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군 전차장 표도르의 과거
지금 소련군은 시가지에서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각 건물의 창문은 모조리 부수고 커튼은 전부 때어냈다. 각 건물에 쓸데없는 입구는 모두 가구로 막고, 자신들만 알 수 있는 구멍을 벽에 뚫었다. 그 직경 1m 정도 되는 구멍을 통해서 소련군은 드나들면서 탄약, 음식 등을 운반했다.
포병 녀석들도 야포 등을 배치하며 바쁘게 시가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포병대대는 대대에 4대 있던 무전기 중에 또 한 대가 고장나서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다.
포병 대대장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일단 한 대는 대대관측소, 다른 한 대는 포대 지휘 관측소에 배치한다! 나머지 한 대는 내가 갖고 있겠네!"
그런데 포병 중대장이 무전기 상태를 점검하고는 말했다.
"이것도 고장난 것 같습니다!!"
"뭐라고!!!! 무전기 두 대로 어떻게 포병 대대를 지휘를 하라는건가!!"
포병 대대장이 펄펄 뛰는 모습을 보며, 소련군 전차장 표도르는 또한 시가전을 준비했다. 표도르는 지형 지물, 근처 지휘소 위치 등을 모두 암기했다. 그 때 누군가 외쳤다.
"밥이다!!!"
모두 우르르 달려가서 까샤를 배식 받았다. 표도르 또한 자신의 전차병들인 드미트리, 파벨, 글리에르와 함께 가서 까샤를 배식 받아서 보병들과 함께 쓰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한 입 맛을 보았다. 그런데 맛이 이상했다.
'상한건가?'
글리에르가 한 입 맛보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거 맛이 이상합니다!"
"배부른 소리 말고 일단 먹게."
보병들이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 취사병 녀석들..."
"재료 관리할 줄도 모르나?"
취사병들의 음식 관리 상태는 엉망이었다. 얼마 전에는 병사들을 위해 배급하기로 했던 감자가 통째로 썩어버리기도 했던 것 이다. 표도르 일행과 같은 건물을 쓰는 보병들의 훈련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어리버리하게 생긴 신병이 부사관에게 가서 말했다.
"소총, 군화에 기름칠하는 법을 모르겠습니다!"
부사관이 귀찮은듯이 말했다.
"저기 저 친구한테 가서 물어보게!!"
결국 그 신병에게는 다른 부사관이 군화, 소총에 기름칠하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외쳤다.
"자네는 소총, 군화에 기름칠하는 법도 모르나?"
"난 감자 캐는 일 밖에 안했다고! 훈련 받을 시간이 어딨어?"
"누구는 노동 안했냐!! 난 돼지 똥으로 비료 만들었네! 그래도 기름칠은 할 줄 아네!"
조종수 드미트리가 자신의 전차장 표도르에게 물었다.
"전차장님도 노동했습니까?"
"군에서 키우는 돼지들에게 먹이를 줬지."
표도르는 아직도 자신이 먹이를 주던 돼지들의 번호를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파벨이 말했다.
"난 군에서 부사관들은 훈련만 할 줄 알았는데..."
표도르가 말했다.
"추수나 파종 시기에는 대민 지원 때문에 훈련 받을 시간이 없네."
파벨이 말했다.
"대민 지원은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였습니까? 훈련에 지장이 생길 것 같은데..."
"추수나 파종 시기에는 한 달에 한 번이네."
"뭐 그 정도야 딱히 지장이라고 할 수는..."
"훈련이 한 달에 한 번이었네."
"에엑?"
지금 보병 녀석들의 훈련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이었다. 부사관끼리 서로 발싸개 매는 법을 몰라서 헤매다가 자신들의 소대장에 가서 물어보았다. 하지만 소대장도 발싸개 매는 법을 몰랐다.
"그것도 못하나! 다른 녀석들한테 물어봐!!"
그 때, 건물에 중대장이 와서 소대장에게 외쳤다.
"자넨 보고서 쓰는 형식도 모르나?"
소대장이 머리를 긁었다.
"죄...죄송합니다악!!"
표도르의 전차병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는 이 모습을 보고 수근거렸다.
"어떻게 장교가 보고서를 못 쓸 수 있지?"
중대장이 떠난 다음에 보병 소대장이 씨부렁거렸다.
"종이랑 연필도 안 줬으면서 보고서는 시발..."
하급 장교들은 종이, 연필을 배급받지 못했기에 사비로 구입해야 했던 것 이다.
파벨이 수근거렸다.
"하급 장교랑 부사관들 힘들게 사는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였다니..."
