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첩보작전
디트리히 본회퍼는 접선 대상의 사진을 보았다. 서류에 따르면 이미 아프베어 측에서는 이 접선 대상과 만날 장소와 대략적인 시간을 정해준 상황이었고, 이는 상당한 위험성이 있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생각했다.
'접선 대상한테 미리 시간을 알려주면 안되는데 왜 이런 무리수를...'
원래 이런 경우에 접선 대상에게는 접선 시간과 장소를 미리 통지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왜냐하면 접선 대상이 배신해버리면 미리 함정을 파두고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아직 영국의 주요 문화에 대해 익숙한게 아니었기에 책장에 꽂힌 책들을 읽어보며 영국 최신 유머에 대해서 공부했고 여행가이드를 보며 공중전화 사용법, 택시 사용법에 대해서도 익혔다.
그리고 디트리히 본회퍼는 대영박물관에 대한 가이드 책자를 꼼꼼히 읽으며 그 구조를 미리 파악했다. 혹시나 미행이 붙을 경우 가능한 탈출로까지 3개 정도 준비해두었다. 내일 토요일 대영박물관에서 접선을 해야할 것 이었다.
'토요일이라 사람이 많겠군...'
혹시나 돌발 상황이 생길 경우 도주를 해야하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날이 좋을 것 이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세 개의 도주로를 계획하고 지도에 표시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자신의 해독한 문서를 몇 번에 걸쳐 정독했다.
만약 이번 접선책이 배신을 하여 함정을 파주었다면, 잡히기 전에 대영박물관에서 총을 한 발 허공에 발사해서라도 반드시 이를 알려야 한다고 서류에 적혀 있었다. 만약 대영박물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이는 해외 언론에도 보도되고, 아프베어 쪽에서도 이를 알 수 있을 터였다.
'이번 임무는 쉽지 않겠군...'
다음 날 디트리히 본회퍼는 상점에 가서 야영에 필요한 도구를 구입한 다음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묻어두었다. 그리고 최근에 접선지에서 파낸 현금의 70프로 정도도 다른 장소에 묻어두었다. 혹여나 오늘 접선이 실패로 돌아올 경우 여기로 와서 현금과 야영 도구를 이용하여 도주할 수 있을 것 이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인근 식당으로 가서 손을 씻고 식사를 한 다음 택시를 탔다.
"대영박물관으로 가주시오!"
디트리히 본회퍼가 탑승한 택시 기사는 계속 주절거렸다.
"오늘 날씨가 참 좋구려!"
디트리히는 그냥 웃으면서 대충 대답했다.
"하하. 오늘은 날씨가 별로 안 춥습니다."
택시 기사가 말했다.
"근데 억양이...실례지만 어디 출신입니까?"
"리투아니아 출신입니다."
"아하! 리투아니아 출신이군!"
택시 기사가 빽미러를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 차는 왜 아까부터 따라오는거야?'
잠시 뒤, 디트리히 본회퍼는 팁까지 포함하여 요금을 지불하고는 대영박물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영국식 신사로 분장한 토마스가 뒤늦게 택시에서 하차하고는 디트리히 본회퍼를 따라가고 있었지만 본회퍼는 모르고 있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대영박물관의 이집트, 수단 전시관에서 관람을 하면서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기 시작했다.
'...'
토마스는 유리벽에 기대어서 디트리히 본회퍼를 조심스럽게 미행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대피라미드의 외벽을 관찰하고 있었다.
토마스가 생각했다.
'여기서 MI6와 접선을 시도하는 것 일수도 있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때, 한 꼬맹이가 유물을 보며 말했다.
"우와! 이거 미라다! 미라!!"
토마스는 자신이 기대고 있던 유리벽 안에 붉은색 머리카락이 남아있는 기괴한 자세의 미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기겁했다.
'으익!!'
토마스가 미라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디트리히 본회퍼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어...어디로 갔지?'
