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지크프리트
한병태는 사다오와 함께 독일로 초청되어 티거 전차와 판터 전차의 주행 테스트를 해보고 있었다.
'이..이 전차는 3호 전차나 4호 전차하고도 비교가 안된다!!'
독일의 기술력은 정말 엄청난 수준이었다.
'이 전차는 설계도를 받아도 일본에서 자체 생산이 어려울 것 이다..하중이 무거워서 운송도 힘들겠지..'
다다즈미가 판터를 주행해보고 일본어로 말했다.
"별거 아니군!!"
일본군의 티거, 판터 주행 테스트가 끝나고 한병태는 상관들을 따라서 독일의 전차 공장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포탑이 없는 상태의 전차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었다. 크레인을 이용해서 포탑을 차체 위에 올려놓고 용접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병태는 이를 보며 경탄과 질투심을 동시에 느꼈다.
'아시아가 이 기술력을 따라잡을 날이 올까?'
한스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와서 일본군에게 선물 받은 도리야끼를 먹었다. 한스는 지구본을 보며 생각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나건, 설령 소련놈들이 물량 공세로 버틴다고 하더라도 군사 역사에 남는 것은 전격전이 될 것 이다...'
한편, 슐레프 중대는 드디어 정비소가 있는 후방의 궁둥이로 이동했다. 그 동안 전차들은 엄청난 거리를 주행해왔고 엄청난 먼지를 뿜어냈다. 여러 번에 교전으로 에어필터가 망가진 전차들은 결국 먼지로 인해서 엔진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슐레프 중대원들이 모두 전차 옆에 주저앉아서 휴식을 취하는데 하늘 위에서 융커스 Ju52 수송기가 보였다.
게오르크가 외쳤다.
"왔다!!"
날개 아래에 철십자기가 그려진 이 Ju52를 보자 전차병들은 모두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Ju52 수송기는 슐레프 중대 전차들이 교체할 엔진과 주요 부품들을 적재해서 수송해주고 있었던 것 이다.
정비병들과 전차병들은 모두 작업복을 입고는 후방 데크를 열고 엔진을 살펴보았다.
"싹 다 갈아야겠군!!"
오토가 자신의 전차병들을 보며 물었다.
"에어필터 청소 제대로 한건가?"
알프레트가 외쳤다.
"제..제대로 했습니다!!"
정비사는 티거 후방 데크 위에 올라가서 엔진 소리를 들어보았다.
트르르릉
"이거 교체 해야합니다!!"
그렇게 엔진을 교체하는 대작업이 시작되었다. 특수 정비용 차량이 크레인을 이용해서 엔진을 들어올린 다음 천천히 티거의 후방 데크 안으로 집어넣어졌다.
"완벽해!!"
3소대의 4호 전차 또한 포탑을 크레인으로 분리해낸 다음 다시 재장착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용접 불꽃이 튀었다.
2소대의 티거는 보기륜을 모조리 때어낸 다음, 가장 안 쪽에 있는 가운데 보기륜을 교체하는 대작업을 해야했다. 정비사가 욕설을 퍼부었다.
"바퀴를 왜 이따위로 만든거야?"
티거의 보기륜들은 겹겹이 장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운데 보기륜을 교체하려면 모든 바퀴를 때어내야 했던 것 이다.
융커스 수송기가 에어필터를 충분히 보급해주었기에 에어필터를 교체하면 앞으로 슐레프 중대의 전차들은 오랜 기간 주행이 가능할 터였다. 에어필터가 제대로 작동해야 엔진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연료 소모량도 적정 수준으로 유지 가능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부품이었다.
전차들의 궤도를 갈아야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길게 궤도가 늘어져 있었다. 정비병들은 해머를 갖고 궤도를 고정시켰다.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하는 것을 보고 전차병들이 기뻐하며 외쳤다.
"다행이야! 요새 주요 부품 수급 잘 안 된다고 들었는데!!"
"다 Ju52 덕분이지!"
힘겨운 정비 작업이 끝나고, 전차병들과 정비병들은 기름과 먼지로 시커멓게 된 작업복을 입고는 전차 옆에 주저앉아서 소련군에게서 노획한 메밀로 만든 까샤를 먹었다. 오토 또한 빈 제리캔 위에 주저앉아서 동기들이랑 식사를 했다.
그리고 슐레프 중대와 같이 보전 협동 전술을 하게 될 보병 부대에는 지크프리트 4인조가 들어왔다. 1차대전때 받았던 1급 철십자 훈장을 달고 있는 크리스티안, 올라프, 호르스트, 로베르트를 보며 어린 병사들이 수근거렸다.