전쟁 전, 하급 장교들은 아내의 몸을 팔게 하고 아이들은 구걸시킨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걸 정말로 믿지는 않았던 것 이다. 드미트리가 말했다.
"근데 전차장님은 잘생기셨는데 왜 결혼을 안하셨...악!!"
글리에르가 드미트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저런 눈치 없는 자식!!'
표도르는 독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표도르의 부사관 시절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전차병들과 근처에 보병들도 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기 시작했다.
표도르는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랐다. 하지만 표도르의 아버지는 늘 표도르를 두들겨팼다. 나이가 들자 더 이상 아버지는 표도르를 패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어머니를 두들겨팼다. 결국 표도르는 이 꼴을 보기 싫어서 붉은 군대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표도르의 친구 이반에 말했다.
"너 정신 나갔냐? 군대에 들어간다고?"
"이 참에 애국도 하고 독립도 하는거지! 군대 일이 나한테 안 맞다 싶으면 적당히 돈만 모으다가 나오면 그만일세!"
"돈을 모은다고? 너 전혀 모르는구나!"
이반은 표도르에게 뭔가를 말하려다가 그냥 한숨을 쉬고는 표도르에게 감자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표도르는 군대에 들어오고 나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겨울에 소련군이 머무는 막사는 그야말로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난방 따위는 사치였던 것 이다. 의복은 배급해줬지만 군화는 배급해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표도르의 자리에는 매트리스가 없어서 지푸라기를 구해와야 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지푸라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표도르는 양말까지 겹으로 신고는 이불 속에서 덜덜 떨었다.
'으...으아아아....추...춥다....'
이대로 자면 얼어 뒤질 것 같았다. 표도르는 조용히 막사를 빠져나온 다음, 취사장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취사반장 동무는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는 난로 옆에서 이불을 덮고 곤히 자고 있었다. 하도 부사관들이, 심지어 하급 장교까지 음식을 서리했기 때문에 걸리면 두들겨패려고 몽둥이를 준비해둔 것 이었다.
그 취사반장 동무는 덩치가 무진장 커서 왠지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하지만 표도르는 당근 3개를 서리하는데 성공하고 잽싸게 취사장을 빠져나와서 당근을 씹어 먹었다. 이렇게 먹는 당근은 그야말로 달달한 초콜릿 맛이 났다.
'이..이렇게 맛있을 수가!'
서리도 성공했고, 왠지 이번주는 운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표도르는 드디어 군화를 배급받게 되었다.
"스탈린 동지는 붉은 군대를 위해 언제나 최상의 것을 준비하신다! 소중히 신도록!!!"
표도르는 자신의 군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좋았어!! 손질도 자주해야지!'
"소대장 동지! 구두약과 솔은 어디서 배급받을 수 있는지 여쭈는 것을 허락받아도 되는지 묻는 것을 요청해도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악!"
"구두약과 솔은 일주일만 기다리게!"
소대장이 약속했던 그 구두약과 솔은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부사관들은 옷이 너덜너덜했고 구멍이 뚫려있었다. 표도르는 녀석들이 칠칠맞다고 생각했다.
'저런 군기 해이한 놈들!! 군복은 제대로 수선해야하거늘!!'
표도르도 군복에 작은 구멍이 터져서 바느질을 하기로 결심하고 동료에게 물었다.
"이보게! 바늘과 실 빌려줄 수 있나?"
근처 농가에서 보드카를 긴빠이쳐서 마시는 동료가 술에 취해서 실실거리며 말했다.
"나는 없네!"
표도르는 모든 동료들에게 바늘과 실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바늘과 실을 배급받지 못했다.
'이런 젠장!!!'
한 동료가 표도르에게 말했다.
"정 필요하면 민가에 보급품이랑 교환하면 될걸세. 하지만 누가 바늘이랑 실 따위에 보급품을 교환하나? 나라면 보드카와 교환하겠어!"
"뭐? 보급품을 교환한다고? 그건 규율 위반 아닌가!"
"자기 살 길은 알아서 찾는거지."
그 때, 중대장이 들어왔다. 모든 부사관들은 각잡힌 자세로 일어섰다.
"운전할 줄 아는 사람 지원 받는다!"
표도르는 운전을 할 수 있었지만 나서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줄을 잘서야 했고, 괜히 자원했다가 고생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몇 녀석들은 눈치보다가 앞으로 한 발 내딛었다. 중대장이 외쳤다.
"전차병을 뽑는다!!"
'저..전차?'
그 말에 표도르는 발을 내딛었다. 표도르는 전차를 타보고 싶었던 것 이다. 그리고 일주일 뒤, 기대하는 첫 실전 훈련을 하게 되었다. BT 경전차로 열심히 훈련을 하는데, 한 대가 엔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젠장!! 뭐지?'
