자신의 집무실이나 회의실에서 남들이 볼 수 있게 중요한 서류를 놔두고 있었다. 그리고는 지속적으로 일본에 정보를 흘렸다.
이렇게 양방향으로 흘리는 두 가지 정보에는 세밀한 부분이 달랐다. 한스는 소련 측의 대응을 몇 번에 걸쳐 관찰하고 확신했다.
'일본의 군사 기밀은 상당 부분 소련에 유출되고 있다!'
한스는 자신의 부관을 통해서 하인리히 힘러와의 미팅을 잡도록 했다.
"시급한 일이니 가능하면 빨리 약속을 잡아야하네!"
한편 모스크바에서 소련군은 엄청난 방어선을 파면서 방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민간인도 아픈 사람들도 삽을 들 수만 있다면 모두 대전차호를 팠다. 이 3m 깊이의 대전차호에 빠지면 그 어떤 전차도 빠져나오기 힘들 것 이었다. 정치장교 블라슈크는 자신의 부대원이 성경책을 갖고 있는것을 압수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이런 쓸데없는 책을 읽을 시간에 삽질 한 번이라도 더 해라! 지금은 여자와 아이들, 노인들도 파시스트를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이딴 망상에 빠질 시간에 삽을 들어라!"
블라슈크는 압수한 성경책을 들고는 자신의 지휘소로 향했다. 속마음 같아서는 성경책을 삐라와 함께 모두의 앞에서 불태우고 싶었다.
'종교라는 망상에 빠진 어리석은 녀석들...'
이 지휘소는 민간인이 살고 있는 집의 1층, 2층을 빌린 것 이었다. 원래부터 이 곳에 살던 아주머니는 기꺼이 이들에게 집을 빌려주었다.
블라슈크는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독일군이 키예프로 갔던 덕분에 모스크바 방어 준비를 할 시간이 생긴 것은 다행이었다. 모스크바는 교통의 중심지였기에 보급 상황은 상당히 좋았다.
'어떻게든 모스크바는 지켜야한다!'
서둘러 보고서를 쓴 블라슈크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자신도 대전차호를 파러 가기로 했다. 지휘소에는 장교들이 널부러져 자고 있었다. 다들 15시간 넘게 삽질을 했던 것 이다. 보고서를 챙기고 일어섰는데 위층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블라슈크는 천천히 계단으로 올라갔다. 아주머니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이 불쌍한 병사들을 살려주세요. 이들은 꼭 살아야 합니다. 이 가엾은 이들을 지켜주세요."
그 아주머니는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블라슈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때 안토노프가 하품을 하며 계단을 올라오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정치장교 안토노프가 블라슈크의 상관으로 오게 된 것 이었다. 블라슈크가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래층에 커피가 있습니다."
그렇게 블라슈크는 안토노프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블라슈크는 수많은 민간인, 병사들과 삽질을 했다. 하늘에는 소련군의 정찰기가 비행하고 있었다. 그 정찰기의 조종사는 땅에 파인 거대한 대전차호를 바라보았다.
조종사가 고도를 높이자 대전차호는 점점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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