"저걸 봐!! 1급 철십자 훈장이야!!"
"1차 대전때 한스 파이퍼와 같이 싸웠대!!"
"엄청난 베테랑일거야!!"
"자유 군단에도 있었대!!"
올라프는 까샤를 먹으면서 투덜거렸다.
"고기가 하나도 없잖아!"
"소련 놈들은 이런거 먹고 어떻게 싸우냐?"
"고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가야지!"
한 신병이 지크프리트 4인조에게 말했다.
"돼지 기름이 들어간게 맞습니다!"
"뭐? 근데 왜 내껀 건더기가 없어?"
크리스티안이 말했다.
"나..나도 건더기가 없네!"
어린 신병이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돼지 고기가 들어간게 아니라 기름이 들어간 겁니다!"
"봐봐!! 내것만 건더기 없잖아!"
한편 슐레프 중대와 지크프리트 4인조가 머무는 궁둥이 쪽에 장교들 사이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육군 참모 총장 한스 파이퍼가 이 쪽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것 이다. 특히 정비병과 전차병들은 난리가 났다.
"육군 참모 총장은 전차를 꼭 살펴보네!! 궤도 하나까지 모조리 깔끔하게 정비해야 해!!"
슐레프 중대장은 진급에 대한 욕심이 많았기에 어떻게던 이번 기회에 잘 보여야 했다. 슐레프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전차를 점검하고 육군 참모 총장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지금 가장 실력이 좋고 전과가 뛰어난 전차 부대 중대장들은 티거로만 이루어진 특수 중전차 부대, 슈베레 압타일룽(Schwere Abteilungs, 묵직한 부대라는 뜻. 군 직할 부대로 운용되고 전선의 취약한 곳을 틀어막는 역할을 함)의 중대장으로 차출될 것 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슐레프는 티거 중전차 부대의 중대장 자리를 탐내고 이었던 것 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잘 보여야 한다! 하나라도 꼬투리가 잡히면 안 된다!!'
잠시 뒤, 한스 파이퍼 육군 참모 총장이 타고 있는 슈토르히 정찰기가 착륙했다. 장교들은 모두 각 잡힌 자세로 한스 파이퍼에게 경례를 했다. 한스는 주요 부품의 수급률, 각 전차의 사용감과 개선점에 대해서 일선의 병사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정보를 수집했다.
지크프리트 4인조와 보병들은 멀찍이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대..대단해!!"
"어떻게 이등병에서 육군 참모 총장까지 올라간건지 알 것 같네!"
그때 한 신병이 코를 막고 중얼거렸다.
"그..근데 이게 무슨 냄새입니까?"
한 부사관이 말했다.
"농민들이 비료로 쓰려고 모아 둔 분뇨일세!"
이 궁둥이 근처에는 농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 이다.
"냄새 정말 고약하군!!"
"으웩!! 못 참겠다!!"
그 때 보병 소대장이 와서 외쳤다.
"이보게 자네들! 이것 옮기게!!"
지크프리트 4인조는 속으로 궁시렁 거리며 탄약 상자를 날랐다.
'왜 하필 나 시켜...'
지크프리트 4인조는 수류탄 상자를 옮기다가 장교가 안 보는 틈을 타서 잠시 주저앉았다. 호르스트가 말했다.
"군대에선 열심히 해봤자 다 소용없네!! 대충 대충 하자고!!"
하지만 막상 휴식을 취하려고 했더니 지크프리트 4인조는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크리스티안이 방망이형 수류탄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균형을 잡았다.
"이거 봐라!! 난 이거 할 수 있다!!"
로베르트가 방망이 수류탄 세 개를 탑처럼 쌓아보았다.
"난 이렇게 탑 쌓을 수 있다!!"
이제 40대 초반이라 약간 철이 든 호르스트가 외쳤다.
"이봐!! 수류탄으로 장난치지 말라고!!"
올라프가 말했다.
"바보냐? 이거 다 불량 수류탄일세!"
"그..그렇군!!"
호르스트는 불량 수류탄이라는 말에 방망이 수류탄으로 덤블링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봐라!!"
그 때 누군가 외쳤다.
"밥이다!!"
그 말에 지크프리트 4인조는 수류탄을 집어던지고는 어디로 달려갔다.
"우와!!!"
그리고 한 개의 수류탄은 분뇨 더미에 쳐박힌 다음 폭발했다.
쿠광!! 콰과광!!!
똥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고 일부는 한스 파이퍼와 슐레프 중대장, 오토, 스테판 등 장교들의 머리 위에도 떨어졌다.
