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불가된 티거
발터 모델의 3기갑사단은 과감한 진격으로 빠른 속도로 송곳같은 돌출부를 형성하며 돌진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은 끝없이 넓었고 저 멀리 지평선이 보였다.
전차들은 특유의 넓은 쐐기대형을 이루며 산개하여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 전차마다 보병들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많은 보병들은 등에 박격포를 매고 있었고, 1m 가량 높이의 갈대를 헤치며 나아갔다.
이렇게 기갑부대가 빠른 속도로 진격하고, 구데리안 2기갑집단의 보병부대가 길게 뒤따르며 소련군을 향한 거대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토 또한 티거의 해치 위로 상체를 내밀고 쌍안경으로 주변을 정찰하면서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다. 오토도 전격전을 알았지만 이 정도 규모로 정신나간 전격전을 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놈들 예비대의 규모는 어느 정도지? 클라이스트 기갑군단은?'
그 때, 상당한 고고도에서 소련군의 정찰기가 날아다녔다.
위이잉 위이이잉
하지만 대공사격을 실시하기도 전에 소련군의 정찰기는 달아났다. 지금 2기갑집단은 제51전투항공단, 3, 제53폭격항공단, 제210고속폭격항공단의 지원을 받으며 전진하고 있었다. 그 소련군의 정찰기가 더 얼쩡댔다간 매서슈미트에게 작살이 날 것이었다.
무선에서 스테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놈들은 우리 목적을 알겠군요."
슐레프 중대장이 말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네. 각 소대 측면 경계!"
오토는 쌍안경으로 측면을 관찰했다. 잠시 뒤, 측면에서 소련군의 전차들이 기관총과 주포를 발사했다. 슐레프 중대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 진격했고, 다른 전차 중대가 소련군 전차와 교전했다.
펑! 퍼엉! 쿠광!
대지에서 독일군의 전차와 소련군의 전차들은 포탄과 기관총 총알을 주고 받았다. 소련군의 전력은 미약했고, 이는 독일군의 측면을 뚫는데 전혀 효과가 없었고 진격을 늦추는 효과조차 없었다.
그리고 독일군은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는 시가지에 엄청난 포격을 퍼부었다.
우르릉 쿠르릉
동유럽 특유의 차갑고 웅장한 건물의 2층 창문이 압력 차이로 인하여 모조리 박살나더니 1층 창문도 모조리 박살나며 모든 창문에서 샛노란 불꽃이 거대하게 뿜어져나왔다.
퍼엉! 쿠궁! 쿠르릉! 쿠과광!
이 아름답던 도시는 사방이 뿌연 안개와 포연으로 희미해져 있었다. 독일군의 항공기들은 저공 비행하며 상당한 정확도로 주요 건물에 폭탄을 투하했다.
도시에서는 계속해서 찢어지는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표도르는 자신의 전차병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를 데리고 피신했다. 글리에르가 똥오줌을 지리고 눈이 뒤집혀서 커다란 건물로 들어가려하자 표도르가 외쳤다.
"건물로 들어가지마! 건물이 주요 타겟이다!"
그렇게 넷은 가까스로 건물에서 떨어진 꽤 커다란 구덩이 속에 몇 보병들과 함께 기어들어갔다. 모두 귀를 틀어막고 입은 크게 벌렸다. 그러지 않으면 압력으로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찢어지는 사이렌 소리와 쉿쉿거리며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 폭발 소리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띠이이이 띠이이이
쿠르릉 쿠르르릉
표도르는 귀를 틀어막았다. 구덩이 위에 통나무들을 덮어두었는데도 엄청난 먼지와 연기가 세어들어와서 코가 매웠다. 표도르와 병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귀를 막아도 청각이 거의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지금 표도르와 전차병들에게는 애국심, 자유에 대한 의지, 숭고한 희생정신, 용기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생존에 대한 동물적인 본능조차 희미해졌다.
글리에르는 입을 크게 뜨고 눈은 완전히 감고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기괴한 표정으로 구덩이 안에서 똥오줌을 지리며 기괴한 소리를 냈다.
"꾸어어어....꾸어어어...꾸어어어....꾸어어어..."
한 보병은 결국 구덩이 밖으로 뛰쳐 나갔다. 표도르는 엄청난 소음과 먼지, 열기 속에서 자신의 손이 움직이며 다시 구덩이의 뚜껑을 덮는 것을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성적으로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판단이 안 선다. 여전히 발을 제대로 딛고 있는지도 까마득해진다.