토마스는 허둥지둥 디트리히 본회퍼를 찾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그리스, 로마 전시관에서 마침내 디트리히 본회퍼를 발견했다.
'절대 놓치지 않는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누군가와 접선을 기다리는 것 처럼 한 장소에서 계속해서 유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마스는 '랠리의 비너스(미의 여신 비너스가 목욕을 하다가 들킨 모습을 만든 조각상)' 뒤에서 디트리히 본회퍼를 유심히 감시했다. 사람들은 비너스 조각상 뒤에서 변태같이 꼼짝앉고 서있는 토마스를 보고 웅성거렸다.
'변태인가봐!'
"쉿! 눈 마주치지 마!"
대영박물관에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디트리히 본회퍼를 따라갔다. 이번에 토마스는 '원반 던지는 사람'(나체로 원반 던지는 형태의 조각상) 뒤에 숨어서 본회퍼를 추적했다. 이제 슬슬 사람들은 토마스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대영박물관 직원까지도 토마스를 유심히 관찰했다. 결국 박물관 직원 둘이 토마스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토마스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조각상의 유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어딘가로 향했고 토마스는 대충 둘러댄 다음 그리스, 로마 전시관 밖으로 빠져나갔다. 박물관 직원들 또한 인파 틈에서 토마스를 따라갔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길쭉한 의자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범한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신사가 디트리히 본회퍼의 옆자리에 앉았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신사가 신고 있는 구두를 확인했다. 구두끈이 묶여있는 매듭을 보니 그 접선자가 맞았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가죽 가방 속에 들어있던 서류를 꺼내려던 순간, 맞은편 유리로 된 전시관 벽에 비친 토마스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까 전부터 눈에 띄어서 안 그래도 수상쩍게 생각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유리벽으로 토마스와 본회퍼의 눈이 마주쳤다.
'미행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빠른 걸음으로 맞은 편에 있는 박물관 직원한테 가서 토마스를 가리키며 귀띔했다.
"저기 수상한 사람이 있소."
허둥지둥 본회퍼를 쫓아오는 토마스에게 박물관 직원 셋이 다가갔다.
"신분증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한편 대영박물관 밖에서는 이미 페터 또한 디트리히 본회퍼를 추적하는 상황이었다.
'이 새끼 어디갔어!!'
대영박물관 밖으로 빠져나온 디트리히 본회퍼는 딱 봐도 이상한 행동 거지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페터를 발견하고 그 인상착의를 기억해두었다. 디트리히는 자신의 코트 안쪽 주머니에 있는 권총을 확인했다. 만약 잡히지 않고 탈출한다면 총성을 발사하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권총을 발사해야 할 것 이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도로로 나가서 급하게 택시를 잡았다.
"택시!! 택시!!"
마침 도로에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가 한 대 있었고 디트리히 본회퍼는 급히 택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전벨트 매주십시오!"
디트리히 본회퍼가 안전벨트를 매고 잠시 머리 속으로 계산했다. 현금과 함께 야영 도구를 묻어둔 곳으로 가서 현금을 갖고 일단 튀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이번 일을 신고하는게 좋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 자신을 추적한게 독일쪽 스파이고 접선책이 배신했다면 이를 신고하는 것이 우선일 것 이다.
"국가범죄대책청으로 가주시오!!"
어차피 본회퍼 본인은 영국의 이중스파이였고, 자신을 추적하는 것은 독일쪽 인물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디트리히 본회퍼는 이를 신고하기로 마음 먹은 것 이었다. 그 때, 운전석에 있던 헤르만이 디트리히 본회퍼에게 총을 겨누며 영어로 말했다.
"대가리에 총알 박히기 싫으면 얌전히 따르시오."
차의 문이 열리며 뒤늦게 따라온 페터 또한 디트리히 본회퍼의 옆자리에 앉으며 총을 겨누었다. 본회퍼는 눈을 양쪽으로 굴리며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리고 잽싸게 자신의 코트 안쪽으로 손을 넣으려는 순간, 페터가 권총 개머리판으로 디트리히 본회퍼의 머리를 내려쳤다.