표도르는 이를 보고하기 위해 아까 전부터 보이지 않던 정치 장교를 찾았다.
"이바노프 동지! 이바노프 동지 어디있습니까?"
"이바노프 동지는 아까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한창 훈련 중인데 마을로 튀면 어쩌자는건가!!'
표도르는 근처에 마을로 내려갔다. 거기서 정치 장교들은 매춘부들과 함께 보드카를 먹으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저 망할 새끼들!!!'
표도르가 외쳤다.
"이바노프 동지!! 제 차량의 엔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점검이 필요합니다!!"
이바노프 정치 장교는 표도르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바쁘니 이따가 말하게!"
표도르는 속으로 욕설을 퍼주으며 훈련장으로 돌아갔다. 그 때, 피터로프 소대장이 정비반을 불러서 표도르의 BT 전차를 봐주고 있었다. 피터로프 소대장은 보기 드물게 성실한 장교였고, 모두들 피터로프 소대장만은 신뢰하고 있었다.
다행히 BT 전차는 정비가 되었다. 피터로프 소대장은 각 전차들을 점검하며, 기동 훈련을 마친 후 실전 전술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표도르의 동료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소대장은 잘 만나서 다행일세!"
흥미로웠던 전차 훈련이 끝났고, 표도르는 동료들과 함께 부대에서 키우는 돼지들에게 사료를 주고 똥을 치우는 역할을 했다. 이 똥은 비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모두 농장으로 운반되어야 했다. 사실 훈련 시간보다 돼지를 돌보는 시간이 더 많았고, 표도르는 돼지들에게 사료를 주며 말했다.
"이 녀석들!! 작작 좀 먹어라!!!"
돼지들은 꿀꿀거리며 열심히 사료를 먹었다. 그래도 파종 시기가 아니었던지라 표도르와 전차병들은 일주일에 두 번은 훈련을 받게 되었다. 표도르가 돼지에게 사료를 주며 다짐했다.
'난 소련 최고의 전차장이 되고 말겠다!!'
표도르는 엄청난 똥 냄새를 맡으면서도 가슴 속에는 미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다.
여태까지 푼돈이지만 약간의 봉급을 모을 수 있었다. 이 봉급으로 결혼을 해서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살릴 수는 없을 것 이었다. 표도르 외에 다른 부사관들도 대다수는 결혼을 포기했다.
"부사관 월급으로 어떻게 아내를 먹여살려!"
"하급 장교들도 아내를 매춘시키는데 말일세! 난 죽어도 그렇게는 못 살아!!"
하급 장교들은 아내를 매춘시키고 자식을 구걸시켜서 생계를 유지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결혼을 하면 아내가 부대를 따라다녀야 하기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고, 하급 장교의 월급만으로는 가정 부양이 거의 불가능했던 것 이다. 아무턴 표도르의 머리 속에는 전차에 대한 관심만 가득했고 결혼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차피 안되는건 포기하는게 좋다.
얼마 뒤, 표도르의 군복은 그야말로 기름떼로 엉망진창이 되었고, 여기저기 구멍이 터졌다. 결국 표도르는 마을로 내려가서 군복을 수선 맡기기로 결심했다.
'이 근처에 재단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표도르는 목이 말라서 우물에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때 한 금발머리에 아리따운 아가씨도 왔고, 표도르는 아가씨에게 물을 내밀었다. 그 금발 아가씨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고마워요."
표도르는 어색해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 때, 아가씨가 표도르의 군복을 보고는 말했다.
"군복이 터졌어요."
표도르는 얼굴이 벌개지는 것을 느꼈다.
"알고 있습니다. 이 근처에 재단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 아가씨는 표도르의 군복을 살펴보고는 말했다.
"제가 바느질해줄게요. 벗어보세요."
표도르는 군복 상의를 벗어서 아가씨에게 건네주었다. 아가씨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바늘과 실을 꺼낸 다음 표도르의 군복을 손질해주기 시작했다. 그 아가씨에게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표도르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가씨는 바느질을 마치고 웃으며 군복을 내밀었다.
"다 됐어요!"
잠시 뒤, 표도르는 디아나라는 이름의 그 아가씨와 근처에서 식사를 했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표도르는 기쁜 마음으로 막사에 돌아와보니, 동료들 사이에서는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무슨 일인가?"
"피터로프 소대장님이 결혼하신대!!"
피터로프 소대장은 모두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
"소대장님 축하합니다!!"
표도르 또한 이를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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