이제 하늘은 어둑어둑해졌다. 거대한 서치라이트가 돌아가며 하늘에 거대한 빛줄기를 움직이며 하늘을 비췄다. 옥상 위에 거치된 4연장 맥심 기관총이 하늘을 향해 발사되었고 4개의 길다란 줄이 시커먼 하늘에 그어졌다. 도시는 지상도 하늘도 미쳐날뛰고 있었다. 시발놈의 사이렌 소리는 뇌를 긁다못해 뇌에 손톱자국을 길게 남길 것 같았다.
띠이이이 띠이이이
포병들은 다른 병과 녀석들과는 달리 포격에 대해서는 다소 면역력이 있다. 녀석들의 야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탄피가 똥을 배출하듯이 뒤로 떨어졌다.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탄이 장전되었다. 도시에는 붉은 화염과 함께 불꽃이 번쩍거렸다.
오토 또한 쌍안경으로 이 광경을 보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저 정도로 때리면 잔해 때문에 기동이 힘들텐데!'
착탄점이 옮겨지면서 오토의 소대 또한 시가지 내부로 들어가야했다.
"1소대! 28확인점으로!"
그렇게 오토의 소대는 천천히 시가지로 진입했다.
트릉 트르르릉
'설마 아군 오사에 당하는건 아니겠지?'
그 때 오토의 티거의 전면장갑이 가로등 사이에 설치되어있던 인계철선을 건드렸다.
쿠과광!
엄청난 불빛이 번쩍거렸고, 오토와 전차병들은 폭발의 충격을 느끼며 장갑에 머리를 부딪쳤다.
띠이이이ㅡㅡㅡ
'으아아악!'
소련군은 인계철선을 가로등 사이에 설치하고, 여기 조명탄을 묶어두고 폭발 장치를 연결해두었던 것이다. 발광 물질이 들어있었기에 이는 계속해서 어둠 속에서 번쩍거렸고 오토 소대의 위치가 적군에게 노출되었다.
"눈 부셔서 앞을 못 보겠습니다!"
조종수 마티아스와 오토는 이 조명때문에 전면 사계를 관측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50미터쯤 떨어진 건물에서 오토의 소대를 향해 기관총을 긁어대고 총류탄을 발사했다.
"신속히 전진! 기관총 자유사격! 고폭탄 발사!"
소련군이 발사하는 기관총이 콩알처럼 오토 소대의 장갑을 때렸고 여기저기서 수류탄이 터졌다.
쿠광! 콰광!
연이은 수류탄의 폭발은 티거 장갑에 피해는 주지 않았지만 오토와 전차병들에게 이 충격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고폭탄 발사!"
퍼엉!
오토의 소대 전차들은 기관총 불빛이 번쩍거리는 창문으로 고폭탄을 발사했다.
쿠광!콰과광!
오토가 외쳤다.
"저 시발 새끼들! 작살을 내주지!"
트르릉 트르릉
한편, 소련군 기관총 사수와 부사수는 2층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건물 내부는 고폭탄 폭발로 온갖 파편과 시멘트 가루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옥상으로 탈출해서 다른 건물로 이동한다!"
1층으로 탈출했다간 독일 보병의 공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소련군 기관총 팀은 옥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때,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으악!"
건물의 기둥과 서까래가 통째로 덜덜덜 흔들리기 시작했다.
"빨리 1층으로 가!"
"으아악!"
티거가 건물 1층을 통째로 들이받고 있었던 것이다. 2층 건물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티거는 그 무너지는 잔해 속에서 포탑을 움직이며 건물을 완전히 작살냈다. 2층짜리 건물은 그렇게 모든 구조물이 박살나서 무너져내렸다.
오토가 외쳤다.
"우하하하! 어떠냐!"
"1소대! 현위치 보고하라!"
그렇게 어둠 속에서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32 확인점 잔해 속 적 야포!"
시가지에서는 전차가 뭉쳐서 소대 단위로 이동하면 효율이 떨어졌다. 오토는 소대를 둘로 나누기로 결심했다. 잠시 뒤, 우벤 전차장으로부터 소련군의 야포를 격파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좋았어!"
그 때, 마티아스가 외쳤다.
"우측 궤도가 이상합니다!"
티거의 우측 궤도의 이물질이 낀 것 이었다.
"정비 소대는 오는데 30분 걸린답니다!"
"그 망할 놈들! 분명 30분이 아니라 한 시간 걸릴거다!"
오토는 자신의 소대 판터 전차장인 우벤의 자리를 잠시 빼앗아서 소대를 계속 지휘하기로 하고 무선으로 우벤에게 연락을 했다. 우벤이 보고했다.