퍼억!
"주...죽은건가?"
"기절한 것 같은데?"
그 때, 멍청한 토마스 녀석이 대영박물관에서 빠져나와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 등신 새끼!'
"빨리 와!!!"
토마스 녀석이 달려오다가 옆에 있는 핫도그 트럭에서 핫도그를 사기 시작했다.
'저 시발 놈!!!'
대영박물관 직원들은 박물관 밖으로 나와서 핫도그를 구입하는 토마스를 수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더니 토마스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헤르만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디트리히 본회퍼는 눈이 가려진 채로 깨어났다.
'뭐...뭐지?'
본회퍼는 자신이 침대에 묶여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누...누구시오!! 풀어주시오!!"
그 때 누군가가 말했다.
"디트리히 본회퍼, 1906년 2월 4일 독일 브레슬라우 출생...신학자이며 전쟁 참전을 피하기 위하여 아프베어 소속으로 영국으로 파견을 나가게 됨..."
디트리히 본회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정보도 노출해서는 안된다!'
"촉망받는 신학자로서 평일에는 신학을 공부...졸업 논문은 "성도의 교제"...주기적으로 독일 국방군에 영국 근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
그 때 누군가가 본회퍼의 얼굴을 후려쳤다.
퍼억!!!
"이 망할 크라우트 새끼...감히 정보를 빼돌려? 아프베어에 대해 네 놈이 아는 모든 것을 말해!! 다른 접선책도!! 그렇지 않다면 교수형은 면제해주지!!"
디트리히 본회퍼가 말했다.
"나는 당신들 편이오."
"하!! 웃기는군!!"
그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귀에 대고 이글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놈이 아프베어와 연관이 있다는 모든 증거를 잡았다!! 네 놈이랑 친분이 있던 빌헬름 카나리스가 직접 네 놈이 영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정보 수집을 하도록 했지."
"현재 카나리스는 독일의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오. 그렇기에 나에게 MI6에 독일 측의 정보를 넘기도록 했지. 당신들은 어디 소속이오? 국방부? MI6에 확인해보면 내가 한 말이 모두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 이오."
"그게 정말이오?"
"그렇소!"
"증거는?"
디트리히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음 접선책에게 정보를 전달받기로 약속했던 숲의 지명과 위치를 말했다. 그 때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이 놈 말이 맞는 것 같군."
디트리히는 흠칫했다.
'도...독일식 악센트?'
순간 디트리히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풀어졌다. 시커먼 지하실에서 토마스, 헤르만, 페터가 디트리히를 보고 있었다. 또한 디트리히의 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녹음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디트리히는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살려줘!! 살려주시오!!!! 독일 스파이야!!!"
토마스가 웃으며 외쳤다.
"하하하!! 멍청하기는!! 여기는 완벽하게 방음이 되는 곳이야!!"
이렇게 토마스, 헤르만, 페터는 카나리스가 배신자라는 증거를 발견했고 이는 한스 파이퍼에게로 직통 보고 되었다. 한스는 이 카드를 어떻게 쓸까 고민했다.
'이 카드를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좋을까?'
한스는 최근에 괴벨스가 만든 군 부대 선전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만약에 군부대 이동 등에 대한 정보를 애인이나 가족에게 말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코믹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병사들에게 누누히 교육을 하지만 제대로 안 지키는 병사들이 많았고, 문맹 또한 많았기에 이렇게 쉽게 애니메이션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괴벨스에게 이 카드를 주고 거래해볼까?'
그리고 한스 파이퍼는 우크라이나 국민 정부를 떠올렸다.
'이들이 지금 독일 산하의 자립 정부가 되도록 협상을 하자고 해야 강제 합병이 없을터인데...'
한스는 우크라이나 국민 정부와 접촉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살짝 귀띔을 하는 것이 좋을까?'
Comment ' 21