철퍽!!
방금 전까지 슈베레 압타일룽의 중대장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한스에게 열심히 아부를 하던 슐레프 중대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인!!!!!'
한 장교가 외쳤다.
"과..관련자를 색출하고 처벌하겠습니다!!"
한스는 얼굴에 묻은 분뇨를 닦고는 화를 억눌렀다.
"그럴 것 없네..."
솔직히 한스는 펄펄 뛰면서 분노를 터트리고 싶었지만 굳이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육군 참모 총장 자리까지 올라가면 체면 때문에 맘 놓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 때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한스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알고보니 농민들은 이 궁둥이에서 수리하고 버린 야포의 바퀴, 고장난 장갑차 등을 주워다가 트랙터나 마차를 만들었던 것 이다. 보급 부대 장교는 농민들에게 이에 대해 항의하면서 부품을 모조리 내놓으라고 하고 있었다. 농민들은 어차피 버린 부품을 주워다 썼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 이었다. 아냐라는 이름의 러시아 아가씨가 성난 표정으로 독일 장교들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 밭을 진지로 썼잖아요!!"
'망할 독일놈들!! 남의 땅을 쳐들어왔으면서!!'
육군 참모 총장 한스가 오자 독일 장교들은 모두 물러나서는 한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한스는 러시아인들이 만든 트랙터를 바라보았다.
"정말 근사한 솜씨군!"
농민들과 다투던 독일 장교들은 한스의 말에 당황했다.
"어차피 폐기처분하려던 장갑차인데 재활용하면 좋지 않나?"
한스의 말에 아냐는 당황스러웠지만 뾰루퉁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한스가 떠나고 열받은 독일 장교는 마을에 여자들에게 말했다.
"이렇게 우리 군의 물품을 썼으니 여자들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시오! 육군 참모 총장님을 위해서 사과 파이를 굽도록 하시오!"
그 말에 아냐가 항의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가 왜요?"
마을 이장이 아냐에게 말했다.
"그냥 시키는대로 하게."
결국 아냐를 포함한 마을 여자들은 독일군을 위해 사과 파이를 구워야 했다. 아냐가 궁시렁거렸다.
"그 놈들 정말 싫어!!"
다른 마을 아가씨가 파이를 구우며 말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기분 거슬리게는 하지 말자고!"
그렇게 한스는 장교들과 함께 마을 이장의 집을 방문했다. 이장의 집 거실에는 독일군의 차량 퀴벨바겐의 좌석을 뜯어내서 만든 쇼파가 있었다. 그리고 몇 아가씨들은 독일군의 담요나 모포 등으로 만든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이 근방에서 독일군이 폐기 처분한 물품들은 모조리 주워다가 알뜰하게 재활용하고 있었던 것 이다.
이장의 집에서 내놓은 포크도 심지어 독일군이 쓰는 수저와 포크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제품이었다.
'이거 다 우리꺼잖아?'
한스는 파이를 먹으며 보급 부대 장교들에게 보급 상황에 대해 보고 받았다.
'확실히 전차 주요 부품 수급이 가장 큰 문제로군..탄약과 차량 부품이 식량보다 보급에 있어서 우선 순위라 최전선에 있는 병사들이 식량을 보급받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군...'
무엇보다 티거는 연료 소모량이 너무 많았다.
'티거가 연료를 보급받지 못한 상태로 고립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겠군!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티거를 자폭시키거나, 추후에 연료를 가지고 복귀한다고 해도 이미 소련군이 함정을 파두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 이다. 티거 중대를 운용할 때 주의해야겠군...'
이렇게 한스는 궁둥이에서 정보 수집을 마친 이후 슈토르히 정찰기를 타고는 돌아갔다.
게오르크가 오토에게 물었다.
"너네 아버지한테 뭐 들은거 없냐?"
헬무트도 오토에게 물었다.
"우리 모스크바로 가는거야 우크라이나 쪽으로 가는거야?"
오토가 말했다.
"난 아무 말도 못 들었네."
한편 오토와 동기들은 모두 티거로만 이루어진 특수 중전차 부대, 슈베레 압타일룽(Schwere Abteilungs)의 소대장으로 차출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현재는 오토가 제일 적 전차 격파 대수가 많았기에, 오토가 가능성이 높았다.
'티거 소대장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계속된 전투로 인해서 몸의 면역력이 떨어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버틸만했다. 그렇게 슐레프 중대 장교들은 슈베레 압타일룽에 들어간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며 전차 옆에 걸어놓은 해먹에서 골아떨어졌다.
Comment '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