"현재 위치 32 확인점! 그 쪽으로 갈까요?"
"됐다! 그 쪽으로 내가 가겠다!"
어차피 우벤의 판터가 있는 32 확인점까지는 세 블록만 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오토는 MP40을 들고는 허리를 낮추고 빠른 속도로 어둠 속을 달렸다. 그 때 갑자기 포격이 시작되었다.
쿠구궁! 쿠과광!
'으익!'
오토는 잽싸게 바닥에 엎드렸다. 30미터쯤 앞쪽에서 건물 파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것이 보였다. 저런 건물 파편에 맞으면 뼈도 못추릴 것이 분명했다. 오토는 잽싸게 우측 건물로 들어간 다음 아까 가던 방향으로 계속 창문에서 창문으로 진입하며 32 확인점으로 전진했다.
빨리 우벤의 판터에 탑승해서 소대를 지휘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때, 오토는 전차 엔진음과 궤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트으응 트드드등
한때 오토의 소대에서도 운용한적이 있는 T-34의 엔진음이었다!
오토는 창문을 통해 이 쪽으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T-34 3대를 발견했다.
'으아아아악!'
세 대의 T-34는 천천히 길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 T-34들은 오토의 티거가 기동불능된 지점으로 가고 있었다. 오토의 티거는 현재 뷜리겐의 4호 전차와 함께 정비 소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이걸 알려야 해!'
오토는 혹시나 T-34에게 들킬까봐 허리를 숙인채로, 티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오토의 군화에 박힌 징이 건물 마루바닥을 쿵쿵 울렸다.
오토는 방금 전에 넘어왔던 창문 밖으로 나가서 다른 건물로 들어갔다. 그 때, T-34의 전조등은 지금 오토가 있는 건물 내부에도 비춰졌다.
'으아아악!'
오토는 혹시나 자신의 모습이 소련군에게 보일까봐 건물 속에서 엉금엉금 기어갔다. 선두에 T-34 전차의 포탑은 정면을 향하고 있었고, 뒤따라오는 T-34 전차 두 대는 제각기 10시 방향, 2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놈들은 건물에 독일군이 있는지도 면밀히 관찰하면서 이동하고 있었던 것 이다.
오토의 허리춤에는 방망이 수류탄 한자루 밖에 없었다. 오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기어갔다. 팬티에는 이미 똥오줌을 지린 상태였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조명탄을 발사할까?'
그 때, 오토는 건물 안에 있던 길다란 옷걸이를 잘못 건드려서 넘어뜨렸다.
우당탕!!
'으익!'
오토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모...못 들었을거야!'
오토는 창문에 바짝 붙어서 엎드려 있었다. 선두에 T-34는 천천히 전진하며 포탑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트으으으 트으으
포탑이 회전하며, T-34의 주포는 오토가 있는 건물의 1층 창문을 박살냈다.
와장창!!!
사방에 유리 파편이 떨어졌고, T-34가 포탑을 움직일 때 들리는 특유의 소리가 났다.
트으으 트으으으
오토는 엎드린채로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보았다.
T-34의 주포가 창문을 박살내고 삐죽하게 나와 있었다.
트으으으
트르릉 트르르르릉
선두에 T-34는 다시 포탑을 0시 방향으로 돌렸다. 그리고 세 대의 T-34는 앞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오토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튀쳐나왔다. 그리고 맨 뒤에 있는 T-34를 향해 달려갔다. 오토는 자신도 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으아아아악!!!!!!!!!!'
오토는 후미에 T-34 후면에 손잡이를 잡고 상부 해치로 올라갔다. 군화에 박힌 징이 장갑을 두들기며 쿵쾅거리는 소리에 소련군 전차병들이 외쳤다.
"뭐야!"
오토는 그렇게 후미의 T-34를 밟고 두번째 T-34로 점프했다. 맨 뒤에 T-34의 전차장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오토를 발견했다.
"저 새끼 잡아!"
오토는 잽싸게 첫번째 T-34로 점프했고 상부 해치를 열었다. T-34 포탑에 있던 전차장이 커다란 눈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오토를 올려다보았다. 오토는 수류탄의 격발끈을 당기고 포탑 내부에 던지고는 앞으로 달려갔다.
맨 후미에 있던 T-34 전차의 전차장은 상부 해치를 열고는 권총을 들고 머리를 내민 상태였다. 오토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계속해서 달려갔다.
'우아아아악!'
쿠과광! 콰과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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